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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법어[불기2569(2025년)년 지리산 마을절 실상사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어] - 본래붓다로 사는 길


불기2569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어

 

오늘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복된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 안의 본래부처가 깨어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기념도 하지만, 우리 삶을 돌아보고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함께 묻는 자리입니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날입니다.

 

2,600여 년 전,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에 부처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시대, 죄 많은 업보중생이라는 가짜뉴스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부처님께서는 크게 외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이 외침은 절망의 어둠을 걷어내는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삶을 내가 창조할 수 있다는 선포, 삶을 뭇 생명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거룩한 서원이었습니다.

 

이 외침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전염병, 혐오, 분열, 경쟁, 전쟁으로 복잡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진영 간 갈등은 깊어졌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는 점점 날카로워졌습니다. 편을 갈라 목숨 걸고 싸우고, 상대를 부정하고 혐오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중도의 길을 다시 여는 일입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데 그 길을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도의 대화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정반대의 입장인 사람과도 중도의 대화를 해야 합니다.

 

중도의 길 위에서만 실상이 드러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실상을 놓치면 갈등은 더 깊어지고, 진리는 멀어집니다.

 

요즈음 주목해야 할 중요한 화두가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환영합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오신다면 AI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틀림없이 부처님은 AI와도 동고동락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AI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 가지 조건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AI는 감정도 없고 자비심도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쓰느냐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도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비심으로 관계 맺는다면, 그 또한 수행의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말이 있다면, 멋진 삶을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본래붓다’라는 말이겠죠? 우리는 죄 많은 업보중생이 아니라, 본래부터 붓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입어야 할 반야바라밀의 갑옷이고, 발심과 원력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안 드려 봅니다. 우리 각자, 스스로 이렇게 다짐해 보면 어떨까요. “그래, 이제 나는 본래붓다로 살겠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 내 관계 하나하나를 자비심으로 짓겠다. 갈등과 혐오보다는 공존과 협동의 길을 선택하겠다.”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살아가는 게 바로 반야바라밀행이고, 그게 지혜의 등불을 하나 켜는 일입니다. 그 등불이 하나 둘 모이면, 이 땅에도 생명평화의 세상, 정토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생명평화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문명전환을 염원하며 지리산에서 시작된 만일결사는 누구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발심과 원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래붓다로 살겠다는 다짐이 모이고 모여야, 이 시대 문명의 전환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걸어가야 할 문명전환의 길이고, 오늘 부처님 오신 날 우리가 새겨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더욱 고립되고, 관계는 단절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깨달음의 문명, 더불어 사는 길, 다 함께 괜찮아지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내가 선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작은 실천입니다. 나의 말, 나의 눈빛, 나의 손길 하나에 자비가 깃들기를 서원하며 살아가는 것. 그 일상이 곧 수행이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고, 함께 괜찮아지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여기에 모인 우리가 함께 걸어가면 그 붓다의 길이 세상을 밝힙니다. 허심탄회한 중도의 대화로 미혹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길을 열어갑시다. 오늘 함께 하시는 한 분 한 분들이 본래붓다임을 알고 본래붓다의 길을 내딛는 오늘이길 바랍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불기 2569(2025)년 부처님 오신 날에

실상사 회주 도법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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