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욕망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 지대방

본문 바로가기


화엄세상

길을 걷는다. 욕망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0-08-08 14:21 조회5,636회 댓글0건

본문

 [법인스님]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땅끝마을 두륜산 대흥사에서 며칠을 깃들었다. 서울에 살면 애써 수도하지 않아도 도가 절로 높아진다는 ‘수도승(首都僧)’ 생활의 호기를 잠시 접고, 귀소본능을 변명 삼아 산을 찾았다. 그리고 연일 산길, 들길을 걸었다. 더없이 투명하고 시린 하늘 아래 붉은 동백꽃이 어울린 남도의 산과 들녘은 참으로 고즈넉한 평화의 삼매였다.

산중에서 서울로 삶터를 옮겼을 때, 이웃의 많은 분들이 염려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탁한 공기와 번잡한 일에 치여 건강과 수행이 제대로 챙겨지겠느냐고.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나는 몇 개의 준비된 답을 가지고 있다. “내가 세상에 편견과 미움을 갖지 않으면 세상은 나의 도를 방해하지 않는다. 삶은 늘 ‘지금, 여기’이지 다른 곳에 극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잣거리에서 평온하지 못하고 고요한 곳에서만 평온하다면 어찌 그 마음이 도 닦은 마음이겠느냐.” 그러면서 산과 빌딩, 자동차와 새 소리, 사람 소리와 물 소리, 산바람과 매연, 한적함과 번잡함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과 사랑을 갖겠노라고 나름 다짐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시골에 내려와 산길과 들길을 걸으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좋으니 말이다. 허위와 가식을 벗고 온전히 제 몸을 드러내고 있는 맨살의 자연과 들숨 날숨으로 온전히 만나는 이 기쁨은 무엇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다. 산승도 산길과 들길을 걷는 것이 이리도 좋은데, 경쟁과 속도와 획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속의 벗들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맨살의 자연과 만나는 기쁨

지금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걷기 행렬이다. 제주에는 올레길이, 지리산에는 둘레길이, 거제도에는 섬길이 있다. 사람들은 이제 산과 마을, 강과 바다에 길을 내어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걷는 일이 대세라고. 그러나 생각해 보면 걷는 일이 새삼스러워지는 흐름도 새삼스럽다. 인류의 원초적 몸짓인 직립보행이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위해 적극 권장사항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왜 사람들은 걷는가, 왜 걸으려는 것일까. 가장 흔한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욕망과 경쟁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길을 걷는다고, 쉼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경쟁으로부터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아무 욕심도 없이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된다고, 그래서 자신을 묶어놓고 있는 온갖 관념과 습관의 줄을 놓아버리고자 걷는다고 말한다.

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사람이 풍경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중년의 남편과 아내가 억새꽃 흔들리는 둑방길을 걸으면서 은근하고 따뜻한 눈길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자식들 키우고 먹고사느라 찌들고 구겨졌던 사랑의 마음이 들꽃처럼 길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어릴 적 친구들이 오솔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깔깔깔 웃어대는 모습은, 길이 끊이지 않듯 사람의 동심도 지속된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이렇게 길은 사람이 되고 사랑이 된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눈에는 걷는 사람들이 ‘사서 고생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걷는 사람들은 차 타고 가는 사람을 ‘안됐다’고 말한다. 따사로운 햇볕, 맑은 바람결, 거기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그들은 도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풀꽃에 깃든 온전한 우주

어느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했다. 온전한 마음을 주면 작은 풀꽃 하나도 온전한 우주가 된다. 무심하나 유정한 눈길을 준다. 길에서 우리는 마음 하나로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사랑의 감성언어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작은 풀꽃 하나에서 소박하지만 분명한 깨달음 하나를 얻는다.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니며,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 아님을.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온전한 전체라는 것을.

이로움이 의로움을 덮고 있는 시대, 돈이 도를 덮고 있는 시대, 걷는 일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사람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회복하고 평화와 상생의 삶을 복원하는 길닦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72건 6 페이지
지대방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 답변글 얘...얘들아? 나도 쫌만. 인기글 sdfasdf 04-22 2652
21 답변글 강용석도 인정한 천재 인기글 강용석도 04-22 2717
20 답변글 잘못된 연합 인기글 잘못된 04-22 2563
19 쌀 한 톨의 무게는? 인기글 실상사 10-12 6517
18 답변글 쌀 한 톨의 무게는? 인기글 장함 02-26 2672
17 양혜왕의 얼굴을 한 종교인이여! 인기글 실상사 09-04 5379
16 ‘무소유’의 실천자들 인기글 실상사 08-23 5495
열람중 길을 걷는다. 욕망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인기글 실상사 08-08 5637
14 상생의 기도 인기글 실상사 08-02 5344
13 지리산 종교연대 운동회 댓글1 인기글 실상사 06-08 6282
게시물 검색

Copyrights ⓒ www.silsangsa.or.kr. All rights reserved  주소 55804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대표메일) silsang828@hanmail.net (전화) 063-636-3031 (팩스) 063-636-3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