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과 수치로 보는 인드라망 손모내기. - 2019년 2021년에 이은 세 번째 모내기 편지
(숫자가 많이 나오니 천천히 읽어보시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습니다.^^)
2024.5.27. 하숑 작성
어제 오후 4시경에 우리 트랙터님께서 고장이 나셨어요. 손모내기 직전엔 적어도 하루에 12시간씩은 일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병이 나버리시니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농부들에게 기계는 목숨줄과도 같아요. 오늘 하루 식구들 모두, 트랙터(애칭도 지어주면 좋겠네요)가 어서 쾌차하시길 기도해야 겠습니다.
이렇게 기계에 의존하는 농사인데, 이앙기도 있는데 굳이 ‘손모내기를 왜 할까?’. 모내기 철에 저에게 오는 질문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드라망 식구들에게서도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화두 같은 것이에요. 꽤 오랜 기간을 품고 생각하며, 멋지고 명쾌한 명분을 찾고 있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질문을 이렇게 오랫동안 가지고 살다보니, 이제 이 질문은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 제 삶의 지표 같기도 하고 그래요. 나아가서 제가 산내에 살고 인드라망에 식구로, 작은학교의 배움지기로, 유기농을 하는 농부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이 인문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겠고, 이번엔 지난 10년간 기록해 놓은 수치들을 간추리고 분석해서 나누어 보려 합니다.
우리가 하는 손모내기의 면적은 약 4600평(15000제곱미터), 23마지기 입니다. 오전에 3500평, 나머지는 오후에 합니다. (2016년엔 오후 5시 30분까지 5500평 심었다가 식구들이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심는 쌀의 품종은 신동진이라는 품종입니다. 일반적인 쌀에 비해 쌀 알이 1.3배 정도크고,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었는데 지금은 정부에서 병에 약해서(라고 쓰고 수확량이 많아서 라고 읽습니다.) 수매를 금지한 품종이 되었습니다.
작은학교와 농장은 448구 포트모판에서 모를 키웁니다. 한 마지기에 21판 정도 들어갑니다. 그러면 480판 정도 사용하는데 기록상으로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렇게 우리가 손으로 심는 벼는 무려 215,040 포기입니다. 평균 60명이 심는다고 하면 한사람이 약 3600개 씩 심게 되고 줄 한번 넘길 때 5개씩 심으면 700번 허리를 숙여야 하고 6개씩 심으면 600번 허리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되게 손으로 심는 쌀이 몇 명의 1년 치 밥이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식당에서 주는 밥 한 공기는 생쌀 약 100~120g 정도의 양입니다. 2024년 5월 홍동의 그물코에서 출판한 ‘벼의 일 년’이라는 책을 쓴 분들이 직접 세어본 결과 5200개라고 합니다. 여기에 신동진의 크기 1.3을 곱하니 우리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알은 약 4000알 정도 됩니다.
벼 한 알에서 나온 어미 모는 새끼 가지(분얼)를 내어 대략 25개의 쌀을 맺는 가지를 만듭니다. 이것이 한 포기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마다 평균 80개의 실한 나락을 맺습니다. 그러니 벼 한 포기는 작게 잡아도 2000알의 쌀인 셈입니다. 2포기가 밥 한 그릇이 됩니다. (사실 포기당 쌀 알의 개수는 벼를 심는 간격에 따라 다릅니다. 2019년까지는 20cm30cm로 심었고 2020년부터 25cm30cm로 늘렸는데 넓게 심고 난 후부터 수확량이 평균적으로 10%정도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는 215,040포기를 2로 나누면 107,520공기가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 평균 두 공기를 먹는다고 하니 53,760일 치의 밥이 되고 1년인 365로 다시 나누면 147명의 1년치 식량을 심는 셈이 되겠습니다.
(작은학교에서 짓는 논이 손모내기를 하는 양인 23마지기입니다. 23마지기에서 약 11톤의 나락을 수확합니다. 왕겨를 벗기면 8,250kg의 쌀을 얻게 되는데 한국인의 쌀 소비량인 56kg로 나누면 147!!!! 거짓말 같이 딱 맞네요!!!! 농장에서 이앙기로 심는 논까지 합치면 인드라망 공동체는 대략 300인의 1년 밥을 책임지는 농사가 되겠습니다.)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연결감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만큼, 또 경험하는 것 만큼 구체적으로 연결감을 느낀다고 해요. 위 기록들이, 또 우리가 논에 들어가 직접 모를 심는 경험이 우리가 늘 마주하고 먹는 밥과 쌀을 이해하고 연결감을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 결사 중입니다. 전환된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요? 만일 결사를 회향하는 2047년에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그때도 손모내기를 할지, 그 세상에 손모내기는 어떤 의미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때 즈음 되면, 자율 주행 이앙기가 모를 심게 될까요? 산내에는, 인드라망 공동체에는 손모를 심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왜 손모내기를 할까?’ 이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금 하며, 우리 손모내기 날에 파이팅 합시다!
기록과 수치로 보는 인드라망 손모내기. - 2019년 2021년에 이은 세 번째 모내기 편지
(숫자가 많이 나오니 천천히 읽어보시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습니다.^^)
2024.5.27. 하숑 작성
어제 오후 4시경에 우리 트랙터님께서 고장이 나셨어요. 손모내기 직전엔 적어도 하루에 12시간씩은 일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병이 나버리시니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농부들에게 기계는 목숨줄과도 같아요. 오늘 하루 식구들 모두, 트랙터(애칭도 지어주면 좋겠네요)가 어서 쾌차하시길 기도해야 겠습니다.
이렇게 기계에 의존하는 농사인데, 이앙기도 있는데 굳이 ‘손모내기를 왜 할까?’. 모내기 철에 저에게 오는 질문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드라망 식구들에게서도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화두 같은 것이에요. 꽤 오랜 기간을 품고 생각하며, 멋지고 명쾌한 명분을 찾고 있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질문을 이렇게 오랫동안 가지고 살다보니, 이제 이 질문은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 제 삶의 지표 같기도 하고 그래요. 나아가서 제가 산내에 살고 인드라망에 식구로, 작은학교의 배움지기로, 유기농을 하는 농부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나 이 인문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겠고, 이번엔 지난 10년간 기록해 놓은 수치들을 간추리고 분석해서 나누어 보려 합니다.
우리가 하는 손모내기의 면적은 약 4600평(15000제곱미터), 23마지기 입니다. 오전에 3500평, 나머지는 오후에 합니다. (2016년엔 오후 5시 30분까지 5500평 심었다가 식구들이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심는 쌀의 품종은 신동진이라는 품종입니다. 일반적인 쌀에 비해 쌀 알이 1.3배 정도크고,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었는데 지금은 정부에서 병에 약해서(라고 쓰고 수확량이 많아서 라고 읽습니다.) 수매를 금지한 품종이 되었습니다.
작은학교와 농장은 448구 포트모판에서 모를 키웁니다. 한 마지기에 21판 정도 들어갑니다. 그러면 480판 정도 사용하는데 기록상으로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렇게 우리가 손으로 심는 벼는 무려 215,040 포기입니다. 평균 60명이 심는다고 하면 한사람이 약 3600개 씩 심게 되고 줄 한번 넘길 때 5개씩 심으면 700번 허리를 숙여야 하고 6개씩 심으면 600번 허리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되게 손으로 심는 쌀이 몇 명의 1년 치 밥이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식당에서 주는 밥 한 공기는 생쌀 약 100~120g 정도의 양입니다. 2024년 5월 홍동의 그물코에서 출판한 ‘벼의 일 년’이라는 책을 쓴 분들이 직접 세어본 결과 5200개라고 합니다. 여기에 신동진의 크기 1.3을 곱하니 우리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알은 약 4000알 정도 됩니다.
벼 한 알에서 나온 어미 모는 새끼 가지(분얼)를 내어 대략 25개의 쌀을 맺는 가지를 만듭니다. 이것이 한 포기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마다 평균 80개의 실한 나락을 맺습니다. 그러니 벼 한 포기는 작게 잡아도 2000알의 쌀인 셈입니다. 2포기가 밥 한 그릇이 됩니다. (사실 포기당 쌀 알의 개수는 벼를 심는 간격에 따라 다릅니다. 2019년까지는 20cm30cm로 심었고 2020년부터 25cm30cm로 늘렸는데 넓게 심고 난 후부터 수확량이 평균적으로 10%정도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는 215,040포기를 2로 나누면 107,520공기가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 평균 두 공기를 먹는다고 하니 53,760일 치의 밥이 되고 1년인 365로 다시 나누면 147명의 1년치 식량을 심는 셈이 되겠습니다.
(작은학교에서 짓는 논이 손모내기를 하는 양인 23마지기입니다. 23마지기에서 약 11톤의 나락을 수확합니다. 왕겨를 벗기면 8,250kg의 쌀을 얻게 되는데 한국인의 쌀 소비량인 56kg로 나누면 147!!!! 거짓말 같이 딱 맞네요!!!! 농장에서 이앙기로 심는 논까지 합치면 인드라망 공동체는 대략 300인의 1년 밥을 책임지는 농사가 되겠습니다.)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연결감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만큼, 또 경험하는 것 만큼 구체적으로 연결감을 느낀다고 해요. 위 기록들이, 또 우리가 논에 들어가 직접 모를 심는 경험이 우리가 늘 마주하고 먹는 밥과 쌀을 이해하고 연결감을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 결사 중입니다. 전환된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요? 만일 결사를 회향하는 2047년에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그때도 손모내기를 할지, 그 세상에 손모내기는 어떤 의미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때 즈음 되면, 자율 주행 이앙기가 모를 심게 될까요? 산내에는, 인드라망 공동체에는 손모를 심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왜 손모내기를 할까?’ 이 답이 없는 질문을 다시금 하며, 우리 손모내기 날에 파이팅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