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의&반야심경 6강 : 불생불멸,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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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삼귀의&반야심경 6강 : 불생불멸,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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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6-12-29 02:22 조회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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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와 반야심경>강의 (6)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신도들 : 요즘 돌아가는 정국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정국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 알고 있잖아요. 
사실 반야심경에 해답이 다 있기도 하고, 우리가 공부했던 법성게에도 해답이 다 있습니다. 해답이 없어서 안 가거나 못 가는 것이 아니죠. 다만 해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죠. 길은 언제나 환하게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하나는 그 길을 잘 몰라서 안 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계산 하느라고 못 가는 경우입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다 계산이 다른 거죠.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

그런데 하야라는 말을 놓고도 해석들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그들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또 이 당은 이 당대로, 저 당은 저 당대로 ‘하야’라는 말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국민들이 말하는 ‘하야’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내용이 뭐겠습니까? 하야라는 말, 그것이 전부이겠습니까? 그 말 속에 담겨있는 알맹이를 곰곰이 짚어서 정리해 보면 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좋은 나라가 되도록 하자. 두 번째는 밝은 미래가 보였으면 좋겠다. 아, 이제야 괜찮아지겠구나. 이렇게 가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만하겠구나. 밝은 미래가 보이길 바란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뭐겠어요? 좋은 나라를 만들고,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일 수 있도록 하려면 뭘 해야 하겠습니까? 좋은 정부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과정에서 우리 마음속에 내편에 대한 애정만 있고 상대편을 포함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다 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분노하는 사람을 향해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움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어떤 사람을 향해서 분노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증오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분노의 바탕에, 또는 증오의 바탕에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분노하거나 증오하는 이유가 정당하다고 해서 나의 마음 바탕에 그 사람에 대한 애정마저 같이 무너지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세월호 문제와 지금의 정국문제는 거의 비슷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있지만, 누구를 탓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를 탓하는 것을 넘어서야 길이 열립니다. 우리 삶이 대부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누구를 탓하는 것까지는 잘 하는데 그 너머까지는 못가는 거죠. 그래서 중생의 삶이라고 하는 거겠죠.

제가 서울에 자주 왔다갔다 하고 화쟁위원장을 맡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논쟁하는 자리에 종종 가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주장과 비판이 탁월합니다. 굉장히 멋있게 주장하기도 하고, 대단히 탁월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아주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배울 점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과 비판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넘어가면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결론은 대부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이든 사회적 합의 없이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 없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하는 쪽으로 접근해가는 능력은 매우 약합니다. 또는 말은 사회적 합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합의의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음도 많이 보게 됩니다. 대부분이 나와 내 편이 유리한 쪽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란 말은 나와 내 편만이 아니고 반대편 사람들과 같이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반야심경의 논리로 보면 공(空)의 길, 달리 말하면 사심을 버리고 대의명분 또는 공심(公心)의 길을 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공의 길이 해답이야, 하고 말로는 배우고 또 배웠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연습이 안 되어있는 거죠. 실제 삶에서는 어쨌는가. 대립과 경쟁, 승리와 일등을 향해 달려온 것이 그간의 삶이었죠. 이쪽은 이쪽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나와 우리 편이라고 하는 틀을 딱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정교한 명분과 논리로 주장하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죠. 그리고는 또 ‘사회적 합의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끝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러분은 정말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사유방식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법성게에서 말하고 있는 법성원융의 정신과 사유방식, 반야심경에서 말하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정신과 사유방식이 바로 그 길입니다. 

(……)

지금 우리는 정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을까요, 반야심경 공부를 했을까요? 둘 다죠? 바로 그런 것입니다.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현실이 따라오고, 삶과 현실에서는 자연스럽게 반야심경의 내용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 공부가 무르익는 것이고 평화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마음에 새기고 반야심경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

()이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믿는 것처럼 실제로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생은 정말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알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애착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런 것은 없어. 애착을 가져야 할 생,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잘못 알고 잘못 믿어서 애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있는 사실은 내가 알고 믿는 것처럼 있지 않다는 것을 공이라고 표현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

만약에 생사와 열반, 또는 생과 사의 관계도 마치 손등과 손바닥처럼 함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느 하나를 버리고 어느 하나를 취할 수 없는 관계라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단순히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상황에 맞게 잘 쓰고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불안감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는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는 거죠. 벗어난 그 자리에 변화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는 거죠. 변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설레는 말 아닙니까? 새로운 미래,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끝없는 변화가 있을 뿐이지 끝으로서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니까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서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사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도, 죽음에 대한 자세도 많이 달라집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평소에 학습하고 준비하면 좋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불자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반야심경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이 경전이 실제 여러분의 삶에 쓸모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면 이것을 열심히 외우면 복 받는다니까, 부처님의 가피가 크다고 하니까 그냥 열심히 외우십니까? 주로 우리는 그렇게 신앙적으로만 반야심경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가피는, 진짜 영험은, 진짜 복은 뭘까요? 
“생명의 참 모습은 불생불멸이고, 나의 참모습은 불생불멸이다.”
이것을 잘 이해함으로써 생에 대한 애착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도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 - 이것이 진짜 가피입니다. 이것이 진짜 복입니다. 이것이 진짜 공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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