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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사랑, 온 우주에 담아놓은 절대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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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자 작성일12-05-09 09:57 조회3,1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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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다른 곳에 실었던 건데, 여기에 옮겨봅니다. 요즘 게시판이 좀 썰렁해보여서요... ^^~
윤달에, 봉축준비에 바쁜 때, 지리산댐 문제마저 물밀듯 밀고 오니
홈페이지 관리에 신경이 덜 쓰이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등불서평 

사랑, 온 우주에 담아놓은 절대유전자
- 김유철 등불의 시집 ‘그대였나요’를 읽고 -  

 “그대였나요?”
그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묻고 있다. ‘뭐가?’ 갑작스레 내 죄를 추궁당한 느낌으로 쭈뼛거리며 뒷걸음을 친다. 그러나 이내 그 그렁그렁한 눈물에서 나를 향한 사랑을 본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이, 자신이 미처 몰라본 은인이 나였다는 듯 감사와 안도를 듬뿍 담고 있다. 그래서 ‘그대였나요’라는 질문은 ‘그대였군요’라는 그의 자기 확인으로 들린다. 내 죄를 추궁하는 게 아니라서 나 또한 안도하지만 내가 그의 은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그의 계속되는 사랑고백에 불편해하고 몸둘 바를 몰라할 것 같다. 그는 내게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존재 자체의 거룩함을 찬양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그의 그대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대였나요 먼 바람이 / 그대였나요 저 물결이 / 그대였나요 저녁노을이…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존재의 수만큼 많은 이 질문들에 나는 바람이 되었다가 물결이 되었다가 저녁노을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꽃이 되었다가 길이 되었다가 또는 바다나 섬이 되기도 한다. 나인 듯 하다가 내가 아니고 그러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이 끝없는 회귀의 경험. 어디서 어디로 회귀하는 건지 어떤 게 나인지 중심이 사라진다. 현재에 각인된 억겁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그의 시를 읽다보면 강하던 내 자아는 물에 풀어놓은 휴지처럼 풀어지고 저절로 무장해제된다.

그의 시는 사랑이야기다. 가장 진부하게 느껴지면서도 그게 있고 없음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하고, 그게 빠지면 삶이 흩어져버리는 주제. 그는 그 사랑에 대해 우리네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사건들을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펼쳐 보여준다. 마치 내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소리, 또는 관심을 가졌다가도 금방 다른 사건, 사고로 관심이 돌려질 만큼 낮은 소리들이다. 그가 직유법으로 표현할 때는 ‘아하, 그렇지’ 하면 되고, 은유가 있다고 해서 머리 싸매고 궁리해내야 깊은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 그거였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사랑, 그것은 태초에 세상을 만들던 그 말씀이다. 너와 나, 온 우주에 담아놓은 절대 유전자다. 그래서 가장 흔한 말이 사랑이고 가장 흔한 사건이 사랑이리라. 사랑, 태초와 영원을 이어가는 우주의 여러 중심축이 어우러져 내는 영겁의 소리다. 그래서 무심하게 흘리는 말씀이면서도 끊임없이 신경이 쓰이는 말씀이다. 그는 그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묻고 또 묻는 나그네다. “그대였나요?”

어느 날 삶이 강팍하다고 느껴진다면, 허리띠를 풀고 숨을 좀 고르고 싶어진다면, 그의 시를 읽어보시길. 바람이 나이다가 내가 바람이다가 강이 나이다가 내가 강이다가 나무가 나이다가 내가 나무이다가… 경계이면서 동시에 경계가 무너지는 그 넓게 펼쳐진 세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아, 불현듯 나도 시를 쓰고 싶다. 그러면 기도가 따로 없어도 될 것 같다. 나를 낳아준 영겁의 존재들에게 바치는 기도. 그의 시는 진리의 정신으로 일상을 살아가려는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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