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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후기> 도법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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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7-05-20 16:24 조회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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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들끼리의 대화에 이어 도법스님의 말씀

 

 

▲경전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대해

 

나는 현실적 필요성에 맞추어서 책을 본다. 지식을 쌓는 공부는 삶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것 같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지식이 많고 똑똑한가. 그런데 그만큼 삶의 문젤ㄹ 잘 풀어가고 있는가. 그것은 공부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내 삶에 비춰봤을 때 수긍이 되고 이해가 되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 

 

<불본행집경>은 이야기집이다. 마치 전설의 고향,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다. 인간에게 지적 유아기가 있는 것처럼 인류 역사에도 지적 유아기가 있었다. 문명의 시대가 아니라 문맹의 시대였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부처님이라는 훌륭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때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경전에 대한 신앙심 때문에 경전은 완벽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경전도 다 그 시대의 상황, 특히 그 이야기를 들을 대상의 수준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본행집경>은 더 그렇다. 할머니가 손자를 무릎에 앉혀두고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하다.

 

말이 어마어마하다고 거창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그때 당시 인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이야기들, 신화들을 섞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해야 이해가 깊어지고 기억도 되고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이것이 재미가 없어 보인다. 요즘은 이것보다 더 좋은 게 많아 그렇다. 옛날엔 볼 것 들은 것도 없다. .. 스님이 하남스님 하면 큰 스님이신데, 그 분 모시고 화엄경을 공부했는데, 화엄경을 거꾸로 보았다. 그러시더라. 100쪽에서 1쪽으로 읽었다. 무슨 말이냐면, 책이 없는 것이다. 하남스님 문하에 탄허스님의 글이 좋아요. 탄허스님만 책을 펴고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빙 둘러 앉아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고, 중언부언하고, 허황된 이야기 같으나 2천년 전 글자도 없을 때라고 생각을 해 봐라. 

 

우리가 보릿고개 시대에는 굶지만 않고 살면 다행이었죠.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떻습니까? 굶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책 한 권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요. 소수의 바라문만 자기들의 경전을 접할 수있었다. 지금 여러분이 책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와 같이 시대와 상황이 다르다. 그러므로 지금 생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지적 유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에 대해서 일종의 위인전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할머니가 손주 앉혀놓고 이야기하듯이 그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니까 전생이야기도 섞어서 하고 신비한 이야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그 안에 녹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불본행집경>을 읽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위에 이어지는 말이기도 하겠는데, 너무 세세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크게 보는 연습이 되면 좋겠다. 불교에 전해오는 말중에 <칠불통계>라는 것이 있다. 일곱 분의 부처님 가르침을 녹여서 압축해놓은 것인데, 불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보편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 과거와 현재, 이 나라 저 나라, 동양과 서양 등 어디에나, 그리고 불교를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예전에 당나라의 백거이라는 시인이 도림선사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요체입니까?”하고 물었어요. 그러나 도림선사가 답했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 대답에 백거이 시인이 “그 정도야 세 살배기 아이도 아는 것”이라고 비웃자, 도림선사는 이와 같이 말했다. “세 살배기 아이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지요.”라고. 

 

어때요? 그렇지요? 요즘 말로 풀면 “죽을 힘을 다해서 나쁜 짓 하지 마라. 죽을 힘을 다해서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좋은 일을 해라, 스스로 청정케 하라. 그런 관점에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경전을 볼 때도 내가 필요한 부분만 찍어서 본다.

 

질문 :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를 어떻게 압니까?

 

제 경우에는 54쪽 중간쯤에 있는 구절을 보면, 

‘아난아! 나는 그 때부터 번뇌 가운데 있으면서 보살행을 행하여 용맹스레 정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항상 보시를 행하고 항상 공덕을 지었으며, 나는 이런 저런 선업 때문에 저 한량없는 백 천 세상 가운데서 범천왕이 되기도 하고… 전륜성왕도 되었으며, 선근 인연의 힘으로 이제 성불하여 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부타가 되어 위가 없고 가장 묘한 법바퀴를 굴리느니라.’ 

 

제게는 ‘번뇌 가운데 있으면서’ - 이런 부분이 들어온다. 그게 불교수행을 하면서 내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가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하는 말들에 따라 살아봤는데, 번뇌가 없어지지 않았다. 참선도 해보고, 절도 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행을 해봤는데, 번뇌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가 직면한 현재의 삶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사는데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그렇더라.

 

많은 사람들이 번뇌를 없애겠다고 더 조용한 곳,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불교공부와 현실적인 삶이 더 괴리되고 있는 것이다. 더 깊은 산속으로 가고, 인도로 가고, 티벳으로 가고, 법당으로 가고…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을 잘 살게 하려고 불교를 하는데, 자꾸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이 현실의 삶에는 관심과 노력을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저는 이것이 아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내 삶의 문제를 풀어내는데 도움을 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내가 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불교공부를 하는 목적도 삶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니. 

 

물론 저도 갑갑하니까 문제가 있는데 풀 수 없을 때 경전이나 책을 보기도 했고, 큰 스님들 말씀을 듣기도 했다. 큰 스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답이 간단하다. “경전공부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참선해서 깨달으면 그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

 

그래서 강원 졸업을 5개월 남겨두고 선방에 갔다. 그런데 선방에서 10년을 해도 안 되더라. 참선하는 입장에서 보면 외도를 하는 것인데, 기도, 절, 경전독송도 해보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여기에서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곳이 없었다. 주로 수행을 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말만 있지 일상적인 삶속에서는 수행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해도 안 되니까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러면ㅅ 내 방식의 공부를 찾게 되었고, 내 나름대로 불교를 정리해보게 된 것이다.

 

 

<불본행집경> 목차를 보면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정리해보자.

* 6권까지는 주로 전생이야기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당시 시대가 옛날이야기 식으로 문제를 다루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당신 인도는 윤회설이 진리처럼 인식되던 시기였다. 지금도 윤회를 믿어야 불교신자다 라고 하는데, 불교학계에서 계속 논쟁거리다. 

그런데 선어록에 보면 “꿈속에서 윤회가 있었는데, 깨고 보니 없더라”라는 말씀이 있다. 잘 몰랐을 때는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없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잘못 설명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발심과 수기’에 대한 부분도 잘 읽어보면, 대부분은 ‘좋은 일 해라, 착한 일 해라’ 그 이야기다. 한 구절 한 구절 너무 뜯어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쉬지만 않고 계속 하면 된다.

 

여기서 핵심은 결국, 선행을 해야만 발심이 된다는 것이다. 선근공덕을 많이 쌓아야만 보리심을 낼 수 있다. 선근공덕을 많이 쌓지 않고서는 보리심을 낼 수 없다.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문제를 다 풀었다는 이야기는 인생에 대해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 대해 이것이면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더 할 것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해야 한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없고 불만족도 없다는 이야기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거듭 말하지만 <불본행집경>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니까 중언부언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할머니 무릎에 앉아있는 손자보다 훨씬 지적이지 않은가. 목차만 제대로 풀면,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한 목차당 한 쪽만 제대로 읽으면 다 알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1) 선근공덕과 발보리심, 2) 발보리심과 수기결정 - 이 두 가지 이야기다. 

 

 

▲ 선근공덕과 발보리심

 

* 왜 선근공덕을 쌓아야 하는가. 

 

선근공덕을 쌓아야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고, 보리심을 내야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먼저 생명의 존재 법칙과 질서에 관계가 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습성, 업력에 관계가 된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업력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진리, 법칙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기론이라고 하는데, 연기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라봐야 해답이 나온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결코 인간다워질 수도 없고, 평안을 줄 수도 없고, 행복을 줄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선과 악을 놓고 봤을 때, 나쁜 짓은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어 있다. 시기, 질투, 화… 이것은 머리 써서 하는 것 아니잖은가. 저절로 된다. 

그런데  좋은 일은 마음먹고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윤회가 있든 없든에 관계없이 지금 여기서부터 내 인생의 문제를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삶의 문제를 다룰 경우, 잠깐은 돈을 더 벌고 출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한 돈과 출세가 오래 가는 것도 별로 못 봤지만, 그 보다 더 나아가 내가 더 인간다워지는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럴 수 없다. 그것이 전생의 업 때문이든 습관 때문이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을 한다. 어찌 보면 꼭 그런 것만 골라서 한다. 그 습관에 따라가는 한은, 습관이 되풀이되면서 더 강화되고 결국의 습관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더욱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마음을 내기가 힘들다.

 

따라서 선근공덕을 쌓는 일은 세상의 진리,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더 인간다워지는 지름길이다. 좋은 마음을 쓰고 좋은 길을 갈 때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 공양이란 무엇인가.

 

공양은 존중과 감사의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부처님에게 올리는 것을 공양이라고 했다. 초기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사람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 도인에게 올리는 것이 낫다.’ 

왜 그럴까. 이게 무슨 말일까. 나는 이게 동의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굳이 해석을 내 식대로 해보자면, 이랬다.

 

‘어쨌든 출가수행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오욕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진리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인생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 우리가 살면서 곧바로 진리를 대면하기는 참 어렵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가까이 함으로써 진리를 배우고 깨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행자에게 공양하는 것은 선근공덕을 닦는 일이기도 하고, 진리를 가까이 하는 일이 된다. 즉 진리, 법의 길과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게 된다. 그것이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석했다. ’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보니 수긍이 좀 되더라.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내 해석일 뿐이다. 

 

 

▲ 발보리심에 대해

 

발보리심에 대한 이야기가 경전에 무지무지하게 많다. 보리심이 뭘까?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다. 발보리심의 줄여서 발심이라고 한다. 보통 발보리심의 해석을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가요?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의미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아요. 

그러면 발보리심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보자. 발보리심의 내용은 대비원력이다. ‘보리심’이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대비원력’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대비원력’이라는 말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 ‘도를 추구하는 마음’, ‘부처를 이루려는 마음’이란 말이 같은 뜻으로 다가오는가. 

(대중 : 다르게 느껴져요!)

사실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말이 왜 다르게 느껴질까.

‘도를 구한다.’고 하면 마치 지금 여기를 떠나 어딘가를 가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처럼 선입견이 생긴다. 그런데 ‘자비심’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지금 바로 여기의 관계’ 속에서 생긴다. 바로 내 삶속에서. 그래서 자꾸  

 

한국불교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불교에서는 ‘자비’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깨달음을 구한다.’, ‘도를 구한다.’,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조용한 데 가서 참선하는 문화다. 그러니 정작 ‘보리심’의 내용인, 관계 속에 있는 ‘자비’, ‘대비원력’은 실종되어 버리는 것이다. ‘보리심’이라는 말이 구체성을 획득해야 한다.

 

본래붓다와 연결해서보면, 본래붓다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대비원력이다... 

교재 17쪽에 보면, 

‘제가 당래에 많은 중생을 위하여 모든 이익을 지어 안락함을 베풀고 일체의 하늘과 인간들을 어여삐 여기리다.’

여기서는 대비원력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 수기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수기하는 방식이 신앙적으로 신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해하기 편하게 우리식으로 정리해보자.

 

만약, 어떤 목적지가 있다고 하자.

1) 이 방향을 향해서 이 길로 가면 된다는 것은 안다. 결정적인 확신이 있다. 다른 말로 본래붓다에 대한 이해와 확신, 본래붓다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잇다.

2) 그러나 가는 것은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3) 그러할 때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너는 아직 가기에는 무리다.”고 할 수도 있고, “너 혼자 알아서 가도 충분하겠다.”라고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네가 가도 되겠다.”고 인정해주는 게 수기다. 

 

예를 들어서, 천왕봉을 가는 게 목적이라고 하자.

1) 천왕봉으로 가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그 방향이 본래붓다와 동체대비심)

2)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는 것은 내 몫이다.

3) 천왕봉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너라면 충분히 갈 수 있겠네.”라고 인정하는 게 수기다. 

 

이때 목적이 있고, 길을 알고, 그 목적과 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빨리 가느냐 더디 가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더디 간다고 하더라도 별로 근심 걱정은 없을 것이다. 고단하지만 방향과 길이 틀림없다면 감당할 수 있다. 의심하고 전전긍긍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수기라는 것은 내가 인생문제를 풀어내고 실현해나갈 방향과 길에 대해 확신해주고 보증을 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본행집경 5권에는 족보가 나오는데, 우리 집안 꽤 괜찮은 집안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때 당시는 권위주의 시대니까 그래야 사람들이 따라올 거니까, 신화적으로 신비화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왕보다 좋은 게 부처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니까 어쨌든 최대한 권위를 높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도솔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신화적이고 설화적이나 메시지이다. 이런 이야기가 6권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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