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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싱그러운 초여름, 축제와 기도의 시간...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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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1-06-21 14:17 조회2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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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초여름, 축제와 기도의 시간

 

>> 글: 세연정​

 

부처님 오신 날(‘연등달기의미의 재발견)

519일은 절에서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여의고자 온 삶을 바쳐 치열하게 사셨고 끝끝내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아 활짝 열어 보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만 생명 해방의 날인만큼 이 날은 절에서 가장 큰 축제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5월은 축제 준비로 실상사 식구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등이죠. 연초부터 접수받기 시작해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종무소 전화에 불이 납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만해도 마을에는 당산나무, 집안에는 조왕신 등 다양한 의례와 기도 장소가 있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것들은 미신이라 폄하되며 삶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미신에 불과한 일일까요?

우리에게 당산나무는 하나의 사물, 부엌(조왕신)은 하나의 장소에 불과하지만 옛 어른들 그 대상과 장소들에서 어떤 신성을 감지했고 자신과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불교에서 진리라고 말해지는 연기(모든 존재의 연결됨)’를 삶속에서 이미 체득하여 알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어른들은 그 대상 혹은 장소에 마주하여 기도를 드리곤 하셨나봅니다.

종무소에서 수많은 연등을 접수 받으며 연등 달기가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와 같은 의례행위로써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소중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 연등을 답니다. 연등을 다는 순간 그는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나쁘게 되라고 연등을 다는 일은 결코 없죠. 그리고 타인의 위해 연등을 달 때에는 늘 자신에게만 쏠려 있던 관심과 시선을 다른 존재에게 돌리게 됩니다. 비록 그것이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자의식, 자기중심성,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매우 귀하고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다른 존재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그 마음, 그 행위가 커다란 이타심으로 자라날 귀한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큰 선물이 됩니다. 자기라는 감옥으부터 벗어나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씨앗 역시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를 위해 다는 연등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연등을 다는 행위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연등을 달 때면 자신이 삶 속에서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또한 삶이라는 여행길 와중에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점검해 보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얻고자 하는 것을 곰곰이 상기해 보면서요. 그런 점에서 연등을 다는 행위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례가 사라진 시대, 이타심의 씨앗이자 자기성찰의 도구로써 연등달기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미신, 기복신앙, 좀 더 좋게 생각하더라도 고루한 옛 문화 정도로 생각했던 연등 달기의 재발견. 기도와 성찰이 사라진 우리시대에 연등달기가 일상 속 의례와 기도 문화로 다시금 잘 자리하고 널리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의 나라 미얀마를 위한 희망의 기도

실상사에서는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라는 주제로 천일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300일이 지나고 네 번째 백일기도를 하는 중입니다. 네 번째 백일기도 중에는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기도가 필요한 곳에 마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군부쿠테타 상황 속에서 어렵사리 민주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를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시간은 612()에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도의 의미와 공덕이라는 주제로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질문하고 답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상연스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아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변화와 흐름으로만 존재할 뿐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아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곤 하죠. ‘를 강화시키는 방식의 삶은 진리와 반대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상들을 위해 기도할 때는 라는 경계를 넘고, 해체하고, 무화시키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런 기도는 에고를 약화시켜, ‘본질() 없음이라는 진리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직접적 수단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도법스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얀마가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크게 관련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연기법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우리와 상관없는 나라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얀마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과연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마찬가지 논리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명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도법스님께서는 나비효과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비의 날개짓이 저 멀리 어딘가의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있죠. 이것은 우리의 눈에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명백한 사실이고, 과학입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분명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비록 미약한 나비의 날개짓에 불과할지라도 평화와 민주주의의 폭풍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스님께선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과학이고 진실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형제의 나라 미얀마를 위한 희망의 기도를 합송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작은 날개짓이 미얀마에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원해 봅니다.

다음 특별프로그램은 710()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미얀마활동가를 통해 미얀마를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카카오TV로도 시청 가능하니, 형제의 나라 미얀마에 마음을 모으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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