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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법문불기 2564년(2020) 11월 29일 실상사 동안거 결제법문: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

불기 2564년(2020) 11월 29일

실상산문 동안거 결제법문_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는 길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가 올 동안거 주제입니다. 

천왕문 앞 주련에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것은 반야심경에 있는 공의 사유방식을 요즘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긍정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는 것도 마찬가지의 사고방식입니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실상사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실상사가 사부대중공동체를 모색함에 있어, 출가의 위상과 역할이 약화되고 있어 바로세우는 일이 절실했습니다. 그동안 스님들 원력도 잘 모이지 않았고, 출가자가 급감하고 고령화되면서 승가영역을 탄탄히 세우기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실상사에 스님들 10여명이 함께 살게 되면서 이제 무언가를 해보자는 고민들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사부대중공동체 안에서 승가의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실상사는 역사적으로 한국 선불교를 꽃피웠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역량과 안목이 부족해 선불교를 소홀히 다뤘습니다만 올 겨울 선종불교사 대표저술인 승찬스님의 <신심명>을 갖고 선불교의 사상과 정신에 대해 대화하고 공부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이 또한 승가의 위상을 세우는 일환이고, 실상사의 전통과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신신명>으로 본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

 

오늘은 동안거 주제인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에 대해 <신심명>과 연관지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심명>의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도무란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이 구절에 팔만사천법문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내 삶이 된다면 몸말마음으로 지극히 행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지도무란(至道無難) 지극한 도, 지극한 진리는 어려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혐간택(唯嫌揀擇) 오직 꺼려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실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고로 취사선택하는 것입니다, 손등과 손바닥이 분리할 수 없듯이 이름은 다르지만,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인데도 무지하여 착각으로 취하고 버리려는(간택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단막증애(但莫憎愛) 다만 좋아하고 싫어함을 멈추면 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을 배운적 없이도 절로절로 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함에서 갈등과 대립, 반목과 불화가 나옵니다. 반목과 불화가 반복되면 어찌 그 삶이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통연명백(洞然明白) 그렇게 되면 환하게 명백하리라는 뜻입니다. 앉아서도 일어서도 말할때도 침묵할 때도 움직이거나 밥먹거나 똥을 눌때도 무엇을 하던 그 삶이 당당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신심명의 사고방식으로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를 살펴봅시다. 

개인도 빛나고 공동체도 빛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소임을 맡은 이는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안 맡으면 개인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개인없는 공동체가, 공동체 없는 개인이 존재 가능할까요? 이는 나무와 숲과 같아 어느 하나 취하고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하나를 취하고 어느 하나를 버리려 하지만, 사실이 어떠합니까? 개인과 무관한 공동체, 공동체와 무관한 개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증애 대신 개인도 빛나고 공동체도 빛나는,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는 길이 곧 지극한 도입니다. 

 

그러면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는 길은 어떻게 열어야 할까요? 

초기경전에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처님 재세시 임금과 왕비의 일화입니다.

 

어느날 임금이 왕비에게 묻습니다. 

 

“왕비여, 당신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는 누구입니까?”

왕은 당연히 자신을 말할 줄 알았겠지만, 왕비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는 나 자신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왕도 기분나빠하지 않고 화답합니다. “곰곰 생각하니 그 말이 맞을 듯 싶구려” 

 

둘은 의기투합하여 부처님을 찾아 자신들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여쭈어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한발 더 나아가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길입니까?” 되묻고는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나를 좋은 사람 만드는 행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길입니다. 타인에게 오만하고 방자하고 거칠고 폭력을 쓴다면 나를 나쁜놈 되게 만드는 것이니 나를 사랑하는 길이 아닙니다. 반대로 너그럽고 평화롭고 고귀하게 남을 대하면 나를 좋은 사람 만드는 것이니,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좋은 사람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좋은 사람 만들려면 너그럽고 평화롭고 기쁘고 자비롭게 남을 대해야 합니다. 연기적 사유방식으로 그렇게 문제를 다룬다면 나도 빛나고 너도 빛나는 길이 열립니다. 피차가 좋아지는 자리이타로 살면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는 길이 열립니다. 연기가 진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올 겨울 안거는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게 합시다. 연기적 사유방식을 우리 삶에서 나타나게 노력하고, 공동체의 삶에도 녹아들게 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올 동안거를 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참다운 정진이요, 바람직한 수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부대중공동체가 잘 되려면 실상산중이 잘 화합하여야 하고, 잘 화합하기 위해서는 산중통합을 구상하여야 합니다. 그동안 각자 살기 바빴지만, 이제 함께 통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백장선원도 굳이 따로 살림 걱정 없이 정진하고 공부하고 법담을 나누고 활동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도록 함께 빛나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아갑시다. 산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와 지혜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는 길을 잘 열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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