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부처님을 닮아가는 향기로운 사람(4/14 초하루)...해강스님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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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법회 | [법문] 부처님을 닮아가는 향기로운 사람(4/14 초하루)...해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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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4-18 13:59 조회5,428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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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는 기도법회가 점차 없어지고 정기법회는 오직 약사재일만 남았습니다.
올 3월 들어 사부대중 공동체 주요소임도 바뀌었고 신도들의 요구도 있고 해서
필요한 법회를 몇 개 더 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신중기도법회입니다.
매월 음력 초하루부터 초삼일까지 신중기도법회를 다시 열기로 하였습니다.

신중기도법회는 이렇게 합니다.
첫날에는 상단의 부처님과 중단의 신중전에 헌공하고 법문을 듣습니다.
둘째 날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세 번 기도합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기도를 마치고 오전 10시에 회향기도를 합니다.
 
[ 다음은 3월 초하루 주지스님 법문을 메모했다가 풀어 쓴 것입니다.
   옮겨 쓰다 보니 표현이 바뀌거나 내용에 다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모두가 잠시 선정에 들었다 일어나 후 말씀 시작]
 
지옥에 가고 싶은 분 있으세요?
지옥이 무엇이냐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어떤 지옥일 지라도 아마 스스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한 대장군이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점차 갈등과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큰스님을 찾아갔습니다.
큰스님은 그가 와도 조금의 동요 없이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큰스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진정 현자라면, 천당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는지 말해보시오.”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을 질문하기 위해 내 명상을 방해했단 말이오?”
명상을 하다가 방해를 받은 큰스님은 장군에게 마구 험담을 해댔습니다.
모욕을 견디지 못한 장군이 그만 화가 나서 칼을 빼어 스님을 내려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스님이 벼락같이 소리쳤습니다.
“봐라! 지옥이로구나.”
순간 장군의 칼이 얼어붙은 듯 허공에 그대로 멈추었습니다.
끔찍한 지옥의 불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음에서 솟구치는 불같은 분노, 그게 바로 지옥이었던 거죠.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찰라, 장군의 마음에서 분노의 불이 꺼지고 평정이 찾아왔습니다.
“이게 바로 천국이지요.”
큰스님은 자비하신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 흥분하게 되고 바로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이 따르지요.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 흥분하게 되고, 바로 욕망에 빠지게 되며, 욕망은 고통을 이끌어 옵니다.
그게 바로 지옥이지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천당이겠지요.
 
그러면 마음의 평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 방법이 참선입니다.
절집에 있는 말 중에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지옥을 면 한다”는 말이 있지요.
지옥에 가고 안 가고가 어디 선방 문고리 때문이겠습니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겠지요.
참선뿐만이 아니라 염불이나 기도 등 모든 신앙행위들도, 알고 보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닮아간다는 것
 
오늘 초하루에 우리가 하는 신중기도의 대상은 화엄성중입니다. 불제자들을 보호하는 호법신장이죠.
지극한 마음으로 불법을 섬기는 사람들은 화엄성중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불제자들이 영험을 따져 기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이 영험이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기도합니다.
여기서 한 번 잘 생각해봅시다.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믿음의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적과 영험을 바라는 것은 그것은 그만큼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나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속성이 그러한 것인가 봅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죠.
진정 사랑하는 사이는 서로 닮아 간다고 합니다. 생각과 말투 뿐 아니라 외모까지도 닮는다고 합니다.
절에 있다 보면 부부간에 오는 분들 중에 마치 오누이처럼 닮았고 참 보기 좋아 보이는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정답게 걸어가는 노부부들입니다. 그분들에게서는 진한 사랑의 기운이 풍겨납니다.
저는 그것을 믿음의 기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사랑은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첫째, 자신의 번뇌의 때를 씻어내어 깨끗한 분입니다.
둘째,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해지신 분입니다.
셋째, 모든 중생도 그러하기를 바라서 자신을 헌신하는 보살의 원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나도 역시 깨끗하고, 평온하고,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하려는 원력을 가진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수행이 어떤 단계까지 완성되어서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수행의 단계가 완성되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답게 마음 쓰고, 부처답게 말하고 부처답게 행동을 하는 것,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수행이요, 곧 부처입니다. 그렇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순간순간 부처이기도 하고, 중생이기도 합니다.
 

■ 부처님을 어떻게 닮아갈 것인가
 
그리 보면 수행은 바로 부처님을 닮아가는 방법인 것이지요. 그러면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맞는 수행이 있습니다. 염불이 좋은 사람, 참선이 적합한 사람, 기도가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을 하는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중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부처님께 이야기해서 얻는 것이죠.
그러면 부처님께 “나 이거 해주세요!” 하고 기도만 하면 무조건 얻어지는 것인가.
무조건 떼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기도인가. 
먼저 지난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참회하여 내 몸과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보면 부처님 은덕을 ‘세상을 두루 비추는 해’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처님 은덕이 해처럼 두루 비춘다고 해도 방문이 꼭꼭 닫혀 있다면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기도는 내 방문을 열어 햇빛을 맞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에서 내 방문을 여는 행위가 바로 내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참회입니다.
 
참회는 심신의 평정을 이루는 초석입니다.
이 위에 하루 한 때 단 5분 만이라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챙기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화두선든지, 위빠싸나, 염불선, 수식관이든지, 그도 아니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저 심호흡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같은 규칙적인 수행은 평소 내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서원을 가짐은 나를 바로 세우고 남을 기르는 힘입니다. 
굳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처럼 큰 원력을 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만 마음을 더 내면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일에 대한 원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나를 위한 약속과 밖으로는 남을 위한 구체적인 약속을 세우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번이라도 기도법회에 참여하여 수행하고 이를 통해 부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겠으며, 또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자기 약속 같은 것입니다.   
 
오늘 하는 기도가 신중기도, 화엄성중에게 바치는 기도이니 다시 화엄성중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화엄성중은 불법제자를 보호하는 분들입니다.
 
☆ 호법신장님이 냄새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옛 이야기를 하셨는데
‘뒷물 하지 않은 큰스님 이야기’라서 그대로 옮기려니 좀 민망해서 뺍니다.^^☆
 
호법신장은 흔히 색깔과 냄새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색깔에도 탁한 색깔이 있고, 냄새에도 고약한 냄새가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들에 민감하죠.
호법신장님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다 느낍니다.
동물들은 그런 기운을 더 잘 느낀다고도 합니다.
 
앞에서 화엄성중은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를 보호하는 호법신장이라고 했는데,
그렇지만 화엄성중도 악취가 나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악취가 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엄성중의 보호와 가피가 있으려면
먼저 내 몸과 마음에서 나는 악취를 없애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그게 참회인 거죠.
참회를 하고 나면 서원을 해야 합니다.
 참회하고 서원을 세운 사람에게는 향기가 있습니다.
향기로운 사람은 호법신중이 보호합니다.
 
그런데 그 호법신중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저 신중단 탱화에 있는 모습이 호법신중의 모습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저것은 호법신중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호법신중은 어느 곳에나 있고, 어떤 모습으로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비의 화신이라고 부르는 관세음보살님은 33응신이라고 하죠. 보문시현(普門示現), 즉 중생들이 간절히 부를 때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는 분이라는 뜻이죠. 그렇지만 중생들의 됨됨이나 바람을 크게 분류해보니 33가지라는 것이지 꼭 33가지 형상으로만 나타나시는 게 아니에요. 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 호법신중이 보호하는 향기로운 사람
 
호법신중도 마찬가지예요.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가 내 호법신중입니다. 
가깝게는 내 남편, 아내, 아들 딸,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웃들입니다.
법신중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내 하기 나름입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면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나를 이롭게 하는 호법신중이 됩니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그리고 찰나마다 늘 그렇게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야 하는데,
세상살이에 속을 끓이고 묻혀 살다 보면 그렇게 살지 못하니 그런 훈련을 하는 게 신중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절대로 돈 받고 복을 파는 복장수가 아닙니다. 
참회하고, 마음의 평정을 위해 노력하고, 서원을 세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제 실상사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에서 초사흘까지 신중기도를 합니다.
오늘 신중기도를 시작하셨으니, 오늘부터 더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로 사시기 바랍니다.
댁에서도 매일 5분만이라도 참선을 하십시오. 염불을 하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빠뜨리지 않고, 잠시라도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하면서 1년 365일이 기도요, 찰라가 기도인 생활을 가꾸어갑시다.
그렇게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사시면, 언제나 호법신장이 보호하실 것이요,
만복이 깃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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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봄까치님의 댓글

봄까치 작성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절에 가야지 생각하던 차에 실상사에서 신중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침 잘 됐구나 하고 먼 길 서둘러 갔지요.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엔 아주 작은 봉사라도 하겠습니다.

언제나님의 댓글

언제나 작성일

불교에서 영험이란 소린 없어져야합니다
불교 tv 사찰 광고를 보면 한결같이 점집 소개하는 것 같아 우울해 집니다
"부처님 닮았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처님이 영험과 요행을 말씀하시지 않았잖아요
돌을 강에 빠뜨리고  "돌아 떠올라라 돌아 떠 올라라 하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돌이 떠 오르지 않는다는 말씀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도 "부처님을 닮았으면" 늘 이런 마음으로 부처님께 발원한다면
훨씬 생활이 윤택해 지지 않을까요
또 절에가면 스님들의 법문이 우리에겐 가장 큰 양식이 되기에
그 고마움을 금전적인 보시로서 예를 올리면
절의 운영이나 스님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이란 이름아래 기복에 메달리다 보면
결국은 오히려 덫에 걸려 마음 편할 날이 없지 않을까요

봄까치님의 댓글

봄까치 작성일

저도 불교 tv를 보면서 씁쓸한 적이 있습니다. 제 주위 사람들 중에서도 절집과 점집을 무슨 사촌지간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싶어서 불교 서적을 더 찬찬히 훑어보게 됩니다. 그 분들이 제대로 불교 공부할 기회를 못 만나서 몰라서 그렇기도 하거든요. 저도 실상사 스님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신통력있는 도인 스님이나 찾아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

향긋님의 댓글

향긋 작성일

봄까치님! 저도 불교를 잘 모를 땐  절집과 점집을 사촌지간인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일부 스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보세요 언제나님 말씀처럼
tv광고 보면 정말 속 상해요  - 불교는 무신론이란 것을 저는 진즉에 알고는 있었고
성철스님이나 공부하신 큰 스님들은  한결같이 무신론 쪽으로 말씀하셨지만
제가 가까이 가는 절마다 무속행위 비슷하게 하는 걸 보면  이건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지금은 다행히 초기불교 강의 하시는 각묵스님과 여기 실상사 학장스님이 셨던 법인스님의
 아함경과 그 외 여러가지 강의를 들으면서 불교가 정말 좋아졌습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물리학자나 여러 철학자들이 불교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했는지
지금은 알게 되었구요 저도 지금  불교가 넘 좋습니다

중부반야회님의 댓글

중부반야회 작성일

성불하세요..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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