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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재일맞이 6일차 : 신들과 사람들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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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2-01-09 15:20 조회5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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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재일맞이 경전읽기 7일수행 

2022/1/4.(화)▶1/10(월)

 

2022.1.9.일. 6일차 

신들과 사람들의 스승

다시 세상 속으로 : 범천권청 / 오비구를 찾아가다

 

 

"고정불변하는 실체(아트만)는 없다. 모든 것은 조건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은 이 법을 사람들에게 설하기를 잠시 망설였지요.

 

'탐욕과 집착의 경향을 즐기며 "이것이 나이고, 나의 것이고, 나의 자아이다"라고 생각하고, 신, 아트만 등의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과연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범천(梵天)의 간청으로 법을 설하기로 합니다. 

그래, 알아들을만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선정수행을 가르쳐준 알라라와 웃다까를 떠올렸지만, 그들은 이미 목숨이 다한 뒤였습니다. 

 

그 다음은 자신을 비난하고 떠났던 다섯 비구를 떠올렸고, 마침내 그들을 찾아나섰지요. 

아, 이 길이 있었기에...

부처님, 그분! 

우리 스승이 되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26.성스러운 구함의 경〉에서 발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긴다.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경지,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형성의 그침),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떠남, 소멸, 열반을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저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고통을 주고 피로하게 만들 뿐이고 상처만 줄 것이다.’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범천, 설법하시기를 청하다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의 일으킨 생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 그런 짧은 시간 사이에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채 나를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거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범천의 간청을 충분히 알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깨달은 이의 눈[佛眼]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중생들도 있고 많이 오염된 중생들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중생들도 있고 둔한 중생들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중생들도 있고 악한 중생들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중생들도 있고 어려운 중생들도 있으며, 그리고 저 세상(내세)과 비난(죄악)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중생들도 보았다.

 

예를 들면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라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표면까지만 자라고,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헤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나는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중생들 가운데는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중생들도 있고, 많이 오염된 중생들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중생들도 있고, 둔한 중생들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중생들도 있고 악한 중생들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중생들도 있고 어려운 중생들도 있으며, 그리고 저 세상(내세)과 비난(죄악)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중생들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대들에게 불사(열반)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듣는 자들),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 누가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현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여 오랬동안 눈에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을 했다.’라는 지(앎)와 견(봄)이 일어났다.

 

(부처님은 다음으로 웃다까 라마뿟따를 생각했지만, 

 그는 바로 지난 밤에 임종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맹정진을 할 때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면 어떨까? 그들은 이 법을 즉시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섯 수행자들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으로 닷섯 명의 수행자들이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다나의 미가디야(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우루웰라에서 흡족하게 충분히 머물고는 바라나시로 출발했다.

 

 

♣ 유행승 우빠까 

*복을 걷어찬 불쌍한 수행자...ㅠㅠ

 

비구들이여,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가 가야 강과 보리수 중간쯤에서 길을 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밝습니다. 피부색은 청정하고 빛이 납니다. 

 벗이여, 그대는 어느 분께로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자이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오염되지 않고)

일체를 버리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고

스스로 최상의 지혜를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부르겠는가?

나에게 스승도 없고 유사한 이도 없으며

인간과 천상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고귀한 분),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 모든 번뇌가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네.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가서 법의 바퀴[法輪]를 굴리리라.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이다.”

 

“벗이여, 그대가 선언한 바와 같이 그대는 무한한 승리자가 될만하다고 자인하는가?”

 

“번뇌가 부수어지면 그들도 진정한 승리자가 되리

 우빠까여, 일체의 악한 법을 정복했기에 나는 승리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그 아자와까 [유행승]인 우빠까는 ‘벗이여,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서 머리를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났다.

 

 

♣ 오비구를 찾아가시다

 

“비구들이여, 나는 차례대로 유행하여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미가디야(녹야원에) 있는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찾아갔다.

 

비구들이여,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서로 합의했다.

 

“도반들이여,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그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맙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앉을 수는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줍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합의를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마련하고, 또 다른 사람을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도반이여.’라고 말을 걸었다.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를 이름으로 불러서도 안 되고, ‘도반이여.’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正等覺者]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다섯 명의 비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이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실천, 그 젖어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겠습니까?”

 

다섯 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런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 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두 번째에도 다섯 비구는 똑같이 묻고 부처님도 똑같이 대답했다.)

 

세 번째에도 다섯 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이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겠습니까?”

 

다섯 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존자시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런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나는 다섯 비구를 설득하고 확신시킬 수가 있었다.

두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함께 연명을 하며 생활했다. 세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두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함께 연명을 하며 생활했다. 

 

비구들이여,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가르침을 받아, 

 

자신들이 태어남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태어남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늙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늙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늙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늙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병듦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병듦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병듦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죽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죽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죽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번뇌의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 

번뇌의 법이 지니고 있는 잘못됨을 알아 

번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구하여 

번뇌의 법이 없는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

 

그들에게 지와 견(앎과 봄)이 생겼다.

‘우리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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