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영상모음


보현법회[2025년 9월 지리산 실상사 보현법회 - 도법스님]-"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잘 부리는 삶"

2025-12-09
조회수 166



9월 보현법회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잘 부리는 삶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입니다.

저는 사실 오늘이 보현법회 날인 걸 깜빡했어요. 어젯밤이 되어서야 ‘아, 내일이 보현법회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최근에 제가 중도(中道)에 대한 공부 이야기를 준비해 둔 법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선덕사에서도 하고, 수현사에서도 하고, 어제는 인드라망 서울 도량에서도 했던 내용이에요. 그래서 ‘오늘 늦게 알았지만 그 내용을 가지고 법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자료를 저만 갖고 있어서 함께 나누기에는 효과적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대로 묻고 답하는 것을 좀 더 잘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애초의 취지에 맞춰서 오늘은 별도의 법문보다는, 서로 묻고 답하며 공부하는 그 자리 자체를 중심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한번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금 만약 이 자리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부처님이 도둑질을 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배운 대로 생각해 보면, 도둑질을 하는 순간 도둑이 되는 것이죠.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 예수님이 도둑질을 하면 어떨까요? 그분은 독생자이기 때문에 도둑질을 해도 도둑이 안 되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더라도 도둑질을 하는 순간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사람은 그때그때 행위 하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전생에 죄가 있느냐 없느냐, 혹은 어떤 업을 지었느냐 하는 것과 관계없이, 지금 내가 어떻게 행위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그 부분을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하는 것이 사실은 수행의 핵심이고,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약사경의 가르침과 평등심의 실천


지금 우리는 보현법회 의식을 마쳤습니다. 먼저 약사경 독송했고, 약사여래 정근을 했으며, 이어서 축원을 올렸습니다. 그렇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우리의 정성과 마음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우리는 약사경을 독송한 사람들, 약사여래 정근을 한 사람들, 그리고 약사여래 전에 축원을 올린 사람들입니다. 즉, 부처님을 향해 뭇생명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헌신정진 하겠노라고 발심하고 서원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독송한 약사경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내용을 다 압축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차별의 마음을 내려놓고 살겠다.”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차별의 마음을 버리고, 평등의 마음이 생활화되도록 하겠다는 다짐, 이것이 약사경의 요지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일상 속에 가져와 봅시다. 가정 안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 안에서도, 또는 내가 인연 맺고 있는 마을이나 단체 안에서도 진실로 차별의 마음을 내려놓고 평등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 삶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그 집안 살림이나 절 살림, 동네 살림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차별심을 내려놓고 평등심으로 살아간다”는 이말에 우리가 조금 더 충실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극정성을 다해 차별심 내려놓고 평등심으로 살아간다면,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貪瞋癡) - 탐욕, 성냄, 어리석음뿐 아니라 자만, 오만, 독선, 이기심, 권위주의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내려놓아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붓다로 살자 발원문’에 담긴 뜻대로 자연과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존재를 고마운 인연으로 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또 내가 다루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귀한 존재이기도 하고, 또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귀한 존재이기에 소중하게 관계하고 고마운 존재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하게 됩니다.
만약 이런 마음이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사고가 되고, 언어가 되고, 행동이 되고, 생활이 되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기도가 있을까요? 그보다 더한 수행이 있을까요? 그보다 더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평소에 별생각 없이 독송하고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깊은 수행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용이 생활화 되도록 일상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늘 꿈꾸어 온 것처럼 ‘삶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삶이 되는 길’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어디 가서 특별하게 따로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참선하거나, 특별한 것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삶이 바로 진정한 기도고 진정한 수행이라고 확신해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억울한 일의 회상과 평화적 합의의 의미


이제 제 근황 중에 하나로, 어제 제가 서울 도량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여러분께 주문 하려고 합니다.(웃음)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까 풀어야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억울한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 상당한 세월이 흘러간 이야기였습니다. 어쨌든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겐 그 일이 기억 속에서 작동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곳에서는 그 기억이 다시 들춰지고, 또 얘기가 진행 되고 있었습니다.
벌써 잊어먹고 있었던 일인데, 막상 내용을 들어보니까 억울한 내용이예요. 내가 억울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예요. 억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아마 여러분들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정확한 햇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화쟁위원장으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을 와서 그 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조계사를 찾아왔으니, 조계종단에서는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화쟁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제가 중심이 돼서 다뤄보자 해서 결국 그 일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달곰 정웅기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상균 위원장이 비록 피신 중이었지만 꼭 해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을 위해, 민주노총을 위해, 그는 여전히 싸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거죠. 그건 일종의 대정부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계사에 피신해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고,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그가 해야 할 많은 이야기와 요구들을 그 짧은 시간에 다 풀어놓는다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 복잡한 문제들을 몇 가지로 압축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2차 민중궐기대회’를 평화적으로 치르자는 것이였습니다. 그 당시 궐기대회가 강경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해 온 것도 그 폭력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화 끝에 합의한 것이, 이번 2차 민중궐기대회는 반드시 평화로운 집회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진 출두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함께 합의하고 실천한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 평화로운 집회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진 출두 역시 많은 대화를 거쳐 합의한 끝에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이후로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처럼 예우를 받은 적은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그 일은 서로 간의 신뢰와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평화 집회도 그렇고,자진 출두도 그렇고, 합의해서 했기 때문에 종단에서도 민주노총 위원장이 안전하게 보호 받으며 자진 출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자진 출두하는 날, 모든 언론사들이 조계사 앞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얘기하면 다 생중계 되는 거예요. 한상균 위원장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그리고 당당히 할 수 있도록 기자회견을 잘 준비해 드렸습니다.
종단 사람들이 다 나와서, 보호하고 그리고 기자회견을 잘 할 수 있도록 길도 안내했습니다. 그날,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중앞에서 발언을 하는데 모든 언론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했습니다. 민주노총 출범 이후 그런 현장은 한 번도 없었으리라고 봐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평화 집회 하자’, ‘자진 출두하자’ 이 두 가지를 함께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합의가 없었다면, 그런 평화로운 장면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제 인드라망 창립 때부터 함께 활동해 오신 고마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들은 인드라망 만들 때부터 활동을 했던 분들이고, 한 분은 생명평화결사에서 같이 했던 분이고, 한 분은 인드라망 지도위원 역할도 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들이 ‘도법 스님이 한상균 위원장을 경찰한테 넘겨줬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민주노총 쪽에서, 혹은 진보진영 쪽에서 실제 상황하고는 관계없이 사실과 다르게 이런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회원들은 속상할 수 밖에 없죠.
인드라망 대표인 ‘도법스님이 그랬다’고 하니 마음이 아픈 것이죠. 어제 그분들이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경찰에게 넘겼는지, 혹은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분들은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실제로 그때 인드라망도 피해가 제법 있었습니다. 어제 이야기를 정리하면, 두가지가 핵심입니다.

 

첫째, 평화 집회를 하자.

둘째, 자진 출두를 하자.

 

이 두 가지는 민주노총을 위해 평화 집회를 하고 자진 출두를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합의를 하고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현장에서 일해 보면 모든 것이 논의와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우어진 일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평소 민주노총이 조직 동원을 하면 한 2만 명 정도 모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평화 집회에서는 약 3만 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부와 경찰 쪽을 제외하고,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평화 집회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끌려가듯 진행되었다면, 참여자들은 비참하게 다뤄지고 기자회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합의를 통해 자진출두를 했기 때문에 민주노총 위원장은 장군이 큰 공을 세울 때처럼 위풍당당하게 입장할 수 있었고, 기자회견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논의와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평화적 접근과 합의는 단순히 민주노총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도 바람직한 영향과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도 합의와 평화적 절차가 효과적이라는 사례를 보여준 것입니다.

어제 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제 내용으로 볼 때, 이 일이 창피한 일인가, 아니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 일인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두고두고 만천하에 자랑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여전히 한상균 위원장을 경찰에 넘겼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드라망 또는 본인인 나는 억울합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푸는 길을 여러분들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발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은 회장님이 알아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회장님:예. 제가 듣기로는 억울함이 풀린 것 같은데요.
스님: 아니, 억울해요. 왜, 무슨 소리예요?
회장님: 여기에 아, 이렇게 했으면... 그런 분 계세요? 우리 보살님들 많이 오셨습니다. 보살님들이 누가 대표로 한번 말씀해 보시죠.
마이크 울렁증이 있어서 못 옵니까? 그럼 회주 스님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소 타고 소 찾는 이야기’ - 불교 수행의 단순명료한 핵심

 

어쨌든 실상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오셨듯이, 실상사는 한국 불교의 선불교 도량으로 처음 만들어진 곳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서 이곳을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선불교 사고방식 중의 하나인 ‘소 타고 소 찾는 이야기’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이 이야기를 통해 불교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불교 수행도 일상 속에서 즉각즉각 실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는 워낙 방대하여 복잡하고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단순 명료하게 설명되면서, 생활 속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불교의 길을 늘 고민해 왔습니다.
그 길을 찾고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시도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온 셈입니다. 최근에는 이 사고방식으로 전체 불교를 엮어 보고, 부처님 생애와 전체 불교를 설명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소 타고 소 찾는 사고방식’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긴 얘기는 다 할 수가 없지만, 선불교 도량을 찾으신 선물로, 선불교 사고 방식의 하나인 ‘소 타고 소 찾는 이야기’를 설명할까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누구나 예외 없이, 너든 나든, 남자든 여자든, 깨달은 사람이든 못 깨달은 사람이든, 부처든 중생이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모두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의하시죠? 나는 몸과 마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으시죠?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이 바로 몸과 마음이며, 이를 소로 비유한 것이 ‘소 타고 소 찾는 이야기’입니다. 즉, 우리는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소를 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부처님이나 나, 불교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없이 다 똑같습니다. 불교 신자건 아니건 관계없이. 누구나 다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타고 있습니다.
그럼 부처님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소를 타고 있는 건 똑같은데 그다음으로 가면 달라집니다. 부처님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잘 알고 살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소 찾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큽니다.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소를 잘 부려서 멋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모르고 살면 맨날 소를 찾아 동분서주하다 허망하게 끝나게 됩니다.

대부분 우리는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 찾아 헤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헤매고, 신체적으로도 헤매고, 하늘로 갔다 땅속으로 갔다, 전생으로 갔다 내 생으로 갔다, 히말라야로 갔다 티베트로 갔다, 천당으로 갔다 등 온갖 곳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세속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을 쫓는 것이 모두 소를 찾아 헤매는 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봐야 본인이 찾고 싶은 인생 답이 안 나옵니다. 종교적으로도 다르지 않습니다. 천당, 극락, 해탈, 열반, 깨달음, 삼매, 신비, 기적, 불가사의 등 이런 것들을 좋다고 생각하여 찾아 헤매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인생을 마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소를 잘 부리는 길 ― 팔정도, 육바라밀, 일일부작, 일일불식


우리가 모두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되면, 그 즉시 소를 찾아 헤매는 삶은 끝납니다. 대신, 소를 마음껏 잘 부려서 내가 살고 싶은 멋있는 삶을 내 마음껏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소를 탄 줄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소 탄줄 알고 살아가는 좋은 친구, 좋은 스승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좋은 친구나 스승을 만나 잘 묻고 배우면,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도 바로 그걸 배우고, 즉각적으로 소 찾아 헤매는 삶을 바로 멈추고, 소를 마음껏 부려서 멋있는 삶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두 번째, 만약에 그런 스승을 못 만나면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관찰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 자기 자신에게 맞춰서 관찰을 해보면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배움을 통해서 아는 방법은 교학불교라 하고 자기를 잘 관찰함으로써 아는 방법은 선불교라고 하는데 이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로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리입니다.
소 탄 줄을 알았다면 그다음은 소를 잘 부리는 일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에게는 도깨비 방망이가 하나씩 주어진 것과 같습니다. 도깨비 방망이도 잘써야 좋은 내용이 만들어지듯 내가 타고 있는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소도 잘 부려야 합니다. 잘못 부리면 엉뚱하게 되고, 제대로 부리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소를 잘 부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소가 뭘 하고 있지하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물으면 그 즉시 내 몸과 마음이라는 소가 뭘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타고 있는 몸과 마음이라는 소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내 몸과 마음이라는 소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소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지금 법문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즉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집중적으로 지속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다른 생각이 자꾸 끼어들고, 쓸데없는 걱정이 떠오르거나, 옛날 기억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내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좋은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나쁜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얼른 정신 차려서 좋은 쪽으로 작동이 되도록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를 부리는 일입니다.

 

인간은 행위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타고 살아갑니다. 불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일까요? 초기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를,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말합니다.
즉, 내 몸과 마음을 팔정도가 생활화되도록 쓰는 것, 또는 육바라밀이 생활화되도록 쓰는 것이 곧 소를 잘 부리는 것입니다.
팔정도가 생활화된다면 어떨까요? 육바라밀이 생활화된다면 어떨까요? 저는 여러분이 살고 싶은 최고의 삶이 바로 팔정도나 육바라밀이 생활화되는 순간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금 여기, 나는 몸과 마음이라는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이미 소를 타고 있으니, 더 이상 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소를 찾는 일은 바로 멈추고 이제는 소를 잘 부리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소를 잘 부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초기불교적으로는 팔정도를 생활화하는 것,

대승불교적으로는 육바라밀을 생활화하는 것

선불교적으로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을 생활화 하는 것입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이란, 우리말로 풀면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뜻으로 즉 건전하고 바람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결국 초기 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소를 잘 부려서 멋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불교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정리해서, 일상 속에서 생활화하기만 하면, 불교 공부와 수행을 야물딱지게 잘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틀림이 없다. 그 점을 확신해도 좋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0 0

최신

많이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