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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휴심정글방] 온 몸으로 한소식한, 삶의 고수들이 있다...법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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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0-12-28 12:16 조회1,0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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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스님 스님께서 한겨레 휴심정에 쓰신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를 클릭.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76070.html


 

온 몸으로 한소식한, 삶의 고수들이 있다 

 

 

월요일 풍경

 

실상사의 아침 울력. 사진 조현 기자
실상사의 아침 울력. 사진 조현 기자 

실상사에서는 매일 오전 8시 30분 ‘하루를 여는 법석’이 열린다. 절에 거주하는 출가와 재가 수행자들이 둥글게 모여 예불을 올린다. 이어 경전 낭독과 참회 발원을 하고 하루의 일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9시 경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주어진 소임에 전념한다. 

 

매주 월요일 법석에는 공동체 각 영역에 있는 벗들이 모인다. ‘마을도 빛나고 절도 빛나라’는 발원에 맞게 지역 사업을 하는 한생명(사), 농장, 공방, 작은학교, 대안대학인 생명평화대학의 벗들이 모인다. 그날은 전체 대중이 한 주간의 삶을 나눈다. 이 나눔을 통하여 개인과 영역의 일들을 보다 깊이 이해한다. 그래서 월요일 법석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실상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스님들은 처음에는 월요법석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사람 사람, 물소리 바람소리가 부처님 아님이 없고, 세속 잡사에 온전히 마음 주면 그대로가 불공 기도다. 그러니 선입견 두지 말고 관심을 가져보자고 권한다. 그리하면 경청삼매 속에서 공감하는 수행이 절로 될 것이라고 곁들인다.

 

저마다 돌아가면서 일주일 동안 자기가 겪은 삶을 나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인도 라다크 출신인 단누 스님이다. 이제는 한국말이 능숙한데도 “대중들 덕분에 잘 살았습니다.”라는 말만 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공감한다. 단누 스님은 매일 기도와 노동에 부지런하다. 그러니 세세한 설명 없어도 모두들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이 스님은 틈틈이 인도 밀크 티 짜이를 만들어 대중들의 미각을 즐겁게 한다.

 

월요일 아침 법석. 사진 조현 기자
월요일 아침 법석. 사진 조현 기자 

다방면으로 다독가인 상연 스님은 대개 책과 일상을 접속시켜 소감을 나눈다.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용수 보살의 <중론> 관육정품에 ‘눈은 눈을 보지 못하고 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요즘 그 말씀을 실감합니다. 대중들과 관계 속에서 보고 듣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밭을 돌보는 원두(園頭) 소임을 맡은 덕산 스님은 대부분농작물의 성장에 대해 말한다. 선재 스님은 60대를 넘어선 초보 노스님인데, 이 스님도 말보다는 몸으로 말씀을 들려 주신다. 어린이 법회나 합창단 모임이 있는 날에는 손수 지리산 곳곳을 돌며 손수 운전한다. 어린이들은 선재 스님에게서 스님과 할아버지의 기운을 함께 느낀다.

 

“지난 번에는 사흘 동안 김장을 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이번 김장 울력은 힘이 들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어도 힘이 들지 않았다’는 농장의 벗들의 말이 울림을 준다. 일상에서 몸으로 깨달은 법문이 아닐 수 없다. 이어 그분들이 말한다. 객처럼 일하면 배추와 무를 뽑고 씻고 하는 일들이 지겹고 지루하지만, 주인의 마음으로 일하면 즐거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누구나 이렇게 말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공감할 수는 없다. 선종에서 사구(死句)와 활구(活句)라는 말이 있다. 이론과 관념에 젖은 죽은 말이 사구다. 반면 김장 하면서 얻은 생생한 자기 말은 활구가 된다.

 

실상사 공동체 영역 중에 목금토 공방이 있다. 공방에서 지역민에게 목공 기초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낙지(별명이다)는 요즘 나사 박는 드릴 기초 공부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잘 알고 잘 한다고 생각 했던 드릴 다루는 법을 익히면서 새삼 ‘기초’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다음은 지역사회 마을 일을 하는 ‘한생명’에서 일하는 사십대 초반의 법우(法友- 법우는 우리 공동체 개인들을 일컫는 칭호다)가 차례다. 요즘은 부모님 집에 가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아버지가 요즘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시고 있어 연민이 든다고 한다. 이제는 부모님을 잘 모시려는 마음보다 친구처럼 지내고자 한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는 왜 저러시지? 나도 저렇게 살면 어쩌지, 나도 닮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친구처럼 함께 한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세월을 먹으면서 생각과 몸이 부드럽고 따듯해지나 보다. 역시 세월이 선생이다.

 

실상사 농장에서 울력하는 스님과 재가자들. 사진 실상사 제공
실상사 농장에서 울력하는 스님과 재가자들. 사진 실상사 제공 

“겨울에는 농장에 할 일이 없겠네요”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농장 법우님이 말한다. 그래서 이렇게 응답했다고 한다. “모르시는 말씀, 겨울에 농사 준비를 잘 해야 한 해 농사를 잘 짓습니다.” 이 말에서 사물과 시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의 연속성에 있는 연기의 법칙을 깨닫는다. 기꺼이, 즐겁게, 김장을 하니 노동과 수행과 놀이의 경계 허물기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경험과 관찰과 사유를 통해서 온몸으로 ‘한소식’한 고수들이다.

 

실상사에는 몇 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백장암, 약수암, 서진암이다. 이곳에는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암자 비슷한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있다. 화림원이다. 화림원은 대략 이십년 전에 지은 건물이다. 황토집이다. 나도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화엄경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서 삼년 정도 머물렀다. 처음에는 학인 스님들의 연구 공간 목적으로 지어 사용했다. 지금은 청년들의 대안대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실상사 활동가 법우들의 개인 숙소도 겸하고 있다. 화림원에는 지금 7명이 살고 있다. 화림원 식구들이 말한다. 요즘 화림원이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왜냐면 각기 정성껏 만든 밥을 나누며 대화하니 한결 부드럽고 정감이 더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화림원 법우들의 개인 방을 순례하면서 자치회의를 한다고 한다. 화림원에서는 이십대에서 오십대까지 여성과 남성들이 함께 살아간다. 배우고 나누는 마음으로 살아가니 서로에게서 배움이 절로 일어난다. 

 

“어른들이 친구처럼 통하는 경험이 신기해요.” 스물두 살 청년 닷쉬의 발언이다. 동료인 밤비도 수긍한다. 이들은 올 한 해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가면서 조립식 건물을 다듬어 청년들의 활동 공간을 만들고 있다. 대안대학인 생명평화대학 연구과정의 학생인 도야, 밤비, 닷쉬가 참여했다. 아주 적은 돈으로 개조하려니 모든 게 옹색하고 궁색하다. 여기저기에 있는 자재들을 재활용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묻고 찾아서 손수 작업한다. 자연스레 시행착오가 많을 밖에 없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어쨌든 해나가고 있다. 청년들의 힘으로는 힘든 일이 있다. 바닥 콘크리트 하는 작업과 전기 배선 등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귀촌한 동네 어른들이 와서 해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보시한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내일처럼 도와주는 어른들을 보면서 엄청 감동을 받았어요. 내게 어른들은 늘 어렵고 조심스런 분들이었는데, 서로 친구처럼 통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청년들은 살아오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기쁘게 도와주는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함께 일하면서 배움이 일어난 것이다. 이게 바로 ‘산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실상사 경내. 사진 조현 기자
실상사 경내. 사진 조현 기자 

공양간을 담당하고 있는 범정 법우는 김장 끝나고 혼자서 바닥 청소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단톡방에 도움을 청했다. 이를 보고 각 영역에서 자기 일을 잠시 접어두고 도와 주어 김장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돈 없이도 즐거움을 주는 보시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소감 나눔의 마지막은 회주 도법 스님이다. 스님은 작은 일도 늘 진지하다. 누군가 말하기를, 회주 스님은 예능으로 말하면 다큐로 받아들이신다고 말하며 웃는다. “우리가 약사전 천일기도를 한지도 이백여일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가 만든 ‘21세기 약사경을 읽습니다.” 이어 말씀하신다. “기도문에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고, 젊음도 빛나고 늙어감도 빛나라’라는 발원에 마음이 갑니다. 아마도 몸이 여기저기서 불편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니 자연스레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되고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지금, 신호를 보내는 늙음이란 친구를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친구가 내게 오면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데 못마땅한 감정으로 늙음을 바라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늙음이란 친구, 죽음이란 친구는 아무리 싫어하고 거부해도 오는 친구인데 반가운 사람 친구 환대하듯 맞아야지.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고 친구로 친숙해야 삶과 늙음과 죽음이 빛나는 것이겠다.” 이어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늙음도 내 친구 죽음도 내 친구 

소중하고 고마운 내 친구에게 

정성스레 공들이며 살아야겠네 

그리고 어느 날 때가 오면 

나는 죽음에게 

이렇게 말할 거야.

이제 난 너에게 갈 거야.

 

공동체 식구들은 매주 그동안의 소감을 나누면서 한 주를 시작한다. 나도 처음에는 좀 답답하고 몸이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출가와 재가의 도반들의 소중한 삶을 이해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각자의 삶과, 그 삶에서 우러나온 말들에서 경청과 공감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어서 좋다. 일상의 경험, 관찰, 사유의 발언들이 지금 여기서 빛나는 법문다. 더없이 귀한 대화사리(對話舍利)다. 

 

나와 함께하는 뭇생명들이시여! 

깨달음이 일상의 삶에서 빛나고 있나이다.

 

법인스님/ 실상사 한주 & 실상작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 전조계종 교육부장 &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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