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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법회 | [법문] 재의 근본은 화합에 있다...해강스님(11월첫주 서원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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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1-12-15 22:20 조회5,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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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주 서원법회 법문]
 
 
재의 근본은 화합에 있다
 
 
...해강스님 (실상사 주지)
 
 
오늘 법회 시간에는 49재 중 다섯 번째 재 의식이 함께 있습니다.
실상사가 있는 곳인 입석리 마을에 사셨던 어르신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재입니다.
그래서 대중 여러분이 동의하신다면 오늘 법문은 재 법문을 겸해 간단히 하고 우리 모두 함께 재에 동참하여 기도했으면 합니다. (대중 흔쾌히 동의함)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한자 문화권에 있는 민족과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는,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서 영혼에게 음식을 올리는 제사 방식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하는 것은 제사(祭祀)가 아니라 재(齋), 재사(齋事)입니다.
우리가 ‘백중’이라고 부르는 우란분절 있지요? 
전하는 말에 따르면 목련 존자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게 불교 재(齋)의 기원입니다.
 
 
그런데 그 재는 돌아가신 영혼에게 음식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요. 그러니까 다시 말씀 드려서 목련존자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 지냈던 우란분절의 재사를 들여다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드십사 음식을 올린 게 아니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지옥에서 극락으로 왕생하시기 위한 복을 짓게 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고 음식을 필요로 하는 거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풀었습니다.  그 공덕으로 어머니께서 지옥에서 극락으로 왕생하시리라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얘기의 진위여부보다는 중요한 것은 ‘재의 형식’입니다.
불교 재 형식의 원형이 보시공양인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절에서 지내는 재사 형식은 유가에서 비롯된 전통제례방식을 따르고, 내용은 불교의 정신을 담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불자로서 제사를 모실 때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가 형식은 불교 바깥의 전통 형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과 정신은 불교의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되고 그리고 내용과 정신에 따라서 의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상이나 종교와 확실한 차이를 갖는 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불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영혼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록 불교에서 제사를 지내더라도 그것은 영혼의 존재를 믿고 그 영혼을 위해서 지내는 제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존재를 위한 행사입니다. 그리고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제자들에게도 말씀드리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방식의 제사라는 것도 사실 돌아가신 영혼을 위한 것이 제일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전통방식의 제례형식의 기원을 어디다가 두죠? 공자님 말씀에 둡니다. 그렇죠? 공자께서 그런 제례의 예법을 세우실 때 기준으로 삼으신 것은 주나라 주공의 예법입니다. 주나라 시대에 주공이라는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다양한 삶의 형식에 관한 예법들을 잘 세우셨다 합니다.
 
공자께서 보시기에 그게 아주 모범적이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유가의 예법을 정리하신 겁니다. 그리고 중국 문헌에는 주나라의 예법인 주례를 잘 정리해서 문헌으로 전해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날 우리가 지내는 제사 형식의 기원은 주나라 주례에 있다 할 수 있겠는데요,  주나라 예법에 대한 문헌의 해석서에 보면 제사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가장 큰 목적은 공동체의 화합이다” 
 
우리가 지내는 제사 종류를 한번 따져보면 가정에서 돌아가신 할아버님이나 부모님이나 조상들을 위해서 지내는 조상 제사가 있지요. 가장 작게는 가족공동체가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 제사가 있겠고요, 그리고 친족 공동체의 문중에서 모시는 문중 제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을공동체에서 모시는 마을의 제사가 있습니다. 대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마을은 전해오는 제사가 있지요.  그 담에 각 고장마다 큰 단위의 고장에서 지내는 제사가 있고 한 나라의 임금이 제주가 되어 지내는 나라의 제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사로써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이냐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합이라는 거죠. 삶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만약에 돌아가신 분의 제사를 극진히 모셔도 우리한테 별 이득이 없다, 혹은 제사를 모시지 않아도 별 두려울 것이 없다면 제사 잘 모실 사람 누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분 산소 거창하게 만들고 -요즘 뭐 그런 거 유행이데?- 돈 들여 비석, 상석 으리으리하게 해놓는 거 그거 다 누굴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돌아가신 조상님을 위해서? 천만에. 다 자기들 잘 되려고. 내 자손들 좋으라고 그러죠?  솔직히 대답해 보세요. 그래요, 안 그래요?    
 
판소리 부르기 전에 목을 다듬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단가라고 합니다 그 단가 중에 유명한 사철가라는 노래가 있어요. 사철가 사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죽어서 만반진수는 불효생전의 일배주만도 못하느니라”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제사상에 만반진수를 차리고 산소를 궁궐 부럽지 않게 으리으리하게 가꾼다 한들 비록 불효자일지라도 부모님 생전에 올린 한 잔 술의 가치만큼도 못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조상님 제사를 모시는 가장 큰 목적은 가족 공동체 화합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제사를 모실 때 가장 중요한 공양물이 뭘까요? 돌아가신 조상들의 제사를 모실 때 가장 정성을 들여야 되고, 가장 중요하게 마련해야하는 제물이 뭘까요?
푸짐한 음식? 화려한 장식?  아닙니다. 그렇죠? 만사가 그렇듯이 역시 제사를 모시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겠어요?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안을 들여다봐도 그렇고 이웃가족들을 보면 제사 지낼 때 잘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누가 제사 비용를 많이 냈네, 적게 냈네’ 
‘누구는 일찍 와서 일을 열심히 하는데 누구는 다 해놓으니까 그때서야 털래털래 왔느니 마느니’  이런 사소한 것들로 다투기도 하대요.
 
그런 마음으로 제사 지내 가지고는 사실 헛제사 지내는 겁니다. 안 지내느니만 못 합니다.
왜냐면 말씀드렸듯이 제사의 가장 큰 목적은 가족들의 화합을 위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마을에서 당제를 지내는 이유는 뭘까요? 마을에서 당제를 지낼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그 뭐라고 그럽니까. 함께 나서서 울력을 하잖아요. 절에선 울력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남자들은 제단을 꾸리고 여자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다 함께 모여서 하잖습니까. 그리고 안 하면 흉보죠? 이유가 뭐예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화합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 할라고 화합합니까. 화합하는 사람들이, 화합하는 가족들이, 화합하는 공동체가 잘 살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기 때문이에요. 화합하지 않은 공동체는 불행하고 불행해집니다. 그건 두 말 할 거 없죠. 여러분 잘 아시죠. 가족들이 화합하지 않고 서로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사는 가족 행복한 거 보셨어요? 그렇지 않잖습니까. 그래서 본래 우리가 모시는 제사두요 가장 주목적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 게 아니에요.
 
 
살아있는 우리들의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돌아가신 조상들을 빌미로, 매개로 해서 가족들이 그것을 기회로 보다 화합하고 사랑을 돈독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를 모실 적에, 이걸 잊어버리게 되면 흐트러진 마음으로, 서로 싸우는 마음으로, 깨진 마음으로 제물을 아무리 준비한들, 아무리 으리으리하게 준비하여 제사를 지낸들 다 헛 제사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내 생일인데 자식들이 내 생일 잔치한다고 저희끼리 누가 돈을 더 냈니 덜 냈니 아웅다웅 싸우면서 음식상 차려주면 맛있게 받아먹을 수 있을까요?
그 생일상 받고 행복할까요? 아니지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내 제사를 모실 때, 비록 조촐한 제사일지라도 서로 돕고 서로 화합하여 한 마음으로 올린 제사하고, 비록 으리으리하게 꾸미고 진수성찬을 마련했지만 저희들끼리 싸우고 깨지고 그래 가지고서 형식상 올린 제물을 받았을 때 하고 받는 마음이 어떻겠어요. 

 
어떤 제사가 받는 분을 더 행복하게 하고 평안하게 해드리는 제사이겠습니까? 그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를 모실 때에, 제사를 지낼 때에 제사를 지내는 주목적이 무엇인지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게, 가장 정성을 들여서 준비해야 될 제물이 무엇인지 이걸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매년 마다 지내는 기제사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매년마다 지내는 기제사도 사실 형제들이 다 흩어져 살지 않습니까? 그냥 한번 모이자면 안 모이죠?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다 그러면 흩어져 살다가 그걸 핑계로 모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 시간들을 기회로, 수단으로, 매개로 해서 가족의 사랑과 화합을 다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남녀관계에서도 아무리 서로 너 없이는 못 사네 어쩌네 해도, 유행가 가사던가! 그런 게 있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그러잖아요. 그렇죠? 여러분들 경험해보니까 어때요?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죠?
 
정말로 너 없이는 못 산다하는 사랑하는 사이도 그런데,  형제들이 다 제각각 분가해서 흩어지고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다보면 정이 식기 마련입니다. 인지상정이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피를 나눈 형제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당연지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웃과도 형제처럼 잘 지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형제 가족끼리 잘 지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화합하고 사랑을 키워야 합니다. 화합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연인사이도 그렇듯이 자주 만나서 부비적거려야, 자주 만나야 일이 생기든 싸우든 어쩌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옛날 조상님들이 돌아가신 분들을 핑계 삼아서 제사를 매년마다 만들고 하는 이유도 그런데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제사를 모실 때 제사를 모시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지, 또 그 안에 준비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제사를 모시는 속내는 죽은 귀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할 말로 제물 차려놨는데 귀신이 와서 먹는 거 봤어요?
 
하긴 뭐 본다는 사람도 있기는 있데요. 저는 못 보니 그 사람이 본 다는 것이 사실인지 착각인지 무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불제자는 제사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제사는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 국가 공동체 화합을 위해서 지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마음으로 화합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이 점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 입석리 마을에 함께 사시다 돌아가신 어르신 5재가 법회와 겹쳐서 이렇게 함께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정성스런 마음으로 마을 어르신의 극락왕생을 기원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내가 알건 모르건, 나하고 가깝건 멀고를 떠나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 마음이 역시 곧 나의 평안과 나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재료들이고, 중요한 수행이고, 중요한 시간입니다.  결코 행복을 빌어준, 극락왕생을 빌어준 그 대상만의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그 마음, 기도하는 그 사람의 행복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평안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재사에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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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법회 때 제가 올 한해 계속 해왔던 얘기는 불자의 기본 오계 가운데 첫 번째 계인 불살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불살생 얘기를 하면서 초점을 두고 말씀드린 것은 ‘육식을 줄이고 더 나아가서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채식을 하자’ 였습니다.
오늘은 11월 서원법회죠? 그리고 다음 달이 12월이기 때문에 올 한해도 이제 다 끝나갑니다. 오늘은 마무리를 해가는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재사와 겹치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말씀드려왔던 불살생, 비폭력 계율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수행이자, 삶의 실천인 육식을 줄여가고 채식하자는 얘기의 마무리를 다음 12월 서원 법회 때 하겠습니다.
오늘 11월 서원법회 법문은 재사법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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