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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미나 주제발표2 "조경가의 시선으로 실상사를 보다" 정영선(서안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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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09 11:59 조회2,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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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절 불사, 어떻게 하면 좋을까 3

 주제발표2
 조경가의 시선으로 실상사를 보다

 정영선 / 서안조경

 김봉렬 선생님께서 불교건축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 불교에 문외한인 제가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리고 어제는 조성룡 선생님이 걱정이 되셨던지 실상사에 관련된 도면이랑 자료를 산더미같이 보내주셨다. 아까 김봉렬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준비가 미흡하다. 어젯밤에 밤을 새서 원고를 썼는데, 지금 실내가 어두워서 읽을 수 없으니 준비된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드리겠다.

 저는 지금 현재의 실상사 현장을 중심으로 먼저 했으면 하는 일을 조경가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겠다. 실상사 불사가 복원이 되든 중창이 되든지에 관계없이 지금이라도 이런 것은 해야만 되지 않을까 하는 내용이 중심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조경가라는 전문가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스님들, 선비들, 또는 어떤 호족들이 공사를 전담해서 안을 만들고 시행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또 건축가들은 자연을 잘 읽고 경관을 잘 선택하고 건축을 할 때도 자연경관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왔다. 특히 사찰건축과 정자건축은 경관은 경관대로 건축이 있음으로 해서 경치가 아름다워지고, 건축은 건축대로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건축이 아름다워지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화룡점정의 경지라고나 할까. 이는 당시 건축하는 사람들이 경관을 보는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찰에서 복원이나 중창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건축부지, 사찰의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가용지가 어딘가를 찾는데 급급하지, 내가 서있는 사찰 주변의 경관을 잘 읽고 해석해서 ‘왜 이 자리에 절이 들어왔을까’, ‘우리가 어떤 경관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주어진 상황이나 면적과 같은 요소들이 경관에 대한 생각을 수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겠지만, 그러다보니 더 많은 문제들을 사찰이 빚어내고 있는 것 같다.


 1. 이 시대 사찰의 문제점

 <건축규모나 프로그램의 과대산정>
 먼저 사찰의 중창이나 복원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는 건축규모를 산정하는 방식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인구도 늘고 신자수도 늘고 이용의 편의성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그보다는 규모나 프로그램들이 너무 과다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인 것 같다.

 <배치의 부적절함과 주변과의 부조화>
 따라서 배치가 부적절하고 건축의 위치나 규모가 주변경관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난다.

 <불교건축의 Sequence개념 약해짐>
이러한 상황은 불교건축의 시퀀스 개념을 약화시킨다. 조금 전에 김봉렬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옛날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면, 시퀀스나 영역의 개념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불교건축의 시퀀스 개념이 많이 약해져서, 절에 오면 마음이 가다듬어지지 않고, 오히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스럽고 부산해지는 것이다.

 <사찰의 관광지화>
 다음으로는 사찰이 관광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찰이 있는 곳이 전부 명승지, 경승지, 국립공원이다 보니 국립공원 관리체계라든가 지자체의 관광수입원으로의 마찰이 끊임없이 야기된다. 그리고 관광지로서 갖춰야 할 편의성 때문에 불필요한 시설들이 계속 늘어난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두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무조건 만들고 본다.

 <성보박물관의 문제>
 그 다음으로, 제가 가장 갑갑해하는 것은, 거의 일괄적으로 전국 사찰에 만든 성보박물관의 문제이다. 처음 성보박물관을 지을 때는 순수한 우리 전통건축으로 하다가 점차 현대적인 양식이 가미되었다. 그런데 신문지상에 보면 종종 성보박물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항상 문이 닫혀있거나 운영프로그램이 없어서 운영을 못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문제는 비단 성보박물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에 있는 거의 모든 박물관이 일단 건축을 해놓고, 다음에는 대안이 없어 문이 닫혀 있거나 형식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검토 없이 지을 자리가 없는데도 억지로 끼워 넣거나 전시물이 없는데도 일단 짓고 보는 행태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자주 노출이 되면서 오히려 불교나 사찰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 일반시민들의 눈에도 사찰이 욕심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찰건축이 왜 그리 아름다운가를 살펴보면, 사찰이 자리한 경관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사찰을 찾아가는 긴 경로(시퀀스) 때문이기도 하다. 개울을 건너고 일주문을 건너고… 
사찰로 가는 길은 어쩌면 아주 교묘하게 장치된 경로이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어디서 어디까지가 건축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건축의 외부공간인지 전혀 모르는 게 사찰건축인 것이다. 아까 김봉렬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네트워크와 같다. 이렇게 사찰을 향해 한 걸음씩 가면서 일상세계에서 지고 있는 번뇌나 답답함과 같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낸다. 이런 건축은 제가 알기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경관을 체험해나가는 경로 - 저는 이것이야말로 사찰건축에서 정말 중요하고 사찰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배치능력이라고 보고 있다.

 부석사를 보면, 마음에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입구에서 무량수전까지 올라가는 단계, 그 다음에 잠깐 뒤돌아보면서 앞에 펼쳐지는 전경 등은 은 아주 멀리 있는 풍경에서 가까이 있는 숲까지 주변 경관이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사찰들은 건축을 할 때 가슴이 콱 막힐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우리가 전통사찰에서 쓰던 목재나 석재와 같은 재료구입의 어려움, 공사비용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콘크리트를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바로 대웅전 옆에까지 시설들을 짓기도 한다. 수원에 있는 봉녕사는 제가 좋아하는 사찰인데 그러한 예의 하나로 들었다.

 이 건물은 해인사의 구광루인데 저는 이것만 보면 울고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갑갑하기 그지 없었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오게 되자 안내센터가 필요해졌고 기념품도 판매해야 되고, 또 신자 수도 많으니 설법을 들을 수 있는 큰 공간도 만들어야 되는 상황에서 궁리궁리한 것 같다. 이곳은 중창의 방식으로 구광루 아래의 통과하는 길을 막고 필요한 공간을 넣었다. 
 이렇게 중창하며서 발생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주문에서 시작해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부처님 참배 전에 마음을 준비하고 가다듬는 이런 과정을 없애버리고, 가람을 보는 순례코스가 다 뒤바뀌어버렸다. 또 엉뚱한 곳에 계단이 만들어져야 되고 이쪽 마당에서 보이던 탑과 같은 것들이 다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갑갑한 상황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주로 사찰증축에서 많이 일어나는 문제가 되겠다.

 봉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 있던 일주문이 없어지고 법왕루로 막고 규모도 키우면서 전체적으로 답답해졌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미륵불의 전체 경관과의 부조화이다. 코엑스에서 보면 미륵불이 대단히 우람한 형태로 서있는 것이 보인다. 미륵불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지금 미륵불이 서있는 장소와의 관계에서는 너무 크다고 볼 수 있다. 미륵불은 위치면에서나 크기면에서나 경관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하실 때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좀더 심도깊게 살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보시는 사진들은 성보박물관이다.

 월정사의 성보박물관은 정말 갑갑하다. 대웅전에서 바라볼 때 성보박물관이 앞을 딱 가로막고 있으니 앞에 있는 풍경이나 계곡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백양사 성보박물관은 항상 문을 닫아놓으니까 사람들이 볼 수도 없다. 백양사는 전시물이 없어서 처음부터 문을 닫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은 해인사 본 찰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서 본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도 역시 주변경관과의 관계에서는 기능상의 문제나 형태상의 문제가 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이 있는 근처에는 매우 아름다운 석문이 있고, 아름다운 계류가 있는데, 성보박물관이 그곳을 장악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심하게 훼손한다.
 지금까지 오늘날 사찰불사에서 보여지는 조경의 문제들만 간단하게 들여다봤다.


 2. 실상사를 들여다 보다

 이제 실상사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려고 한다.
 제게 실상사와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잠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사찰에 대한 관심보다는 유기농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발표 때문에 실상사에 다시 다녀왔는데, 이번에 둘러본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실상사는 앞서 봤던 산 속에 있는 사찰하고는 좀 다르게 너른 평지에 있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도 실상사 입구를 못 찾고 지나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찰 자체가 평지에 있고, 넓은 들판에 있는데다가 마을처럼 보이는 가게 사이로 입구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위치에 있는 실상사는 다른 사찰과 시퀀스가 어떻게 다를까, 혹시 들판에서 농사를 짓다가 젖은 발로 바로 들어가는 그런 과정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면서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도면으로 그려본 진입시퀀스는 그림과 같다.

 도로변 진입로 입구에서 해탈교를 건너면서 만나는 풍경들은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제법 얌전한 길 풍경이다. 그리고 만수천이 맑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해탈교를 건너서 큰 정자나무가 있고, 아주 오래된 유머러스한 석장생이 서 있다. 여기까지의 시퀀스만 보면 이건 영락없는 옛날 마을, 어느 농촌마을의 입구 같다. 농촌마을에서 흔히 보는 풍경-냇가의 작은 다리를 건넌다거나 마을입구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거나 그와 함께 액막이를 위한 벅수라든가 솟대와 같은 농촌마을 입구의 풍경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는 사찰 진입로의 정자나무와 장승이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의 경우는 수행과 농사를 겸하는 실상사의 철학과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을과 함께 있는 절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길 자체도 바로 실상사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농경지의 농로가 있고, 산 아래에 있는 경작지까지 그 길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실상사로 가는 길은 찻길과 보행로로 나뉘는데, 두 길 사이에 수로가 중간에 있는 애매한 형태였다. 보행로에 아낙네들이 특산물을 파는 모습이 보인다. 그 농경지의 중간쯤에 가서 비로소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 직각으로 꺾여져 있는데, 연못인지 연밭인지가 크게 있어서 좀 의아스럽게 생각되었다. 지금의 시퀀스에서는 여기부터가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겠다.
 여기부터가 사찰입구인데,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어 너무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정신이 없게 한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건물을 보수하거나 중창할 때 쓰기 위한 황토를 절 입구에다가 쌓아놓은 것이다. 그 황토더미 위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입구에서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황토더미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는 사찰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비록 기독교 신자이긴 하지만 어떤 사찰에 갔을 때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데 실상사 입구는 마음을 급하게 할 것 같다. 아울러서 사찰 입구에 마당(주차장)이 있다. 어떤 의미로 보면, 농경지들이 실상사의 문전옥답이 되는 형태이다. 그 옛날에 그렇게 컸다는 사찰의 모습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곳은 천왕문이다. 천왕문을 지나서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너무 휑한 공간이다. 왜 이런 공간이 있을까. 그 의문이 안 풀려서 너무 고민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고, 안상수 선생님께 참여요청을 거절할 걸 잘못했다고 후회까지 했다.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김봉렬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것을 듣고 나니 약간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보광전까지의 시퀀스를 보여드렸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찰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찰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경관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찰이 산속에 있는 사찰이기 때문에 실상사에 오면서 평지, 특히 농경지 한가운데 있는 사찰은 과연 어떤 형태로 경로를 만들었을까가 매우 궁금했다. 먼저 실상사는 문전옥답을 가진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약수암에서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보거나 실상사 맞은편의 실상사작은학교에서 내려오면서 내려다보면 사찰의 지붕들이 큰 나무에 가려 있으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그냥 조금 부유한 농촌마을에서 기와지붕이 살짝살짝 드러나는 것처럼 정답다. 둘째, 들판을 거닐면서 바라보면 야트막한 흙담이 있는데, 이 또한 집앞에 비옥한 옥답이 펼쳐져 있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실상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실상사에서 하고 있는 한생명공동체운동, 작은학교운동, 귀농운동과 같은 여러 활동들이 마치 넓은 경작지 속에 씨앗의 배아처럼, 눈처럼 딱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열매 실(實)자를 가진 실상사는 지리산 아래의 넓은 경작지 속에서 좋은 씨앗을 싹틔우는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저 혼자 해보기도 했다.

 다음은 실상사 내․외부를 살펴보겠다.
 이 그림은 경내외에 흐르는 크고 작은 수로의 그림이다. 경내로 많은 물이 들어오고 있고, 농업용수로가 지나가고 있고, 바깥에도 크고 작은 연못이 있다. 앞으로 수로에 대한 분석은 단지 내부의 조경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찰건축 전반에 걸쳐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복원이나 중창을 하실 때는 마스터플랜을 짜기 전에 이 유역 일대의 수계와 수문을 전부 한 번 분석을 해보셨으면 한다. 특히 사찰 영역 내의 극락전과 요사채 사이로 흐르는 이 수로 같은 것은 재고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물 처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평지에 있고 주변에 큰 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물 처리 문제는 더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아래는 지금 말씀드린 제일 중요한 농경용 수로가 되겠다. 왜 이 폭으로 이런 공법으로 사찰 내에 농수로가 느닷없이 들어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이것을 좀 다른 방법으로 해서 생태적 하천을 만드는 것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아주 많은 면적을 차지해야 하고 또 이 안에 어떤 유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특히 여러 갈래의 물이 합류되어서 경내로 흐르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이 농수로가 절밖으로 나가는 곳에 담장 밑으로 낸 물길은 마치 소쇄원처럼 재미있게 되어 있다.
 극락전 앞 연못은 도면에는 사다리꼴로 되어 있지만, 대충 네모지게 형태가 잡혀져 있었다.  수로 옆 화엄학림 스님들 처소 뒷쪽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도 생태적인 것,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실상사와는 잘 어울리는 초종(草種)은 아닌 것 같다.
 다음은 객사와 대중방, 그리고 공양간 주변의 풍경이다. 여기에도 작은 도랑이 있는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합류되어 하나가 되어 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옛날 시골에서는 흘린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적절하게 돌려 그 물이 토란밭으로 가게 하고, 그 물이 다시 봉당으로 가도록 해서 봉당에 모아놨다가 나중에는 농약을 치거나 하는 식으로 가장 마지막 단계까지 쓸 수 있게끔 고려되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도랑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를 봐야 했는데, 시간이 짧아 그것까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저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은 절 마당의 천왕문 근처 연못이다. 저는 천왕문을 들어서자마자 선문답 식으로 '뜰앞에 잣나무'라는 곳이 있어서 잣나무를 찾아봤는데 없더라. 그보다는 뜰앞의 잣나무 바로 앞에 있는 연못 옆의 나무가 훨씬 근사했던 것 같고 앞에 휴식공간도 있어서 좋았다. 반듯한 연못이 있긴 햇지만 연못의 수위가 낮은 데다가 돌로 둘레를 계속해서 쌓고 또 쌓고, 마지막 부분에는 관목을 심어놓아서 수면이 보이지 않게끔 해놨다. 사람들이 물에 빠질까봐 그러신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적당한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나중에 중창이 끝난 뒤 정비한다고 생각지 마시고 우선 이런 것 하나라도 제대로 정리하면 실상사 마당이 분위기가 쇄신되지 않을까 한다.

<실상사의 식생현황)
이것은 실상사의 식생현황인데 성균관대 건축원 학생들이 그린 것이다. 이름표가 있는 나무는 이름을 써놓고 이름표가 없는 나무는 이름을 안 써놓은 상태다.
 우선 극락전 쪽부터 식생현황을 살펴보겠다. 극락전 주변 산에서 내려오는 쪽은 산에 있는 나무가 대숲으로 잘 연결이 되어있다. 여기가 습지인지 몰라도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과 들이 만난 가장자리에 필요에 의해서 심었으리라 판단되는 산수유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산자락과 실상사가 만나는 이 부근의 식생은 제가 봤을 때 아주 근사한 경우였다.
 그런데 실상사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실상사의 나무들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아마 화재에 소실되었거나 해서 오래된 나무는 실제로 없는 것 같다. 여기 보면 상당히 많은 나무들이 있다. 은행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호두나무 등 사찰에서 필요로 했던 유실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다음으로는 관상적인 가치로 벚나무, 말채나무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소나무가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나무들이 개서어나무이다. 전체적으로 지리산 자체에 있는 자연식생이라기보다는 사찰에서 필요한 유실수와 관상적 가치 때문에 심어진 나무들이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대체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건물과 붙어 있거나 너무 여러 가지 나무가 뒤섞여 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인 전각 앞에 큰 소나무가, 그것도 반송이 있는 것은 걱정이 되었다. 반송은 앞으로도 더부룩하게 더 자랄 것이다. 한 10년만 지나면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것 같다. 이것을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절이 전체적으로 더 갑갑하게 보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기와를 덮을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다음은 목탑부근의 풍경이다. 감나무 같은 것이 있기도 했는데, 왜 이런 나무들이 이 자리에 있어야 했는지 논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열식이 되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나무도 섞여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이 아주 건강하게 자기 수형대로 자란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바람에 의한 것인지, 습기에 의한 것인지 어쩐지 생육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한 번 잘 짚어볼 부분이다.
 다음은 절 바깥풍경이다. 주로 들판의 풍경이 되겠는데,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도시중심으로 모든 것이 발달하다 보니 고유의 농촌풍경에 대해 무관심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농촌을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개발의 대상으로 여긴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농사를 접고 농공단지나 수출용 공장이 들어설 수도 있고, 러브호텔이나 아파트도 들어설 수 있는 곳 정도로 농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사 주변에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여기 실상사에서는 무엇보다도 앞에 있는 들판, 농촌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크게 신경을 쓰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실상사의 담장>
 한편으로 실상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담에 대한 것이다. 경내에 흙담들로 둘러쳐져 있는 공간들이 많고, 요사채에도 얕은 담이나 벽담이 같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극락전에도 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담들이 지나치게 낮게 되어 있는 게 많다. 왜 이렇게 낮은 담을 만드셨는지, 그리고 담의 형식도 일정하지 않아서 느닷없이 다른 형태로 바뀌어 들어오는 부분들도 애매하다. 문주만 있고 아예 담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왜 그러셨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실상사의 마당>
다음은 가장 중요한 마당에 관련된 것이다. 제가 볼 때 어느 사찰이나 어느 전통한옥이나 가지고 있는 가장 어렵고도 힘든 문제가 마당이다.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고, 질퍽거리고, 얼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다져야 하고, 또 매일 비질을 해야만 하는 곳이 우리 전통사찰이나 전통한옥의 마당이다.
 실상사 마당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된 것은 아주 정밀한 레벨측정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측정해보면 아마도 미묘한 레벨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마당에 전각이나 탑 등이 그냥 툭툭 던져져 있는 형태로 서있는데, 레벨은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당이 그저 두루뭉실하게 보인다. 레벨이 평평하지 않으면 탑 주변도 큰 비가 와서 흙이 쓸려나갔을 때 그대로 방치하면 기초석이 드러나거나 하면 시각적으로 기우뚱해 보일 수 있다. 또 아름다운 석등이나 석탑들이 그냥 길바닥에 대충 놓인 것 같은 느낌들이 난다. 그러면서도 녹지부분이나 목탑지 부분은 일정한 높이로 고르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큰 돌을 대충대충 놓아두어서 위압감을 주고 있고, 정말 반듯하게 정돈되어야 할 마당의 형태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복원을 하시든 중창을 하시든간에 지금 현재의 마당을 어느 정도의 선을 만들어서 정리하는 그런 궁리는 우선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전부 한꺼번에 하자가 아니라 먼저 하셔도 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토목공사에 대해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제1선은 마당을 반듯하게 하고, 누진 곳이 없게 해서 배수가 잘 되게 하고, 햇볕이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이 모이는 곳에 연못을 파고 마당을 반듯하게 만든 다음에 담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실상사의 경우에는 회랑이 있던 자리에 회랑도 없어지고, 지금은 어떤 영역의 설정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의 설정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하도 자연이란 말을 좋아하다 보니 그냥 놔두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경에도 좋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직선을 넣으면 어떤 문화재 위원은 한국적이지 않다, 왜 나무를 열식하느냐고 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전통건축이나 사찰을 한 번 더 들여다보시면 일단 마당이 얼마나 반듯한지 아실 것이다. 그런 반듯함이 여기에도 더 깃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실상사의 건축물>
 특히 석등 주변이나 탑 주변은 제가 볼 때 불안한 느낌마저 든다. 큰 불사는 나중에 하더라도 이런 것은 바로 정리를 해도 되지 않을까. 또 건축물의 기단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부분적으로 묻혀 있고, 레벨이 차이가 나는 것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저는 이런 것들이 하루라도 빨리 정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맑은 울림으로

 제가 좀 지적만 많이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실상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여러 가지 이유도 많다.  이것도 인연인 것인지 저는 백장암을 올라가면서 굉장히 감격했다. 정말 깔끔하고 맑고 비어있으면서 앞의 경관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떤 절의 암자에서는 서울에 있는 꽃가게보다도 더 화려한 꽃들을 심어 가꾸고 있는 것도 보았는데, 백장암에는 흔한 알록달록한 꽃도 하나 없었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때 중앙에 큰 계단 같은 것도 없이 굽이굽이 옆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서 올라가고, 마루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게 정말 아름다웠다. 암자와 마당 사이의 비례도 좋으면서 한 그루 나무 밖에 없는 풍경도 그렇다. 책에서 보니 이곳이 실상사가 처음 생겼던 자리라고 되어 있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곳이었다.
 저는 실상사의 정신, 즉 백장암을 만들고, 약수암을 만들고, 화엄학림을 만들고, 농촌마을을 가꾸고자 하는 이 정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다루었으면 좋겠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속가능한 사찰, 지속가능한 농업은 나무 한 그루를 심든, 작목 하나를 심든지간에 이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할 것인가, 종이 얼마나 다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더 건강하게, 얼마나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가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그냥 생태적이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실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실상사작은학교 아이들이 신나게 어울려 축구를 하면서 ‘빨래는 누가 하지?’ 하면서 걱정하는 모습이라든가 유치원 아이들이나 방과후학교 아이들이 논둑길에서 노는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슴에 크게 와 닿았고 큰 희망으로 보였다. 뿐만 아니라 실상사에는 귀농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귀농학교 교육프로그램, 주민들을 위한 교육시설, 지리산숲길 등 매우 다양한 활동들이 함께 어울려 있었다.

 생태와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고자 하는 실상사의 노력이 절과 마을, 마을과 농경지와 어우러지면 실로 맑은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한 맑은 힘이 지리산의 한 지점, 마치 씨앗의 눈과 같은 실상사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울려 퍼진다면 우리나라 종교와 농촌의 방향 등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겠는가.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았지만, 오늘 제가 발표한 것들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옥의 티만 끄집어내서 말씀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 그렇지만 그런 티를 조금만 신경 써서 고쳐나간다면, 실상사 자체가 더 맑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정말 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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