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덥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백장암 대중들과 실상사 대중들은 안거를 무탈하게 잘 지냈다고 하니까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이번 여름이 워낙 더우니까 ‘이 더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더위는 나에게 악마인가, 부처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이 지독한 더위가 나에게 악마인가, 부처인가?’ 이렇게 물어보면 두 개의 대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감각에 맞추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면 더위는 악마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각적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 더위를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봐도 별 수 없고 저렇게 해봐도 별 수 없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귀찮고 힘듭니다.
내 감각적으로는 그러하지만 실제는 어떨까요? 조목조목 확인해 보면 여름 더위 덕택에 저 마당에 흰 배롱꽃이 피어나서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여름 더위 덕택에 저 싱그러운 매미 소리도 기분 좋게 듣고 음미할 수 있습니다. 또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숲을 만나기도 하고 숲속을 거닐 수도 있고 숲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 더위 덕택에 들판의 벼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결실을 맺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매일 만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제 내용을 검토해 보면 여름 더위는 부처님입니다.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주고 생명이 건강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각자 자기 삶을 마음껏 창조해 낼 수 있도록 해주는 너무나 귀하고 고마운 존재가 여름 더위입니다. 이렇게 여름 더위가 악마가 아니라 부처님처럼 귀하고 고마운 존재라면 여름 더위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기꺼이 최선을 다해서 여름 더위와 잘 어울리고 잘 사귀고 잘 적응하고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기도 하고 또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하고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감각의 노예가 되어서 감각에 끌려다니거나 지배를 받거나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감각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각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그런 입장에서 내 삶의 실력과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겠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보며 지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한두 시간이라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더위와 함께 해 보고자 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듯이, 부처님을 사귀듯이, 부처님과 대화하듯이, 부처님과 함께하듯이 더위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형편이 되면 오후에 한두 시간 더위와 함께 걷는 생활을 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꺼이 작심하고 ‘기분 좋게 더위와 함께 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한두 시간 걸어보니까 제법 괜찮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의미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 맛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유익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건강에도 그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피할 수 없는 여름 더위의 내용을 이와 같이 사실적으로 잘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는 지혜와 용기와 실력을 가꾸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여름 더위가 내 삶의 질적 변화와 향상을 가져오는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붓다로 살자 불교
제가 실상사에서 하는 불교를 ‘붓다로 살자 불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만들어서 같이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결사본부장 할 때 ‘붓다로 살자 불교’에 대해 종단적으로 논의했습니다. (古)고우스님, 정명스님, 또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무비스님 등 불교계 각계를 대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초기불교에서 선종불교. 그리고 현대불교와 미래불교까지 관통시킬 수 있는 불교관과 실천론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결사운동의 핵심 내용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모았습니다. 이런 요구들이 있어서 결사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그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내용입니다.‘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고 하는 틀을 가지고 보면 초기불교에서 현대불교, 더 나아가 미래불교까지 관통하는 불교관과 실천론이 될 수 있겠다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틀에 맞추어서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살을 붙이는 작업은 하지 못 하고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때 작업했던 자료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야기가 복잡하니까 단순화시켜서 발원문과 관계된 내용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 나옹선사 발원문의 현대판
제가 가끔 나옹선사 발원문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제가 접한 발원문 중에서는 선종불교와 미래불교까지 관통될 수 있는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발원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나 표현이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옹선사 발원문을 현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각색한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제 개인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내용이 아닙니다. 종단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런 대화를 압축해서 현대적 언어로 만들어낸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나옹선사의 발원문과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나옹선사 발원문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고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현대에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차이만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두 발원문이 서로 비교 될 수 있도록 함께 읽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나옹선사 발원문은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문으로 읽으면 내용을 알기 어려우니까 한글로 풀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한글로 풀어 쓴 내용입니다.
원하오니 제가 언제 어디에서나 반야바라밀의 길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소서.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양극단의 길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길인 중도의 길을 가신 저 본사세존의 용맹스러운 지혜여!
여기서 ‘본사세존’은 역사적인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칭합니다.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자신의 참모습이 인드라망 존재인 본래 붓다임을 참되게 알고 그 앎을 삶으로 완성하신 저 노사나 부처님의 큰 깨달음이여!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길을 잘 안내하는 저 문수보살의 큰 지혜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을 참되게 실천하는 저 보현보살의 큰 행원이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으로 피눈물의 현장에서 해탈의 길을 열고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는 저 지장보살의 큰 원력이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으로 외롭고 슬픈 일을 보살피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시는 저 관세음보살의 큰 자비시여!
시방삼세 온갖 삶의 현장에서 뭇 생명들을 평화롭게 하리다.내 이름 듣는 이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내 모습 보는 이 바로 해탈의 길 가게 하소서.세세생생토록 이와 같은 전법 교화 활동 생활화로 마침내 붓다와 중생 차별 없는 삶, 차별 없는 세상 이루리다.원컨대 정법을 수호하는 선신들이시어 항상 저희의 전법교화 활동 옹호하여 어려운 곳에서도 어려움 없이 저희의 큰 서원 원만 성취하게 하옵소서.마하반야 바라밀.
이것이 나옹스님의 발원문을 우리말로 풀어낸 내용입니다. 우리말로 풀어도 알기 쉽지 않은 내용이 많습니다. 막연하게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다만 오늘은 한번 듣고 참고적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우리말로 풀어쓴 나옹선사 발원문을 낭독해 드렸습니다.나옹선사 발원문의 정신을 잘 녹이고 녹여서 현대적 언어로 만든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늘 읽는 것이긴 하지만 나옹스님의 발원문과 비교해서 들어본 적은 없으니 오늘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
신기하고 신기하도다.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보니 사람이 그대로 오롯한 붓다이네.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어리석음과 착각에 빠져 붓다인 사람이 중생 노릇하고 있네.
한심하고 한심하도다.
언제나 분주하고 고달프게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네.
내 이제 마땅히 중생이라는 낡은 믿음을 버리게 하리.갈피 못 잡고 헤맴에서 깨어나게 하리.
그리하여 지금 당장 붓다처럼 정신 차린 사람, 평화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자비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소박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자유로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천지를 진동시킨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을 간절히 두 손 모아 가슴에 새깁니다.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한 생명 빠짐없이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이끌었던 붓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저희 또한 지금 여기서 거룩한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고귀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진실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고귀하고 진실하고 겸허한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평등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정의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따뜻하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평화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소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소박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평화롭고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붓다임을 한시도 잊지 않으며 온 세상이 생명평화 공동체가 되는 그날까지 붓다로 살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하고자 하오니 거룩한 삼보이시어 저희의 굳은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지켜주소서.
마하반야 바라밀
내용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시지요? 그렇지만 담고자 하는 내용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독송하는 천수경의 개경계(開經偈)에는 ‘여래의 진실한 뜻’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경게에서는 ‘여래의 진실한 뜻을 잘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합니다. 이와 같이 나옹선사 발원문도 여래의 진실한 뜻이 잘 담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발원문입니다. 그 발원문처럼 붓다로 살자 발원문도 여래의 진실한 뜻이 잘 드러나게 현대적 언어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안거 때는 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서 함께 수행 생활을 합니다. 안거 생활이 그러하다면, 해제 기간은 본인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적재적소에 맞게 수행도 하고 대중들과 대화도 하는 시간입니다. 또 탁마와 향상이 이루어지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는 기간이 해제 기간 삼 개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거 때에는 규칙을 정해서 그곳에 모인 대중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해제 때에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또는 무작위 대중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탁마하면서 함께 향상되도록 살아가는 것이 해제 기간 수행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나옹선사 발원문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다로 살자 발원문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불교 공부와 수행을 하는 불자의 입장에서는 불교 내용을 세세하게 풀어놓으면 양이 너무나 많아져서 종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다 종합해서 잘 녹여내고 녹여내서 압축적으로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표현한 내용이 나옹스님의 발원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고 있는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더 압축하고 줄여서 줄이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고 하는 이 압축된 한마디를 늘 기억하고 그 뜻을 거듭거듭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불교 공부와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 시대의 스승으로 평가받는 달라이라마 스님의 표현으로 더 압축해서 말하면 ‘공성의 지혜와 자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 식으로 더 압축하면 ‘지혜와 자비의 길’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표현은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하고 이렇게 표현되기도 하고 저렇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여래의 진실한 뜻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압축되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산철에는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불교관과 실천론이 내 삶의 기본바탕이 되도록 마음 쓰고 해제 살림살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머물러 있는 분이나 바깥으로 떠나는 분 모두,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에게도 유익하고 만나는 대중들에게도 유익한 산철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산철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4. 8. 18 하안거해제법회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 여래의 진실한 뜻, 그 한마디 -
더위는 악마인가 부처인가
참 덥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백장암 대중들과 실상사 대중들은 안거를 무탈하게 잘 지냈다고 하니까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이번 여름이 워낙 더우니까 ‘이 더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더위는 나에게 악마인가, 부처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이 지독한 더위가 나에게 악마인가, 부처인가?’ 이렇게 물어보면 두 개의 대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감각에 맞추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면 더위는 악마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각적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 더위를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봐도 별 수 없고 저렇게 해봐도 별 수 없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귀찮고 힘듭니다.
내 감각적으로는 그러하지만 실제는 어떨까요? 조목조목 확인해 보면 여름 더위 덕택에 저 마당에 흰 배롱꽃이 피어나서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여름 더위 덕택에 저 싱그러운 매미 소리도 기분 좋게 듣고 음미할 수 있습니다. 또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숲을 만나기도 하고 숲속을 거닐 수도 있고 숲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 더위 덕택에 들판의 벼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결실을 맺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매일 만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제 내용을 검토해 보면 여름 더위는 부처님입니다.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주고 생명이 건강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각자 자기 삶을 마음껏 창조해 낼 수 있도록 해주는 너무나 귀하고 고마운 존재가 여름 더위입니다. 이렇게 여름 더위가 악마가 아니라 부처님처럼 귀하고 고마운 존재라면 여름 더위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기꺼이 최선을 다해서 여름 더위와 잘 어울리고 잘 사귀고 잘 적응하고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기도 하고 또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하고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감각의 노예가 되어서 감각에 끌려다니거나 지배를 받거나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감각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각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그런 입장에서 내 삶의 실력과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겠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보며 지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한두 시간이라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더위와 함께 해 보고자 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듯이, 부처님을 사귀듯이, 부처님과 대화하듯이, 부처님과 함께하듯이 더위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형편이 되면 오후에 한두 시간 더위와 함께 걷는 생활을 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꺼이 작심하고 ‘기분 좋게 더위와 함께 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한두 시간 걸어보니까 제법 괜찮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의미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 맛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유익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건강에도 그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피할 수 없는 여름 더위의 내용을 이와 같이 사실적으로 잘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는 지혜와 용기와 실력을 가꾸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여름 더위가 내 삶의 질적 변화와 향상을 가져오는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붓다로 살자 불교
제가 실상사에서 하는 불교를 ‘붓다로 살자 불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만들어서 같이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결사본부장 할 때 ‘붓다로 살자 불교’에 대해 종단적으로 논의했습니다. (古)고우스님, 정명스님, 또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무비스님 등 불교계 각계를 대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초기불교에서 선종불교. 그리고 현대불교와 미래불교까지 관통시킬 수 있는 불교관과 실천론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결사운동의 핵심 내용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모았습니다. 이런 요구들이 있어서 결사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그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내용입니다.‘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고 하는 틀을 가지고 보면 초기불교에서 현대불교, 더 나아가 미래불교까지 관통하는 불교관과 실천론이 될 수 있겠다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틀에 맞추어서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살을 붙이는 작업은 하지 못 하고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때 작업했던 자료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야기가 복잡하니까 단순화시켜서 발원문과 관계된 내용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 나옹선사 발원문의 현대판
제가 가끔 나옹선사 발원문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제가 접한 발원문 중에서는 선종불교와 미래불교까지 관통될 수 있는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발원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나 표현이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옹선사 발원문을 현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각색한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제 개인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내용이 아닙니다. 종단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런 대화를 압축해서 현대적 언어로 만들어낸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나옹선사의 발원문과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나옹선사 발원문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고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현대에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차이만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두 발원문이 서로 비교 될 수 있도록 함께 읽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나옹선사 발원문은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문으로 읽으면 내용을 알기 어려우니까 한글로 풀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한글로 풀어 쓴 내용입니다.
원하오니 제가 언제 어디에서나 반야바라밀의 길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소서.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양극단의 길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길인 중도의 길을 가신 저 본사세존의 용맹스러운 지혜여!
여기서 ‘본사세존’은 역사적인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칭합니다.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자신의 참모습이 인드라망 존재인 본래 붓다임을 참되게 알고 그 앎을 삶으로 완성하신 저 노사나 부처님의 큰 깨달음이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대승불교 불신론의 내용입니다.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길을 잘 안내하는 저 문수보살의 큰 지혜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을 참되게 실천하는 저 보현보살의 큰 행원이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으로 피눈물의 현장에서 해탈의 길을 열고자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는 저 지장보살의 큰 원력이여!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주어진 일상에서 매 순간순간 붓다처럼 참되게 알고 그 앎으로 외롭고 슬픈 일을 보살피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시는 저 관세음보살의 큰 자비시여!
시방삼세 온갖 삶의 현장에서 뭇 생명들을 평화롭게 하리다.내 이름 듣는 이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내 모습 보는 이 바로 해탈의 길 가게 하소서.세세생생토록 이와 같은 전법 교화 활동 생활화로 마침내 붓다와 중생 차별 없는 삶, 차별 없는 세상 이루리다.원컨대 정법을 수호하는 선신들이시어 항상 저희의 전법교화 활동 옹호하여 어려운 곳에서도 어려움 없이 저희의 큰 서원 원만 성취하게 하옵소서.마하반야 바라밀.
이것이 나옹스님의 발원문을 우리말로 풀어낸 내용입니다. 우리말로 풀어도 알기 쉽지 않은 내용이 많습니다. 막연하게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다만 오늘은 한번 듣고 참고적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우리말로 풀어쓴 나옹선사 발원문을 낭독해 드렸습니다.나옹선사 발원문의 정신을 잘 녹이고 녹여서 현대적 언어로 만든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입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늘 읽는 것이긴 하지만 나옹스님의 발원문과 비교해서 들어본 적은 없으니 오늘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
신기하고 신기하도다.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보니 사람이 그대로 오롯한 붓다이네.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어리석음과 착각에 빠져 붓다인 사람이 중생 노릇하고 있네.
한심하고 한심하도다.
언제나 분주하고 고달프게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네.
내 이제 마땅히 중생이라는 낡은 믿음을 버리게 하리.갈피 못 잡고 헤맴에서 깨어나게 하리.
그리하여 지금 당장 붓다처럼 정신 차린 사람, 평화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자비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소박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자유로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천지를 진동시킨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을 간절히 두 손 모아 가슴에 새깁니다.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한 생명 빠짐없이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이끌었던 붓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저희 또한 지금 여기서 거룩한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고귀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진실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고귀하고 진실하고 겸허한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평등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정의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따뜻하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평화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소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소박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그리하여 지금 당장 평화롭고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붓다임을 한시도 잊지 않으며 온 세상이 생명평화 공동체가 되는 그날까지 붓다로 살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하고자 하오니 거룩한 삼보이시어 저희의 굳은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지켜주소서.
마하반야 바라밀
내용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시지요? 그렇지만 담고자 하는 내용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독송하는 천수경의 개경계(開經偈)에는 ‘여래의 진실한 뜻’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경게에서는 ‘여래의 진실한 뜻을 잘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합니다. 이와 같이 나옹선사 발원문도 여래의 진실한 뜻이 잘 담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발원문입니다. 그 발원문처럼 붓다로 살자 발원문도 여래의 진실한 뜻이 잘 드러나게 현대적 언어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안거 때는 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서 함께 수행 생활을 합니다. 안거 생활이 그러하다면, 해제 기간은 본인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적재적소에 맞게 수행도 하고 대중들과 대화도 하는 시간입니다. 또 탁마와 향상이 이루어지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는 기간이 해제 기간 삼 개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거 때에는 규칙을 정해서 그곳에 모인 대중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해제 때에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또는 무작위 대중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탁마하면서 함께 향상되도록 살아가는 것이 해제 기간 수행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나옹선사 발원문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다로 살자 발원문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불교 공부와 수행을 하는 불자의 입장에서는 불교 내용을 세세하게 풀어놓으면 양이 너무나 많아져서 종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다 종합해서 잘 녹여내고 녹여내서 압축적으로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표현한 내용이 나옹스님의 발원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고 있는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더 압축하고 줄여서 줄이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라고 하는 이 압축된 한마디를 늘 기억하고 그 뜻을 거듭거듭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불교 공부와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 시대의 스승으로 평가받는 달라이라마 스님의 표현으로 더 압축해서 말하면 ‘공성의 지혜와 자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 식으로 더 압축하면 ‘지혜와 자비의 길’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표현은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하고 이렇게 표현되기도 하고 저렇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여래의 진실한 뜻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압축되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산철에는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불교관과 실천론이 내 삶의 기본바탕이 되도록 마음 쓰고 해제 살림살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머물러 있는 분이나 바깥으로 떠나는 분 모두,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에게도 유익하고 만나는 대중들에게도 유익한 산철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산철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