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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순간순간이 백척간두입니다_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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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1-09-09 11:44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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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보현법회

 

 

순간순간이 백척간두입니다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우리의 일상을 보자면, 예를 들어 독감 때문에 이런 것 저런 것 신경쓰기도 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면서 늘 함께 삽니다. 코로나 상황도 비슷하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무서워하고 또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대응도 잘 해왔지요. 그렇게 해서 잘 해오긴 했는데 어쩌면 끝내 걱정했던 것들, 예상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매순간순간이 특별한 상황

 

그런데 불교에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순간순간, 우리 일상의 삶 자체가 실제로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백척간두(百尺竿頭),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입니다. 백척간두는 아주 아슬아슬한 천길 만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 떨어지면 모든 삶 자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상황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매순간순간, 마음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어느 한 순간도 이 백척간두 아닌 상황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말씀하신 것이 중도의 팔정도행입니다. 부처님은 중도의 팔정도 사유방식으로 매순간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 중도의 삶을 불교수행 또는 거룩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중도의 팔정도 사유방식으로 하는 마음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로 불교공부와 수행의 기본이고 핵심이고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백척간두’ 상황에서 팔정도의 사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한번 팔정도를 우리말로 풀어봅시다. 

‘단단히 마음먹고, 정신 바짝 차리고,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잘 관찰하고 잘 사유하여 파악된 내용을 적재적소에 맞게 말로 할 것은 말로, 행동으로 할 것은 행동으로, 삶으로 할 것은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풀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면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상황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지혜롭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과 결과도 뜻하는 바대로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상황이지?”

“이 문제는 어떤 문제지?” 

“이 일은 어떤 일이지?”

 

중도의 팔정도 사유방식으로 하는 마음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그대로, 직면한 현실문제를 중도의 팔정도 사유방식으로 다루면 그 내용, 즉 실상을 잘 파악하게 됩니다. 파악된 내용이 말로 잘 설명해야 될 일이면 말로 잘 설명하고, 몸으로 잘 행동해야 할 일이면 몸으로 잘 행동하고, 실제 일상의 삶으로 잘 살아내야 할 일이면 삶으로 살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아무리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놓인 아슬아슬한 백척간두의 삶이라도 그 삶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일상이 백척간두라고 하는 사실을 온 세계가 경험한 셈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붓다의 가르침대로 중도의 팔정도행으로 살아야죠. 그렇게 살면 말 그대로 삶과 수행이 통일됩니다. 당연히 코로나19가 일상이 된다고 해도 우리가 살고 싶은 희망찬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마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사람처럼. 불교가 탁월하고 중요하고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오늘 법회를 준비하면서 돌아보니, 6월부터 ‘하루를 여는 법석’의 교재인 <참회와 발원>을 갖고 법회를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첫 번째로 ‘시방삼세 모든 도반들이 함께 올리는 축원’을 갖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7월에는 <반야전 불사>에 대해 사부대중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고 해서 교재를 갖고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7월에는 약속한 대로 법회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지요. 적어도 함께 약속한 것들은 잘 지켜야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있어야 함께 사는 데 바람직한 것인데, 그렇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도 상황이 비슷해서 무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잘 알고 계시듯이 지난 번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도 백중재와 보현법회가 겹쳐있어서 법회시간을 줄여야 한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보현법회를 선재집으로 옮겨서 해야 하는데, 법회의 내용과 형식이 약간 변화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미리 잘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교재공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법사의 체면이 참 말이 아닙니다. 넓으 마음으로 이해를 청합니다. 

 

 

바람직한 법회의 내용과 형식은 무엇일까

 

실상사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바람직한 법회운영에 대한 모색을 여러 가지로 해왔습니다. 지금은 이게 당연해 보이는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보현법회를 해보자고 정리한 것은 해강스님이 주지소임을 할 때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조금씩 변화를 도모해왔지요. 

 

그리고 이제 한 번 더 변화를 도모할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다음 보현법회부터는 법회장소를 선재집으로 옮기는데, 그와 함께 법회의 내용과 형식에도 약간의 변화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실상사는 그동안 꽤 많은 실험들을 해왔습니다. 바람직한 불교를 해보자고 30년 세월을 모색해왔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변화들을 이루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의례적으로 했던 것들이 답습되는 부분도 있고, 그러다 보니 뒤섞여서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늘 익숙한 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늘 뭔가 낯설고 불편하고 어떨 때는 못마땅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바람직한 변화를 필요로 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삶과 활동이 바람직하게 유지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변화는 꼭 필요한 일인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변화할 것인가 입니다. 

 

그래서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고 나아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보현법회를 바람직하게 변화하기 위한 것인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조실스님 3재를 지내면서 

 

새로운 시도 가운데 가장 최근에 우리가 경험했던 사례를 한 번 살펴볼까요? 그것은 실상사에서 모신 조실스님 3재입니다. 오늘 여기에도 3재에 함께 하신 분들이 많은데, 어떠셨어요? 우리가 늘 해왔던 제사방식이었나요? 아니면 변화된 방식이었나요? 엄청나게 변화된 방식이었죠?

 

조실스님 49재를 돌아가면서 모시는데, 초재와 2재는 각각 금산사와 송광사에서 지냈습니다. 그 초재와 2재는 늘 해왔던 방식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실상사에선 3재를 어떻게 모시면 좋을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실상사는 이전부터 바람직한 변화의 관점에서 장례문화에 대한 모색을 나름대로 해오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해오던 의례에 깃든 정신은 계승하면서도 현대인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함께 할 수 있고, 나아가 좋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장례문화는 무엇일까. 이번에 실상사에서 모신 3재는, 오랫동안 그런 모색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떠셨어요?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변화된 내용으로 3재를 지냈는데, 괜찮았습니까? 

△ 좋았습니다. 

▲ 정말 좋았습니까? 그냥 덕담하시는 거 아녜요?(웃음) 

△ 아뇨, 정말 좋았어요!!! (웃음)

▲ 좋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희망이 더 보이네요.(웃음)

 

3재를 모신 다음, 점심공양을 마치고, 맏상좌인 도영스님, 총무원장 원행스님 등 조실스님 직계상좌들 20여 명이 선재집에 따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문중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어요. “실상사는 역시 다르다. 실상사답게 3재를 잘 모셨다. 매우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라고요. 그리고 큰 박수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것이 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해서 이루어진 결과잖아요. 이런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할 일은 적극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불편해하거나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감을 갖고 저항하면 불교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열어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이런 점을 잘 살펴서 우리 실상사 사부대중은 더 적극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지혜와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우리 실상사는 비록 작은 사찰이지만 우리 나름대로 바람직한 한국불교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화엄학림부터 시작하여, 귀농학교, 작은학교, 한생명 등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졌고, 실상사의 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금산사 문중의 식구들은 실상사가 하는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잠깐 들여다보는 경우들이 더러 있었고, 바깥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실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랬었는데 문중 대중이 전체적으로 함께 오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문중식구들이 이번 3재 모시는 것을 통해서 ‘실상사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참 괜찮네. 좋네.’하고 공감하게 되어서 ‘잘 되었다’ 싶습니다.

 

 

보현법회, 이렇게 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길게 드리는 이유는, 보현법회 장소를 선재집으로 옮기면서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한데, 이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존의 법회에 익숙한 분들께는 좀 낯설고 불편하고, 어떤 점에서는 못마땅한 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 역시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하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신뢰와 애정을 갖고 좀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 ‘불공과 법회’에서 ‘기도와 법회’로 변화

 

그동안 반야전에서 했던 보현법회는 <불공과 법회>로 진행했는데, 선재집으로 가면 <기도와 법회>로 진행합니다. 얼핏 듣기에는 불공이나 기도나 그 말이 그 말 같은데 무엇이 다를까 싶을 것입니다. 불공법회나 기도법회나 관행처럼 진행되다 보니 그 말이 그 말 같고, 내용도 비슷하게 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선재집으로 옮기면서는 그 성격을 명확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불공’이라고 하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물론 거기에 기도도 포함되지요. 사찰의 하루 의식을 보면, 새벽과 저녁에는 예불과 기도를 하고, 사시에는 불공과 기도를 하지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공양물을 올리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지요. 새벽과 저녁에는 향공양, 등(초)공양, 차공양을 기본으로 하는데, 사시에는 거기에 음식물 공양이 더해지는 것이지요. 밥, 떡, 과일 등과 같은 공양물을 올린 다음 기도하고 개인축원을 합니다.

 

절에서 사시에 하는 불공기도는 불상을 모신 전각에서 이루어집니다. 실상사로 보자면 보광전,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등에서 하는 거죠. 그런데 선재집은 부처님을 모신 그런 전각이 아니고 법회를 위한 대중공간입니다. 그러므로 불공과 법회가 아니라 기도와 법회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 독송경전은 <21세기 약사경>

 

앞으로 보현법회에서는 늘 읽어왔던 <천수경>이 아니라 <21세기 약사경>을 독송합니다. 이 <21세기 약사경>은 현재 약사전 천일기도에서 매일 독송하고 있고, 공동체식구들이 매주 하루씩 집중수행을 하는 날에도 함께 독송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21세기 약사경>은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자는 취지로 천일기도를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즉 실상사 사부대중의 큰 발심과 원력으로 만들어진 경전입니다. 실상사가 그동안 모색해온 깨달음의 삶이 이 <21세기 약사경>에 다 녹아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21세기 약사경>은 약사전 기도스님이나 공동체에서 일하는 식구들만이 아니라 깨달음의 문명을 가꾸겠다는 발심과 원력을 가진 모든 실상사 사부대중이 함께 읽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부대중이 대표적으로 함께 하는 모임이 보현법회인 이날 약사경을 독송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가 모아진 것입니다.

 

▲ 종교의식 변화의 필요성

 

이렇게 법회형식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이유 가운데는 무종교인들과 젊은 세대들이 좀 더 편하게 종교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뜻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공과 같은 전통적 종교의식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히 큽니다. 아예 가까이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천일기도를 하면서 <21세기약사경>을 젊은이들과 함께 합송했는데, 반응이 정말 긍정적이었습니다. 가장 크게는 내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의식은 대표적인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젊은이들이 <21세기 약사경>을 통해 실상사가 하고 있는 천일기도의 내용과 목적을 알게 되고 기도의식 자체에 대해서도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왜 기도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너도 나도 함께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내게 된 것입니다.

 

잘 따져보면 독송경전이 <천수경>에서 <21세기 약사경>으로 바뀌고, 불공과 개인축원 대신 기도와 합동축원 하는 것 말고는 기존방식과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작지만 기존에 해오던 것을 마꾸는 것이니 혹 혼란이 있을까봐 선재집으로 법회장소를 옮기기 전에 미래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상사에서 하고 있는 공부, 수행, 활동들이 내용적으로 바람직하고 원만하게 성취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부대중이 어떤 마음을 내고 노력을 하는가가 관건이지요. 단지 실상사에서 소임을 갖고 있는 출가자, 재가자들 뿐 아니라 우리 신도님들도 함께 마음을 내고 노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보현법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현법회가 바람직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잘 자리잡도록 하는 것도 역시 함께 마음을 내고 노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시간을 보니 11시 20분이 되었네요. 예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까지 하기는 어렵겠고, 평소처럼 대화를 할 시간도 없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간단한 제 근황을 이야기하고 마쳐야겠습니다.

 

 

백척간두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기

 

잘 아시다시피 저는 조실스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상주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49일간은 그렇죠. 제가 그렇게 효성스런 상좌가 못되어 대충대충 상주노릇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주는 상주잖아요. 

 

제가 조계종의 제17교구인 금산사를 책임 맡아 운영하는 문중의 한 구성원이기도 한데, 그 구성원 중에서도 상당히 고참입니다. 아무래도 오랜 관계가 있다 보니 금산사나 교구에 대해 더 아는 게 많을 수밖에 없고 책임감도 더 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더 살피게 되고 살피니까 내용을 더 알게 되고 알게 되니까 걱정이 더 많습니다.

 

좀 더 설명 드리면, 어쨌든 금산사 문중과 금산사 교구는 오랜 세월 조실스님을 의지해서 또는 조실스님의 지도 아래 살아온 셈입니다. 제가 금산사 문중에 들어온 햇수만 하더라도 55년이니 조실스님이 금산사 들어와서 살아온 세월은 60년도 넘습니다. 

 

조실스님은 금산사 문중과 교구의 가장 큰 기둥이셨는데, 이제 기둥역할을 하시던 조실스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이 교구와 문중을 차질 없이 더 나아가 발전적으로 운영할 것인가가 큰 과제입니다. 어쩌면 49재를 지내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는 여러 가지 관점과 입장이 있을 수가 있고, 이해관계도 얽혀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백척간두입니다.

 

그렇게 볼 때, 제 근황의 핵심을 오약하면, 하나는 상주로 49재를 잘 지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금산사 문중과 교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금산사 문중과 교구에 필요한 기둥의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해답은 한 가지밖에 없지요. 관계된 문중 식구들이 모두 함께 화합하는 일입니다. 화합해서 지혜를 잘 모아내어 조실스님이 하셨던 기둥역할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다뤄온 경험들이 너무 미약합니다. 오랫동안 그냥 어른한테 의지해서만 살다 보니까 개개인들도 그런 경험과 역량이 준비가 부족하고, 대중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합의를 만들어내고 합의한 대로 함께 실행되도록 하는 시스템도, 문화와 풍토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둥 역할을 어떻게든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니 대충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 상황인 거죠. 자칫하면 불화로 갈 지도 모르는, 어쩌면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자초할 수 있는 위험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사실 이 일들이야말로 49재보다도 더 중요한 상주의 역할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합니다.

 

솔직담백하게 말씀드리면, 제 근황의 핵심은 백척간두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헛발질 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것저것 살피면서 식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고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야말로 전전긍긍입니다.

 

어쨌든 이제 선재집으로 법회장소를 옮기고 나서는 교재로 공부하자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해야 할 텐데, 다시 한 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그리고 계절의 변화와 함께 정신 바짝차리고 함께 정진 잘 하십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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