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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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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4-08-15 19:30 조회3,101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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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예뻤습니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연관스님이 데려온 그녀에게 대중스님들은 모두 순식간에 매혹 당했습니다.
또렷한 쌍꺼풀에 매달린 긴 속눈썹 아래 두 눈은 검은 진주 같았습니다.
마주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가슴 두드림에, 입가에 웃음과 눈물 한 방울이 함께 났습니다.
한 없이 보드랍고 복슬복슬한 흰 털에, 젖살 포동포동한 조그만 그 몸뚱이를 덥썩 안아들면,
“콩닥콩닥” 심장의 울림이 두 손을 타고와 내 심장의 고동과 어우러졌습니다.
강낭콩만한 발바닥의 보들보들한 감촉이 아직도 느껴집니다.
 
학림에서 공부하던 한 스님이 여름방학에 강진 백련사에 들러 검은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대중에서 직접 기르고 싶어 했으나 스님들은 긴 대중공사 끝에 ‘대중처소에 개를 둘 수 없다’하여
근처 농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연관스님이 화엄사 뒤 암자에서 하얀 진돗개 강아지를 안고 와서 ‘청산’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두들 ‘대중처소에 개를 둘 수 없다’는 대중공사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와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만큼 그녀는 예뻤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은 잔재를 남김니다. 결국 그녀는 화림원으로 왔습니다.
기꺼이 받아들이고 ‘꽃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대체로 진돗개는 어릴 적 키워준 첫 주인을 평생 잊지 않고 따른다 합니다.
그러나 꽃님이는 맛난 먹이를 주면 그 때 뿐, 그 누구도 주인으로 따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드물게 주체의식(?)이 강한 개였습니다.
 
아래 큰 절과 화림원을 오가며 평생 줄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절에 살아서인지 수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만 3살이 저물 즈음에 가서야
약수암에서 수경스님이 기르던 ‘다섯 살 박이 선웅’이와
수월암에서 연관스님이 기르던 ‘한 살 박이 장군’이 사이를 오가며 꼬리를 흔들고 다녔습니다.
급기야 두 녀석이 연적이 되어 귀가 찢기고 피가 낭자한 혈투를 두어 차례 벌였습니다.
 
개싸움이 사람싸움 된다더니만,
“수경스님은 선웅이에게 괴기 사먹였대,
나이도 더 먹고 덩치도 큰 놈인데 괴기까지 먹였으니 당연히 어리고 사료만 먹은 장군이가 질 수밖에 .....”
연관스님은 괴기를 못 먹어 꽃님이를 빼앗긴 장군이에게 못내 미안해 하셨습니다.
 
이후로 두 녀석은 꽃님이가 암내를 풍길 때 마다 승패를 주고받으며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꽃님이는 승리한 선웅이와 신방을 차려 다섯 마리의 예쁜 강아지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선웅이와 장군이를 오가며 대여섯번의 출산을 하였고
언젠가는 낯모르는 동네 똥개와 연애하여 ‘흰누르거무잡잡한’ 삼색이 섞인 새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낳은 꽃님이 새끼가 실상사 주변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동네 고샅을 지나다 낮 익은 녀석들을 더러 보기도 하였습니다.
 
작년부터 부쩍 노환이 심해졌더랍니다.
눈물이 흐르고 시력도 떨어져서 멀리 있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뒷다리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더니
올 봄에는 치매 기운인지 그 깔끔하던 녀석이 아무데나 똥을 싸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동이 편치 않아서 늘 그늘에 앉아 졸거나 헐떡거리고 있더니만.......
 
두 달간의 외유에서 돌아오니 꽃님이가 사라졌답니다.
어느 날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근래에 잘 오지 않던 법당과 탑 근처를 종일 맴돌고 도량을 휘 돌아 앉았더니만
그 다음날 사라졌답니다. 주변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합니다.
 
다섯 살 때였던가? 한 대엿세 집을 나갔다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만 허리쯤에 올가미에 의해 살가죽이 벗겨져 돌아왔습니다.
뒷산에 갔다가 올가미에 걸렸던가 봅니다.
다행히 올가미가 허리에 걸렸기에 망정이지 목에 걸렸으면 죽었을 겁니다.
오륙일을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몸부림쳐 빠져 나온 것이지요.
 
그 뒤로는 혼자서 산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해탈교를 넘지 않고 절 도량을 벗어나지 않으니 복날 개 도둑에게 잡혀갈 염려도 없었습니다.
 “떠났구나!” 나 없는 사이에........
17년입니다. 1998 여름에 와서 17년을 함께 실상사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개새끼가 삶의 인연을 마무리함이 어찌 이리 간결한가! 
애써 덤덤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늦장마인지 사흘째 비가 옵니다.
마루에 나 앉아 멍 치기를 하는데 대숲에서 꾸역꾸역 올라온 짙은 안개가
숲의 얼굴과 숲의 숨소리마저 가리고 나니 그야말로 ‘막막적적’합니다.
그런 중에 문득인 듯 꽃님이가 그립습니다.
한갖 개 한 마리의 떠남이 그리도 말끔하건데 
정작 도 닦는 양 하던 산승의 마음은 이리도 잔정에 젖는가!

생각해보니 부고도 올리지 않았더이다.
꽃님이를 기억하는 학림출신 스님네도 여럿일 것이요, 그녀의 새끼를 데려간 분들도 여럿이요,
실상사를 오가던 신도님들 중에서도 꽃님이를 예뻐하던 분들이 적지 않은데
그 여러분들께 홈피에라도 ‘꽃님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야 할 듯하여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비 맞은 중’이 되어 주절거려봅니다.
 
절의 재가자들이 ‘꽃님이가 떠난 날을 기일로 잡아
49재라도 지내줘야 하지 않겠느냐’하여 준비하나 봅니다.
실제로 하게 되면 나중에 다시 알리겠습니다.
삶은 애별리고 愛別離苦입니다. 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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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자님의 댓글

행자 작성일

단장의 절절한 부고문이네요...
사진에 보듯이 예불시간이면 법당 앞에 앉아 예불에 참여하는 꽃님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불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꽃님이. 밥주면 먹고,  잠오면 자던 꽃님이.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는다"
극락전 요사채 주련에 쓰여진 구절처럼 살다간 꽃님이. 그러니 이제 입열반(入涅槃)입니다.

끼룩끼룩님의 댓글

끼룩끼룩 작성일

웅 천은사에 갔을때 예불시간만 되면 어디서 나타나는 견공 둘이 생각납니다

종무소님의 댓글

종무소 작성일

꽃님이 49재는 9월 17일 오전 10시입니다.

지리산님의 댓글

지리산 작성일

긴글 소식 잘 읽었네요.

실상사님의 댓글

실상사 작성일

꽃님이 49재를 오는 17일 10시 실상사 보광전에서 갖는다 합니다.
인연있는 분들,  관심있는 분들 많이  오세요.

ㅎㅎ님의 댓글

ㅎㅎ 작성일

참 별짓을 다 한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2년전 글을 이제사 읽었습니다. 참 맛나게 잘도 쓰셨네요.
꽃님이는 해탈을 했을까? 아님 다시 윤회를...?^^

실상사님의 댓글

실상사 댓글의 댓글 작성일

^^;; 오늘 다시 읽어도 그때 마음이 다시 솟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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