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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실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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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0-08-23 08:41 조회5,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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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스님]
 

진달래 꽃향기가 해 거름 녘 산그늘로 내려오는 사월, 이십대의 풋내기 수행자가 조계산 자락 소박한 암자를 찾았다. 참선정진을 끝낸 암자의 주인이 담백한 미소로 맞았다. 저녁밥 때 왔다고 주인은 아궁이에 손수 나무를 때서 떡국을 끓여냈다. 맑은 차 한 잔 앞에 공부를 묻는 주인에게 풋내기 수행자는 그만 생뚱맞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스님, 요즘 무슨 동화책을 즐겨 읽으십니까?” 주인은 민망할 정도로 버럭 화를 냈다. “나, 그런 거 읽지 않는다. 젊은 중이 경전 공부에 전념해야지.”

암자의 주인이 상당한 문학적 경지에 있다는 것은 속세에까지 알려진 터. 당시 문학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풋내기 수행자는 이 암자를 찾은 이유가 불교적 관심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암자 주인은 어린 중의 속내에 깃든 허영기를 이미 간파한 게 아닌가. 30년 전 나와 법정 스님의 단 한 번의 인연은 이렇게 내 정신을 곧추세우는 죽비소리로 왔다.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의식을 돌려놓은 큰 울림이었다. ‘나에게는 하나의 바랑이 있는데, 퍼내고 퍼내도 한없이 퍼낼 수 있고, 채워도 채워도 한없이 채울 수 있다’는, 텅 빔으로 해서 충만하다는, 버리는 일이 곧 채우는 것이라는 이 미묘한 이치는 물질과 권력을 ‘충만’케 하느라 나날이 ‘빈곤’해지는 생명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죽비소리였다.

법정스님·권정생선생 걸어간 길

동화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 그 분과 법정 스님의 삶의 행적은 놀랄 만치 닮았다.

생전에 책의 인세로 들어온 적지 않은 돈을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단 한 푼 안 쓰시고 북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쓰라고 고스란히 남겼다. 영정으로 쓸 변변한 사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자신을 기념하는 일을 하지 말라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에서 평생 살아 온 5평짜리 흙담집도 자연으로 돌아가게 유언하였으며, 문학상도 거절하셨다.

법정 스님과 권정생 선생, 왜 우리는 종교와 계층을 떠나 두 분을 새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지켜내고 가야할 길을 몸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길은 무소유와 헌신, 차별 없는 이웃 사랑이었다. 자신의 몸을 ‘길’로 삼아 살아가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 분들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엄격했으며 스스로 선택한 가난에 자족하며 사셨다. 다른 사람과 우열을 가리고 승부에 목숨을 거는 세상에서, 이 분들은 ‘전쟁에서 수천만의 적을 물리치기보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법구경의 진리를 구현하신 것이다.

2006년 미국, 공화당 정부가 의회에 낸 ‘상속세 폐지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 법안에 적극 반대한 사람은 세계적 부호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였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부유층에 이익이 돌아가고 결국 기회균등을 막아 시장경제가 공멸한다는 것이었다. 나눔이 충만이 되는 이치의 한 단면이 미국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경기 양평에 사는, 내가 아는 부부는, 외환위기가 닥쳐 사업이 망한 친지가 사정하는 바람에 안 팔리는 그의 땅을 필요도 없는데 무리해서 사주었다. 몇 년 후 그 땅값은 몇 배로 뛰었다. 부부는 잠을 못 잤다. 땅 판 사람의 가슴앓이가 뻔한 데 가만 있기가 괴로웠다.

평범한 이웃 ‘무소유의 삶’ 감동

친지에게 구매 당시의 값만 받고는 땅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보’라고 놀리겠지만 부부는 행복하다. 이 무슨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같은 일인가.

그러나 평범하지만 비범한 무소유의 실천자들은 이렇게 표 안 나게 우리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 감동하고 존경심을 느끼는 것을 보면 무소유, 헌신, 나눔, 사랑은 뭇 생명의 공통언어이며 그 언어가 영혼을 일깨운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누구나 가고 싶은 길, 누구나 갈 수 있는 길, 그 길을 가면 모두가 행복한 길. 그런데 그 길을 왜 못 가는가. 법정 스님과 권정생 선생은 자신이 가자고 들면 그 길은 아무도 막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앞서 걷는 자’에 다름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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