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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법회 | [법문]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해강스님(5월첫주 서원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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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2-06-09 10:17 조회5,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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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서원법회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해강스님 (실상사 주지스님)
 
 
“그가 나에게 거친 말로 욕하고 비방하며
 내 마음을 아프게 했네.
 나를 때리고, 나를 누르고, 이겼네”
 이렇게 마음에 간직하면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미움과 원한 사라지고 마음은 고요해 진다네.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면
 끝내 미움은 사라지지 않나니
 오직 참음과 사랑으로 대할 때
 미움은 사라지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라네.
 
 아무리 교묘한 말로 남을 비난하더라도
 깨끗한 사람은 더럽히지 못하나니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뿌리는 짓처럼
 비난은 도리어 자기를 더럽힌다네.
 
“남의 허물만 꾸짖지 말고
 힘써 내 몸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만일 이렇게 알고 행하면
 누구와도 다툼 없이 고요하리라.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큰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마음 지니고 뜻을 굳게 세우면
 비방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네. 
 
 예로부터 경쟁하는 사람들은 서로 헐뜯어
 이러하면 이렇다고 비난하고
 저러하면 저렇다고 헐뜯나니
 경쟁하며 비방 받지 않는 사람 세상에 없네.
 
 너와 내가 다퉈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긴 사람은 원한을 불러와 괴로워지고 
 진 사람은 슬픔에 빠져 괴로워지나니 
 이기고 지는 다툼을 떠나 사는 사람 늘 평화롭네.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긴 승리보다
 나 하나와 싸워 이긴 승리가 더욱 값지네
 아무리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긴 승리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거둔 승리는 더욱 고귀하다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어가라
 잘 참고 너그러우며, 잘 베풀고 인자하라
 미움에 사랑으로 대하고 원한을 자비로 감싸라
 평화와 행복은 그대의 것이리라.
    『법구경』
 
 
눈 내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연초록이 보기가 좋지요? 아무리 바쁘게 사시더라도 가끔씩 지리산 쪽을 쳐다보세요. 연초록은 눈만 맑게 해줄 뿐 아니라 마음도 아주 맑게 해준다고 합니다.  아마 산색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가, 산에서 뿜어내는 색깔이 우리 마음에 가장 크게 파장을 일으킬 때가 이때쯤이 아닐까 싶어요.  아기손만큼 이렇게 쭉 나온 새잎의 연초록 빛깔이 눈도 정화를 시켜주고 마음도 정화시켜준다고 합니다. 틈틈이 하늘도 한번씩 쳐다보시고 산도 한번씩 쳐다보셔서 하늘색으로 마음도 맑히시고 산의 연초록색으로 눈도 맑히시길 바라겠습니다.
 
앞자리에 서울 사시다 남원으로 귀향하셔서 오늘 첫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계시네요. 잠시 일어서서 인사하실까요? 얼마 전에 첫손주도 보셨다고 합니다.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대중 박수) 용춘란 보살님은 이사하셨다면서요. 이사 떡공양도 올리셨고, 어디로 이사하셨어요? 중기로 이사오신 거예요? 중기가 터가 좋은가봐. 다들 중기로 모이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집짓는다고 집터를 봐달라고 해서 가서 봤는데 중기 쪽이 상당히 건방진 터더라구요. 이 골짜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실상사입니다. 그런데 중기 땅이 이 실상사를 내려다 보는 곳이더라구요.(대중웃음) 그래서 그런가 중기로들 많이 모이는 것 같아요. 또 복덕행보살님은 어제부터 오셔서 자원봉사를 하시고 오늘 과일공양도 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대중박수)
 
일요일마다 어린이법회를 하는데 십여년전만 하더라도 2~30명씩 모였거든요. 요즘에는 시골에 아이들도 별로 없구요. 있더라도 일요일에 잘 나와놀지 않는 것 같아요, 시골마저도. 그동안 절에서도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법회때 아이들이 몇 안나오는데요, 그래도 몇 년간 꾸준히 어린이법회에 무구행보살님을 비롯해 몇몇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일요 법회가 이어지고 있고요, 아이들 생일 때마다 광주보살님들이 아이들 위해 케잌을 사다주십니다. 고맙습니다.
 
아시다시피 얼마 안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이죠.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해서 절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상사 홈피에 들어가 보시면 뭘 하는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으니 살펴보시길 바라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나누어드린 실상사 안내문을 참고하셨다가 일부러라도 시간 내셔서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것도 많습니다. 노래자랑 참석들 많이 하세요. 이번에는 마을대항으로 마천까지도 참석한답니다.
 
 
지리산댐, 왜 문제인가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곳저곳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인간은 자기 이해관계와 딱 부딪혀야만 눈을 뜨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년넘게 실상사가 의지해 온 이 지리산에 총체적 위기가 닥쳤지요. 골프장, 스키장, 케이블카 등등의 문제가 있는데, 두 차례에 걸쳐서 지리산댐 건설을 막아냈습니다만 이번에 또다시 지리산댐이 시작되었습니다.

계획상, 서류상에는 실상사가 수몰되지는 않습니다. 만수위 때에는 실상사 끄트머리,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선까지 물이 찬다고 합니다. 댐의 크기가 빌딩 50층 높이입니다. 140미터가 넘습니다. 높이로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댐이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이가 긴 댐이 진주 남강댐이라고 합니다. 진주 남강댐에 이어 길이로는 두 번째로 긴 댐을 만든다고 합니다. 높이는 가장 높구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댐은 일단 만들어지면 국가보안시설이 됩니다.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구요. 그러고 나서 높이를 보강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댐이 명목은 홍수조절용이라고 하는데 홍수조절용은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홍수조절용 댐이 아니라, 4대강사업으로 해서 낙동강의 취수원이 다 없어졌습니다. 낙동강 취수원을 통해서 물먹고 사는 부산사람들을 위해서 5개의 댐을 만드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지리산댐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산쪽 시민들의 식수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5개의 댐을 다 합해도 낙동강 취수원에서 취수했던 물보다 적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취수하는 곳을 넓힐 수밖에 없고 취수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곳의 댐은 일단 지어놓고 다음에 보강해서 물을 더 많이 담게 하기 위해서 댐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봐도 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들 때는 실상사가 안 잠기지만 거기서 2~3미터만 높이면 실상사는 수몰됩니다. 실상사뿐만 아니라 산내 전체가 수몰됩니다. 이것은 뻔히 보이는 수순입니다. 1단계로 짓고 2단계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산내전체가 잠기는 수순입니다. 이것은 실상사나 이 지역에 사시는 우리에게 닥친 매우 중요한,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지역민들은 대부분 나라에서 한다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마치 큰 죄를 짓는 일인양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나라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장서 나서기를 꺼려합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만 2002년도에 댐을 물리칠 때에도 실상사가 중심이 되어 시작해서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실상사가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은 스님들만의 일은 아니지요. 또 산내면에 사는 실상사 신도들만의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불사를 위해 천일기도를 올리지만 불사를 아무리 잘 해놓으면 뭐합니까.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댐공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아마 십년 안팎에 2차 보강공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그러니까 댐이 일단 완공되고 십년 이쪽저쪽에는 산내가 수몰될 수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을 잘 인지하셔서. 지금 단계에서 못 막아내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공사가 시작되어 버리면 막기 어렵습니다. 지금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니까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동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돈 벌어서 내 돈 내고 밥 사먹는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자연환경 파괴문제는 지구촌의 총체적 위기문제입니다.
어제 서울 동대의 부총장 부부가 오셨는데 부인께서 이혼상담 일을 하신다네요. 요즘에 이혼률이 매우 높답니다. 이혼 상담하는 연령층도 많이 내려오고 황혼이혼도 많다네요. 그리고 황혼이혼에서는 대개 남자들이 버려진다네요. 거사님들 조심하세요. (대중 웃음) 눈치도 보시고 더욱 잘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상담하시는 분은 60이 다 되신 옛날 세대분이잖아요. 당신이 자랐던 시대와 세대차이가 엄청 나는 거예요. 당신 가치로 보면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이 지금 이혼하고자 하는 세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사실 얼마든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이  있답니다. 실제로 헤어지는게 좋겠다는  부부도 없잖아 있지만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혼문제도 사회문제이지만 오늘날 보면 성인뿐 아니라 학생들의 자살,  인간성 상실에 따른 많은 사회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미래를 걱정하는 선지자들은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지요. 하나는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의 환경생태문제,  또 하나는 인간성 상실에 따른 문제.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눈답니다. 인간성 상실에 따른 문제는 아주 폭이 넓습니다. 전쟁부터 시작해서 종교간․세대간․빈부간의 갈등 같은 것들도 인간성 상실에 바탕하고 있는 것들이지요.
어쨌든 지구촌이 이대로 굴러가서는 미래가 암담하다고 하는 것에 공감하고 많은 눈 밝은 선지자들이 고민을 하고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문명은 서구문화 중심입니다. 서구 문명이 현 인류전체 문명을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도 한번 보세요. 여러분 삶의 방식을 보면 김치나 된장국을 빼고는 입고 있는 옷을 시작해서 거의 서구문명식이지요?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들인데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바로 서구문명을 이끌어 낸 사상과 철학의 문제로 귀결합니다. 다시 말해서 서구적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근본원인은 세계관의 문제, 즉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오늘날의 이 문명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문명에서 오늘날 현대문명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17세기 이후로 지구촌을 이끄는 문명의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과 물질적 세계관,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런 세계관들이 오늘날 현대의 찬란한 문명을 만드는데 선두적 역할을 하고 토대가 된 것입니다. 매우 큰 장점도 있지요. 그러나 또한 그런 세계관이 오늘날 현대문명의 위기 역시 초래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명의 위기, 현대 삶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안의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대체로 보면 천장에 먼저 닿은 공이 먼저 떨어지죠? 또 땅에 먼저 넘어진 사람이 먼저 일어서잖아요? 그렇듯이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사실 서양 사람들이 더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식의 문명과 세계관으로써는 인류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그에 대한 대안들을 찾아왔었죠.
 
종교계․철학계․학계․시민사회계 등 각계각층에서 찾아왔는데 오랫동안 다른 장에서 찾다가 매듭을 짓는 단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공통점은 자유주의, 분리주의, 경쟁주의, 자본주의로는 안된다는 것이에요. 반대로 공존과 상생주의로 즉, 오늘날의 세계관과 문화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요시 여기죠. 그래서 대체적으로 오늘날의 문명을 개체주의 문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경쟁을 전제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경쟁을 요구하고 1등만을 최고로 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젊은이들, 학생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그 경쟁에서 밀려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만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라고 그들은 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존과 상생의 세계관의 사상을 찾다 보니까 그들은 동양사상에서 답을 찾고요. 동양사상 중에서도 특히 불교에서 그 답을 찾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희망을 본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사상은 매우 폭 넓은데 그 중 무엇에서 그들은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찾는가. 그것은 연기법입니다. 공존과 상생을 얘기하는 세계관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이지요. 아시듯이 연기법은 어느 것 하나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생겨나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 무엇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도 존재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뭐, 내가 돈 벌어서 내 돈으로 내 밥 사먹고 사는 것 같지만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존재 없이는, 내 옆에 다른 사람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세상은 사람과 더불어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모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다른 존재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고 또 그 존재가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산이 비록 저렇게 말없이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만들어 준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뭐든지 편한대로 챙기고 많이 가지면 좋다고 하는 그런 잘못된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해서 함부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지리산댐도 생기는 것이고 그런 문명의 흐름과 생각의 흐름에 실상사는 잠기는 것입니다. 산내는 잠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리산댐이 생겨서 실상사가 수몰위기에 처한 이 시점에서 밖으로는 이것을 막아내도록 힘을 합해야 할 것이며 또 이걸 계기로 안으로는 나와 우리의 삶, 사상, 정신들을 되돌아보며 살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바람입니다.
 
어쨌든 살면서 누구나 다 행복하고 잘살고 싶어하잖아요? 말씀드렸듯이 사람도 다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또 삶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핵심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입니다.
 
역시 사람의 삶에서도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성격과 내용과 질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가 관계하고 있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내가 얼마나 어떻게 관계를 잘 이끌어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한 번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줄을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인간존재 자체가 관계에 의해서 비로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삶 자체가 관계입니다. 삶이란 다른 말로 관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삶이 관계니까 그 삶을 풍부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관계를 잘해야 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 모든 유정, 무정의 다른 존재와도 관계를 잘 해야겠지만 일단 우선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 나와 인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잘 안되는게 그것이죠 ? 이상하게도 조금 먼 사람하고는 관계가 잘 되는데 가까운 사람과는 더 안되는 것 같아 ! 왜 그럴까요? 아마 잘 안되는게 부부간이죠 ? 가장 잘 맞을 것 같으면서도 또 가장 잘 통해야 되는 대상이면서도 잘 안통하고 잘 안맞는게 누구에요 ? 웬수 놈의 서방이고 웬수 놈의 마누라지요 ? (대중 웃음) 허허허. 그렇지 않아요 ? 저는 안가봐도 알아요. 가봐서 그런게 아니고. (대중 웃음) 그러나 그 관계를 떠나서는 나의 삶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관계로 이루어진 삶은 관계를 잘 만들어야 행복하고 아름답고 삶이 즐거운 것입니다.
 
관계를 어떻게 해야 잘 만들까?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저는 관계와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사실 결혼할 때,  뭐 부부관계를 자꾸 얘기해서 그런데… 서로 죽고 못살아서 한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결혼하고 연애할 때는 이쁘고 멋지고 좋았잖습니까. 그 이쁘고 멋지고 좋은게 그게 지나다가 수퍼마켓에서 구멍가게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입니까 ? 아니잖아요.
 
흔히 인연을 얘기하면서 옷깃만 스치기 위해서도 5백생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이 생에서 부부로 만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의 인연을 필요로 할까요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피를 토하고 우는데 너와 내가 이 세상에 부부로 만나서 한평생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인연의 공든탑을 쌓아왔겠어요. 그렇게 해서 만난 인연입니다. 엄청나게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연입니다.
 
부부가 그렇듯이 가족이, 형제가, 친지가, 이웃이, 직장 동료가, 내 삶의 동선에서 걸리는 모든 존재들이, 이쁜 놈이든 미운 놈이든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삶을 이렇게 살게 하는 내 삶을 존재케 하는 매우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그냥 ‘아, 소중한 거야’라고 그냥 하고 말면 안되지요. 소중하다는 것을 마치 최면 걸듯이 자꾸 되뇌어야 합니다. 인연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야만이 타인에게,  다른 인연 존재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며, 그래야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지고 좋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불자는 관계를 늘 소중히 생각하고 늘 잘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수행이지 수행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가까운 존재와 관계를 잘 만들어내지 못하면서도 무슨 도력이 있는 양하고,  팔만사천경 좔좔 외우고 하는 것, 이것은 다 뻥입니다. 허풍선이에요. 자기 주변의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부처는 자신의 삶의 동선에서 만나지는 모든 관계와 더불어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게 부처에요. 그러니까 그 부처는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보는 사람은 다 환희롭고 기쁘고 행복한 거잖아요. 만나는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언제 어디가 되었든지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 이게 부처지요. 안그래요?
 
불자의 수행이라는 것은 내 주변의 존재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을 버려두고 다른 어떤 것, 참선을 하루에도 열 시간씩, 금강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독송한다, 이게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걸 뭐할라고 합니까 ? 그런 것은 내 주변 삶의 존재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가서 내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고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자는 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어떻게 살펴야 하느냐.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서고 있는가. 이 점을 늘 살펴야됩니다. 부부관계에서는 내가 부인을 내가 남편을 어떻게 보는가. 또 내가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이 점을 늘 살펴야 돼요. 이 점을 살피지 않고 놓쳐버리면 관계를 제대로, 자기가 원하는대로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걸 늘 살펴야 돼요. 수행은 찰나 찰나 자신을 살피는 것이고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교과서적 정답으로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가장 불자다운 시각일까요 ? 그렇죠. 부처로 보는 겁니다. 다른 모든 존재를, 내 주변에 관계 맺는 모든 존재를, 미운 놈이든 고운 놈이든, 비록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미워질지라도 부처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로 보고 부처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타인을 바라볼 적에,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절대로 관계가 헝클어질 수가 없지요.
 
그럼 어떤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서야 할까요? 교과서같은 정답으로 얘기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서야 할까요? 립스틱 짙게 바르고? (대중 웃음) 맞아요, 립스틱 짙게 바르고. 립스틱 왜 발라요? 나도 좋지만 상대에게 예쁘게 잘 보이려고 바르지요 ?  그것을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상대에게 다가설 때는 보살의 자세와 보살의 마음과 보살의 태도로 다가서야 됩니다. 보살이 뭔지 모르겠어요? 어려우면 괄호치고 어머니라고 쓰고 괄호 닫습니다.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가서는 겁니다.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고 이렇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의 관계는 당연히 아름답고 부드럽고 행복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거 하루아침에 안되지요 ?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라면 제가 여기 앉아서 이런 얘기 할 필요도 없겠지요.
  
세상에 하루아침에 제 마음대로 되는 것,  없습니다. 늘 반복해서 계속 노력하는 것, 이 길 밖에는 없어요. 그게 곧 삶이지요. 그런데 늘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워합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할까. 그랬을 때 부처님은 뭐라고 했을까. 부처님 말씀 중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볼 만한 말씀들을 모아봤습니다.
 
 오늘 나눠드린 법회자료 다 받으셨죠? 먼저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주지스님,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보는 부처님 말씀' 낭송>
 
법구경 말씀입니다. 말씀은 들을 때는 좋아. (대중웃음) 그런데 미운 놈, 사랑하기가 그렇게 쉬워요? 미운 놈 미워하기는 대단히 쉽습니다. 그렇잖아요? 미움은 마음 일으키는 동시에 상대에게 화살이 되어 쏘아져 갑니다. 밉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 미워하는 마음의 화살이 상대에게 쏘아져 갑니다. 이 화살을 멈추고 꺾고 쏘지 않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이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긴 것보다 나 하나와 싸워 이긴 승리가 더욱 값지다’고 하신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된다면 부처님이게? 하고 또 하는 거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하고 또 하는 과정에 뭔가 지침이 있어야 해요.
 
그럴 때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미운 놈 있을 때, 미운 놈 있어서 내 마음속에 증오가 끓고 분노가 끓을 때 가만히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심호흡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체온의 온도계가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체온의 온도계가 싸악 내려가면 그때 조용히 이런 법구경 말씀들을 읽어 보세요. 비싼 종이 그냥 드린 것 아니에요. 갖다 똥 닦을 때 쓰지 마시고 뒀다가 조용조용하게 읽어보시면요.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부처님 말씀의 신비한 힘입니다. 가라앉아지고 그런 것들이 한 번해, 두 번해 할 적마다 힘으로 쌓입니다. 한번 하면 한 번의 힘으로 열 번 하면 열 번의 힘으로 쌓입니다. 계속 반복하면 그만큼의 힘이 쌓이구요. 그 힘에 의해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도력’이라 하고 ‘법력’이라고 합니다. 그게 도력이고 법력이에요. 아시겠지요? 

이 자리의 누구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금 현재 힘들고 괴롭지 않은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  힘들고 괴로울 때 남을 미워하기 쉽고 남을 증오하기 쉬운데 남을 미워하고 증오한 만큼 자신의 마음은 깎여 나갑니다. 헐벗어집니다. 상처받습니다. 그것을 잘 다듬고 상처를 없애는 것은 사랑과 자비뿐입니다. 사랑과 자비로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다는 생각으로 다 같이 읽어보고 마치지요.
 
<모두 함께 '사람들과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새겨보는 부처님 말씀' 합송함>
 
이렇게 하여 여러분의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워지시고 나날이 웃음꽃 피는 그런 시간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밥 먹으러 갑시다. (대중 큰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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