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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상생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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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0-08-02 14:27 조회3,8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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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학림의 전 학장이신 법인스님의  글입니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란에 올 1월부터 기고하신 글들을
이후 순서대로 싣겠습니다. 
 

경인년 1월도 어느덧 절반이 흘렀다. 새해의 다짐이 다소 느슨해졌을 세속의 벗들에게 늦은 인사를 겸해 휴대전화로 문자공양을 올렸다.

‘묵은 해니 새해니 말하지 말게, /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 저 하늘이 어디 달라졌는가. /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농사를 지으며 참선 수행했던 학명선사(1867~1929)의 선시(禪詩)다. 선사의 말대로 달력이란 흐르는 물줄기 위에 인간이 그어놓은 눈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획을 긋는 일은 느슨한 정신줄을 조율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준다.
 
덕분에 나도 경인년의 출발과 더불어 동물사랑운동이라는 작은 목표를 하나 세우게 되었다. 지난해 끝자락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임순례 감독이 대표로 있는 동물보호단체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에서 주최한 기금 마련 전시회에 갔다. 임 감독은 나에게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죽어가고 버려지는 동물에 대한 안타까움을 절절히 전하며 새로운 방생문화를 제안했다. 자연과 동물에게 친화적인 사상과 문화를 가진 불교계가 불자들에게 복날 개나 닭을 식용하지 않게 하고, 물고기나 자라를 사서 놓아주는 대신 버려진 개를 키우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새해의 작은 목표, 동물사랑운동
 
몇 해 전의 일이다.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30여명의 선승들이 적막과 더불어 팽팽한 긴장으로 면벽하고 있는 선방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념 속에서도 조실 스님이 공부를 점검하려고 불시에 선방에 들어오셨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산중 비둘기 한 마리가 유유히 선승들 사이를 걸어다닌 것이었다. 평시에도 ‘비둘기 조실’은 마당과 마루, 심지어 스님들의 방에서 제 집인 양 놀다가곤 했다. 스님들이 해치려는 생각 없이 그저 무심하게 놀아주니 비둘기도 무심과 평화의 상생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근대의 선지식 수월스님 곁에는 만주 들판의 사나운 짐승 무리들도 순한 모습으로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올해 경인년의 상징은 호랑이다. 절집의 산신각에서 호랑이는 액난을 막아 주는 수호신이며 벽화에서는 까치와 더불어 노는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계룡산 동학사 남매탑의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는 사람의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마음 깊은 동물이기도 하다. 일견 해악과 공포의 대상이던 호랑이가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돌봄과 보호의 의지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상극의 극한을 상생의 절묘함으로 돌려놓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돌려놓음은 역사의 진보가 되고 새 문명의 활로가 된다. 마음 한 번 돌리면 지옥이 그대로 극락이 된다는 이치가 관념적 허구는 아닐 것이다. 인간의 희구는 상징을 만들어내고, 그 상징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한다. 사람이 모든 자연과 동물들에게 ‘더불어 생명’ ‘더불어 평화’를 희구한다면, 자연과 동물은 사람과 더불어 생명·평화·상생의 상징이 되고 그 자체가 되리라. 만물이 부처라는 이치가 이러할 것이다.
 
평화와 공존의 길을 희구하는 오늘, 동물에 대한 희롱과 학대, 억압과 살상을 생각해 본다. 경제와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축산과 도축은 정당한 것일까. 오래된 민속놀이라는 미명 하에 소와 닭과 개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즐기고 합리화해야 하는 것일까. 로마시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벌어지던 검투사와 사자의 싸움을 즐기던 자들을 욕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인간이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지적 우위에 있다고 해서 동물을 함부로 도구화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자연·동물 차별하지 말게’
 
절집에서는 국수를 삶은 물을 곧바로 버리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하수구나 땅 위의 작은 생명들이 죽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리에서 너의 자리로 생각을 옮겨 보면 평화와 공존의 해답은 명백하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털이 하얗게 변했다는 백호의 해 경인년, 나는 학명선사의 시를 빌려 이렇게 상생의 기도를 올린다.
 
‘사람이니 동물이니 차별하지 말게,
모양 다르고 사는 게 다른 것 같지만, 보라 !
 슬퍼하고 사랑하는 생명의 울림이 그 무에 다른가
 우리가 교만하여 금 긋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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