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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거룩한 마음 고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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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4-12-20 09:31 조회2,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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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지리산人] 제1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거룩한 마음 고귀한 선물
 
 
전국적으로 단풍소식이 한창이다. 지리산에도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즐기러 온다. 실상사 마당의 나무들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제 명을 다 하고 가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에 싹을 틔우고 뿌리로 수분과 양분을 힘껏 끌어올리고, 밖으로는 햇빛과 바람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생명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활동을 해냈던 나무들…. 이제 날이 추워지면 자신이 그동안 키워오던 것들, 자신을 빛나게 하던 것들을 보내야 할 때임을 안단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의 떨켜가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나뭇잎은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를 키우고 주변 환경도 풍요롭게 한다. 그렇게 또 다시 생명의 일부가 된다. 제 명을 다하여 생명의 가치를 빛나게 하고 생명의 순환을 이루는 대단한 역사이다.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이란 고작 그 생명의 순환질서에 살짝 동참하는 것이다. 녹음을 즐기고 단풍을 즐기며, 때로는 그들의 생명을 섭취하기도 하며 생명을 유지해간다. 나무의 삶이 인간에게 주는 고귀한 선물이다.
 
마당에 뒹구는 빛 고운 낙엽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망상을 피우는데, 세월호 기도소에 놓여진 단원고 아이들의 사진첩에 담긴 청아한 얼굴들이 자꾸 가슴에 밟힌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하지만, 살아서 하고팠던 그 많은 꿈들은 어쩌란 말인가.
 
세월호 기도소에서 기도를 하다가 고귀한 선물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호 천일기도 첫기도를 앞두고 ‘세월호 공동기도문’을 만들 때였다. 기도문의 내용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자문을 구하던 중이었는데, 어떤 분께서 기도문에 ‘고귀한 선물’이라는 말을 넣자고 제안하셨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민들이 비로소 생명가치에 대해 눈을 뜨고 거룩한 마음, 어머니 마음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기도문에서 빠졌다. 자칫 사건 자체가 미화될 수 있고 쓸데없는 여론몰이에 휩쓸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같은 반응이었다. 모두들 “우리야 제안하신 분의 뜻을 십분 이해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선의로만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몇 달 전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교회 내 강연에서 “일본지배는 하나님 뜻”, “6.25는 미국 붙잡으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 등의 발언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낙마했던 터라 그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유가족들에게도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물론 우리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의 죽음이 너무 어처구니없고 억울하기에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 그분의 본심이라는 것을. 그 억울한 죽음들로 인해 이렇게 절절하게 생명가치에 눈 뜨게 된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맹세를 함께 하자는 것임을. 그렇게 해서 그들의 제단위에 온 마음을 담아 바치고픈 한 송이 꽃임을.
 
결국 그 말은 기도문에서 빠졌다. 여전히 거리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잠을 자고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리며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유가족들, 밥숟가락을 입에 넣다가도 순간 울컥해져버리는 우리의 일상과 마음이 그대로인데, 어찌 지금 그 죽음을 ‘고귀한 선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고귀한 선물’이라는 말을 화두처럼 들고 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정말 고귀한 선물이 되게 하고 싶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천일이면 어떻고 만일이면 어떻겠는가.
 
“잊지 않겠습니다.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간절한 첫마음을 새기고,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기원하는 지줏대로 세운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가 8월 30일 시작되었다. 그 사이 많은 분들이 천일기도 동참서약을 하셨고, 멀리서 가까이서 실상사와 성심원에 마련된 상설기도단을 찾아오시거나 또는 일상에서 세월호 공동기도문을 읽으며 기도에 함께 하고 있다.
 
가신 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고귀한 선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억울한 죽음으로 그대로 남을 것인가는 이미 우리 모두의 몫이다. 천일의 시간들이 온 누리를 깨우는 종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도 기도를 올린다.
 
지금은 밝혀졌나요? 지금은 책임지나요? 지금 대한민국은 안전한가요? 별이 된 아이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귀한 선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르쳐주신 생명의 존귀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그분들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칠 수 있기를.
 
- 수지행 (실상사 기획실장,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 추진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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