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미나 제2주제 토론 > 중창불사 문서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실상사중창불사

1차세미나 제2주제 토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8 09:46 조회2,901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현응
저는 실상사에 1979년 초에 와 보았다.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로 선종사에 중요한 사찰이라는 생각을 갖고 왔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평지 같은 분지 속에 위치해 있고, 마당도 초지로 구성되어 있고, 숲이 우거져 있고, 온 마당에 달맞이꽃이 지천이었다.
도법스님 이후 현 주지스님에 이르면서 작은 도량이 지금처럼 정비가 되었다. 깔끔해지고 넓어졌다. 종무소도 임시건물이지만 새로 생겼고, 화장실도 생태화장실이고, 공양간도 조립식 건물이 생겼고, 그밖에 나머지는 변모되지 않은 상태이다. 임시 건물이 참 많이 생겼다. 필요한 것은 임시건물만으로 견디면서 속도를 자제하면서 불사 방향을 준비해 왔다.
실상사의 불사 방향은 어떻게 하면 실상사다운 실상사가 될 것인가에 있어서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 아름다운 불사가 될 것이다.
실상사의 역할(선종사찰)도 포함하면서 구현되어야 하는지, 지역공동체와 연계되는 불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떤 실상사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스처럼 기존의 폐허한 상태로 그대로 두고 할 것인지, 생활공간은 이전할 것인지, 문화재 공간은 공간 그대로 둘 것인가, 전체적인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탐방과 지역사회의 역할을 담아내야 하는지, 어떤 실상사가 되어야 하는지 검토와 노력, 연구가 필요하다.
90년대 중반 이후 복원을 전제로 한 발굴 조사가 10년 이상 진행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도량 주변을 다 파헤쳤는데, 어느 시대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등 복잡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발굴 조사의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것이 실상사 불사의 최소한의 자료가 되지 않을 것인가 생각한다.
복원적 측면과 현대의 효용을 곁들인 것을 할 것인지가 논의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에는 발굴 조사의 경과를 보고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주문).

도법
갑갑하다. 실상사 문제는 자체 문제이기도 하지만 앞서 발표하고 토론하신 분들의 말씀처럼 한국불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불교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실상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실상사를 아끼고 있는 사람들은 실상사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지난 4년 동안 순례를 하면서 돌아보니 실상사처럼 되어 있는 절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다. 실상사는 돈이 없고 능력이 없고 게으르다 보니 시대의 바람을 타서 엉성하게 가고 있는데,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실상사의 현재 모습이 다행이다 싶다.
저는 어떻든 일단은 ‘왜 실상사란 절이 만들어졌고, 무엇을 했을까’라는 물음에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이 물음에 충실해야만 답이 나올 것 같다.
한국불교를 대승불교라고 한다. 실상사가 이 자리에 터를 잡고 절을 만들 때는 대승불교가 제시하고 있는 세간과 철학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해서 주거공간으로 만들어낸다는 문제의식들, 대승불교의 사상과 철학을 삶으로 가꾸어내고자 하는 문제의식들이 있었을 것이다. 즉 시대적 요구와 그 요구에 대한 응답이란 측면에서 시대정신에 의해 이곳에 실상사가 만들어지고 운영되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여기에 실상사가 지어졌던 본래의 의도, 목적을 잘 파악해서 우리 시대에도 잘 계승해가야 한다는 측면과 △나아가 어떻게 현대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는 절이 되도록 할 것인가 ― 이 두 가지가 핵심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랬을 때 주지스님께서 기본적인 골격을 제시했는데, 구체적으로 여기에 살을 붙이고 내용을 덧붙여가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하겠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승불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 대승불교의 사상과 정신으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공간이라는 방향으로 실상사 불사 문제에 천착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대승불교의 사상적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복잡하겠지만, 대승불교에서 제시한 인간상, 사회상으로까지 이야기된 부분들을 다시 붙잡고 가야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출가비구 중심, 독신수행자 중심이었고, 이것이 부파불교시대로 오면서는 출가비구 중심의 수행, 승단, 승원이 되었는데, 이러한 승원중심의 불교가 가져온 여러 가지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대승불교이다. 대승불교가 제시한 인간상은 출가비구 중심이 아니고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하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보살이라는 인간상, 즉 인간상을 출가보살, 재가보살로 제시한다. 이것이 조계종단에서 사부대중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상사가 실상사 불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모색할 때, 한국불교의 사상적 정체성, 전통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대승불교가 제시하고 있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이 함께 해서, 대승불교 사상과 정신을 구현하고 또 대승불교의 사상과 정신으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내는 도량을 만드는 것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종단의 종헌종법에서는 사부대중공동체의 개념으로 이야기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방향을 잡는다면, 제일 우선적으로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그 사찰과 그 사찰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사회, 지역주민이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사찰의 지역사회를 중심 화두에 두고 있지 않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어떤 사찰을 가보더라도 사찰과 지역주민, 지역사회와는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
농경사회 때는 사찰은 지주가 되어 있고, 지역주민은 소작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사부대중공동체 체계에서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이 함께 해서 대승불교적 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사부대중공동체적 성격으로 사찰운영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이념적 정체성이 변질되고 깨지면서 사찰은 지주역할을 하게 되고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는 소작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공동체성이 파괴되고 비불교적이고 비인간적인 비사회적인 자기모순성들을 자초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불사는 멀리서 오는 도시인들, 신앙적으로만 찾아오는 신도들, 거기에 머물러 살고 있는 수행자들 ― 이 세 대상을 주로 염두에 두고 사찰문제가 다뤄지고 있다고 본다. 저는 오히려 사찰과 함께 하고 있는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를 우선시하고, 그 다음에 신도, 그 다음에 외부관광객들을 생각하는 순으로 다뤄져야 사찰이 이곳에 지어졌을 때 뜻을 제대로 구현하고 시대적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승불교의 사상적 정체성, 한국불교의 전통적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맥락에서 실상사가 대승불교의 이념을 구현해내는 도량으로서, 실상사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시대정신에 맞게 잘 응답해내는 도량으로, 이런 것들을 중심에 두고 불사 문제가 모색되어야 하는 게 좋겠다.
끝으로, 실상사가 다른 산중사찰에 비해서 들판, 논밭 가운데 있고, 야산과 농지들이 있다는 사실, 마을과 이웃해서 있다는 사실이 실상사가 갖고 있는 자연적, 사회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특징들 ― 분지, 논밭, 마을이 실상사 불사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그런 특징들을 잘 살려내는 도량으로 불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좋은 말씀들 들으면서 진즉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졌다면 저희들이 절에 다니면서 마음 아팠을 일이 줄어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스님들과 건축가들이 생각하시는 절집에 대한 의견이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저희들이 볼 때는 재가불자나 관광객들이 절집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 요즘 불사를 많이 하는데, 아까 주지스님이 아름다운 절집을 만들자고 해서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단체는 <아름지기>라는 재단인데,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잘 지키고 가꾸고자 하는 마음으로 생겨난 단체다.
그런데 왜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아름답게 지키지 못할까. 절을 예로 들면 절이 절 다울 때, 즉 그 아름다운 정신이 그대로 나타날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불사를 보면, 너무 관광객 위주로 불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찰에서 관광객에 대한 친절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가불자의 입장에서 저는 번잡한 것을 떠나서 수행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절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옛 것을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신을 담은 21세기의 건축으로 태어날지는 지속적으로 의논을 해야겠지만, 그런 아름다운 공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스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요즘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걸 볼 수 있다. 경험으로 봤을 때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찰은 정말 오랫동안 정성이 깃든 사찰인데, 요즘에는 예산이 없다거나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너무나 많은 임시건물이 생겨나고 있다. 실상사에서 불사를 한다면 한 번 제대로 불사를 해보셨으면 한다. 임시가 자꾸 반복되다 보면 그게 그대로 지나가서 그게 본래 가람을 다 해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10년이 걸린다고 하면 계획을 세워서 순차적으로 해서 제대로 모든 것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찰은 개인집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한 공공건축이다. 찾아오는 여러 대중을 올바로 이끌 수 있으려면, 좀더 공공건축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시고 순차적으로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축가님들께서도 더 깊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21세기의 새로운 건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도 두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에 있던 전통한옥 건축도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21세기의 편리한 생활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전통건축도 줄기차게 연구를 해야 한다. 또 새롭게 현대건축도 우리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여기 실상사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앞으로 의논해서 만들어 나가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실상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흥선스님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저는 반대로 절에 사는 사람으로서 신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기대와는 다른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불사는 돈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돈들을 끌어 모으게 된다. 불사의 전반적인 흐름이 경제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70년대 이후로 불사가 성행하게 되었고, 우리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점점 더 강화되는 방향이었다.
70년대에 불사가 이루어질 때는 주로 신도의 보시에 의존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방법은 배제하고 큰 손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의 돈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여기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것도 많이 나타난다. 신도님들은 불사라고 하면 다 똑같은 불사로 보는 것 같은데 불사답지 않은 불사도 많다. 그래서 아름답지 않은 절이 되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나마 원형을 남기고 있는 것이 선암사이다. 선암사도 소유 문제가 잘 해결 안 되어서 그런 것이지, 만약 돈이 펑펑 공급되었다면 현재 지금 모습이나마 남아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절에서 불사를 한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정말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판단이 섰을 때 거기에 여러 가지 지원이 따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불사에 돈이 들어간다면 돈만 낭비하고 절은 망가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말 돈 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로 돈이 쓰여야 될 곳이 아니라면 신도님들이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제가 하는 말의 대전제는 스님들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말씀드린 부분도 간과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것은 시민들 전체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렵다. 그러나 어떻든 불사를 이끌어가는 주체, 관계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점검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신도님들에게 마찬가지고 건축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점을 알면서도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보태주면 안 된다. 불사에 동참할 때는 신도님들도 건축가들도 이런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서 동참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불사라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많은 문제점들을 줄이고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한다.

현응스님 (해인사주지)
사전에 공유하고 있는 전제나 제도나 규정이 미비한 상태에서 다른 사찰인 실상사의 불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니 참 곤란하다. 그래서 오전에 불사에 관련된 포괄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각종 불사, 특히 산림이나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사찰의 건축물 관련 불사는 반드시 우리나라 문화재나 문화유산과 연관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기본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 같다. 승가의 교육, 포교의 목적, 신앙의 목적, 지역사회 공동체의 입장을 수용하는 문제 등 이런 것도 다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적으로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문화재가 있다면 불사에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를 시키고 해결할 것인지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숭례문 화재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 문화유산에 대한 많은 관심과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환경인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도 많이 가슴이 아팠고, 큰 도로를 내거나 큰 강에 큰 다리가 가로지를 때, 심지어는 산불로 좋은 산림들이 불탈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습니까만, 또 다른 인위적인 인공물인, 역사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조형물이 스러질 때, 그것이 많은 희망과 역사와 숨결이 스며든 문화유산이야말로 생태나 자연환경보다도 더 비극미까지 자아낼 정도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문화재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비로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불사 문제는 이런 문화재 문제, 문화유산의 문제와 병행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이 자리에도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이 두 분이나 참석해서 발제하고 토론도 했지만,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 불교계의 사찰에 있다. 한국의 유형무형의, 특히 유형문화재의 대다수를 불교문화재가 점하고 있고, 그것이 사찰, 승려, 신도들에 의해 수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는 보수비에 한해서 부분적인, 경미한 지원을 할 뿐, 유지관리는 영세한 해당사찰의 승려와 신도들의 신심에 무임편승하고 있는 것이 국가적 현실이다.
현재 국가 문화재와 문화유산 보수에 필요한 집행액이 약 250억 정도(?) 책정된다. 도시의 큰 다리 하나 짓는 액수도 안 되는 예산이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와 문화유산의 보존, 보수에 필요한 예산인 것이다. 그중에서 사찰을 통해서 불교문화재를 보수하는데 지원되는 금액은 아주 적은 액수이다. 건국 이후로 한 번도 유지관리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아까 직지사 흥선스님이 눈먼 시주를 엉뚱하게 하면 오히려 문화재나 문화유산, 그리고 사찰의 성격을 해치는 불사가 될 것이라고 뼈아픈 지적을 했습니다만, 동시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불교소유관리 하의 각종 문화재, 문화유산을 어떻게 이후에도 잘 보존 유지관리해서 승계해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도 불사 문제를 문화재와 문화유산에 연관된 속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 발제와 토론에서도 국립공원보호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해인사와 마찬가지로 여기 실상사도 국립공원 안에 있는데요. 문화가 억눌려 있다. 한동안 환경이 억눌려 있었다. 90년대 이전에는 환경이란 용어도 불온시되는 때가 있었다. 환경이란 용어도 90년대 들어서야 사용했다. 환경이란 말도 못써서 환경연합 최열총장은 공해연구소라고 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홀하던 환경이란 가치가 90년대 이후로, 환경문제가 소중해지고 지원도 하고 관심도 가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문화나 문화재, 문화유산에 관한 것들은 환경보다도 억눌려 있는 상황이 되었다.
환경과 문화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해인사의 경우는 명승지이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니 가야산 공간인 해인사 경내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해설판 가운데 문화유산에 대한 해설이 하나도 없다. 모두 국립공원가야산사무소 명의의 생태유산 해설만 있다. 아까 수덕사에 온 젊은이들 예를 들었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우리 문화재와 문화유산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해당지역을 국립공원자연법에 의한 용도지구, 자연보존지구, 자연환경지구 등 생태개념으로만 관리한다. 언제 국가가 주도적으로나 예산으로서 문화재나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체계나 지원체계가 이루어졌는가.
문화재보호법이라는 것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연속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보호법’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문화재는 보호라는 것에 국한된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가칭)문화유산법과 같은 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 문화유산법에는 문화재라는 좁은 개념보다는 보존이나 보수, 그리고 필요할 경우 이용과 관련되는 것 등 여러 가지 내용이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면 단위를 문화재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동식물도 있지만, 큰 군락단지의 생태도 있는 것처럼. 가야산이라는 면 단위의 문화재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보수도 지금 경미한 수준에서밖에 지원이 안 되지만 유지관리는 태부족이다.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사유권은 다 제한해 놓은 것이다. 품위 있게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국가제도가 미흡하다. 심지어 잘못된 가치관으로 문화유산지구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산 일원을 환경부가 관리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2008년 1월 1일부터 불국사가 있는 경주시 일원을 여덟 가지 권역으로 나누어서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지구, 각종 석조문화재가 있는 남산지구, 각종 왕릉, 장군릉 등이 있는 사적, 문화재 등을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게 되어 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환경도 중요한 가치지만 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이제는 소중한 문화재와 문화유산과 연관되는 의미 있는 공공구역을 잘 유지하고 창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국가제도나 예산에서도 다루도록 해야 한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오늘 실상사 불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발제자 재연스님 (종합)
앞에 말씀드렸듯이 실상사 불사는 아직 불사 방향에 대한 규모나 구체적 계획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는 복원불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실상사가 벌여온 내용들에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 법당 앞에 어마어마한 108평 넓이의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9층 목탑이라고 하는데, 층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리산 천왕봉과 비견될 만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웅장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저는 인도의 타지마할을 보면서도 그랬고, 애초 그런 아이디어 자체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건물이 유지되고 서있을 당시에 주변 마을사람들은 어떤 집에 살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움집에 살았을 것이다. 토굴에서 거적대기 치고 살았을 거라는 거다. 그런데 당시 출가대중들이 들판 가운데 어마어마한 건물을 세워놓고 무엇을 보여주었을지 의구심이 든다.
실상사가 여기에 자리 잡았을 당시, 홍척스님은 중국 마조도일의 문하인 서당지장이란 스님에게 법을 전수받은 분인데, 지장스님은 또 백장스님과 동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여기에 터 잡고 절을 만들거나 이후에 다른 구산선문의 산문을 개설한 분들도 중국 선종의 백장스님과 비슷한 아이디어들, 즉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다’라는 아이디어를 가슴에 다 갖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직 그에 관련한 자료는 본 적이 없지만, 실상사가 이렇게 널찍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이 혹시라도 스스로 식량 등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단들을 생각하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스님들이 지금 상태에서 직접 노동을 한다거나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까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실상사 불사 계획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직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는 뭘 어떻게 내놓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열어놓고 의견들을 더 받고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겠다는 생각도 했다. 
실상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어디서 돈 끌어올 능력도 없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대중들도 어디 가서 만원만 달라고도 못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실상사에 사는 거다.(웃음) 그러나 남 얘기 듣는 것은 잘 한다. 그러니 이렇게 열어놔야 일이 더 수월하고 편하지 않을까 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항상 관심 가져주시고 이런 논의 자리에서 상큼하고 매운 지적이나 의견을 많이 내주시기 바란다.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Copyrights ⓒ www.silsangsa.or.kr. All rights reserved  주소 55804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대표메일) silsang828@hanmail.net (전화) 063-636-3031 (팩스) 063-636-3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