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보현법회 - 우리가 불교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 불자로서 신행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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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2019년 4월 보현법회 - 우리가 불교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 불자로서 신행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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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9-04-26 11:18 조회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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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보현법회

 

 

일시: 421일 오전 1030

장소: 실상사 설법전

 

회주스님의 모두 법문

우리가 불교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 불자로서 신행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안녕하세요인사를 하긴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 걱정거리가 많아서 안녕하다고 말하기가 왠지 어색한 분위기인 것 같다. OO사에 가면 법당 안에 명당지가 있다. 절에 오래 다니며 열심히 기도도 하고, 절도 하는 분들인데, 그 자리는 절대 양보가 안 된다. 젊은 사람이 불자 되겠다고 절에 찾아왔는데, 그날따라 법당에 사람이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 어찌할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어서 잘 됐다 하고 앉았다. 그 순간 바로 그 옆자리에 계신 노보살님이 사정없이 나무라신다. 그곳은 임자가 있는 곳이니 절대 앉으면 안 된다며 당장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 상황이 이쯤되면 그 젊은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 다시 절에 오고 싶을까? 열심히 절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오랜 세월 신행생활을 하셨으면 당연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배려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너무나 합당하고 당연할 터이다. 그런데 배려는커녕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과연 이래도 우리가 신행생활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곳에서 주의 기울여 관찰을 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장면이 많다. OO사 법당에선 거의 24시간 기도를 한다. 그런데도 내용을 보면 상식적으로 있어선 안 될 일들이 깊게 뿌리내려있다. 마치 그래야 하는 법이 있는 것처럼. 우리 실상사는 어떨까? 절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불자로서 불교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 신행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비록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 생활을 하고 신행 생활을 하더라도, 본인만 복을 독점하겠다는 욕심에 붙잡혀있다면 그 수행, 그 신행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할 터이다. 제발 이런 점에 대해 주의깊게 살피고 잘 다듬고 관리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교 수행과 신행은, 인생을, 세상을 제대로 알고 눈뜨고 살자 또는 길을 잘 알고 가자는 것. 수행과 신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해야 불교공부가 진정 삶에 도움이 될 것

조금 전에 보현행원노래를 했는데 그 노래에 두 눈 어둔 이 내 몸이라는 가사가 있다. 불교 수행의 본질은 명료하다. 삶을 봉사인 채로 살 것인가, 눈 뜨고 살 것인가, 길을 잘 알고 갈 것인가, 막무가내로 갈 것인가 하는 점이 그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범속한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천번만번 확인하고 또 확인해봐도 부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봉사인 채로 삶을 살고, 부처님은 눈을 뜨고 삶을 살아가는 점만 다르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도 비바람 불고 눈보라가 치는 현실에서 살았다. 붓다도 빗속을 걸으면 옷이 젖고 음식 잘못 먹으면 탈나고, 때가 되면 죽는다. 범속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다름이 있다면 봉사로 살 것인가, 눈뜨고 살 것인가만 다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참선을 하고, 신통방통한 깨달음을 얻고, 신통력을 얻어도, 여전히 삶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비바람은 불고, 눈보라는 친다. 봄도 오고, 여름도 오고, 때가 되면 늙고, 죽고,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병도 든다. 그럼 깨달은 부처님과 미혹한 우리, 열심히 불교수행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뭘까? 굳이 기도하고 수행해야 할 이유가 뭘까? 예로 들면, 가야할 방향과 길을 잘 알고 갈 것인가, 그냥 생각나는대로, 기분대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만반의 준비를 잘 하고, 눈보라와 비바람 속을 걸어가는 것과 아무 준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준비를 잘하고 걸어가는 것이 바로 삶에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는 기적의 길이고 신비의 길이고 불가사의의 길인 것이다. 이점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모순과 혼란에 빠져 아무리 불교수행을 하고 기도를 해도 잘 안 된다, 또는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도와 수행을 잘 하면 음식을 잘못 먹어도 탈이 생기지 않고 운전을 내맘대로 해도 사고 나지 않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대로 다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대부분 신행생활과 수행생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점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끊임없는 모순과 혼란에 빠져 해도 해도 잘 안 된다, 해봐야 별 수 없다며 좌절하게 된다.

수행과 신행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수행과 신행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무엇이 해결되고, 무엇이 해결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잘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 그러므로 해도 안 뜨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무리 뼈빠지게 기도하고 수행을 해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본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빌고 또 빌어도 반드시 해는 떠오른다. 아침에 해뜨는 일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때그때 잘 적응하고 잘 활용할 일이지, 해뜨지 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렇게 빌고 빌었는데 왜 해가 뜨는거야 하고 불만을 품고 실망하고 좌절하며 부처를 탓하고 원망하면 어찌될까? 오히려 고통과 불행만 가중될 뿐 어찌할 수 있는 길이 없게 된다. 곰곰이 살피고 짚어서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

 

2008, 비가 많이 내려 산사태가 나 승련사를 덮쳤다. 캄캄한 밤중인데 전기도 끊겨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전전긍긍하며 밤새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어두운 상태와 밝은 상태. 어떨까? 어두우나 밝으나 상황은 똑같은 상태이다. 다른 점이 뭘까? 밤에는 벌벌 떨 뿐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반면 낮에는 갈 곳과 가선 안 될 곳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바로 눈 뜬 사람과, 눈 먼 사람의 차이이다. 상황은 똑같으나 눈 뜬 사람은 내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고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불교 수행과 신행이란, 인생을, 세상을, 길을 제대로 알고 살자는 것이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상황이지만, 장화와 우산을 잘 준비하면 얼마든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수행과 신행이 무엇인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인 무엇인지를 잘 구분해야 불교 공부하고, 수행하고, 기도하는 것이 참 좋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날로 신심도 더 나고 더 애써 노력도 하게 되고 더 헌신적으로 밝고 활발하게 삶을 창조하게 된다. 정신차려 살피고 살필 일이다.

 

붓다로 살자불교를 하는 이유

화쟁사상을 제시한 분이 원효스님이다. 어제는 그분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곳을 순례하자고 해서 화성의 수도사에 갔었다. 원효스님이 해골 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곳이다. 원효스님은 우리 불교사, 민족사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다. 그 이유가 뭘까? 그 당시 우리는 당나라에 가서 인정을 받고 와야 - 요즘으로 치면 미국 가서 학위를 받아오는 것 국가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원효스님은 유학가지 않고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그 내용이 세계의 중심인 당나라에서 인정하고 높이 평가를 했다. 당시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도중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긴급하게 피할 곳을 찾아들어갔다. 그곳에서 해골 바가지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와 귀신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체적으로는 귀신 때문에 잠 설쳤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사연인즉, 토굴이라고 생각한 첫날은 편안하게 잠을 잘 잤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해골들이 굴러다니는 무덤이었다. 깜짝 놀랐지만 비바람이 계속 몰아치는 바람에 다음 날도 그곳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왠지 뒤숭숭하고 귀신들이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아서 잠을 설쳤다. 밤새 어수선하게 지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똑같은 장소인데 토굴이라고 생각하고 잤을 때는 아무 탈 없이 잘 잤고, 해골바가지가 굴러다니는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잠을 자니, 꿈자리가 사나워 잠도 설쳤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고 골똘히 사유해보니 문제가 바깥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을 시로 읊었는데 여기에 옮긴다.

 

심생즉종종법생

분별하는 마음 때문에 온갖 차별 현상이 벌어지고

심멸즉감분불이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감실과 무덤이 다르지 않네.

삼계유심만법유식

온 세계가 오직 일심동체요, 모든 차별 현상은 오로지 분별심일 뿐이네.

심외무법호용별구

한 마음일 뿐 그밖의 다른 자리가 있지 않은데, 어찌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리요.

아불입당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원효스님의 오도송을 들여다보면 불교에서 중요하게 얘기하는 내용을 다 담고 있다.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순례 자리에서도 이야기했는데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어찌해야 할까?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고 실천하고, 실천하면 도움이 되는 불교를 해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붓다로 살자불교이다. ‘붓다로 살자불교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불교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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