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도 땅엔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가짜뉴스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짜뉴스인 원죄의 주인공으로 정해진 운명대로 전생의 죄업대로 살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노예였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주체적으로 본인의 삶을 창조하려고 나설 경우 무시무시한 천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야말로 정해진 대로 바보천치처럼 살아야만 하는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였습니다. 양반은 영원히 양반으로, 쌍놈은 영원히 쌍놈으로, 중생은 영원히 중생으로, 남자는 영원히 존귀한 자로, 여자는 영원히 죄많은 죄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영원한 천덕꾸러기였습니다.
그때 큰 목소리로 “내 삶의 창조주는 바로 나 자신이다. 뭇생명과 더불어 함께 사는 길에 나의 온 삶을 바치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리의 스승 부처님이십니다. 그 외침은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어두움을, 주인으로 사는 희망의 밝음으로 크게 전환하는 천지개벽의 사자후입니다. 그 한 마디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준 무지와 절망의 역사를 넘어 깨달음과 희망의 역사를 꽃피우도록 하는 위대한 최고의 선물이었음을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금 절마다 거리마다 부처님 오심을 기리는 연등이 꽃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등을 밝히는 한 분 한 분의 가슴에 치유와 희망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길 손 모읍니다. 이에 더하여 부처님께서 주신 선물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우뚝 존귀하다. 온 세상의 고통을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고 하신 사자후의 등불을 마음 깊이 밝히고 또 밝히십시오.
그리고 고요히 가슴 깊은 곳에서 또는 방방곡곡에서 울려오는 생명들의 소리를 경청하십시오. 저 멀리 미얀마 시민들이 삼키는 피울음의 신음소리가 절절합니다.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기후위기로 인한 불안과 공포의 비명소리도 끊이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과 길을 못찾아 너도나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눈앞에 다급한 상황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부처님께 여쭈어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가야 할 방향과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잊었는가. 명심하시게.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 토해낸 한 마디일 뿐 그 밖의 다른 내용이 있지 않네. 그 내용을 그대가 몸과 마음에 새겨 넣고 또 새겨 넣으시게.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네.”
세상은 기적이라고 할 만큼 눈부시게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족하고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넘쳐나고 편한 것이 문제입니다. 없는 것이 없고, 못할 것도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 중에 단 한 가지 ‘천상천하유아독존’, 한몸 한마음 한생명인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무지가 문제입니다. 물론 상대의 참모습도, 자연생태를 포함한 우리의 참모습도 모릅니다. 필연적으로 ‘더불어함께’를 외치지만 그 길과는 정반대인 천길 나락을 향해 폭주하고 있습니다. 편 갈라 목숨을 거는 반생명 비인간화의 야만적인 길인 창과 방패의 싸움판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부처님 당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붓다께 여쭈어 봐도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과거에도 그 길이었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 길 뿐이라고 답하십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그 길은 평소 우리가 수입해오는 새로운 길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참된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희망, 나의 희망,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해, 그러니까 코로나 이후, 아니 지금 당장 일어서서 걸어야 할 길이 바로 붓다가 외친 그 한 마디의 길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오늘,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슴에, 이웃의 가슴에, 우리 모두의 가슴에 참된 진리의 길인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의 등불을 밝힙시다. 그 순간 희망은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그 환한 희망을 등불을 부처님께 올리는 생일선물로 삼읍시다. 분명 부처님께서 환하게 미소 지을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그렇게 보냅시다.
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어
부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
“내 삶의 창조주는 바로 나, 함께 사는 길에 온 삶을 바치리”
오늘은 2645년전 우리의 스승 부처님께서 오신 거룩한 날입니다.
우리 모두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시며 인간상이신 부처님 오심을 온 마음 다해 기뻐합시다.
당시 인도 땅엔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가짜뉴스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짜뉴스인 원죄의 주인공으로 정해진 운명대로 전생의 죄업대로 살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노예였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주체적으로 본인의 삶을 창조하려고 나설 경우 무시무시한 천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야말로 정해진 대로 바보천치처럼 살아야만 하는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였습니다. 양반은 영원히 양반으로, 쌍놈은 영원히 쌍놈으로, 중생은 영원히 중생으로, 남자는 영원히 존귀한 자로, 여자는 영원히 죄많은 죄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영원한 천덕꾸러기였습니다.
그때 큰 목소리로 “내 삶의 창조주는 바로 나 자신이다. 뭇생명과 더불어 함께 사는 길에 나의 온 삶을 바치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리의 스승 부처님이십니다. 그 외침은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어두움을, 주인으로 사는 희망의 밝음으로 크게 전환하는 천지개벽의 사자후입니다. 그 한 마디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준 무지와 절망의 역사를 넘어 깨달음과 희망의 역사를 꽃피우도록 하는 위대한 최고의 선물이었음을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금 절마다 거리마다 부처님 오심을 기리는 연등이 꽃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등을 밝히는 한 분 한 분의 가슴에 치유와 희망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길 손 모읍니다. 이에 더하여 부처님께서 주신 선물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우뚝 존귀하다. 온 세상의 고통을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고 하신 사자후의 등불을 마음 깊이 밝히고 또 밝히십시오.
그리고 고요히 가슴 깊은 곳에서 또는 방방곡곡에서 울려오는 생명들의 소리를 경청하십시오. 저 멀리 미얀마 시민들이 삼키는 피울음의 신음소리가 절절합니다.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기후위기로 인한 불안과 공포의 비명소리도 끊이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과 길을 못찾아 너도나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눈앞에 다급한 상황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부처님께 여쭈어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가야 할 방향과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잊었는가. 명심하시게.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 토해낸 한 마디일 뿐 그 밖의 다른 내용이 있지 않네. 그 내용을 그대가 몸과 마음에 새겨 넣고 또 새겨 넣으시게.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네.”
세상은 기적이라고 할 만큼 눈부시게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족하고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넘쳐나고 편한 것이 문제입니다. 없는 것이 없고, 못할 것도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 중에 단 한 가지 ‘천상천하유아독존’, 한몸 한마음 한생명인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무지가 문제입니다. 물론 상대의 참모습도, 자연생태를 포함한 우리의 참모습도 모릅니다. 필연적으로 ‘더불어함께’를 외치지만 그 길과는 정반대인 천길 나락을 향해 폭주하고 있습니다. 편 갈라 목숨을 거는 반생명 비인간화의 야만적인 길인 창과 방패의 싸움판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부처님 당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붓다께 여쭈어 봐도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과거에도 그 길이었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 길 뿐이라고 답하십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그 길은 평소 우리가 수입해오는 새로운 길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참된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희망, 나의 희망,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해, 그러니까 코로나 이후, 아니 지금 당장 일어서서 걸어야 할 길이 바로 붓다가 외친 그 한 마디의 길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오늘,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슴에, 이웃의 가슴에, 우리 모두의 가슴에 참된 진리의 길인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의 등불을 밝힙시다. 그 순간 희망은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그 환한 희망을 등불을 부처님께 올리는 생일선물로 삼읍시다. 분명 부처님께서 환하게 미소 지을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그렇게 보냅시다.
불기2565년 5월 19일
도법/실상사 회주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