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암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하였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순조 22)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웠다. 1917년에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1927년에는 세진암을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해 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193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35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서진암에는 독특한 손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중종 11)에 만든 석조 나한상 외 4구의 나한상이 있다.
서진암 석조나한상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조사를 일컫는 것으로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으로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유명한 오백나한으로는 경북 영천 거조암의 고려시대 오백나한을 들 수 있다. 실상사 서진암에는 현재 석조 나한좌상이 5구가 있는데, 그 중 1구의 바닥에 "정덕십일년병자화주경희"라는 글자가 둥글게 새겨져 있다. 1516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전반기 석조상의 면모를 반영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나머지 4구의 상들도 각 부의 양식과 조성기법이 명문에 있는 상과 흡사하여 1516년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5구의 나한상은 모두 머리에 형태가 약간씩 다른 두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약간 살이 쪘지만 나한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움추린 어깨와 형식화된 손모양, 양 어깨를 모두 덮은 의복의 옷주름 등의 표현은 조선 전반기 조각양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서진암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하였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순조 22)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웠다. 1917년에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1927년에는 세진암을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해 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193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35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서진암에는 독특한 손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중종 11)에 만든 석조 나한상 외 4구의 나한상이 있다.
서진암 석조나한상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조사를 일컫는 것으로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으로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유명한 오백나한으로는 경북 영천 거조암의 고려시대 오백나한을 들 수 있다. 실상사 서진암에는 현재 석조 나한좌상이 5구가 있는데, 그 중 1구의 바닥에 "정덕십일년병자화주경희"라는 글자가 둥글게 새겨져 있다. 1516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전반기 석조상의 면모를 반영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나머지 4구의 상들도 각 부의 양식과 조성기법이 명문에 있는 상과 흡사하여 1516년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5구의 나한상은 모두 머리에 형태가 약간씩 다른 두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약간 살이 쪘지만 나한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움추린 어깨와 형식화된 손모양, 양 어깨를 모두 덮은 의복의 옷주름 등의 표현은 조선 전반기 조각양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