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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왜 붓다로 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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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7-03-15 12:37 조회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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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특별기획-붓다로살자 ① 왜 ‘붓다로 살자’인가

 

부처님의 삶에서 ‘불교 본래 모습’ 찾자는 것 

 


조계종 포교원(원장 지홍스님)이 ‘붓다로 살자’를 기치로 내걸고 신행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지는 ‘붓다로 살자’ 운동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공부모임 ‘붓다로 살자’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요약해 10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 2013년 5월부터 화쟁위원장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자성과 쇄신 결사에 동참해온 스님과 불자들이 쌓아올린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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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로 살자는 불교의 참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과정에서 도출 합의됐다.

아울러 미래지향적인 불교운동의 총체적 지향을 담고 있다.

사진은 공부모임 ‘붓다로 살자’의 토론 모습. 사진제공=‘붓다로 살자’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에 대한 본질적 물음

‘눈멂에서 활짝 눈뜬 자’

크게 죽고 크게 살아난 부처님의 해답이 곧 불교

불교의 참모습 찾기 위한 수행의 과정 ‘붓다로 살자’

대중의 갈증 해소 ‘평가’

집단중심 이기적 감옥 깨고 삶의 치열한 현장 들어가 희망 제시하는 자가 ‘붓다’

사람이 사노라면 나 홀로 잠 못 이루어 하염없이 서성거릴 때가 있다. 외로운 가로등 불빛 아래 묵묵히 거닐다 보면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물음들이 꿈틀거린다.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그가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람이라면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매우 인간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이다. 그 누구도 회피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이 물음 앞에 우리는 때로 한숨 쉬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 알고 싶은 물음들이 불끈불끈 솟아남은 어찌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적 물음을 불교집안에선 인생화두라고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찍이 인생화두에 일생을 걸고 살아간 사람, 그 길에서 삶의 참모습을 잘 알고 삶으로써 그 삶이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역사는 그 사람을 붓다라고 부르고 그의 경험적 삶의 기록을 불교라고 한다.

붓다는 ‘꿈에서 깨어난 자, 눈멂에서 활짝 눈뜬 자’이다.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모름에서 앎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움으로,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고통에서 안락으로, 속스러움에서 거룩함으로, 속박에서 자유로움으로, 크게 죽고 크게 살아난 사람, 크게 버리고 크게 얻은 사람이다.

붓다가 입멸한 후 사람들 대개는 붓다를 거룩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붓다의 삶은 성도 전은 물론이거니와 성도 이후에도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음모와 비난, 살해위협에 줄곧 시달렸으며, 때로는 제자들의 홀대와 무시, 배척과 다툼을 고스란히 감내하여야 했다. 붓다의 거룩함은 그가 모진 시련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온전한 자유와 평화, 행복의 길을 누렸다는 데 있다. 죽는 날까지 한시도 쉼 없이 치열하게 실천한 것이야말로 그 거룩함의 본질이었다.

붓다의 일생을 다룬 대표적인 경전이 <불본행집경>이다. 경전을 잘 읽어보면 붓다의 일생(태어남, 진리를 향한 발심, 집을 떠남, 진리를 발견함, 진리를 설함, 삶을 마무리함)이 12세 때 농경제에서 고통 받는 생명들에 대해 일으킨 조건 없는 연민의 마음이 죽는 날까지 관통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고통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한 삶을 살도록 하고자 하는 큰 자비심, 동체대비의 삶이 그의 일생이었다.

후일 붓다의 제자, 옛 고승들도 붓다의 거룩한 일생을 논리적 개념과 인격적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논리적 개념이다. 초기경전인 아함(니까야)에서는 ‘연기무아와 해탈열반, 인연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져 분리 독립, 고정불변하는 그 무엇도 있지 않음을 잘 이해하여 언제나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간 삶’으로, 대승경전에선 ‘연기·공과 동체대비, 인연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져 분리 독립, 고정 불변하는 그 무엇도 있지 않음을 잘 이해하며 서로 함께 평화롭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큰 자비(사랑)의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음은 인격적 개념이다. <불본행집경>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 즉 ‘온 세상에 나 홀로 존귀하다. 그러므로 나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온 세상의 고통을 반드시 편안케 하겠다’라고 하였다. <화엄경>에서는 ‘사람이 본래붓다이다. 그러므로 나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고통 받는 뭇생명을 구제하겠다’라고 설명하면서, 더 나아가 이 모두를 통합하여 ‘초발심시변성정각’(자신의 참모습, 본래붓다로 살겠다고 하는 첫 마음의 삶이 그대로 완성자 붓다의 삶)이라고 표현하였다.

한국불교는 붓다의 참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본래 붓다의 불교, 즉 대승불교의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다. 뛰어난 옛 스승들도 붓다의 삶을 논리적으로, 인격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원효는 붓다의 삶을 ‘일심동체와 동체대비’ 즉, 한마음 한 몸의 정신에 따르는 큰 자비(사랑)의 삶’이라고 정의하였고, 의상은 ‘법성원융과 동체대비’, 두루 어울려 이루어진 존재의 참모습에 어울리는 큰 자비(사랑)의 삶’이라고 하였다.

인격적 표현으로 화엄불교에서는 ‘본래붓다와 큰 자비의 삶’, 선불교에서는 ‘본래면목과 자유자재의 삶’이라고 표현하였다. 역사 속에서 불교의 본래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이와같이 ‘붓다의 삶’을 논리적으로 혹은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정의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종단은 지난 2010년 모순과 혼란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불교의 새로운 길을 열고자 결사를 선언하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교학불교와 선불교, 현대불교와 미래불교의 길, 일상의 삶과 불교수행, 깨달음과 현실의 삶, 개인의 수행과 사회적 실천 등 다양한 물음 앞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불교관과 실천론을 정립하고자 많은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결사본부 자문위원 스님들이 붓다의 참뜻이 온전히 담긴 불교를 “있는 그대로 본(중도) 본래붓다와 큰 자비(사랑)의 삶”이라고 정의하였고, 이 길만이 현대불교와 미래불교가 나아갈 희망의 길이라고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관을 바탕으로 할 때 간화선, 염불 진언, 다라니, 위빠사나 명상 등 다양한 수행들이 비로소 깨달음을 실천하는 올바른 수행이 된다고 보았다. 그 뒤 여러차례 논의를 거쳐 앞으로 추구해야 할 한국불교의 지향을 역동적·인격적 개념인 ‘붓다로 살자’로 정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붓다로 살자’는 불교의 참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과정에서 도출 합의되었고, 아울러 미래지향적인 불교운동의 총체적 지향을 담고 있다. 마침 시대를 향도할 불교의 역할을 고민하던 포교원이 ‘붓다로 살자’를 신행혁신운동의 주된 방향으로 확정함으로써 점차 시절인연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불교의 본래모습을 향한 대중의 갈증이 컸다는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붓다로 살자에서 본 불교의 본래모습은 ‘붓다의 삶’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 역사 속 붓다는 일평생을 길 위의 현장에서 보냈다. 유랑걸식하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픈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고통받는 대중을 끌어안고, 그들이 즉각적으로 자유와 행복,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붓다는 현장 대중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불교집단의 성장과 발전을 우선하여 무언가를 도모하거나 축적하지도 않았다.

오늘까지 전해진 모든 불교의 교리와 전통은 이처럼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대중들을 위해 헌신하였던 붓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 한 복판에 있던 것들을 제도화된 기성의 틀 안에 가둬놓고, 그저 우리 집단의 이익과 번영을 위하는 태도로는 결코 미래 불교의 희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교가 역사의 질곡과 장애, 미래사회의 도전을 뚫고 우뚝 서려면, 오늘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집단중심의 이기적 감옥을 부수고 나와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각자가 붓다처럼 삶의 현장 속에서 지혜롭게 사랑을 실천할 때 빛나는 희망의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불교신문3273호/2017년2월15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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