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보면 법문을 한다고 해도,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우리가 독송한 21세기 약사경에도 있는 내용이고, 발원문, 축원문, 권공에도 다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을 하는 것은, 불교전통의 종교의식만으로도 뜻이 명료해질 수 있으면, 굳이 다시 법문이라는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게 잘 안 되다 보니 뜻이 좀 더 명료하게 되게끔 해보려고 보충을 하는 셈입니다.
요즘에는 매일매일 몸으로 늙음을 경험하다 보니 주로 늙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늙으니까 몸이 부실하기도 하고 또 무력해지기도 하고 둔해지기도 하고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몸만 그런가 하고 또 살펴보니 사실은 마음도 머리도 다 마찬가지예요. 제게 중요한 역할로 주어진 것이 법문하는 건데, 제일 힘든 게 법문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오늘은 뭔 내용을 갖고 얘기를 해야 되지? 듣는 사람들이 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이 팔팔하게 돌아갈 적에는 생각이나 머리도 팔팔하게 돌아갔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되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또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되겠죠?
지리산천일결사 중에 약사여래 천일기도가 오늘로 이제 900일재입니다. 그리고 다시 첫마음으로 천일을 향해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어떻습니까. 천일기도에서 영험을 좀 보셨습니까?(웃음)
저는 천일기도의 성과로 큰 영험이 이루어진 것 하나를 봤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뭘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혹시 눈치 채신 분 계세요?
어쨌든 우리가 사부대중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천일결사를 함께 하고 그 결사 내용 중 하나로 천일기도를 해서 천일이 다 돼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 깜짝 놀랄 만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어요?
만일결사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대중 : 네)
주지스님이 앞장서서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문명전환을 염원하는 천일결사를 해보니까 천일 갖고는 안 되겠다, 만일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불씨 삼아 대중들이 이러쿵저러쿵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일결사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을 더 잘 채워내고 결사를 탄탄하게 해가는 것은 지속적인 과제이겠지만, 어쨌든 큰 맥락에서는 미혹의 문명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려면, 즉 21세기 약사경의 내용이 우리 삶이 되고 문화가 되도록 하려면, 우리가 만일 정도는 노력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내고, 결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저는 천일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들이 진화하고 성장한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요, 영험이요, 큰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기도한 만큼 안목이 넓어지고 또는 마음이 커지고 또 뜻도 더 커지고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탄탄해지고 그렇게만 된다면 어디 만일뿐이겠습니까. 100만일을 한들 못할 거 뭐 있으며, 또 힘들다고 주저앉을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동안 천일기도를 해온 것을 볼 때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점과 허술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천일기도 해보겠다고 처음 발의한 스님은 떠나버리고, 부전스님도 들락날락 바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겠다는 대중의 뜻과 마음의 힘이 모여 있기 때문에 방향을 놓치지 않고, 그런 상황에 크게 휘둘리거나 흐트러짐 없이 뚜벅뚜벅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만일결사라는 정말 큰마음을 내는 쪽으로 진화가 되었지요. 그것을 보면서 대중이 화합해서 함께 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 대중이 화합해서 함께 했을 때 어떤 내용으로 그 결과들이 나타나게 되고 있는지, 이를 아주 잘 보여준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모색해온 방향을 향하여 이제 천일결사에서 만일결사로 한걸음 내딛고자 뜻을 모으고 있는데,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그 삶이 어떻게 되고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그 삶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사례를 갖고 함께 생각해보는 것으로 오늘 법회를 대신할까 합니다.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삶의 사례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게 되면 저렇게 돼,” 하는 사례를 보여주는 장면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혹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혹시 있으세요?
아마 그 부분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정치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극단적인 반목과 다툼, 여당과 야당의 극단적인 반목과 다툼이 일상이 되어 있는데, 사실은 전 정권도 현 정권도 함께 살아야 할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정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볼 때 우리는 서로 편갈라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고 시원치 않은 것도 있고, 온갖 것이 다 있을 수밖에 없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가 머리를 맞대서 좋은 것은 잘 계승 · 발전하도록 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 넣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물론 그런 과정에서 책임을 물어야 될 일도 있으면 물어야 마땅하죠..
경험적으로 보면 어떤 일도 3자의 눈으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래, 전 정권의 그 문제는 좀 문제가 있어. 누군가가 좀 책임지고 바로 잡아야 돼.”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반대로 “현 정권이 갖고 있는 문제도 마찬가지야.”하고 합리적 의심에 합리적 답이 나오도록 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마치 전 정권과 현정권,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해서는 안 되는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극단적으로 분열하고 반목하고 다투고 있으니 나라가 한시도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보는 국민들도 힘들어 죽겠는데, 본인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늘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이 바로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소모적인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인간은 얼마나 반생명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전락하게 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내용이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 길을 계속 반복해서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부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 점을 직시하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고,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답을 찾아내어, 그 길을 큰 길이 되도록 해보려고 일생을 길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월드컵 축구를 통해 생각해본
깨달음 문명의 사고방식
그렇다면 붓다께서 제시해준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최근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일이 뭐죠?
(대중 : 월드컵이요)
그렇죠. 월드컵 16강 진출.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 박수 한 번 치게요.
(일동 박수)
저는 월드컵 축구 16강 진출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식을 접하면서 깨달음의 문명의 사고방식에 연결시켜 생각해봤습니다. 선수 본인들이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이니 라는 말을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내용을 잘 관찰해보면 그렇다는 것이죠.
중도, 연기,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등으로 표현되 내용에 맞추어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인 응무소주이생기심의 정신으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16강 진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21세기약사경>에 ‘너도 빛나고 나도 빛나라’, ‘경쟁도 빛나고 협력도 빛나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도 팀 안에서는 개인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얼마나 많은 경쟁을 했겠습니까. 개인의 기량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수한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개인의 기량이라는 말 속에는 동시에 또 들어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겠어요. 바로 협력할 자리에는 온전하게 협력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경쟁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 부분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신사적으로 세련되게 경쟁을 하지만, 협력해야 될 자리에서는 정말로 자기 인생을 걸고 협력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온전하게 빛나도록 활동했기 때문에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기적같은 결과가 이루어진 것을, 불교교리인 중도연기라는 개념, 금강경의 무아론이나 무주상론, 또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의 사유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수들의 활동과 성과의 내용으로 볼 때, 금강경의 얘기를 갖고 와서 한마디로 적용해 보면 선수들이 불교를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응무소주이생기심의 사유방식을 온전하게 소화시킨 결과가 16강 진출이라는 말이 됩니다.
기꺼이! 지극정성으로!
기쁨과 희망을 만들어내는 기도수행을 하자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어쩌면 암담하고 암울한 심정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요즈음인데, 그 현실 속에서도 ‘그래 저거 참 좋다. 저거야말로 희망이구나. 그리고 저렇게 하면 아물함 속에서도 뭔가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자각과 용기를 국민들에게 선물한 사건이 바로 월드컵 16강 진출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들이 환호한 16강 진출의 성과가 공짜로 만들어졌습니까. 사실은 피눈물 나는 노력들이 있었죠. 어마어마한 인내의 과정, 노력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자칫하면 이기심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선수들이 이기심과 결별하는 용감한 결단들이 무수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평소 우리가 법회하면서 많이 강조됐던 말과 연결시켜 보면 ‘기꺼이 죽기 살기로’입니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기꺼이 죽기 살기로 그 자리에서 오롯하게 온전하게 책임 있게 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결과와 성과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는 얘기죠. 다른 작은 판도 잘 관찰해보면 곳곳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 삶이 건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지리산 천일결사와 약사여래천일기도가 잘 매듭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만일결사로 잘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여기 있는 우리들이 먼저 잘 공감하고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치 선수들이 잘 해야 온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흔연하게 이루어지듯이 우리가 잘 해야 바깥에 있는 신도님들이나 실상사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우리가 뜻하는 ‘깨달음의 문명전환’에 공감하고 지지하고 힘을 모으는 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천일을 잘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만일결사로 잘 나가기 위한 든든한 토대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오늘 시작하는 천일기도의 마지막 100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지극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잘 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오늘 얘기를 정리하겠습니다.
기쁨과 희망을 만들어내는 ‘깨달음의 문명’을 위해!
천일기도를 넘어 만일결사로
안녕하세요. 날이 많이 춥지요? 참을만 하십니까? (대중:네)
날씨도 춥고 며칠 사이에 모임도 겹치는데 오늘 꼭 법문을 해야 할까요?(웃음)
내용으로 보면 법문을 한다고 해도,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우리가 독송한 21세기 약사경에도 있는 내용이고, 발원문, 축원문, 권공에도 다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을 하는 것은, 불교전통의 종교의식만으로도 뜻이 명료해질 수 있으면, 굳이 다시 법문이라는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게 잘 안 되다 보니 뜻이 좀 더 명료하게 되게끔 해보려고 보충을 하는 셈입니다.
요즘에는 매일매일 몸으로 늙음을 경험하다 보니 주로 늙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늙으니까 몸이 부실하기도 하고 또 무력해지기도 하고 둔해지기도 하고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몸만 그런가 하고 또 살펴보니 사실은 마음도 머리도 다 마찬가지예요. 제게 중요한 역할로 주어진 것이 법문하는 건데, 제일 힘든 게 법문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오늘은 뭔 내용을 갖고 얘기를 해야 되지? 듣는 사람들이 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이 팔팔하게 돌아갈 적에는 생각이나 머리도 팔팔하게 돌아갔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되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또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되겠죠?
지리산천일결사 중에 약사여래 천일기도가 오늘로 이제 900일재입니다. 그리고 다시 첫마음으로 천일을 향해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어떻습니까. 천일기도에서 영험을 좀 보셨습니까?(웃음)
저는 천일기도의 성과로 큰 영험이 이루어진 것 하나를 봤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뭘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혹시 눈치 채신 분 계세요?
어쨌든 우리가 사부대중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천일결사를 함께 하고 그 결사 내용 중 하나로 천일기도를 해서 천일이 다 돼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 깜짝 놀랄 만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어요?
만일결사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대중 : 네)
주지스님이 앞장서서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문명전환을 염원하는 천일결사를 해보니까 천일 갖고는 안 되겠다, 만일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불씨 삼아 대중들이 이러쿵저러쿵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일결사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을 더 잘 채워내고 결사를 탄탄하게 해가는 것은 지속적인 과제이겠지만, 어쨌든 큰 맥락에서는 미혹의 문명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려면, 즉 21세기 약사경의 내용이 우리 삶이 되고 문화가 되도록 하려면, 우리가 만일 정도는 노력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내고, 결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저는 천일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들이 진화하고 성장한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요, 영험이요, 큰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기도한 만큼 안목이 넓어지고 또는 마음이 커지고 또 뜻도 더 커지고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탄탄해지고 그렇게만 된다면 어디 만일뿐이겠습니까. 100만일을 한들 못할 거 뭐 있으며, 또 힘들다고 주저앉을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동안 천일기도를 해온 것을 볼 때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점과 허술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천일기도 해보겠다고 처음 발의한 스님은 떠나버리고, 부전스님도 들락날락 바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겠다는 대중의 뜻과 마음의 힘이 모여 있기 때문에 방향을 놓치지 않고, 그런 상황에 크게 휘둘리거나 흐트러짐 없이 뚜벅뚜벅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만일결사라는 정말 큰마음을 내는 쪽으로 진화가 되었지요. 그것을 보면서 대중이 화합해서 함께 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 대중이 화합해서 함께 했을 때 어떤 내용으로 그 결과들이 나타나게 되고 있는지, 이를 아주 잘 보여준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모색해온 방향을 향하여 이제 천일결사에서 만일결사로 한걸음 내딛고자 뜻을 모으고 있는데,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그 삶이 어떻게 되고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그 삶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사례를 갖고 함께 생각해보는 것으로 오늘 법회를 대신할까 합니다.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삶의 사례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게 되면 저렇게 돼,” 하는 사례를 보여주는 장면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혹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혹시 있으세요?
아마 그 부분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정치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극단적인 반목과 다툼, 여당과 야당의 극단적인 반목과 다툼이 일상이 되어 있는데, 사실은 전 정권도 현 정권도 함께 살아야 할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정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볼 때 우리는 서로 편갈라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고 시원치 않은 것도 있고, 온갖 것이 다 있을 수밖에 없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가 머리를 맞대서 좋은 것은 잘 계승 · 발전하도록 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 넣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물론 그런 과정에서 책임을 물어야 될 일도 있으면 물어야 마땅하죠..
경험적으로 보면 어떤 일도 3자의 눈으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래, 전 정권의 그 문제는 좀 문제가 있어. 누군가가 좀 책임지고 바로 잡아야 돼.”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반대로 “현 정권이 갖고 있는 문제도 마찬가지야.”하고 합리적 의심에 합리적 답이 나오도록 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마치 전 정권과 현정권,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해서는 안 되는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극단적으로 분열하고 반목하고 다투고 있으니 나라가 한시도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보는 국민들도 힘들어 죽겠는데, 본인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늘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이 바로 미혹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소모적인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인간은 얼마나 반생명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전락하게 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내용이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 길을 계속 반복해서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부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 점을 직시하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고,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답을 찾아내어, 그 길을 큰 길이 되도록 해보려고 일생을 길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월드컵 축구를 통해 생각해본
깨달음 문명의 사고방식
그렇다면 붓다께서 제시해준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최근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일이 뭐죠?
(대중 : 월드컵이요)
그렇죠. 월드컵 16강 진출.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 박수 한 번 치게요.
(일동 박수)
저는 월드컵 축구 16강 진출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식을 접하면서 깨달음의 문명의 사고방식에 연결시켜 생각해봤습니다. 선수 본인들이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이니 라는 말을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내용을 잘 관찰해보면 그렇다는 것이죠.
중도, 연기,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등으로 표현되 내용에 맞추어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깨달음문명의 사고방식인 응무소주이생기심의 정신으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16강 진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21세기약사경>에 ‘너도 빛나고 나도 빛나라’, ‘경쟁도 빛나고 협력도 빛나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도 팀 안에서는 개인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얼마나 많은 경쟁을 했겠습니까. 개인의 기량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수한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개인의 기량이라는 말 속에는 동시에 또 들어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겠어요. 바로 협력할 자리에는 온전하게 협력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경쟁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 부분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신사적으로 세련되게 경쟁을 하지만, 협력해야 될 자리에서는 정말로 자기 인생을 걸고 협력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온전하게 빛나도록 활동했기 때문에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기적같은 결과가 이루어진 것을, 불교교리인 중도연기라는 개념, 금강경의 무아론이나 무주상론, 또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의 사유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수들의 활동과 성과의 내용으로 볼 때, 금강경의 얘기를 갖고 와서 한마디로 적용해 보면 선수들이 불교를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응무소주이생기심의 사유방식을 온전하게 소화시킨 결과가 16강 진출이라는 말이 됩니다.
기꺼이! 지극정성으로!
기쁨과 희망을 만들어내는 기도수행을 하자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어쩌면 암담하고 암울한 심정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요즈음인데, 그 현실 속에서도 ‘그래 저거 참 좋다. 저거야말로 희망이구나. 그리고 저렇게 하면 아물함 속에서도 뭔가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자각과 용기를 국민들에게 선물한 사건이 바로 월드컵 16강 진출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들이 환호한 16강 진출의 성과가 공짜로 만들어졌습니까. 사실은 피눈물 나는 노력들이 있었죠. 어마어마한 인내의 과정, 노력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자칫하면 이기심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선수들이 이기심과 결별하는 용감한 결단들이 무수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평소 우리가 법회하면서 많이 강조됐던 말과 연결시켜 보면 ‘기꺼이 죽기 살기로’입니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기꺼이 죽기 살기로 그 자리에서 오롯하게 온전하게 책임 있게 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결과와 성과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는 얘기죠. 다른 작은 판도 잘 관찰해보면 곳곳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 삶이 건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지리산 천일결사와 약사여래천일기도가 잘 매듭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만일결사로 잘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여기 있는 우리들이 먼저 잘 공감하고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치 선수들이 잘 해야 온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흔연하게 이루어지듯이 우리가 잘 해야 바깥에 있는 신도님들이나 실상사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우리가 뜻하는 ‘깨달음의 문명전환’에 공감하고 지지하고 힘을 모으는 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천일을 잘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만일결사로 잘 나가기 위한 든든한 토대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오늘 시작하는 천일기도의 마지막 100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지극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잘 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오늘 얘기를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