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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법문 | 생명의 품, 평화의 숲 (도법스님, 평화의숲 심포지엄 기조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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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0-11-27 12:08 조회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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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숲 국민 참여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 

"숲의 눈으로 평화를 보다"

도법스님 기조강연 

 


 

 

생명의 품, 평화의 숲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사단법인숲길 이사장)

 

 

 

길 잃은 자들의 비명소리

 

“죽음으로 남긴 20세기 증언” 

“종교평화 없이 인류평화 없다”

“사회적 양극화”

“상대적 소외와 박탈” 

“남녀불평등과 저출산”

“자연생태질서의 붕괴”

“생명다양성의 감소”

“지구의 사막화”

“기후위기의 현실화”

“생명위기 평화위기”

“문명위기와 종말”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계속 들어왔던 경고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코로나19로 위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지금 여기 삶의 주체인 내 생명의 참모습에 대한 올바른 파악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삶의 참모습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삶의 올바른 방향과 길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삶이란 올바른 방향과 길을 따라 가면 가는 만큼 삶의 문제가 풀리고 우리의 바람이 실현되지만, 그릇된 방향과 길을 따라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문제가 꼬이고 우리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향과 길을 찾는 일은 너나없이 우리 모두에게 최우선 과제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생명의 참모습, 생명평화무늬

 

여기 소개하는 생명평화무늬는 우리가 찾아가야 할 방향과 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무위의 자연과 인위의 인간, 인위의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이웃과 이웃들이 그물의 그물코처럼 존재하는 지금 여기 내 생명의 참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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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무늬는 지리산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여기 나의 참모습, 존재의 참모습이 그물의 그물코들처럼 연기적으로 이뤄진 존재, 분리 독립, 고정불변한 그 무엇도 있지 않고 온통 관계와 변화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온 우주 유형무형의 그 무엇도 본래 분리독립 고정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위와 무위, 시간과 공간, 내면과 외면,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 등 모두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의지하고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바다와 파도처럼 한몸 한생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지금 여기 나요, 사회요, 세계의 실상입니다. 

 

이 세상의 뭇생명들은 너나없이 생명이 안전하고 삶이 평화롭기를 희망합니다. 뭇생명들의 염원인 평화는 그물의 그물코처럼 이루어진 한몸 한생명의 정신에 따라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한몸한생명의 동반자이므로 너와 나 이웃과 이웃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생명의 진리에 따라 서로서로가 지극하게 모시고 섬김으로써 공존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생명이 안전하고 삶이 평화로울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상대와 함께 서로 존중, 배려, 협력, 나눔의 생활화, 사회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평화만이 우리의 희망, 평화에 도달하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동안 우리들은 생명평화무늬로 표현된 생명의 진리를 무시한 채 인간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자신, 인간, 사회, 세계, 자연, 우주의 참모습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게 되어 있는 공동운명체임에도 불구하고 △ 맹목적인 소유와 소비욕의 무한확대 △ 독점과 지배욕의 무한확대 △ 투쟁과 승부욕의 무한확대 △ 자신, 집단, 인간중심의 이기적 삶을 무한확대하기 위해 질주함으로써 ‘반생명 비인간화의 극대화’, ‘불확실성과 위험성의 극대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게 된 셈입니다.

 

 

생명평화무늬와 나의 일상

 

얼마 전 실상사에서 임채욱 작가의 <지리산 가는 길>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지리산과 지리산이 품고 있는 숲에 대해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사진전의 주제가 종주길, 둘레길, 실상길, 예술길이었는데, 제게 실상길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해서 쓴 글입니다. 생명평화무늬의 정신으로 가꾸는, 평범한 제 일상을 짧은 글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비한 작은 길

 

실상사 내 방

창문을 열고 마루에 서면

아담한 극락전 마당 한 켠에

기왓장으로 경계를 표시한

길이랄 것 없는 작은 길 하나 있다.

 

나는 매일 그 길에서 

나인 그대

삶을, 죽음을, 성공을, 실패를 만난다.

나인 그대

후라이꽃을, 작은 출입문을

풀매는 노승을, 마루 닦는 할매를

그리고 온 실상사를, 온 세상을, 온 우주를 만난다.

 

나는 매일 그 길에서 

나인 그대

젊음을, 늙음을, 환한 희망을, 깜깜한 절망을 만난다.

나인 그대

홍척의 비석을, 작은 냇물을, 예쁜 텃밭을

푸르른 하늘을, 천왕봉의 흰구름을

그리고 온 실상사를, 온 세상을, 온 우주를 만난다.

 

나는 매일 그 길에서 

그대인 나

고단함, 편안함과 함께 아침 먹으러 간다.

그대인 나

페미니즘 청년, 템플스테이 아줌마

시원한 바람, 뜨거운 햇빛

그리고 온 실상사, 온 세상, 온 우주와 함께

 

나는 매일 그 길에서

그대인 나

기쁜 소식, 슬픈 소식과 함께 아침법석에 간다.

그대인 나

넓은 절 마당, 푸르른 소나무

고요한 눈빛,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온 실상사, 온 세상, 온 우주와 함께

 

날마다 빛난다, 작은 길에서

그대인 나의 삶을 만나는 기적이

나인 그대의 삶을 만나는 신비함이

늘상 온 우주와 함께 하는 불가사의함이

참 넓고 큰 작은 길, 참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이다.

그래, 무엇이 부족한가.

이만 하면 걸을만하지 않은가. 

엣취! 허허허…

 

평범한 제 일상은 생명평화무늬가 밝혀주는 길을 따라 걸아가는 소박한 제 모습입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하지만 부족함 없이 충만한 제 일상입니다. 

 

 

정상회담의 지혜를 우리 안으로

 

평소 저는 생명평화무늬가 나의 앞길, 인류문명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우연한 일치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기적같은 희망의 선물을 안겨주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생명평화무늬가 가리키는 길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담겨있는 지혜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우리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저는 기회만 주어지면 “정상회담의 지혜를 우리 안으로!”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DMZ 접경지역 평화의 숲’에 대해 구상을 할 때도 그 지혜를 우리 지혜로 활용해야 된다고 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전 세계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임을 실감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야만 적절한 대책도, 희망도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최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좌우남북이 함께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제가 “정상회담의 지혜를 우리 안으로”라는 국민운동을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그 기조를 단순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 안의 비무장지대 형성

둘째, 우리 안의 정상회담

셋째, 역대 정부의 남북 합의 내용을 좌우 여야가 합의를 이룸

      (휴지조각이 된 남북합의서를 생생한 희망의 등불로 살려내는 일임)

넷째, 좌우, 남북이 함께 DMZ생명평화선언을 함

다섯째, 좌우, 남북이 함께 한반도평화선언을 함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 국민운동 또는 민족운동으로 전개되어 좌우남북이 DMZ생명평화선언, 한반도생명평화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틀림없이 세계시민이 공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유엔과 주변 강대국도 세계여론의 흐름에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서로서로 우리 모두가 빛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뉴노멀이 아니라 생명질서의 회복

 

코로나시대, 기후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막 쏟아져 나오는 담론이 ‘대전환’과 ‘뉴노멀’입니다. 영어를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대략적이나마 뜻을 알게 될 정도입니다. 정부나 기업도 그에 맞춰 여러 가지 정책이나 사업을 구상하고 발표합니다.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쏟아내는 대책들을 보면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느껴지지만, 본질에서는 이전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 위기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경쟁하고 승리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되고 ‘대전환’의 담론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위기의 본질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 내편과 인간중심의 사고와 삶의 방식에 대한 경고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뉴노멀’의 정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본래 있는 길’이었으나 가지 않았던 생명평화의 길을 지향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뉴노멀’은 우주의 실상이 유기적 생명공동체임을 확신하고, 우주 생명질서인 공존-협동-균형의 길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마치 ‘비정상의 정상화’처럼.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담론과 실천도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헛된 환상의 파랑새를 찾아가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결국 대전환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며, 뉴노멀은 위기의 확대재생산이 될 것입니다.

 

 

분열과 대립의 병을 치유하는 평화의 숲

 

저는 DMZ 접경지역 평화의 숲에 대해서도 유기적 생명평화공동체의 관점으로 생각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숲이야말로 그 자체로 생명평화의 어머니품입니다. 물론 하나하나의 사물들도 그런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특히 숲은 개체의 이름을 넘어서는 존재입니다. 무수한 존재들이 훨씬 더 많이 직접적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생명의 숲’입니다. ‘따로’와 ‘함께’라는 생명의 세계, 평화의 세계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실체입니다. 숲 자체로 어울림 삶, 생명공동체의 원형입니다.

 

숲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위로와 쉼과 생의 활력을 주는 안식처입니다. 코로나19, 기후위기 시대의 숲도 늘 그런 방향에서 고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숲에서 단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이 아니라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받습니다.

 

그런 뜻을 담아, 저는 ‘DMZ 및 접경지역 평화의 숲’은 다음 두 가지 방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째, 자연과 자연이 그 자체로 어울려 살아가는 곳, 자연 그 자체로 생명의 기운이 역동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손길이나 발길을 최소화하고 숲 자체가 자기 생명을 만들어가는 곳, 최대한 숲의 원형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둘째,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장소의 의미도 잘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념으로 인한 분열과 대립의 병을 치유하여 좌와 우, 남과 북이 만나고 함께 하는 거룩한 평화의 숲으로 빛났으면 합니다.

 

모쪼록 ‘DMZ 접경지역 평화의 숲’이 코로나19,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본래 생명의 길인 한몸 한생명 공동체의 길’을 찾아가는 전형으로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우리 남북만이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이 생명평화의 의미를 새기는 성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 안에서 생명평화의 나무가 되어 생명평화의 숲을 이룰 수 있기를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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