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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6월 보현법회 - 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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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9-07-02 17:40 조회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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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보현법회

 

 

 

 

일시: 6월 16일 오전 1030

장소: 실상사 설법전

 

 

회주스님의 모두 법문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

올 여름 안거 주제가 뭔지 기억하세요?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입니다. 오늘도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하고 죽음을 얘기하면 허무해지고, 무의미해지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끔 하는 등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죠. 우리는 늘 삶에 대한 얘기를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얘기도 항상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빛나다는 이 말이 불교 언어 중에 어떤 말을 표현한 거 같습니까? 반야심경에서 공이라고 말을 하잖아요. ‘생도 공이요. 죽음도 공이다라고. 사천왕 문 앞 주련에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라는 사유방식을 삶과 죽음에 적용하면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가 되는 거죠. 삶의 얘기를 거리낌 없이 다루어가듯이, 죽음의 얘기도 거리낌 없이 다루는 것이 맞지 않겠어요?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이라고 되어있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집착하는 삶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죽음도 본래 없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삶이 본래 없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죽음도 본래 없는데 무엇을 그렇게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법성게에 생사열반 상공화(生死涅槃 相共和)’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생사와 열반 이 두 가지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한 몸이다. 함께 화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생사는 싫어하고 열반은 좋아합니다. 생명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 생사와 열반이 한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는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싫어하게 될까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단단히 마음먹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생명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한 생각없이 그냥 습관대로 봉사 코끼리 만지듯이 자기 색안경으로 보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색안경을 벗고 또는 눈을 뜨고 생명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드리면 삶도 죽음도 빛나게 될 터인데 색안경을 쓰고 자기 습관대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된다는 말입니다.

빛나야 할 삶과 죽음을 몸에 비유하면 삶은 몸의 앞쪽이고 죽음은 몸의 뒤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볼 때 삶은 좋은 거 죽음은 나쁜 거 이렇게 보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맞습니까? 안 맞죠.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죠. 색안경을 쓰고 관습에 따라 삶은 좋고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왜곡되게 이해하고 받아드리기 때문에 삶에 대해선 욕심과 집착을 가져오고 죽음에 대해선 불안과 공포를 가져오죠. 바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의 사고방식에 빠진 결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처님 말씀대로 삶과 죽음이 한 몸의 앞쪽과 뒤쪽 같은 거야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 하나는 좋아하고, 하나는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죠.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참모습,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 당연히 쓸데없는 불안과 공포, 욕심과 집착을 일으키지 않게 되죠. 그러면 삶이 어떨까요? 저절로 삶이 자유롭고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나라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하다가, 법회 준비하는 도반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번에 얘기했던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에 비추어 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나라는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젊음은 좋고 늙음은 안 좋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이 훨씬 편안하고 여유롭습니다. 기운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지금이 훨씬 더 좋습니다. 저는 젊음을 관통하는 그 시절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 차이는 젊으면 뛰어가고 늙으면 걸어가는 겁니다. 꼭 뛰어가야 좋은 건가요? 그건 자기가 조절하기 나름인 거죠. 젊음이 좋고 늙음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건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서 생긴 어리석은 사고방식에 의한 거죠.

늙음의 장점을 얘기해 볼까요? 경험적으로 신비하고 환상적인 삶이 있지 않음을 잘 알게 되죠. 여유롭게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릴 줄 알게 되죠. 희망이 넘친다며 방방 뛰거나 절망이라며 무너져 내리지 않게 되죠. 허망한 꿈을 꾸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일단 젊음이 없는 늙음은 없습니다. 늙음이 없는 젊음은 어떨까요? 막연하게는 있을 거 같지만 실제는 늙음이 없는 젊음도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늙음이 없으면 젊음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늙음의 소중함을 모르게 되고요. 그러기 때문에 젊음을 함부로 낭비하게 되고 온갖 말썽을 일으키게 되고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되죠. 그 때 부모님에게 효도를 잘 할 걸 하고.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니까 넘치는 기운을 기분대로 막 쓰게 되죠. 결국 인생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오류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을 힘들게 만들기도 하고요.

죽음이 있어서 삶이 소중하듯이 젊음이 빛나고 늙음도 빛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당당하게 살아야죠. 왜 젊음은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늙음은 당당하게 살면 안 되죠? 나무로 비유하면 꽃이 피었을 때는 당당한데 열매를 맺었을 때는 당당하지 못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사실로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죠.

삶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진지하게 내용을 관찰해 보면 젊음도 빛나고 늙음도 빛난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불교는 바로 인생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고 살아야 그 인생이 멋있고 행복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 이정도 얘기했으면 늙음과 죽음을 얘기해도 기가 죽거나 허무함에 빠지지 않겠죠?

 

유언 : ‘단순소박한 마무리

제가 이전에 유언 얘기를 했잖아요. 최근에 제가 유언을 정리했는데 10가지입니다. 제목은 단순소박한 마무리입니다.

 

1. 절대 연명치료하지 않는다.

2. 생명 나눔 실천본부에 약속한 대로 전신 기증을 한다.

3. 여기 저기 번거롭게 밖으로 알리지 않는다.

4. 저승 가는 옷은 평소에 입었던 두루마기 차림 정도로 한다.

5. 우주생명의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길이니 잘 가. 잘 있어하고 떠나는 앞길을 따뜻하게 빌어주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기분 좋은 이별의 자리였으면 좋겠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춤추고 노래했다고 하는 유명한 얘기가 있죠? 죽음의 문화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6. 적당한 장소에 평장을 하고 낙엽을 덮어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화장도 문제인거 같아요.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오염을 시키고..

7. 49재 및 해마다 하는 제사보다는 적당한 날에 식구들이 모여, 한 끼 밥과 정담을 나누고, 작지만 이웃과 공동체에 의미 있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8. 가능하면 일이 늘어나지 않도록 3일장에 구애받지 말고 빠른 시일 안에 장례를 치렀으면 한다.

9. 수고한 사부대중이 한 끼 공양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10. 나에게는 남길 것, 나눌 것이 없다. 앞으로도 함께 하는 대중들이 충분히 논의, 합의해서 우리가 살아갈 법계 공동체(자신, 식구, , 마을, 사회)를 잘 가꾸고 유지하는데 도움 되도록 하는데 지혜와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어떻습니까? 죽음이 주는 무겁고 칙칙한 것을 줄이고 밝고 기분 좋은 이별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리했습니다. 더 좋은 내용과 방식이 있으면 더 보태서 완성도를 높였으면 합니다. 제 실력으로는 이 정도입니다. 죽음의 문화가 잘 만들어져서 삶의 안목이 열리고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깨달음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몇 가지 문제, 평장 문제, 제사 문제, 기분 좋은 이별의 자리 문제 등은 계속 논의하면서 다듬어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언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를 받아드린다면 일상적으로 죽음 문제를 계속 다루어서 죽음이 멋진 여행을 떠나는 이별이 될 수 있도록 하여 그야말로 만인에게 보내는 기쁜 소식으로 빛나게 했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지혜와 뜻을 모아서 그렇게 되도록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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