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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세미나 주제발표4 -기본구상을 위한 생각의 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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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13 11:06 조회2,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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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발표4
 
기본구상을 위한 생각의 틀거리
 
조성룡 성균관대 건축과 석좌교수
 
성균관대 건축원 학생들이 지난 5월부터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 말씀도 듣고 지역에 대해 열심히 알아봤다. 오늘은 그렇게 해서 이해하게 된 실상사와 산내면 일대 마을의 현황에 대해 정리한 자료를 보면서 나누고자 한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일단은 시작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면 하고, 오늘 세미나를 통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과 함께 종합하면 앞으로 이런 자료드링 실상사 불사의 생산적인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 발표해드릴 자료는 실상사 불사 자체에 대한 내용이 아니어서, 관행적으로 보면 느닷없고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차례의 세미나를 통해서 논의된 실상사 불사의 관점에서는 실상사 주변의 환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실상사 불사를 제대로 하는 길이고, 실상사 불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실상사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산의 경관과 그 중간에 있는 마을의 모습과 실제 삶, 현장의 소리들을 들어보는 것으로 하겠다. 발표내용에서 혹시 부족하거나 잘못된 곳이 있다면 수정해주시면 고맙겠다.

1. 실상사의 위치
지금 대동여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실상사가 여기에 있고 화엄사가 여기에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실상사와 화엄사이다. 실상사 옆으로 내가 흐른다. 만수천이다.
 
이것을 현대적인 지형도로 옮겨보면 그림과 같다. 산 지형으로 보면 그렇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실상사 보광전에서 바라본 방향으로 보면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천왕봉이 보인다. 실상사와 천왕봉 사이에 창암산이 있기는 하지만 천왕봉과 실상사의 관계가 실상사의 위치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세 지리산과 관계맺기(천왕봉)
지리산길은 다 잘 아실 것이다. 실상사의 위치는 이것과도 연결해서 생각해야 될 것이다.
 
저희가 지난 5월에 실상사 현장에 답사를 다녀와서 모형을 만들었고 분석을 하고 있다. 한 가운데 칠해진 부분이 실상사이다. 가운데 위쪽으로 창암산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천왕봉이 있다. 왼쪽으로 백운산, 오른쪽으로 삼정산이 보인다. 그리고 몇 개 마을들이 보인다.
 
먼저 실상사 정문으로 들판을 나와 천왕봉 방향으로 바라보면 창암산과 그 뒤에 있는 산들이 들어오는데 그 가운데에 천왕봉이 있다. 이것은 아주 상징적인 경관요소라고 생각한다.
경관사진 - 실상사에서 청암산 축_1(천왕봉 방향)
그리고 그 방향에서 왼쪽으로 직각방향으로 보면 내가 보인다. 만수천이다. 원백일마을, 백일마을, 상황마을, 중황마을, 하황마을이 보이고 삼봉산이 보인다. 다른 편 방향으로 보면 중기마을, 매동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삼정산과 덕두산을 바라보면서 그 사이에 입석마을, 삼화마을, 원천마을이 있다.
 
경관사진 - 백운암 올라가는 길에서 본 실상사

경관사진 - 실상사에서 삼봉산 방향 축_2

경관사진 - 실상사에서 본 덕두산 선바위, 범바위
보신 바와 같이 실상사는 지형적으로 주변에 산이 둘러쳐져 있는 분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산세와 맞춰 그려보니까 실상사가 해발고도 314m 정도에 위치해있다면, 삼정산과 같은 주변 산들은 대략 100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600m 정도에 산이 있고 실상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에서 가운데 있는 뾰족한 것은 목탑의 추정높이를 상상해서 옮겨 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산에 위치한 산지사찰이다. 그에 비해 실상사는 평지사찰이라고들 하는데, 다른 산지사찰과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그래서 해인사와 겹쳐 봤다. 해인사는 해발고도 600m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 해인사의 일주문부터 시작해서 경판고까지의 거리는 옆으로 조금 더 긴 거리인데, 그림으로 크기나 위치는 대략 파악하실 수 있을 것이다. 
보시는 것처럼 해인사는 해탈문부터 법보전까지, 실상사는 극락전에서 창고가 있는 곳까지 그려봤다. 실상사는 중간에 목탑지를 상상복원해서 그려봤다.
 

2. 실상사 주변의 마을
실상사 생태지도는 실상사와 관련된 유형, 무형의 인자들을 찾아내 지도화하고 그 인자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실상사 보기’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1) 조 사 일 : 2008. 0905(금) ~ 0906(토)
2) 대상마을 : 백일마을(3명) 원백일마을(3명) 중기마을(3명) 하황마을(3명) 매동마을(4명)
              입석마을(2명) 신흥리(2명) 작은학교(3명)
3) 인터뷰 대상자 : 총 49명(주민 34명, 스님 2명, 실상사종무원 3명, 외지인 1명 작은학교 9명 )
                   ※ 주민 34명 : 백일(4명) 원백일(5명) 중기(8명) 하황(3명) 매동(8명) 입석(4명) 신흥(2명)
4) 조사내용
   - 유형의 인자들 : 길, 하천, 물길, 수로, 연못, 샘, 다리, 논, 밭, 나무, 작물, 한봉, 정자, 오래된 집, 새집,
                     돌담, 건축재료, 실상사 경내·외 자원, 유구, 상징 등
   - 무형의 인자들 : 주민들의 삶,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 현실 속의 문제들, 갈등들, 신화, 설화, 전설,
                     유래, 하루 일과, 소득현황, 수입원, 부채현황, 즐겨 쉬는 장소, 풍경이 근사한 곳,
                     바람이 시원한 곳, 아이가 있는 집, 독거노인 집, 산책 다니는 곳, 등
마을의 위치를 지도에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마을들은 실상사를 중심으로 해서 가깝게는 500m에서 멀게는 2km까지 펼쳐져 있다. 상황마을이 거의 2km 정도 위에 있고, 가까운 마을은 만수천 주변의 중기마을, 백일마을, 원백일 마을이 있고, 실상사 옆으로는 신흥마을, 입석마을이 있다. 나머지 마을은 조금 떨어져 있다.
실상사 주변마을의 현황
오늘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사한 내용들을 전부 발표하지는 못할 것 같으니, 조사해서 그려본 지도와 함께 몇몇 마을 분들의 증언을 통해 마을이야기와 주민의 삶, 그리고 실상사에 바라는 점 등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다.
1) 원백일마을
원백일마을에서 실상사에서 가깝다는 점 이외에 특이점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생태상으로 중요한 것은 샘터가 남아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샘이 솟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회관과 경로당이 위치해있고, 그 가운데로 집들이 모여 있다. 대나무숲과 소나무가 있다. 김을생 목기가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다. 마을 위로는 다랭이 논들과 밭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일반적으로 보면 경사지에 있는 경사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실상사와 관련해서 보면 다른 곳에서 실상사에 올 때 실상사 영역으로 들어오는 입구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인구수 / 세대수 : 50 / 20
■ 지명유래 : 수려한 산세 위로 떠오른 태양이 깨끗하고 밝게 비치는 곳이라 하여 흰 백(白)자와 날 일(日)자를 써서 ‘백일리’라 불려졌다고 한다. 원백일리는 원래 백일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것이다.
■ 연혁 : 통일신라 말엽 실상사 창건 후에 형성. 이 후 오랜 세월동안 실상사의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로서 흥성하였다.
■ 지세 : 마을 뒤로 삼봉산과 백운봉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람천이 흐르며, 람천 너머로 삼정산과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산나물, 곶감, 한봉, 목기
■ 특기사항 : 남원의 특산품인 목기제조의 원산지로서 무형문화재 김을생씨의 목기공방이 있다.
■ 마을의 식수원이자 약수로 사용되었던 확샘(학샘)은 그 터가 남아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맑은 샘물이 솟고 있다.
 

원백일 주민 인터뷰■ 김동복(46세, 원백일마을 반장)▲ 1남1녀를 둔 가장으로 부산에서 은행사무원으로 근무하다 3년 전 귀농하였다. 형님이 실상사 귀농학교를 졸업한 인연으로 산내면으로 오게 되었다.
▲ 귀농자들도 농사짓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린이집이나 한생명 농장에 취직해서 몇 년 머물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도시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 산내면의 삶, 귀농에 대한 만족도는?
대만족은 아니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산내면은 경작지 면적이 좁은 편이다. 따라서 귀농자들이 늘어날수록 땅값이 오르고 있다. 요즘은 귀농해도 농사짓기 어렵다.
우리 집엔 중3, 중1 두명의 아이가 있는데, 고등학교 진학문제가 있다. 산내면에는 고등학교가 없다. 귀농해서 가장 좋은 점은 친환경의 먹거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가 시간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예전에 울창한 숲이 있었는데, 문화재 발굴로 많이 훼손되어 아쉽다. 실상사귀농학교는 실전을 통해 배울 수 있어서 좋다.■ 확샘지킴이 할아버지(70세)▲ 이 마을에서 자라 5남매를 키워낸 토박이 할아버지.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고, 오전 농사일을 마치면 게이트볼을 치러 다니신다.
▲ 마을 식수원으로 사용되던 확샘을 꼭 살려주었으면 한다. 지하수 개발 후에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아직도 맑은 샘물이 나오고 있다. 예전엔 그 곳에서 빨래도 했고, 물이 좋아 건너마을에서 물 마시러 오기도 했다.
▲ 산내면의 삶?
원백일리는 한 때 100가구 넘게 살던 큰 마을이었다.예전엔 한지 공장도 많았다.
농사일은 오전이면 다 끝난다.
오후에는 노인정에 모여 술 한 잔 하거나, 산내중학교 앞 게이트볼장으로 게이트볼을 치러 간다.
논농사 말고 집에서 한봉도 한다. 1년에 벌꿀이 한 50병 정도 나온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종교는 불교이지만, 절에는 자주 가지 않는다. 도법스님이 오셔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김을생(74세, 목기제조 무형문화재)▲ 목기공방을 운영하시며, 한국의 옻칠 목기 전통을 이어가고 계신 할아버지. 지리산의 원목으로 목기를 만들어 예전에는 실상사의 스님그릇을 전문으로 만들었다.
▲ 목기의 본고장에서 목공예를 전수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분야에 정성을 다하여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산내면의 삶?
1920년에 일본이 지금의 산내초등학교에 목기학교를 세웠다. 그때 생산된 목기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했다. 해방 후에 전라도 목기기술학교(공립)가 3년 과정으로 세워졌는데, 내가 1회 졸업생이다. 이후에 산내중학교로 개칭되었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1300년 홍척국사는 ‘실상사가 잘되면 일본이 망한고 일본이 잘되면 실상사가 망한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백두대간의 정기는 실상사에서 이어져 후지산맥까지 이어진다. 실상사는 국운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실상사에 두 번의 불을 질렀다. 한번은 임진왜란 때이고, 한번은 동학혁명 때이다. 실상사의 철불은 일본으로 국운이 흘러들어가지 않게 막고 있다.
2) 백일마을
백일마을은 오랫동안 실상사의 관문역할을 한 마을이다. 신라문화에 대하여 대단히 자긍심이 있는 분들이 많으셨다.
천이 마을 가운데로 흐르지 않고 옆에서 흘러가는 게 특색이고 집들이 약간 경사진 곳에 기대서 집들이 앉혀져 있다.
많은 돌담들이 있는 것도 특색이다. 이러한 것은 나중에도 이 마을에 중요한 경관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탱크도 있고 뒤쪽으로 다랭이논이 펼쳐져 있다.
■ 인구수/세대수 :
■ 지명유래 : 마을 뒤는 백운봉이 솟아 있고, 지리산의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봉과 천왕봉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깨끗하고 맑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흰 백(白)자 날 일(日)자를 써서 백일이라 부르게 되었다.
■ 연혁 : 통일신라 말엽 실상사 창건 후에 형성. 이 후 오랜 세월동안 실상사의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로서 흥성하였다.
■ 지세 : 마을 뒤로 삼봉산과 백운봉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람천이 흐르며, 람천 너머로 삼정산과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주로 벼농사 위주이고 일부 대규모 축산업을 하고 있다. 자연산 나물재배, 한봉, 목기 등
■ 특기사항 : 실상사 주변 마을로 천년 신라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백일 주민 인터뷰■ 장종구(69세, 백일마을 이장)▲ 백일마을은?
산내면 귀농인수는 230명 정도이고, 백일마을에는 10가구 정도이다.
백일마을에 독거노인 집이 15~16가구 정도. 초등학생이 7~8명(차로 등하교), 중학생 6명, 작은학교 다니는 학생은 없음.
외지인들이 평당 10만원인 땅을 15~20만원에 산다. 땅값이 올라 원주민들은 살기 힘들다.
백일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대정리로 옮겨간 지 40년 정도 됨.
▲ 실상사 주변 경작지들을 정리하다 보면 흙 속에서 기왓장들이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 실상사의 규모가 지금보다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내면의 삶?
1000평의 논과 200평의 밭을 일구고 있는데 절반은 본인 소유이고 절반은 임차계약이다.  일이 없는 겨울철에 마을사람들이 회관에 자주 모이는데 대략 15~17명정도이고 나머지는 한봉을 하러간다. 백일마을이 귀농학교와 가까워 통학하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실상사 발굴작업을 하면서  경내 수목들을 모두 베어내면서 웅장함이 사라진 것 같다. 이 때문에 관광객도 뚝 끊겼다. 문화재 보호구역안의 논들은 경작지 정리도 할 수 없다. 실상사 주변 경작지 정리를 하다보면 모레와 자갈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과거 물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 배종수(79세, 백일마을 터줏대감)▲ 현재 부인, 큰아들 내외, 작은아들, 손자와 함께 3대가 함께 살고 계신다. 본래 태어난 곳은 경남 합천이다. 실상사매표소 근처 주차장 옆에 가게를 운영한다. 농사(고사리, 제피)와 소매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 옛부터 실상사가 흥하면 왜가 망하고 왜가 흥하면 실상가가 망했다고 한다. 후지산과 천왕봉, 부처님이 일직선상에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절이다.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 산내면의 삶?
논 750평, 고사리농사, 가게운영(주류, 조미료 등)
고사리 농사를 통해 버는 수입은 일 년에 1000만원 정도, 1근(600g)에 3만원. 고사리는 주로 공판장(대구, 부산)에 판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실상사는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호흡해 온 만큼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실상사가 발굴작업으로 많이 훼손되었는데 하루 빨리 복원되어 관광객이 좀 더 늘었으면 한다.
3) 중기마을
중기마을은 원백일마을 서북쪽에 있으며, 실상사 인근 마을들의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서진암이 있다.
이곳은 특히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귀농자들이 마을에 많이 정착해 들어왔고, 마을 안에 살고 있는 귀농자들도 많고, 마을 윗쪽으로는 귀농자들이 들어와 새로 지은 집도 많다. 마을의 주산물은 쌀, 산나물, 옥수수, 한봉이다. 박정희시대 삼청교육대 사람들이 돌담을 쌓았다는 증언도 있었는데, 이것은 조사를 한 번 더 해봐야겠다. 중기마을은 비교적 마을이 크고 수로가 세 군데 있다. 다랭이 논이 마을 위쪽으로 펼쳐져 있다. 마을우물도 있고 돌담도 있다.
■ 인구수/세대수 : 130/41
■ 지명유래 : 실상사 주변 여러 마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하여 중기리라 불리었다.
■ 연혁 : 임진왜란 시 남원 양씨의 양정원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던 중 이곳을 터잡아 정착한 후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남원 양씨가 대종을 이루며, 최근 상중기 쪽으로 귀농자들이 정착하고 있다.
■ 지세 : 마을 뒤로 삼봉산과 백운봉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람천이 흐르며, 람천 너머로 삼정산과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쌀, 산나물, 옥수수, 한봉, 목기
■ 마을의 식수원이자 약수로 사용되었던 우물은 그 터가 남아있으나 식수로 이용하기에는 불가능하다.
■ 박정희 정권 시절 마을 개선 작업으로 삼청교육대 사람들이 와서 무너진 돌담을 쌓고, 길도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마을회관과 모정을 건립했다.
■ 마을 뒤쪽으로 한참 오르면 서진암이 있다.
 

중기 주민 인터뷰■ 양재순(76세)▲ 태어나서 줄 곧 이곳 중기마을에서 살아왔다. 산내 초등학교 졸업생으로 긴 시간동안 실상사와 산내면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 실상사 뜰 쪽에 논을 경작하고 있었다. 실상사에서 중창불사 한다기에 땅을 팔았더니, 이젠 중창불사 대신 그 땅을 귀농자들에게 학습용으로 경작시키고 있다. 실상뜰로 일하러 다니며 실상사를 자주 찾았는데 요즘은 그럴 일이 없다.
▲ 산내면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평생 이곳에서 살아왔고, 아내도 근처 인월에서 시집왔다. 자식들은 다 외지로 나갔지만,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다. 근처 마을은 거의 일가친척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귀농자들이 상중기로 하나둘씩 자리 잡고 있는데 큰 갈등은 없다. 예전에는 실상사로 자주 다녔는데, 요즘은 삼거리 다방으로 자주 다닌다. 중기마을에 한봉이 유독 많은데, 내가 22세 때 인월에 갔다가 얻어왔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어렸을 때 실상사에 가면 스님들이 항상 바라(공양그릇)마다 이름이 있어서 깨끗이 씻어서 둔 모습이 인상 깊다. 스님들이 바라 앞에 이름표를 걸어서 남은 밥이 있으면 그 몫의 밥은 안했고, 공양하여 떡이 있으면 정확히 나눴다. ■ 김분달(71세)▲ 2남 2녀를 둔 어머님으로 장항리 에서 시집을 오셨다. 명절에는 가족이 모두 모이나  평소에는 혼자 사시며 식수는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드신다. 주요 수입원은 콩, 한봉, 쌀 경작이며 생필품 구입은 인월에 있는 5일장을 이용하신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예전부터 공부하는 절이라고 하여 다른 절과 다르고작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서진암에서 거주하기도 하셨으나 너무 멀고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해있어 평지사찰이고 큰집이라고 생각하시는 실상사를 자주 이용하신다
▲ 실상사불사에 바라는 점은?
실상사가 작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큰 대웅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현미(39세)▲ 2남 1녀를 둔 어머니로, 조경학과 생태학을 공부하던 남편과 대안적인 삶을 구상하고 서울에서도 귀농학교에 참여해 활동해오다 현장실습으로 온 실상사와의 인연으로 9년 전 귀농하였다. 남편은 목수일을 하고 있으며 한생명에 다니다 현재 잠시 쉬는 중이다.
▲ 귀농자들도 농사짓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린이집이나 한생명 농장에 취직해서 몇 년 머물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 산내면의 삶, 귀농에 대한 만족도는?
귀농민을 지역민과 구별해서 보기 때문에 행동과 말에 있어서 조심스럽고 어렵다. 조금은 부당함을 당할때가 있다고 느낀다. 귀농한 사람이 많은데도  아직 그런 일들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데 말도 안되는 농촌의 폐쇄성을 느낄 때 힘들다. 13살 딸과 11살 된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원하면 작은 학교에 보낼 것이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평지에 있어서 인지 권위적이지 않아 편안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공부하는 젊은 스님들이 많다. 나무가 많았는데 훵해져서 아쉽다. 불사를 하면 대게 규모만 키우기 때문에 불사가 조심스럽다. 실상사가 하는 일을 잘 담아내는 불사를 했으면 좋겠다.
4. 입석마을
입석마을은 실상사 바로 뒤쪽에 있는 마을이다. 여기는 큰 선돌이 있어서 입석리(선돌마을)라고 한다. 쌀농사, 고사리, 장삼(?) 재배를 주로 한다. 실상사 쪽에서 가다보면 소나무 숲이 있어 기분이 좋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좋다. 앞의 두 마을과는 다르다. 북쪽에 천이 흐른다.
■ 인구수 / 세대수 : 134 / 52
■ 지명유래 : 마을 동쪽에 거대한 자연석이 유달리 우뚝 서있으므로 그로 인해 돌이 서있는 마을, 선독골, 선돌골 등으로 부르다 설 입(立)자와 돌 석(石)자를 써서  입석이라 했다.
■ 연혁 :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신라 흥덕왕 3년 실상사 창건 후 많은 승려들이 드나 들면서 사찰이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마을.
■ 지세 : 산내면의 중부권지역으로 중산간지대에 위치하였고 마을 뒤에 삼정산이 있고 앞으로 람천이 흐른다.
■ 주요산업 및 토산물 : 쌀위주 농사와 일부 고사리 집단 재배와 약초재배 .
■ 특기사항 : 마을 뒤 삼정산 기슭 사유림에서 장삼이 재배되고 있다.
■ 마을 입구에 서있는 바위는 두 조각이 난 채로 서있는데 예전에 이 바위가 서있으면 입석마을은 흥한다 하지만 건너다 보이는 원천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을 믿고 원천 사람들이 야간에 바위를 넘어 뜨린 일도 있었다 한다.
 
성균관대 건축도시설계원 학생들의 마을조사 기록표
입석 주민 인터뷰■ 강종옥(73세)▲ 3남 3녀를 둔 할아버지, 부인 장우순(72세) 할머니와 같이 살고 계심. 예전에는 목수이셨는데 화림원 흙집 지을 때 조언자. 지금은 마을에서 고사리, 무우, 고추 등을 기르시며 논 14마지기의 논농사가 있다.
▲ 산내면의 삶은?
생활비는 1년에 1천만 원 정도(농사수입과 자녀들이 준 생활비로 충당). 하루 일과는 오전에 농사일, 오후 대부분의 시간은 산내중학교내 게이트볼장에서 보내심. 주로 쉬는 곳은 신흥리 모정(정자나무 아래).
마을사람 다 모이는 날은 1년 3~4회 정도 마을회관에서 마을주민회의 등.
실상사에는 1년에 1~3회 정도(석가탄신일, 법회)
대정리(읍내)나 남원시에는 1년에 1~2회 병원에 감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대웅전이 없는 절은 실상사 밖에 없다. 발굴을 한다고 하여 절 주변을 너무 많이 훼손시켰다. 20년 전에는 대웅전을 짓는다고 나무를 가져오고 했었다.
실상사는 오래 되고 큰 절이었는데 동학 때 불이 나서 절이 작아졌고, 무쇠 부처가 있는 다른 절은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명부전을 좋아함. ■ 이소자(62세)▲ 독거노인. 자녀는 2남 4녀. 이곳에서 46년째 살고 계시며, 태어난 곳은 남원시. 하루일과는 주로 오전은 텃밭, 오후는 이웃집에 다니시며 다른 사람 일을 잘 와주시는 분. 이틀에 한번 정도 대정리를 다녀오심(농협, 가게 등). 즐겨 쉬는 곳은 선돌(입석), 마을전망이 가장 좋다. 실상사에는 1년에 7~8번 정도 다니심.
▲ 귀농학교, 작은학교에 대해?
귀농한다고 젊은 남녀들이 결혼해서 살고는 한다.귀농학교, 작은학교 때문에 객지에서 사람이 많이 오고 하니까 실상사가 절 같지 않고 예전과 달리 많이 변한 듯하다.
▲ 실상사에 대한 인상은?
옛날 시골의 작은 절 느낌이 많이 파괴되었다. 사는 게 어렵고 힘든데 절에 큰 대웅전을 지었으면 좋겠다. 발전이 적어 낙오된 기분이 든다. 나무가 다 없어져서 절다운 맛이 없다. 나무 많을 때가 훨씬 좋았다.
5. 신흥마을
   (생략)

신흥 주민 인터뷰■ 주정영 신흥마을 이장님(46세)▲ 부인과 11살 딸아이와 함께 살며, 부인과 함께 유기농 사과, 채소를 재배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자라 와서 그냥 편하고 좋다.
▲ 본인이 재배하시는 방식이 진정한 유기농 사과재배다. 보통 유기농이라 판매되는 사과들도 사실은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약을 쓴다. 자부심을 갖고 유기농 농사를 하지만 언제까지 하실 수 있을 지는 자신이 없다. 고생하는 보람 느끼기가 힘들다. 가격경쟁이 안 된다.(판매가격은 실상사 앞에서 파는 가격의 두 배 정도이다.)그러나 수입이 많지는 않다. 아는 분만 와서 사간다. 인터넷판매도 쉽지 않다.
▲ 산내면의 삶?
농번기에 너무 일이 많아 하루 종일 과일포장과 밭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마을분들이 오셔서 같이 일을 한다.
모정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신다.
▲ 실상사에 대한 생각
실상사에는 행사 때만 가고 일 때문에 평소에는 가지 못한다. 특별히 실상사에 바라는 점은 없다.
6. 하황마을
 

7. 매동마을
 
 
■ 마을조사 결과 종합정리

[공통사항]
1) 실상사에 대한 애착은 있으나, 행사가 있을 때나 가는 곳으로 생각.
   또한 실상사에 크게 바라는 것은 없음.
2) 대체로 주지스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공감하고 긍정적이다.
3) 실상사에 대한 아쉬운 점
    - 유구조사로 인한 수목(경관) 훼손, 수목 부족으로 휑한 경내.
    - 대웅전이 없어 상징성 부족. 대외적인 발전이 없어 보임.
4) 귀농인들 농사로 생계유지하기 어려움. 다른 전공분야 살려야 생업유지
5) 주민 대부분이 농협에 빚이 있음 (평균 3천만원정도)
6) 인월, 남원시에 나가는 이유는 보건소, 병원, 시장보는 일.
7) 작은학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음
8) 좋아하는 계절은 일이 없는 겨울철이고, 수확하는 가을철도 즐거움이 있다.
   농사짓는 여름은 너무 고되어 쉬고 싶을 때가 많다.
[특기사항]
1) 실상사, 귀농인, 한생명 등 새로운 분위기에 원주민들이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2) 귀농인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마을단합에 어려움이 있다. 혼자 잘 살면 되는 개인주의가 우려된다.
3) 실상사에서 관리하는 땅의 적극적인 경작이 필요하다.
4) 귀농자들 중에 농사짓는 사람이 별로 없고, 한생명 농장이나 어린이집에 취직해서 몇 년 머물다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5) 귀농자들이 늘어날수록 땅값이 오르고 있다.
8. 실상사작은학교/실상사귀농학교
 
 
 
 
 
 

실상사에서 작은학교를 올라가려면 원백일리를 지나서 걷는 길이 있고 차로 가는 길이 있다.
가는 길목에 황토집이 있는데, 귀농한 분이 지어서 사는 집이고 작은학교와 관련은 없다.
실상사작은학교/실상사귀농학교는 교실과 강당이 있는 2층 건물, 동아리방과 교무실이 있는 황토집 건물이 있고, 그 외에도 별도의 숙소동과 강의동이 있다. 이 숙소동과 강의동은 실상사귀농학교 및 수련팀의 교육장과 숙소로 제공되는 곳이다. 또 입구의 숲에는 명상관이 있다. 햇빛발전소가 있고 화장실은 생태화장실이다.
작은학교 아래쪽으로 20가구 규모의 백일전원마을(지리산 작은마을)이 들어설 예정이며, 작은마을 사무국이 작은학교와 같은 공간에 있다.
실상사작은학교가 있는 공간은 애초에 실상사귀농학교, 인드라망교육원 등 교육시설로 활용되던 곳이다. 1999년에 시작한 실상사작은학교가 실상사 바로 옆의 컨테이너 교실에 있다가 2001년에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건물이 확충되었으며, 현재도 여러 가지 교육활동을 위해 사용되거나 임대를 하기도 한다. 
 
 

한편, 실상사작은학교 학생들은 ‘작은 가정’이라고 하여 마을에 있는 집(생활관)에서 자취를 한다. 작은 가정은 각 마을에 있고, 학생들이 자신들이 사는 가정에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지리산작은마을 인터뷰■ 지리산작은마을 사무국▲ 귀농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 최수옥선생님 : 실상사귀농학교는 99년 가을에 시작으로 실상사 바로 뒤에서 시작, 실습 중심의 3개월 과정으로 있었고 2001년 남원시 지원으로 이곳에 환경농업교육장이란 시설을 짓고 작년까지만 쓰고 지금은 실상사귀농학교와 실상사작은학교로 쓰이고 있고. 2008년까지 귀농학교가 현재 21기가 진행 중이다.
▲ 밑에 보이던 황토집이 귀농학교의 사람들이 입주한 것인가?
- 최수옥 선생님 : 그 황토집은  작은 마을 단지 외에 개별적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조성하는  귀농마을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2007년 마을지구가 확정되고 기본 계획이 끝나고 기반 공사 전이다. 총 20가구가 입주 가능한데 지금 18가구가 신청했다. 입주 모임을 월 1회 가지고 있고, 2010년 입주룰 시작할 예정이다.
- 이귀섭 팀장님 : 귀농자들은 실상사귀농학교 뿐만 아니라 인드라망을 통해서 인연을 맺는다. 마을에 빈집이 없어 새로 집을 짓고 살기도 하는데, 현재 250~300여명이 산내지역에 귀농하여 산다.
작은학교/귀농학교 인터뷰■ 한형민(실상사작은학교 교사)▲ 실상사작은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불교계 대안학교로 중등과정이다. 작은학교에서 배우고 작은 가정에서 생활하며 공부한다. 비인가학교여서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하나요?
학생들은 작은 가정이라고 한 가정당 5~6명 정도 기숙사제로 산다. 2~3집은 선생님이 같이 살고, 나머지는 학부모들이 같이 산다. 그리고 2,3개월마다 한번은 원래 집으로 가서 보내다 온다.
▲ 작은 학교 선생님 생활은 어떠신가요??
작은학교 교사는 되고 싶은 사람 누구나 될 수 있다. 교사와 강사가 있는데 교사는 애들과 함께 전반적으로 살아가고 강사들은 귀농자들 중에서 전문적인 분야를 가르치신다. 작은학교 선생님들은 방학 때 연수 및 평가회의를 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공부한다.
▲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생활비가 100만 원 가량 나오지만 저 같은 총각은 괜찮지만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힘들다. 정부의 지원도 없고 있다고 해도 단기성 지원일 뿐이다.
▲ 힘드신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학교에 수학, 영어 교사가 부족하다. 인원이 충원되었으면 한다.■ 김고은, 김민아, 이유정, 이지수, 변산노을(작은학교 학생들)▲ 어떻게 작은 학교를 오게 되었나?
- 변산노을 : 처음엔 별로였는데 다니면서 좋아졌다.
- 이유정 : 사촌오빠가 작은 학교를 졸업했다.
- 고은이와 지수는 실상사 어린이 계절학교를 다니고 나서 작은학교까지 다니게 되었다.
▲ 작은학교에서의 생활은 어떠한가?
- 월요일은 절로 공부를 시작하고 금요일은 식구회의인 야단법석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 요즘에는 후배들이 버릇이 없어서 고민이다. 학년간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걱정이다.
- 금요일 야단법석에선 PC방이 안건이었다. 규칙을 안 지키고 매일 버스를 타고 나가서 게임을 하고 들어오는 데 이건 처음 우리 학교 규칙을 정한 것에서 어긋난다.▲ 작은가정에서의 생활은 어떠한가?
- 가정마다 일주일에 1번씩 마님(반장 개념의)이 장을 보러간다.
- 식사 준비도 우리가 직접한다. 메뉴는 카레, 감자국, 북어국, 찌개 종류이다.
▲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 모두 : 실상마트? 간식 사러 갈 때 종종 간다.
▲ 학교가 원래는 실상사 앞에 있었는데…
- 학교를 옮긴 후 스님들과의 관계가 소홀해져서 걱정이다.
- 가끔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러 오시긴 하지만…
- 전의 학교가 더 포근한 느낌이 든다. 실상사에서 멀어진 후에 학교에 문제가 더 생긴 것 같다.■ 박대수(실상사귀농학교 학생)▲ 귀농학교에 어떻게 방문하시게 되었습니까?
- 귀농교육을 받으러 왔다.
▲ 귀농을 하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생업보다는 여가를 보내면서 일을 하기 위해서다. 내가 먹는 음식을 내가 농사지어 얻고 싶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싶어서 왔다. 유기농법은 옛날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또 2배 정도 가격을 받기 때문에 수익성에서도 좋은 것 같다.
▲ 실상사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까?
- 방문한 적은 없다.
▲ 실상사에 관해 알고 계신 것은?
- 약 1,200년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안다.
9. 실상사
소재 :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
지정 : 사적 제 309호
연혁 : 신라 흥덕왕 (서기 828) 증각대사 홍척 창건
       조선시대 화재로 전소 했으나 이후 3차례 중수 복원
건축물 : 보광전 등 실상사 내 9채
문화재 : 실상사 경내 철제여래좌상 등 다수
주요현황 : 1995년 8월 실상사 복원 발표
           1996년 실상사 마을 조성 _ 산내면 일대 전답 3만여평 귀농민에게 임대 (도법스님)
           1999년 11월 24일 국립부여 문화재단 연구소 현장 조사 _ 보고서 : 실상사1, 실상사2
           2007년 2월 사단법인 숲길 _ 지리산길 거점/부거점 마을 청문조사 및 구간별 테마수립 연구 외 다수
           2008년 5월 23~24일 성균관대학교 건축도시설계원 연구팀 답사
           2008년 9월 5일~7일 성균관대학교 건축도시설계원 연구팀 마을 조사
<실상사 근무.종사자 현황>
 - 스님 약 25명(화엄학림, 화림원)
 - 재가종무원 : 법당관리 1명 / 종무소 3명 / 판매상 (찻집) 1명 / 공양간 3명(2명+별좌) / 매표소 1명

논밭 가운데 위치한 실상사
 
 
 
 
 
 
실상사 주민 인터뷰■ 조복순(50대 중반, 원백일마을 거주, 실상사 찻집운영자)▲ 이곳에 오시게된 이유는?
원래 서울이 고향인데 한 10년 가량을 남편과 귀농에 대해 논의하다가 이곳으로 온지 3년이 된 50대 중년 부부이다. 현재 아들은 고3인데 기숙사에 지내면서 거창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1년 정도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6개월 전에 먼저 계시던 보살님이 시집을 가셔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은 농사를 짓는다.
▲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찻집을 운영하면서 기념품과 도서판매도 하고 있다. 이곳은 영역식구들(작은학교, 한생명 등)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찻집수입은 제 인건비 정도 밖에 안 된다.
▲ 실상사 및 작업공간에 바라는 점은?
수입 및 운영을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지만 지금 상태에 만족한다. 영역식구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스님들도 회의장소가 마땅치 않더라도 되도록 이곳은 피해주신다.
▲ 기타사항
종교는 원래 천주교다. 하지만 이곳 스님들은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너무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좋다.■ 오선미(36세, 원백일마을 거주, 남원시 문화재 해설사)▲ 이곳에 오시게 된 이유는?
고향은 부산이고 귀농한지 8년 정도 되었다. 예전에 환경단체에서 실무 및 교육을 하다가 시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농사도 운동차원에서 시작했다. 현재 산내면 원백일 마을에서 거주하면서 남편을 목수 일을 하고 있으며, 7살짜리 딸을 두었다. 원백일리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지만 귀농한 젊은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남원지역 문화재 안내와 해설을 하고 있는 유료 자원봉사자이다. 요청이 있을 때만 주로 일을 하고 있으며 한 달에 10일 이상 근무한다. 실상사 안내도 하고 있다.
▲ 젊은 사람들은 절땅이나 묵은 땅을 개간...생계유지 어려워서 농사보다는 자기전공을 살려서 생업과 연결 시키고 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로 전주까지 가야 한다.
▲ 이 지역에 대한 소개와 생각은?
한생명여성농업인센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너무 좋고 지역공동체가 잘 이루어 지고 있다. 주변에 젊은 사람도 많고 지역주민과도 예전보다는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이곳에 온 젊은 사람들은 절땅이나 동네사람들의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묵은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지속적이지 못하고 생계유지도 어려워서 농사보다는 자기전공 (주로 예술인들)을 살려서 생업과 연결시킨다.
주변의 교통은 편리하고 문화적인 부분도 남원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주로 전주까지 가야 되는 불편함이 있다.
▲ 실상사불사는 현재 공간은 그대로 두고 필요한 시설은 다른 장소에 건립했으면 좋겠다.
▲ 실상사에 대한 알고계신 부분과 생각은?
실상사는 도법스님의 ‘생명, 평화’의 화두를 가지고 절 중심의 지역공동체 만들고 10년째 귀농학교를 개설하고 있으며 지리산 숲길을 조성하고, 지리산생명연대와 지리산 댐 반대운동의 선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를 살펴보면 실상사를 발굴 조사하면서 울창한 숲의 나무들이 많이 베어진 것이 아쉽고, 해탈교에서 들어오는 길이 좁고 근사한 오솔길이 였으면 한다. 기와불사와 기와탑 등으로 어수선한 경관의 정리도 필요하다. 석등에 비해 법당이 너무 작지만 현재 공간은 그대로 두고 필요한 시설은 다른 장소에 건립하는 것이 편안한 절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 같다.
▲ 기타사항
귀농인들은 대출을 받아서 과도하게 사업을 벌이지는 않는다.
이상 저희들이 그간 마을조사한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이곳의 인구변동과 기후변화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으며,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 등 사람에 대한 조사를 조금 더 해야 한다. 그리고 주로 농업을 하는 분도 계시고 관광지를 끼고 있어서 그에 따른 상업적 요소들도 많은데 생업으로 삼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조사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실상사와 이 지역이 갖고 있는 보물이 무엇이고, 이 보물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조사해야겠다. 또 인드라망에 대한 이야기, 숲길 활동 등에 대해서도 더 심도있게 조사작업을 해야 한다.
참고로 몇 년 전에 해인사 불사에 관여했을 때의 일을 말씀드리겠다. 해인사를 보면 해인사 산속에서 물길이 내려오면서 홍류동으로 이어지는데 현재 해인사의 성보박물관이 있는 부분이다. 그 위쪽으로 옛날 초등학교 자리 아래에 큰 상가가 있었는데, 이곳에 해인사에서 부족한 기능들, 예를 들어 스님들을 위한 공간, 문화 및 포교활동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경판고의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그 방향으로 사람들이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곳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해인사 본존에서 1km 정도 떨어진 땅에 현대적인 새로운 기능들을 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이야기되었다. 당시 논의에서 해인사 산속에서 내려오는 이 두 개의 물이 만나 홍류동을 이루는 그 장소의 특질이 계획의 가장 큰 단서였고, 그래서 이 물길을 끼고 전체적인 집합이 산의 지형과 물길의 모양이 어떻게 결합을 이루는가가 가장 큰 주제로 떠올랐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나라는 국토전체가 산지형으로 되어 있다는 큰 틀에서 경관을 생각해야 했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극단적인 기후가 공존하는 땅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담는 공간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전 발표에서 정영선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이미 들어서 있는 거대한 성보박물관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도 주제였다.
실상사는 편편한 지형에 있다고 하지만, 실상사 역시도 큰 틀에서 보면 산 속에 있는 들판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고민이 들어갈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풍경이라는 큰 틀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다. 그러한 경관과 사람들의 삶을 조직해서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은 불사를 하건 큰 불사를 하건 전체적인 것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면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오늘 발표는 여기까지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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