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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후기> 질문과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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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7-05-20 16:25 조회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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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본행집경>은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경전 맨 앞에 ‘비로자나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로 시작했을까요?

 

불교 역사 속에서 역사적으로 실존인물은 석가모니 한 분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해 설명되어지는 부처는 굉장히 많다. 미륵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예언 같은 말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 오게 되면 어마어마한 부처님이 온다. 삼천불, 만불, 팔만사천불… 이 부처님들은 역사적 부처님이 아니다. 부처님에 의해 설명되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 최고의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이다. 진리가 몸이 된 부처님, 법신불이다. 그 때 당시의 최고의 권위를 가진 불신관이 적용이 된 것 같다. 봐라! 석가모니부처님은 최고의 부처님을 모시고, 그 분의 가피를 받고, 그 분이 증명을 받았다고, 권위를 내세워 이야기하는 것이다. 

 

 

▲ 신비한 이야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경전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잘 따져보면, 우리 모두가 “본래부처‘라는 것인데, 우리가 본래부처라는 것은 신비해요, 안 신비해요? (웃음)

 

세상에서 가장 최고로 신비한 존재는 부처라는 것이다. 불가사의 중에 불가사의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부처다. 사람이 부처다. 사람이 신비다. 사람이 신비이고 불가사의고 최고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다른 신비 이야기는 가짜이고 시시한 이야기다. 사람이 ‘천상천하유아독존’, ‘본래부처’라는데, 다른 신비는 날고 뛰어봐야 별 것 없다. 있을 수 있다. 

 

설령 물위를 걸을 수 있고, 내생을 볼 수 있고… 초인적인 능력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 역시 별 것 아니다. 진짜가 아니다. 등급수를 따지자면 3급이다. 이 부분이 정리되면 다른 것은 별 것 없는 것이다. 대승경전에만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초기경전에 더 많다. 그런데 대승경전의 귀신이 더 고급지다.(웃음) 

 

모든 경전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고, 설화적, 신화적 이야기가 같이 있다. 왜 섞어 놓았을까? 역사적 사실에는 그 의미들이 있는데, 사실만 적어두면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대중들에게 그 의미를 잘 이해시켜려다 보면 대중들이 알고 있는 설화나 신화를 빌려와 이야기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니 그대로 다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비한 능력, 신비한 체험, 황활한 체험 등이 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비한 체험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에 대해 정리를 잘 하지 못하면 그냥 놀아나는 것이다. 

 

▲ 부처님이 어떻게 사람의 머리를 밟고 갈 수가 있을까.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부처님의 위대함이고, 다른 하나는 보살의 서원의 위대함이다. 

대비원력이라고 하는 발보리심이 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밟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사람을 아무나 밟고 갈 수 없다. 대비원력도 없이 이 사람을 밟고 간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나쁜 짓일 수밖에 없겠죠. 

발보리심을 한 구도가자 그러기를 간절히 원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부처님을 최대한 존중하고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청하니까, 가 줘야죠. 그러니까 부처님의 위대성과 다른 하나는 구도자의 발보리심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

 

▲ 사람이 본래부처라는데, 왜 굳이 수기를 받는가.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한다. 화엄경에 ‘잘 몰랐을 때는 사람이 업보중생이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사람이 본래부처다.’ 습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람이 업보중생이었는데, 깨어서보니 사람이 본래부처라는 것이죠.

우리가 습관대로 살기 때문에 자신이 본래부처라는 것에 대해 긴가민가하게 생각하고 여차하면 중생의 삶으로 간다. 그래서 그 습관을, 업을 소멸하기 위해 선근공덕을 쌓고, 그 선근공덕의 힘이 본래부처로 남아있는 힘인 것이다. 지속적으로 선근공덕을 쌓는 삶은 본래붓다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삶이다. 적어도 본래부처임을 확신하는 것, 이것이 수기다. 자기확신, 또는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것.

 

습관은 익숙한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니까 힘들 수밖에 없다. 공을 들여서 해야 하고 잘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경험하면, 내가 알든 모르든 사람은 내가 행위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대로 하고, 관찰도 하지 않는다. 

 

큰 가마솥에 물이 펄펄 끓고 있는데, 찬물을 한 숟갈 넣었을 때 변화가 있을까? 습관적, 관념적으로 보면 변화가 없으나, 사실적으로는 변화가 있다. 전신 차려서 보면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팔정도의 정견은 잘 관찰하라는 것이다. 내 안으로든 내 밖으로든, 주의 깊게 관찰해라. 

 

부처님은 상식을 되찾은 사람이다. 정말 상식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은 관념으로 오염되어 있다. ‘죄 많은 업보중생’이라는 관념, ‘전생의 업보’라는 관념, ‘사주팔자 때문에’, ‘신에게 벌 받아서’ 등등.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닐 테니까. 그리고 절대자나 귀신 등에게 매달리고 빈다. 참회해서 업장을 씻어낸다고 절을 죽어라고 하고, 고행을 한다.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것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명료하게 이해되는가? 이거 너무 궁색하지 않은가? 본인들의 상식을 너무 무시하지 마라.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너 자신을 믿어. 넌 괜찮은 놈이야. 네 스스로 진지하게 관찰해보고 생각해 봐라.”  

 

부처님은 존재의 참모습, 그 신비, 불가사의, 위대함을 발견한 것이다. 

 

자기 상식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 다만,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된다. 공들이고 공들여야 한다. 그러면 충분히 본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고 수긍하고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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