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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떠난 것은 불교가 아니다” ...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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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1-06-05 13:55 조회6,76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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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떠난 것은 불교가 아니다”
 
  5번째 생명평화 대화마당 열려 

 
 [불교신문] 2011년 06월 04일 (토) 00:07:45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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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선양사업회준비위원회(공동대표 혜경스님)와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집행위원장 정웅기)는 지난 3일 서울 조계사에서 다섯 번째 생명평화 대화마당을 열었다.
이날 강연에는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스님<사진>이 ‘한반도 생명평화의 길’을 주제로 앞으로 한국불교와 불교시민사회단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열띤 강연을 펼쳤다. 다음은 도법스님의 강연 요지이다.

문수스님에게 미안하다. 벌써 1년이 됐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한 스님이 생명의 문제와 약자들의 문제, 정의에 문제를 잘 해결했으면 하는 절실한 심정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부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교를 집단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단중심 불교가 아니다. 뭘 중심으로 불교를 했을까. 한 마디로 중생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 가르침을 펼쳤다. 그 중생은 무종교인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남자도 있고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자본가도 있고 노동자도 있는 거다.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불교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문수스님의 남긴 유언 내용도 부처님의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부처님의 마음과 뜻을 미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늘 지녀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의 화두는 생명평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명 평화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개개인에 화두가 돼야 하고 우리 가족들의 화두가 돼야 하고 주민들의 화두가 돼야 한다.

 
이제 우리 바보 같은 짓 그만하자. 60년 세월 지났다. 그 정도 해왔으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이제는 좌익이라고 하는 그 허구도 진보라고 하는 거품도 보수라고 하는 거품도 나 짚어치우고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만나자. 평화라는 이름으로 만나자. 그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염원이다.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뭐냐. 이제는 그런 울타리를 없애고 허구를 걷어치우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조건 없이 만나자. 그 길을 찾고 만나자. 그동안의 아픔도 치유해내고 우리의 미래도 만든다.

 
또 인류사회에 진 빚도 갚고 인류 문명의 미래에 등불역할도 하고 이런 꿈을 꿨으면 한다. 그것이 곧 저는 부처님의 마음이고 뜻이고 문수스님의 마음이고 뜻이다. 한반도 우리 민족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나서서 문제를 다뤄보자는 이런 정도의 배포를 갖고 문제를 다뤘으면 한다. 불교문제를 붙잡고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내 제대로 해 내면 발전하는 것이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결사가 잘 되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결사라는 말은 엄중한 것이다. 불교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 결사다. 종단은 결사를 하겠다고 천명했으면 이 말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어(正語)다. 하지만 종단의 결사에 대해 ‘그거 되겠어?’ ‘뭘 계산하고 있는거야’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냐’며 종도들은 대부분 안 믿고 있다.

 
결사를 표방했지만 내용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말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이다. 정말 심각하다. 결사는 종단의 운명을 걸고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걸맞은 추진마당이 만들어 져야 한다. 결사의 주체는 사부대중이 되어야 하고 종단은 행정이나 재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문에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실무자 한 두 사람 두고 일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래서 되겠는가. 전 종도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도 될까 말까다. 사무실 하나 마련하고, 이런 것이 결사인가.

 
불교시민사회단체가 위축 되는 것은 돈과 사람이 없고 알아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불교를 제대로 알면 이런 걸로 위축될 이유가 없다. 부처님은 혼자 암흑세계를 광명으로 바꿨다. 300km 길을 걸어 법을 전 한 것이 ‘초전법륜’이다. 5명에게 불씨를 지피려고 노숙을 하며 혼자서 갔다.  불교는 매우 역동적인 가르침이다. 개인적이고 은둔적이며, 정적이며, 정신적인 것은 수행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다. 이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진짜인 것처럼 이런 사고방식을 신주단지 모시듯 살고 있다.

 
죽은 다음 얘기도 아니고 땅속 얘기도 아니다. 죽어도 지금 여기, 살아도 지금 여기. 지금 여기를 떠난 이야기는 불교가 아니다. 불교라 하더라도 박물관 불교이거나 골동품 불교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불교는 수행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아주 겸손하게 투철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미래 얘기도 아니고 과거 얘기도 아니다. 늘 직면한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 해탈 열반의 길이다. 이런 부분을 불교시민사회단체에서 해 줬으면 한다. 한국불교의 새로운 횃불을 태우자. 경전을 읽고 우리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주눅 들지 않을 눈이 필요하다. 패기를 가졌으면 한다. 한명이든 열이든 인원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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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끼룩끼룩님의 댓글

끼룩끼룩 작성일

도법스님의 좋은 법문..........................

이병님님의 댓글

이병님 작성일

도법스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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