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근래에 금강경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인연이 만들어져서 아직도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화두처럼 금강경을 가지고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면서 살고 있는 것이 저의 근황입니다. 문명전환, 우리가 지금 미혹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나아가 보자고 만일결사를 하고 있는데, 금강경에서는 미혹의 문명과 깨달음의 문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금강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주상(無住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상(四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모두 묶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아상은 왜 생겨나는가, 어떻게 버릴 것인가?,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그런데 이 내용이 뭔가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 우리가 현실의 삶을 사는데 어떻게 작동되고 적용되고 도움이 되는지 명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금강경에는 ‘아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상에 머물지 마라’, ‘상을 버려라’, ‘나라는 상을 내려놔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무주상(無住相)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대표적인 경전이 금강경입니다.왜 그렇게 줄기차게 아상을 문제 삼을까? 우리는 아상(我相) 또는 무주상(無住相)을 주로 자기 수행이라는 관점에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실제 현장의 삶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일상생활에서 아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어떤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소소한 것들이 많겠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니까 우리가 기억하는 큰 사건을 사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① 한국전쟁의 원인도 아상(我相)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한국전쟁과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점에, 북쪽은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있고 남쪽에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길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보면 바로 이 아상의 사유방식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상의 사유방식으로 사는 것이 곧 미혹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상의 사유방식으로 살게 되면 끊임없는 분열과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분열과 다툼이 생기는데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진전시켜보겠습니다. 김일성은 뭐라고 주장했을까요? 소위 말해 ‘좌익이 옳아’, ‘내가 좌익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 옳아’,‘우익, 너는 틀렸어. 너는 비켜. 아니 사라져.’하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입니다. 김일성만 그랬겠습니까? 이승만도 마찬가지죠.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 라는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폭발한 사건이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입니다.
곰곰이 우리 일상을 들여다보면 작은 동네나 큰 동네나 어떤 문제들이 생겼을 때 ‘문제가 왜 생겼을까?’하고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집단적으로 작동해서 큰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조금만 주의 기우려 살펴보면 아상의 문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② 세계대전의 원인도 아상(我相)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더 큰 사건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고 살펴보니, 히틀러의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독일 순혈주의.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악마화 했습니다. 점점 진화하여 2차 대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점에는 히틀러가 가지고 있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역시 평소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고 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대부분은 거기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사고방식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색안경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물건이 하나 있는데 누구는 붉은색 안경을 쓰고 ‘이 물건은 붉은색 물건이네’ 하고 단정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我相)의 사고방식입니다. 또 누군가는 검은색 안경을 쓰고 ‘이것은 검은 물건이네’ 이렇게 단정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노란색 안경, 초록색 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해 봅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이 물건은 붉은 물건인가요? 검은 물건인가요? 노란 물건인가요? 초록 물건인가요? 어떤 것이 맞습니까? 만약에 검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노랗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붉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초록이라는 의견도 내려놓으면 이 물건은 어떤 물건일까요?
우리는 거의 모두가 색안경을 쓰고 삶을 바라보고, 다루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아.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 하는 사고방식이 굳어져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의 관계도, 이쪽과 저쪽의 관계도 모두 그러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가장 위험하게 나타나는 상황이 요즘 한국 사회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누군가는 심리적 내전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 하는 것만 있습니다.예전에는 부처님이 무아(無我)사상을 강조한 이유를 개인수행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금강경 공부를 하면서 무아사상을 비롯한 경전내용들이 조금 더 현실성 있게 다뤄져야 되겠다 싶어서 현실문제와 연결시켜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연결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제가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을 연결시켜서 상(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는 수행, 깨달음을 생활화 하는 수행제가 금강경 공부를 하며 우왕좌왕 했으니까 여러분들도 같이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헤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한판 승부 내듯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하게 탐구하면서 내용들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사실 오늘 새벽까지 이야기할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메모한 내용을 읽으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입니다. 이 구절은 많이 들어보셨죠? 이 구절에 금강경의 사유 방식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구절을 더 압축시켜서 ‘상(相)은 상(相)이 아니다. 이름이 상(相)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또 금강경이란 경전을 이야기할 때는 ‘금강경은 금강경이 아니야. 이름이 금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제 내용으로 보면 굉장히 압축된 이야기라 그 속에는 사실 대단히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잘 풀어내어 현실과 연결시켜 이야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알기 어렵게 됩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기도 하고 말 그대로 아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구절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금강경과 관계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육조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육조스님은 잘 아시다시피 불교역사 속에서 부처님 못지않게 굉장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깨닫는 과정을 보면 어쩌다 보니 깨달아졌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싱겁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육조스님은 단순 무식한 나무꾼이었다고 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나무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해서 장에 팔러 나갔다가 누군가가 금강경 독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한문이 외국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문이 모국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금강경 내용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모양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육조스님에게 와 닿았던 금강경 구절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입니다. 이 구절도 유명한 구절이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구절을 듣는 순간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눈앞에 자욱했던 안개가 싹 걷힌 것입니다. 인생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길이 환하게 열린 겁니다. 그리곤 이런저런 여러가지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지만 잘 수습하고 그 길로 출가를 합니다.출가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방아 찧는 일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출가하면 행자들이 거의 부엌에서 일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러했습니다. 육조스님도 처음 출가해서는 참선이나 경전공부를 하지 않고 방아 찧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조실인 오조 홍인대사께서 후계자를 정하려고 과정을 밟아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에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당신이 찾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6월 보현법회-일상에서 아상(我相) 벗어나기
금강경의 무주상 사유방식과 나의 현장 경험
만병의 근원: 아상(我相)
안녕하세요? 근래에 금강경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인연이 만들어져서 아직도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화두처럼 금강경을 가지고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면서 살고 있는 것이 저의 근황입니다. 문명전환, 우리가 지금 미혹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나아가 보자고 만일결사를 하고 있는데, 금강경에서는 미혹의 문명과 깨달음의 문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금강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주상(無住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상(四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모두 묶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아상은 왜 생겨나는가, 어떻게 버릴 것인가?,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그런데 이 내용이 뭔가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 우리가 현실의 삶을 사는데 어떻게 작동되고 적용되고 도움이 되는지 명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금강경에는 ‘아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상에 머물지 마라’, ‘상을 버려라’, ‘나라는 상을 내려놔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무주상(無住相)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대표적인 경전이 금강경입니다.왜 그렇게 줄기차게 아상을 문제 삼을까? 우리는 아상(我相) 또는 무주상(無住相)을 주로 자기 수행이라는 관점에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실제 현장의 삶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일상생활에서 아상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어떤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소소한 것들이 많겠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니까 우리가 기억하는 큰 사건을 사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① 한국전쟁의 원인도 아상(我相)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한국전쟁과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점에, 북쪽은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있고 남쪽에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길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보면 바로 이 아상의 사유방식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상의 사유방식으로 사는 것이 곧 미혹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상의 사유방식으로 살게 되면 끊임없는 분열과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분열과 다툼이 생기는데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진전시켜보겠습니다. 김일성은 뭐라고 주장했을까요? 소위 말해 ‘좌익이 옳아’, ‘내가 좌익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 옳아’,‘우익, 너는 틀렸어. 너는 비켜. 아니 사라져.’하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입니다. 김일성만 그랬겠습니까? 이승만도 마찬가지죠.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 라는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폭발한 사건이 좌우대립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입니다.
곰곰이 우리 일상을 들여다보면 작은 동네나 큰 동네나 어떤 문제들이 생겼을 때 ‘문제가 왜 생겼을까?’하고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집단적으로 작동해서 큰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조금만 주의 기우려 살펴보면 아상의 문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② 세계대전의 원인도 아상(我相)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더 큰 사건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고 살펴보니, 히틀러의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독일 순혈주의.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악마화 했습니다. 점점 진화하여 2차 대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점에는 히틀러가 가지고 있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역시 평소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고 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대부분은 거기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사고방식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색안경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물건이 하나 있는데 누구는 붉은색 안경을 쓰고 ‘이 물건은 붉은색 물건이네’ 하고 단정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我相)의 사고방식입니다. 또 누군가는 검은색 안경을 쓰고 ‘이것은 검은 물건이네’ 이렇게 단정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노란색 안경, 초록색 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해 봅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이 물건은 붉은 물건인가요? 검은 물건인가요? 노란 물건인가요? 초록 물건인가요? 어떤 것이 맞습니까? 만약에 검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노랗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붉다는 의견도 내려놓고 초록이라는 의견도 내려놓으면 이 물건은 어떤 물건일까요?
우리는 거의 모두가 색안경을 쓰고 삶을 바라보고, 다루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아.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 하는 사고방식이 굳어져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의 관계도, 이쪽과 저쪽의 관계도 모두 그러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가장 위험하게 나타나는 상황이 요즘 한국 사회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누군가는 심리적 내전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 하는 것만 있습니다.예전에는 부처님이 무아(無我)사상을 강조한 이유를 개인수행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금강경 공부를 하면서 무아사상을 비롯한 경전내용들이 조금 더 현실성 있게 다뤄져야 되겠다 싶어서 현실문제와 연결시켜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연결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제가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을 연결시켜서 상(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는 수행, 깨달음을 생활화 하는 수행제가 금강경 공부를 하며 우왕좌왕 했으니까 여러분들도 같이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헤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한판 승부 내듯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하게 탐구하면서 내용들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사실 오늘 새벽까지 이야기할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메모한 내용을 읽으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입니다. 이 구절은 많이 들어보셨죠? 이 구절에 금강경의 사유 방식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구절을 더 압축시켜서 ‘상(相)은 상(相)이 아니다. 이름이 상(相)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또 금강경이란 경전을 이야기할 때는 ‘금강경은 금강경이 아니야. 이름이 금강일 뿐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제 내용으로 보면 굉장히 압축된 이야기라 그 속에는 사실 대단히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잘 풀어내어 현실과 연결시켜 이야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알기 어렵게 됩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기도 하고 말 그대로 아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구절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금강경과 관계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육조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육조스님은 잘 아시다시피 불교역사 속에서 부처님 못지않게 굉장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깨닫는 과정을 보면 어쩌다 보니 깨달아졌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싱겁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육조스님은 단순 무식한 나무꾼이었다고 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나무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해서 장에 팔러 나갔다가 누군가가 금강경 독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한문이 외국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문이 모국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금강경 내용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모양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육조스님에게 와 닿았던 금강경 구절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입니다. 이 구절도 유명한 구절이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구절을 듣는 순간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눈앞에 자욱했던 안개가 싹 걷힌 것입니다. 인생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길이 환하게 열린 겁니다. 그리곤 이런저런 여러가지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지만 잘 수습하고 그 길로 출가를 합니다.출가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방아 찧는 일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출가하면 행자들이 거의 부엌에서 일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러했습니다. 육조스님도 처음 출가해서는 참선이나 경전공부를 하지 않고 방아 찧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조실인 오조 홍인대사께서 후계자를 정하려고 과정을 밟아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에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당신이 찾는 인물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