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성도재일 희망메시지 "네 인생의 주인은 너야"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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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법문 | 2020 성도재일 희망메시지 "네 인생의 주인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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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0-01-10 07:24 조회1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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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성도재일, 부처님 되신날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희망메시지

"네 인생의 주인은 너야."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어떻습니까? 부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같은 사람이요”

“진짜예요?” (모두 웃음)

 

우리는 부처님과 같을까 다를까

 

몇 가지 짚고 가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첫째, 부처님과 우리는 똑같습니다. 불교인들은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자나깨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지켜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이 우러러만 봐야 하는 존재, 그 앞에서 빌기만 해야 하는 존재로 부처님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잘못된 정보를 걷어내지 않으면 여래의 진실한 뜻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두 번째, 부처님과 우리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복잡한 교리와 설명들이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잘 녹이고 압축해서 부처님의 뜻에 잘 맞도록 표현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을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입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은 자유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노예로 사는 삶은, 아무리 고대광실에 살면서 천하를 호령하기도 하고 온갖 산해진미를 다 누려도,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면, 비록 허름한 집에서 근근히 먹고 살더라도 자유와 평화가 있습니다.

 

절의 벽화에서 많이 보는 게 소 찾는 그림, 심우도(尋牛圖)입니다. ‘소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분주하게 소를 찾고 있지만, ‘소타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한가로이 피리를 불면서 즐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그와 같습니다. 자신이 소 타고 있음을 잘 아는 사람이 부처이고 모르는 사람이 중생입니다. 


누구나 다 소를 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사람입니다. 그게 우리와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짚어보면 거의 노예로 살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 소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입니다.

소는 나에게 주어져 있는 몸과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이란 내 몸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소를 찾기 위해 천하를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시간과 역량을 그곳에 허비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소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요. 밭을 갈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며 즐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싯달타, 인생의 해답을 얻다

 

2600여 년전, 싯달타라는 한 인간이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자기 인생을 모두 겁니다. 왕자의 길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찾아갑니다. 당시에도 “이것만이 길!”이라고 외치는 많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싯달타는 그 가르침들을 따라 수행을 했습니다. 

먼저, 정신집중과 통일을 위한 선정수행을 했습니다. 최고경지인 비상비비상처까지 올라갔지만, 정작 본인이 알고 싶었던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길인 고행주의 수행처로 가서 고행을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정점까지 올라갔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버리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자 함께 수행했던 동료수행자들은 싯달타가 타락했다면서 비난하고 떠나버리죠.

 

당시에는 ‘선정수행’과 ‘고행수행’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신념체계였습니다. 따라서 경전에서는 동료수행자들이 비난하고 떠난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시대 모든 수행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버림을 받았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싯달타는 자기 해답을 찾기 위해 용기있게 홀로 섭니다. 누군가가 제시해준 길, 누군가가 만들어준 지도를 다 써봤지만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싯달타는 길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를 풀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이렇게 다짐을 합니다. 

‘내가 찾던 해답을 찾지 못하는 한 결단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오래지 않아 해답을 찾게 됩니다. 교리적으로 12연기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중도의 길을 깨달았고, 중도를 통해 발견한 길을 연기라고 했고, 연기를 통해서 문제해결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기법입니다. 이 문제를 잘 풀어내니 자유롭고 편안한 삶이 이루어진 것이죠. 그것을 우리는 해탈·열반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답이라고 제시해준 모든 길을 갔는데 해답이 없었고, 자기 길을 가니 모든 사람이 비웃고 배척했을 때, 싯달타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실망과 좌절이 몰려들었을까요? 그런데 싯달타는 그런 상황에서도 해답을 못찾았다고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용기를 내서 길이 없는 곳에 길을 찾고 만들어내는 과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이 나옹선사 발원문에 나오는 ‘여피본사용맹지(如彼本師勇猛智)’입니다. 나옹스님의 이 발원에는 더 많은 뜻이 깃들어 있지만, ‘우리도 세존처럼 용기있게 지혜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뜻도 담겨있다고 봅니다.

성도재일에 부처님의 실제 면모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경전에 나오는 인간붓다의 모습을 떠올려봤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해답을 얻었을까

 

부처님께서 찾은 해답은 중도연기라고 표현되고 있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속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이렇게 맞춰보고 저렇게 맞춰보고 그것을 종합해보면 실천의 진리를 중도, 존재의 진리를 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격화시키면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소타고 있음을 알고 살 것인가 모르고 살것인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후에 <화엄경>이나 선불교에 오면 ‘주인’은 ‘소타고 있음을 알고 사는 사람’이고, ‘본래부처’라고 표현됩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볼 때, 부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네 인생은 너 자신이야. 그러니까 너 자신으로 살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탄생게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본래부처’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사들은 ‘소타고 있는 것을 알고 마음껏 니삶을 살아보게’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이러한 가르침이 있기 전엔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나는 신의 종이야’, 또는 ‘업보의 종이야’, ‘운명의 종이야’ 하면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었다는 거죠. 전전긍긍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부처님이 “네 인생은 네 거야”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야”라고 가르침을 주셨으니,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을 잘 파악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게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교인이면서도 업보의 종이니 운명의 종이니 하면서 혼란을 겪고 우왕좌왕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같이

 

여기에 부처님의 희망의 메시지를 하나 더 덧붙여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부처님은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행위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신의 뜻이나 전생업보나 정해진 운명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어쩔 수가 없어’라고 할 때와 ‘내가 마음 먹고 행위하는 대로 즉각즉각 이루어지는 거야’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차이입니까. 행위하는 대로 즉각즉각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처님은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신의 종이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신의 뜻이라고 믿고 있을 때, “아니야, 네가 주인이야.” 거기에 더 보태서 “너는 네가 행위하는 대로 되는 존재야.”라고 라면서 광명의 세계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도둑질 하면 바로 도둑놈 되는 것이고, 진실하게 살면 바로 진실한 사람 되는 거야.” 바로 이런 사상과 정신, 사유방식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응용된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입니다.

 

화엄경에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 참회와 발원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발원은 ‘발심과 서원’의 줄임말입니다. 

내가 소타고 있음을 알고, 소타고 있는 주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즉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살면 해탈열반의 삶이요, 그렇지 않으면 정반대의 삶입니다. 그러니 발심과 서원, 참회와 발원. 이런 표현들을 다 녹여서 압축해놓은 것이 초발심시변성정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노예라고 했든지 말든지, 소타고 헤맸든지 말든지 개의치말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즉 과거나 미래를 붙잡지 말고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과거도 내려놓고 미래도 내려놓고 현재에 오롯하게 존재하면 삶은 홀가분하고 경쾌해집니다. 현재 삶이 무거운 것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갖고 와서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은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말고, 사로잡히지 말고, 붙잡히지 말고, 머물러있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발심과 서원의 마음입니다. 발심과 서원의 마음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과거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길이고, 미래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현재의 삶을 역동적으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성도재일을 맞이하는 저녁에 ‘참회발원’을 주제로 성도재일을 기린다고 하여 이런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참회발원정진의 중심에 ‘내가 삶의 주인이며, 소를 타고 있으며, 행위하는 대로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본래부처’라는 것을 분명하게 내 불교관의 기본정신이 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잘 다지면 의미 있는 성도재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정진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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