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로 우주를 품다 ... 다천 김종원 선생
템플스테이관 <휴휴당>의 편액과 주련 글씨를 쓰시는 다천 김종원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의 삶과 서예미학, 그리고 휴휴당 편액글씨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 백혜숙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써주신 백혜숙 님은 아동문학가이며,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 도반입니다. 쓰신 책으로는 그림책 『그곳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동시집 『누가 누가 더 셀까』가 있습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 열아홉 번째 100일 돌아보기와 스무 번째 백일 맞이 법회에 참석했다가 템플스테이 건물 편액과 주련의 글씨를 쓰는 사람이 '다천 김종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는 그 김종원 선생님인가? 어떻게 우리 실상사와 연이 닿았지?
그 분이라면, 분명 멋지게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수지행자 님이 인터뷰 관련해서 전화했을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무조건 OK"였다. 올해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김종원 선생님이 해마다 여는 <문자문명전> 관람을 놓친 아쉬움도 컸고, 평소에도 정말 가까이에서 뵙고 싶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창원 동읍 다호리에 있는 선생님의 작업실. 한쪽에는 작업 중인 작품이 바닥에 놓여있고, 그 맞은편에는 선생님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책들이 책장에 주욱 줄 서 있었다. 오래된 고서적부터 일본서적, 현대의 다양한 책까지. 안상수 선생님은 이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김종원을 알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야말로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예를 배우러 원예과에 입학하다
“어릴 적부터 한자에 호기심이 많았어요. 집에는 책이 많았고, 유명한 사람의 글씨나 그림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죠. 벽장을 열면 그런 게 많이 있었고, 그것을 보면 재미가 있었어요."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와 조상 대대로 문장을 잘하는 집안 내력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서 책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천자문을 배웠는데, 그때부터 이미 한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서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한자나 고서적을 보고 있으면 뭔가 쾌감을 느꼈다. 한자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아주 고대적인 상상력에 눈을 뜬 것이다.
"그때부터 미적으로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글씨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내 마음대로 써보는 것도 재미있고, 그래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죠.”
어릴 때부터 글씨를 보면서 미적 쾌감을 느꼈다니,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그런 미적 쾌감이 씨앗이 되어 오늘의 김종원 선생님이 있게 된 것이리라.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그 정도로 서예의 매력에 빠졌다면 당연히 문자와 관련된 학문을 택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제주대학교 원예과에 진학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데, 마산 창동에 있던 <희다방>에서 서예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이끌리듯 들어가서 전시를 구경했죠. 그때 전시를 하고 있던 분이 바로 소암 현중화 선생님이었어요."
이게 인연이 되어 본격적으로 글씨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현중화 선생님께 뜻을 말씀드리니 일단 통신으로 해보자고 해서 그렇게 글씨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하던 중 고3이 되었고,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고등학생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창 생각할 때잖아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들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글씨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서 대학을 꼭 서울로 가야 하는가까지 생각하게 된 거죠."
다들 당연히 서울로 진학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마산고등학교는 지역에서 굉장한 명문학교였고, 사정만 되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였다. 그러니 집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현중화 선생님마저도 "대학은 서울로 가고 글씨 공부는 대학 마치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면서 "지금은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갔어요. 서울로 안 가고 제주대학교로요. 현중화 선생님이 제주도에 사셨거든요."
"아하, 그런데 왜 하필 원예과를? 문자와 관련된 학과도 아닌데."
"현중환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 서귀포였거든요. 제주대학교는 농과대학이 서귀포에 있었어요. 감귤재배가 주요작물이기도 했으니까"
"아니,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요?"
정말 놀라웠다. 제주대학교 원예과를 가게 된 이유가 단지 현중화 선생님 옆에서 배우고 싶어서였다니.
세상의 말보다도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던 낭만적 사유,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기 - 이게 이후에도 김종원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그려준 두 단어가 아니었을까.
김종원의 작품세계를 보다
다천 선생님은 이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문자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에 글자를 보면서 미적 쾌감을 느꼈다면, 이때부터는 서예를 할 때 글자를 잘 쓰는 것보다 문자가 가진 힘 혹은 소리, 의미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글씨와 그림의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을 받는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번 나온 말이 ‘서화동원(書畵同源)’이다. 글씨(書)와 그림(畵)이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선생님은 글씨와 그림이 서로 다른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며,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우리나라에서 문자학으로는 처음으로 ‘금문연구-127단자자상고(金文硏究-127單字字樣考)’라는 논문을 썼는데, 그 또한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허물고 그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서예에서는 문자학이 굉장히 중요하죠. 서체의 변천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자 미학적 입자의 현실적 현현이니 이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결국에는 문자학, 서예 미학, 그리고 철학적 문학적 이해의 깊이가 서예의 격을 다투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유동영 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한번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예 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계, 특히 미술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저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좀 독설가거든요. 타협을 안 하니까 독불장군이라고 하죠. 예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미적인 이념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해서..."
흐려진 말끝에서 그동안 활동하면서 겪었을 선생님의 고충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실력이 있으면 절로 드러나는 법. 서예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현대 회화로까지 확장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선생님은 전 세계 곳곳에서 초대하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작품은 LA도 갔다 샌디에이고도 갔다 독일에도 갔다 영국에도 갔다. 그리고 이름도 멋진 <문자문명전>은 17년 째 창원을 대표하는 전시로 매년 열리고 있지 않은가.
다호리 ‘붓’에서 시작된 <문자문명전>
김종원 선생님이 사는 곳이 창원 다호리다. 그리고 1988년,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 '붓' 다섯 자루가 출토되었다.
이건 우리 나라 고대 발굴사에서 제일 큰 발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붓이 있었다는 것은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호리 붓 발굴 이전에는 우리 나라 문자사용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 시기, AD 4세기 경으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다호리 붓의 발견으로 문자사용 시기가 기원전 1세기경으로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버린 것이다. 우리 나라는 삼한시대, 중국은 진나라 진시황 시대와 거의 맞먹는 시기다.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 다섯 자루
'다호리 붓'과 '붓으로 세상을 써 내려가고 있는 김종원 선생님''의 만남은 필연이 아닐까 싶다.
붓으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펼쳐보고 싶었던 선생님은 2009년부터 매년 <문자문명전>을 열고 있다. <문자문명전>은 다호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섯 자루의 붓을 우리나라 문자사용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로 보고 그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자 미학의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선생님은 <문자문명전>의 목적을 ‘서예’, 문자를 대상으로 한 서예라고 했다. 글자를 쓰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글자를 쓰더라도 다른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예는 시와 문장을 대상으로 해요. 그렇지만 단순히 시와 문장을 잘 쓰는 것은 타이포그라피라고 할 수 있죠. 서(書)-글자-가 예술이 되려면 그 글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본인의 철학이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감동이 있고요. 저는 그게 서예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생님의 글씨는 단순한 서(書) 가 아니다. 매 순간순간 그것과 부합하는 질문과 감정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붓끝에 우주를 담아 결국에는 미(美)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문명이란 말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말 자체에 황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이 말을 탐내는데, 특히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그렇습니다. 또 "문자문명전이라면서 왜 그림을 그려놨지?"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뭔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자기 경험치만큼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은 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실상사 문자반야프로젝트
“실상사에는 제주대학교 원예과를 다닐 때 흰배롱나무를 보러간 적이 있어요. 그래도 명색이 원예과에 다니다 보니 나무에 관심이 좀 많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다시 갔으니 거의 50년 만입니다.”
흰배롱나무를 보기 위해서 실상사를 찾았던 20대의 청년이 이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50년의 세월이 흘러 실상사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동안 함께 전시를 하기도 하고 문자반야에 대한 뜻도 공유해왔던 안상수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
실상사 문자반야프로젝트는 실상사 경내·외 모든 건물의 현판과 주련, 그리고 안내판 등을 통해 문자반야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실상사 어느 곳을 거닐든 어느 곳에 머물든 '나를 깨우고 흔드는" 문자와 문양들로 실상사를 장엄하는 불사다. 그동안 1차 문자반야프로젝트로 <선재집 편액>과 <천왕문 주련>을 걸었고, 이번 2차에서는 <휴휴당(실상사 템플스테이관) 강당의 편액>과 더불어 <정기용 선생 기림비>, <실상사선언-불사십조탑> 등을 기획하고 있다.
다시 서화동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한자는 상형문자이고 뜻글자이니 서화동원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는데,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에서도 서화동원이란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한글 자음 5개(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 문자이고, 모음은 천지인, 즉 자연입니다. 상형적인 요소와 자연현상, 이 두 개가 같이 있는 게 한글이죠. 그래서 한글은 발음기호임과 동시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독립된 조합이기도 해요. 한자는 처음부터 독립어죠. 알파벳과 같은 발음기호는 단순 나열이지만, 한글은 자기 독립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 그 구조 자체가 이미 상형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독립어로서 기능할 수가 있는 거죠."
김종원 선생님은 휴휴당 편액과 주련의 글씨를 맡아주셨다. 먼저 받아본 ‘휴휴당’이라는 글씨는 참으로 묘하다. 글자인 듯 그림인 듯 한자와 한글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쉰다는 의미의 ‘휴’를 한글로 표현했는데, 사람이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폴나폴 춤을 추는 것도 같기도 하고, 기쁨 가득 담고 즐겁게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이미 '휴휴당' 글씨에서도 한글을 서화동원(書畵同源)의 개념으로 형상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휴휴당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김종원 선생님이 쓰신 '휴휴당'
“휴휴당도 마찬가집니다. 말 그대로 ‘ㅎ’하고 ‘ㅜ’, 그러니까 하늘하고 땅인데 그것에 ‘ㅣ’가 하나 더 붙으면 ‘휴’가 되잖아요. 이 형상을 보면 ‘휴’ 자체가 사람이 서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가는 것일 수 있고, 온갖 상상을 다 붙일 수 있죠. 단순히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 몇 개가 있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 독자적이고 추상적인 부호로도 가능해져요. 이처럼 한글도 얼마든지 형상적으로 풀어갈 수가 있죠. ‘ㄱ, ㄴ, ㄷ’과 같은 자음들이 모음과 얽히는 순간 전혀 다른 새로운 형상이 되는 거죠.”
선생님은 언어에 매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글자를 판단하려 하는 순간 그 의미가 국한되어 버리기에 거기에 매이면 안 된다는 것, 이미지 그 자체로 보면 무한대로 다른 뜻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휴휴당’ 현판도 마찬가지. 글자로만이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로 보게 되면 무한대의 다른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적 상상력은 의미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서예작품을 감상할 때는 이게 무슨 글자인지 무슨 뜻인지를 살피기 이전에 써놓은 글자 형상에서 흥미를 느끼면서, 글자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가면 더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라고도 했다.
언어와 문자는 우리의 의식구조부터 시작해서 생활구조까지 다 지배한다. 이것은 엄청난 속박이지만, 그렇다고 언어를 안 쓸 수는 없는 일.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언어를 안 쓸 수는 없고, 그래서 오히려 그것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경 서적 변상(金剛經 書的 變相)
불교경전의 앞부분에 보면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자로 서술된 불교 교리가 일반 신도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문문자자-금강경 서적 변상(文紋字 자-金剛經 그 書的 變相)’이란 게 있다. 선생님은 평소에 <금강경>이나 <금강경오가해>를 많이 읽었다고 한다. '문문자자-금강경, 그 서적 변상'은 그 내용을 변상도처럼 그림으로 압축한 것인데, 계획적으로 구상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묘하게도 어느 날 머릿속에서 글씨인 듯 그림인 듯 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 금강경 변상도!'
그것은 선생님이 고문자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고대 은나라, 주나라 시대 그 문자의 형상들도 결국은 자연에서 자신의 삶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추상화하고 단순화한 것이지 않던가. 그러면 이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무조건 150호 크기 종이를 깔았어요. 일단 줄을 좀 쳐놓고 하니까 그 형상이 나오는 거예요. 정말 어느 순간에 붓이 저절로 놀면서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죠. 비유하자면, 마치 기독교에서 방언을 하는 것처럼, 이것은 오토매틱 라이팅(Automatic Writing) 같은 것이었어요. "
"와아, 그야말로 신들린 거네요."

‘문문자자-금강경 서적 변상(文紋字 자-金剛經 그 書的 變相
정말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누가 봐도 또한 경이로운 느낌을 갖는가 보다. 붓을 드니 저절로 나왔다는 선생님의 그 작품에 대해 2014년 전시 당시 기획을 맡은 분은 <글, 신들다>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 작품 또한 '이것은 글씨인가 그림인가' 싶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게 한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굳이 읽으려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금강경 자체가 사람의 이야기이며, 온갖 번뇌 망상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 자체가 온갖 번뇌 망상을 전부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니, 다만 형상 자체가 얽혀 있는 모습만 보면 된다는 것이다.

‘문문자자-반야심경(般若心經)

'용의 눈물-석보상절'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고 상상력은 점점 더 무한히 우주로 뻗어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10월 휴휴당 현판식이 더 기대된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실상사를 지혜의 숲으로 가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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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 351-0390-3871-33 (실상사중창불사) ● 동참금액 : 십시일반 (형편이 닿는 만큼 정성껏, 1만원도 좋고 2만원, 5만원, 10만원, 그 이상도 다 좋아요!) ※ 계좌입금시 송금인 란에 “성함(문자반야)”라고 적어주세요. ※ 송금 후엔 꼭 전화로 문자반야프로젝트 후원임을 알려주세요. ● 문의 및 연락 : 실상사 종무소 063-636-3031 |
글씨로 우주를 품다 ... 다천 김종원 선생
템플스테이관 <휴휴당>의 편액과 주련 글씨를 쓰시는 다천 김종원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의 삶과 서예미학, 그리고 휴휴당 편액글씨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 백혜숙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써주신 백혜숙 님은 아동문학가이며,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 도반입니다. 쓰신 책으로는 그림책 『그곳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동시집 『누가 누가 더 셀까』가 있습니다.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 열아홉 번째 100일 돌아보기와 스무 번째 백일 맞이 법회에 참석했다가 템플스테이 건물 편액과 주련의 글씨를 쓰는 사람이 '다천 김종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는 그 김종원 선생님인가? 어떻게 우리 실상사와 연이 닿았지?
그 분이라면, 분명 멋지게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수지행자 님이 인터뷰 관련해서 전화했을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무조건 OK"였다. 올해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김종원 선생님이 해마다 여는 <문자문명전> 관람을 놓친 아쉬움도 컸고, 평소에도 정말 가까이에서 뵙고 싶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창원 동읍 다호리에 있는 선생님의 작업실. 한쪽에는 작업 중인 작품이 바닥에 놓여있고, 그 맞은편에는 선생님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책들이 책장에 주욱 줄 서 있었다. 오래된 고서적부터 일본서적, 현대의 다양한 책까지. 안상수 선생님은 이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김종원을 알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야말로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서예를 배우러 원예과에 입학하다
“어릴 적부터 한자에 호기심이 많았어요. 집에는 책이 많았고, 유명한 사람의 글씨나 그림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죠. 벽장을 열면 그런 게 많이 있었고, 그것을 보면 재미가 있었어요."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와 조상 대대로 문장을 잘하는 집안 내력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서 책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천자문을 배웠는데, 그때부터 이미 한자가 가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서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한자나 고서적을 보고 있으면 뭔가 쾌감을 느꼈다. 한자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아주 고대적인 상상력에 눈을 뜬 것이다.
"그때부터 미적으로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글씨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내 마음대로 써보는 것도 재미있고, 그래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죠.”
어릴 때부터 글씨를 보면서 미적 쾌감을 느꼈다니,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그런 미적 쾌감이 씨앗이 되어 오늘의 김종원 선생님이 있게 된 것이리라.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그 정도로 서예의 매력에 빠졌다면 당연히 문자와 관련된 학문을 택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제주대학교 원예과에 진학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데, 마산 창동에 있던 <희다방>에서 서예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이끌리듯 들어가서 전시를 구경했죠. 그때 전시를 하고 있던 분이 바로 소암 현중화 선생님이었어요."
이게 인연이 되어 본격적으로 글씨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현중화 선생님께 뜻을 말씀드리니 일단 통신으로 해보자고 해서 그렇게 글씨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하던 중 고3이 되었고,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고등학생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창 생각할 때잖아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들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글씨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서 대학을 꼭 서울로 가야 하는가까지 생각하게 된 거죠."
다들 당연히 서울로 진학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마산고등학교는 지역에서 굉장한 명문학교였고, 사정만 되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였다. 그러니 집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현중화 선생님마저도 "대학은 서울로 가고 글씨 공부는 대학 마치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면서 "지금은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갔어요. 서울로 안 가고 제주대학교로요. 현중화 선생님이 제주도에 사셨거든요."
"아하, 그런데 왜 하필 원예과를? 문자와 관련된 학과도 아닌데."
"현중환 선생님이 사시는 곳이 서귀포였거든요. 제주대학교는 농과대학이 서귀포에 있었어요. 감귤재배가 주요작물이기도 했으니까"
"아니,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요?"
정말 놀라웠다. 제주대학교 원예과를 가게 된 이유가 단지 현중화 선생님 옆에서 배우고 싶어서였다니.
세상의 말보다도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던 낭만적 사유,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기 - 이게 이후에도 김종원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그려준 두 단어가 아니었을까.
김종원의 작품세계를 보다
다천 선생님은 이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문자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에 글자를 보면서 미적 쾌감을 느꼈다면, 이때부터는 서예를 할 때 글자를 잘 쓰는 것보다 문자가 가진 힘 혹은 소리, 의미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글씨와 그림의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을 받는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번 나온 말이 ‘서화동원(書畵同源)’이다. 글씨(書)와 그림(畵)이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선생님은 글씨와 그림이 서로 다른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며,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우리나라에서 문자학으로는 처음으로 ‘금문연구-127단자자상고(金文硏究-127單字字樣考)’라는 논문을 썼는데, 그 또한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허물고 그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서예에서는 문자학이 굉장히 중요하죠. 서체의 변천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자 미학적 입자의 현실적 현현이니 이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결국에는 문자학, 서예 미학, 그리고 철학적 문학적 이해의 깊이가 서예의 격을 다투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유동영 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한번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예 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계, 특히 미술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저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좀 독설가거든요. 타협을 안 하니까 독불장군이라고 하죠. 예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미적인 이념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해서..."
흐려진 말끝에서 그동안 활동하면서 겪었을 선생님의 고충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실력이 있으면 절로 드러나는 법. 서예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현대 회화로까지 확장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선생님은 전 세계 곳곳에서 초대하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작품은 LA도 갔다 샌디에이고도 갔다 독일에도 갔다 영국에도 갔다. 그리고 이름도 멋진 <문자문명전>은 17년 째 창원을 대표하는 전시로 매년 열리고 있지 않은가.
다호리 ‘붓’에서 시작된 <문자문명전>
김종원 선생님이 사는 곳이 창원 다호리다. 그리고 1988년,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 '붓' 다섯 자루가 출토되었다.
이건 우리 나라 고대 발굴사에서 제일 큰 발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붓이 있었다는 것은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호리 붓 발굴 이전에는 우리 나라 문자사용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 시기, AD 4세기 경으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다호리 붓의 발견으로 문자사용 시기가 기원전 1세기경으로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버린 것이다. 우리 나라는 삼한시대, 중국은 진나라 진시황 시대와 거의 맞먹는 시기다.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 다섯 자루
'다호리 붓'과 '붓으로 세상을 써 내려가고 있는 김종원 선생님''의 만남은 필연이 아닐까 싶다.
붓으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펼쳐보고 싶었던 선생님은 2009년부터 매년 <문자문명전>을 열고 있다. <문자문명전>은 다호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섯 자루의 붓을 우리나라 문자사용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로 보고 그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자 미학의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선생님은 <문자문명전>의 목적을 ‘서예’, 문자를 대상으로 한 서예라고 했다. 글자를 쓰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글자를 쓰더라도 다른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예는 시와 문장을 대상으로 해요. 그렇지만 단순히 시와 문장을 잘 쓰는 것은 타이포그라피라고 할 수 있죠. 서(書)-글자-가 예술이 되려면 그 글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본인의 철학이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감동이 있고요. 저는 그게 서예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생님의 글씨는 단순한 서(書) 가 아니다. 매 순간순간 그것과 부합하는 질문과 감정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붓끝에 우주를 담아 결국에는 미(美)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문명이란 말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말 자체에 황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이 말을 탐내는데, 특히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그렇습니다. 또 "문자문명전이라면서 왜 그림을 그려놨지?"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뭔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자기 경험치만큼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은 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실상사 문자반야프로젝트
“실상사에는 제주대학교 원예과를 다닐 때 흰배롱나무를 보러간 적이 있어요. 그래도 명색이 원예과에 다니다 보니 나무에 관심이 좀 많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다시 갔으니 거의 50년 만입니다.”
흰배롱나무를 보기 위해서 실상사를 찾았던 20대의 청년이 이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50년의 세월이 흘러 실상사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동안 함께 전시를 하기도 하고 문자반야에 대한 뜻도 공유해왔던 안상수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
실상사 문자반야프로젝트는 실상사 경내·외 모든 건물의 현판과 주련, 그리고 안내판 등을 통해 문자반야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실상사 어느 곳을 거닐든 어느 곳에 머물든 '나를 깨우고 흔드는" 문자와 문양들로 실상사를 장엄하는 불사다. 그동안 1차 문자반야프로젝트로 <선재집 편액>과 <천왕문 주련>을 걸었고, 이번 2차에서는 <휴휴당(실상사 템플스테이관) 강당의 편액>과 더불어 <정기용 선생 기림비>, <실상사선언-불사십조탑> 등을 기획하고 있다.
다시 서화동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한자는 상형문자이고 뜻글자이니 서화동원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는데,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에서도 서화동원이란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한글 자음 5개(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 문자이고, 모음은 천지인, 즉 자연입니다. 상형적인 요소와 자연현상, 이 두 개가 같이 있는 게 한글이죠. 그래서 한글은 발음기호임과 동시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독립된 조합이기도 해요. 한자는 처음부터 독립어죠. 알파벳과 같은 발음기호는 단순 나열이지만, 한글은 자기 독립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 그 구조 자체가 이미 상형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독립어로서 기능할 수가 있는 거죠."
김종원 선생님은 휴휴당 편액과 주련의 글씨를 맡아주셨다. 먼저 받아본 ‘휴휴당’이라는 글씨는 참으로 묘하다. 글자인 듯 그림인 듯 한자와 한글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쉰다는 의미의 ‘휴’를 한글로 표현했는데, 사람이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폴나폴 춤을 추는 것도 같기도 하고, 기쁨 가득 담고 즐겁게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이미 '휴휴당' 글씨에서도 한글을 서화동원(書畵同源)의 개념으로 형상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휴휴당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김종원 선생님이 쓰신 '휴휴당'
“휴휴당도 마찬가집니다. 말 그대로 ‘ㅎ’하고 ‘ㅜ’, 그러니까 하늘하고 땅인데 그것에 ‘ㅣ’가 하나 더 붙으면 ‘휴’가 되잖아요. 이 형상을 보면 ‘휴’ 자체가 사람이 서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가는 것일 수 있고, 온갖 상상을 다 붙일 수 있죠. 단순히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 몇 개가 있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 독자적이고 추상적인 부호로도 가능해져요. 이처럼 한글도 얼마든지 형상적으로 풀어갈 수가 있죠. ‘ㄱ, ㄴ, ㄷ’과 같은 자음들이 모음과 얽히는 순간 전혀 다른 새로운 형상이 되는 거죠.”
선생님은 언어에 매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글자를 판단하려 하는 순간 그 의미가 국한되어 버리기에 거기에 매이면 안 된다는 것, 이미지 그 자체로 보면 무한대로 다른 뜻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휴휴당’ 현판도 마찬가지. 글자로만이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로 보게 되면 무한대의 다른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적 상상력은 의미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서예작품을 감상할 때는 이게 무슨 글자인지 무슨 뜻인지를 살피기 이전에 써놓은 글자 형상에서 흥미를 느끼면서, 글자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가면 더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라고도 했다.
언어와 문자는 우리의 의식구조부터 시작해서 생활구조까지 다 지배한다. 이것은 엄청난 속박이지만, 그렇다고 언어를 안 쓸 수는 없는 일.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언어를 안 쓸 수는 없고, 그래서 오히려 그것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경 서적 변상(金剛經 書的 變相)
불교경전의 앞부분에 보면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자로 서술된 불교 교리가 일반 신도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문문자자-금강경 서적 변상(文紋字 자-金剛經 그 書的 變相)’이란 게 있다. 선생님은 평소에 <금강경>이나 <금강경오가해>를 많이 읽었다고 한다. '문문자자-금강경, 그 서적 변상'은 그 내용을 변상도처럼 그림으로 압축한 것인데, 계획적으로 구상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묘하게도 어느 날 머릿속에서 글씨인 듯 그림인 듯 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 금강경 변상도!'
그것은 선생님이 고문자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고대 은나라, 주나라 시대 그 문자의 형상들도 결국은 자연에서 자신의 삶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추상화하고 단순화한 것이지 않던가. 그러면 이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무조건 150호 크기 종이를 깔았어요. 일단 줄을 좀 쳐놓고 하니까 그 형상이 나오는 거예요. 정말 어느 순간에 붓이 저절로 놀면서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죠. 비유하자면, 마치 기독교에서 방언을 하는 것처럼, 이것은 오토매틱 라이팅(Automatic Writing) 같은 것이었어요. "
"와아, 그야말로 신들린 거네요."
‘문문자자-금강경 서적 변상(文紋字 자-金剛經 그 書的 變相
정말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누가 봐도 또한 경이로운 느낌을 갖는가 보다. 붓을 드니 저절로 나왔다는 선생님의 그 작품에 대해 2014년 전시 당시 기획을 맡은 분은 <글, 신들다>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 작품 또한 '이것은 글씨인가 그림인가' 싶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게 한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굳이 읽으려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금강경 자체가 사람의 이야기이며, 온갖 번뇌 망상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 자체가 온갖 번뇌 망상을 전부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니, 다만 형상 자체가 얽혀 있는 모습만 보면 된다는 것이다.
‘문문자자-반야심경(般若心經)
'용의 눈물-석보상절'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고 상상력은 점점 더 무한히 우주로 뻗어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10월 휴휴당 현판식이 더 기대된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실상사를 지혜의 숲으로 가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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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및 연락 : 실상사 종무소 063-636-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