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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왜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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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6-03-01 01:14 조회2,9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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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부터 12월까지 보현법회(매달 셋째 일요일)에서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공부합니다.

아래 글은 보현법회에서 법문을 하시는 회주 도법스님께서 동안거해제일이자 정월대보름이었던 지난 2월 22일 법문에서 하셨던 말씀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왜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공부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죠. 꼭 읽어보시고 올 한 해 반야심경 정진으로 대자유 대평화의 길을 만나기를 발원합니다. 

매화, 산수유, 목련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설법전 뜰앞의 감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

 

설은 잘 쇠셨습니가? (네)

오늘은 동안거해제일이기도 하고 정월대보름날이기도 합니다.

해제일이니 홀가분한 마음이어야 하고, 정월대보름이니 밝고 희망찬 마음이어야 하는데, 나라 사정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혼란스럽다 보니 마음이 홀가분하거나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요즘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도 꽁꽁 얼어붙어가고 우리 남한사회를 둘러봐도 서로 편을 갈라 싸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막힌 숨통이 터지고 얽혔던 것들이 풀려가는 게 아니라 더 숨통이 막히고 얽혀있는 것들이 더 꼬여가고 있는 거죠.

 

전체 국가와 사회가 주는 무거운 분위기, 무거운 짐들이 우리 삶을 억압하고 왜곡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마음을 좋게 쓰고 밝게 살아보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전체 국가와 사회가 주는 무거운 분위기, 무거운 짐들이 우리 삶을 크게 억압하고 왜곡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부처님은 삼계화택, 즉 불타는 집속 같다고 하셨죠. 그런 부처님 말씀을 실감하는 나날인 것 같습니다. 비록 세상이 불타는 집속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고 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신 게 부처님 가르침이고, 몸으로 보여주신 게 부처님 일생입니다. 불타는 집속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밝고 편안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 거죠.

 

삼귀의와 반야심경

 

2015년에는 보현법회에서 의상스님의 <법성게>를 공부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는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은 절의 각종 의식이나 불교인들의 모임에서 일상적으로 암송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여 현실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교를 정의할 때, ‘수행의 종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깨달음의 종교’라고도 하죠. 이렇듯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수행의 종교’라는 말이 제일 많이 쓰이죠.

 

일반적으로 ‘수행’이라고 하면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격식을 갖고 하는 것, 즉 참선, 기도, 참회, 염불 등을 떠올립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상적인 삶과 수행이 통일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삶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 될 때 특별한 격식의 수행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수행으로 인해 우리 삶이 더 풍부해지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늘 암송하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갖고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먼저 삼귀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삼귀의는 아시다시피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현하는 공동체 - 우리가 귀의해야 하는 세 가지 대상을 말합니다. 만약 누가 불교가 뭐냐고 묻는다면 ‘삼귀의’라고 요약해도 괜찮습니다. ‘삼귀의가 불교의 전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삼귀의를 늘려놓은 게 예불문입니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에 예불하면서 칠정례를 하죠. 그리고 조금 전에 불공을 올리면서도 칠정례를 했습니다. 이 칠정례를 좁히면 삼귀의가 되고, 삼귀의를 넓히면 칠정례가 됩니다. 더 넓히면 백 가지 천 가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삼귀의야말로 불교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고, 삼귀의에 담겨 있는 뜻을 잘 파악하고 잘 이해해서 마음 쓰고 말을 하고 몸을 쓸 때 실제로 적용하고 살면 그게 바로 불교수행입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삼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 보배로운 존재, 대단히 고마운 존재, 모든 공덕을 낳게 하는 원천적인 존재라고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 삼귀의의 내용을 갖고 실제 삶과 수행이 어떻게 하면 통일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반야심경입니다.

 

반야심경도 아침저녁 예불을 할 때, 또는 모든 의식을 할 때 빠짐없이 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귀의와 마찬가지로 의식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 실제 삶에 적용시켜서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공부하면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건지, 불교수행을 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정말 삶이 괜찮아지는 건지,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2016년 3월부터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공부합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 글자로만 보면 매일 접하는 것이어서, 너무 익숙하고 그래서 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매일 접하는 것이고, 너무 익숙한 것이니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매일 접하는 것, 너무 익숙해서 너무 빤하게 보이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행을 한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닐까요?

 

우리 삶에서 일상이 기본이듯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잘 익히는 것이 불교공부의 기본입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우리 삶과 수행이 통일되고 그래서 우리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진다면 이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공부를 하는 한 해가 되도록 정진하십시다. 그 안에서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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