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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공동체 수행의 날, 노동이 축제이고 일이 쉼이 되는 날 ... 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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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1-04-21 13:32 조회4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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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수행의 날, 노동이 축제이고 일이 쉼이 되는 날 

 

- 글 > 세연정 

 

매주 수요일 아침 830, 실상사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선재집에 30여명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인드라망 활동가와 실상사 스님들이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이면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모여 공부하고 일수행을 한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공통의 철학을 기반으로 공동의 활동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철학을 공유하고 그것을 더욱 깊이 있게 하는 공부를 한다. 오후에는 농사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가꾸고 앎을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유의 강제

 

평소에는 각자의 영역에 흩어져 일하던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안부도 묻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즐거이 대화를 나눈다. 친교와 다정한 눈빛이 넘실대는 이 곳은 마치 소박한 파티장 같다. 다만 술 대신 각자의 텀블러에 든 물로 목을 축이고 책상에는 음식 대신 공부자료가 놓여 있는 것이 다를 뿐

 

목탁이 울리면 즐거운 수다시간이 끝나고 공부가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이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다. 분위기는 진지해지고 머리에선 열이 나기 시작한다. 사유라는 것은 없던 길을 내는 것, 새로운 뇌회로를 구축하는 일이다. 물이 물길을 따라 흐르듯 자연스럽고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습관이라는 커다란 물길을 따라 흐르던 익숙한 생각과 생활을 점검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토론하고,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성찰과 사유를 강제 당한다. 공동체 수행의 날이라는, 생각 없이 살래야 살 수 없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일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쓰는 노동을 한다. 노동()은 하찮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라면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하는데 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특히 임금노동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도 일에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야 하니까 (자신이 꿈꾸는)삶을 희생시키며 어절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하찮게 여긴다. 하지만 노동이 정말 그러한 것인가? 나는 우리의 일 속에서 다른 노동을 본다.

 

노동과 놀이와 일과 쉼과 공부와 축제와 생계와 정치

 

나는 일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특히 삶의 가장 중요한 기예는 노동 속에서 배웠다. 공동체 안에서의 일/노동은 내 삶을 갉아먹는 좀벌레가 아니라 나의 큰 스승이었다. 요즘 세상의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기후위기, 코로나19, 각종 폭력일 것이다. 그 문제들은 왜 일어나는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와 그것을 안다 해도 함께 살 줄 모르는 무능력 때문이다. 이 내용을 하나의 정보로 아는 것은 넘어서 진정으로 이해하고 또한 뼛속 깊이 체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이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또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노동의 현장이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은 누구에게나 큰 스승으로 열려있다. 우리는 노동을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고마운 수단으로 여기는 동시에 삶을 가르쳐 주는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일을 하는 현장에서 사건과 사람이 마주하는 매번의 순간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훈련하고 완성시켜가는 수련장이기도 하다. 앎이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 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상의 수련을 위해 다른 곳에 가기보다 보다 일상을 집중해서 살아보는 방식으로 삶을 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연습은 실전과 가장 비슷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가 가장 실력을 높여내고 싶은 것은 일상의 삶이다. 그러니 일상은 일상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의 날 일수행은 그러한 기획 속에서 꾸려졌다.

 

공동체 각 영역의 모든 활동은 사회와 세상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활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안교육, 공유경제, 자급자족, 공동노동, 새로운 가족 모델, 일과 수행의 결합 등 공동체가 하는 많은 일, 혹은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대안사회 모델을 만드는 활동이기도 하다. 노동과 정치의 결합.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노동/활동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그 외에 우리가 기획하지 않았으나 생겨난 결과는 함께 일하는 자리가 어울림과 축제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남과 여, 노년과 장년과 청년과 청소년, 스님과 재가자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 웃음소리, 그리고 소박하지만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 이것이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어떤 자극적인 놀이보다 충만한 축제의 장. 그래서 노동의 장은 축제의 장이 되고, 일은 동시에 쉼이 된다

 

202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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