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40년 각자의 삶, ‘휴휴당’ 편액에 새긴 예술혼 - 김각한 국가무형유산 각자장

실상사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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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각자의 삶, ‘휴휴당’ 편액에 새긴 예술혼

       - 고원 김각한 국가무형유산 각자장을 만나다

 


           글. 최근정 (실상사 활동가)

 


     도법 스님, 수지행, 범정과 함께 아침 일찍 서울 가는 기차를 탔다. 도법 스님은 평소 차림 그대로다. 늘 입던 옷과 운동화에 늘 매고 다니시는 헝겊 가방에 밀짚모자를 쓰셨다. 나는 소풍처럼 가볍게 길을 따라나섰다.

     기차는 금방 서울역에 닿았고 우리는 서울역에서 동작역까지 지하철로 간 다음, 목적지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도 무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사람들이 걷지 않은 길은 거뭇거뭇했고 더러 풀들이 마음 놓은 듯 뻗고 있었다.

     우리 목적지는 김각한 국가무형유산 각자장 작업실.

     각자장은 나무, 돌, 금속 등에 문자나 문양을 새기는 장인을 일컫는다. 주로 사찰, 서원, 궁궐 등의 건물에 쓰이는 현판이나 주련에 글씨를 새기는 일과 팔만대장경 같은 경판을 제작하는 일이다. 김각한 선생은 2013년에 국가무형유산 각자장으로 인정받았고 현재는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유산 각자장이다. 국가무형유산이란 명칭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낯선데, 예전의 ‘무형문화재’를 지금은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작업실 입구 전시장. 작품들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김각한 선생의 작업실은 서울 방배동 학림빌딩 지하에 있는데, 이곳에 깃들어 산 지 40년째라고 했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고원 김각한 각자연구원>과 <사단법인 한국전통각자보존회> 현판이 먼저 사람을 맞이한다. 사무실을 겸한 공간에는 선생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현판에 쓸 여러 나무판도 한쪽 벽 가득 켜켜이 누워 마르는 중이었다. 책장 위에는 오랜 친구인 듯 색바랜 라디오도 보였다.

      선생은 올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시연 행사에 필요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파고 있던 참이었다며 우리를 맞았다. 말로만 듣던 《훈민정음 해례본》 을 나무에 복각하는 현장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각하고 계셨다. 작업대 위에 있는 것이 복각하던 목판이다.



     휴휴당 현판을 만나다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간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당연지사 휴휴당 편액이다.

     작업실 한쪽에 이미 각자를 마친 ‘휴휴당’ 편액의 알판(글자가 새겨진 판)이 보였다. 

     이제 채색과 모판(알판을 둘러싸는 액자 모양 테두리)을 맞추는 일만 남아 있었다. 얼른 봐도 신수가 훤하다. 마치 목욕재계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할까. 그 맑고 단정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볼 때와 나무에 새겨진 글씨를 볼 때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종이에 써진 글씨는 기운차면서도 조금은 정적인 아름다움이 더 컸는데, 나무에 새겨진 글씨는 역동감을 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글씨 가장자리 선이 도드라지는 양각이어서 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제대로 된 현판을 완성하려면 서각과 글씨가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천지에 있는 모든 글씨를 다 봤다고 자부했는데 김종원 선생이 쓴 이 ‘휴휴당’ 글씨를 받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글씨는 제가 처음 봤으니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가운데는 ‘휴’ 자를 두 개 붙여 놓았더라고요.”


     선생은 처음 김종원 선생의 글씨를 받았을 때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글씨에 감탄이 되더라며, ‘휴휴당’ 편액은 우리 나라 편액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선생의 작업장에는 낮게 내려진 형광등 아래, 숱한 칼자국이 이리저리 엉켜 있는 책상 위 스무여 가지의 도구가 놓여 있었다. 칼, 망치, 숫돌, 자, 조임쇠, 평끌, 톱, 대패, 등 다양한 도구가 필요한 일이 각자다.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것이므로 여러 도구 중 칼이 제일 중요한데 글자의 본을 딸 때 쓰는 창 칼을 비롯해 평 칼, 함지박 칼, 마무리 칼등이 있다.


“처음 배울 때는 칼, 망치, 끌만 몇 개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글자들 사이사이를 파려면 도구가 더 필요합니다. 작품 하나 만드는데 이삼십 개 이상의 도구를 써야 합니다. 기술자라면 자기 손에 맞는 도구를 만들 줄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대부분 칼 정도는 직접 만들어서 씁니다. 망치도 자기 손에 맞아야 하니까 대장간에 주문하고요. 그 사람이 쓰는 도구를 보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작업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서각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채색에 쓰는 여러 염료도 한쪽 벽 가득 정돈되어 있었다. 선생은 서각에 필요한 도구들을 보여준 뒤 음료를 내오셨다. 그 받침이 여느 쟁반과 달리 아무 장식이 없는, 세월을 머금은 도톰한 느티나무 판목인 것조차 내 눈에는 멋스러워 보였다.



     수선전도(首善全圖)에 반한 마음, 각자장(刻字匠)의 길을 걷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소목이나 목공 일을 했기 때문에 나무와는 친숙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 전시회를 찾았는데, 훗날 스승이 된 철재(鐵齋) 오옥진 선생의 전시회에서 수선전도(조선시대 김정호가 목판으로 제작한 한양지도)에 충격을 받고 마음을 몽땅 빼앗겼다고 했다. 

     그래서 무작정 오옥진 선생을 찾아가 각자를 배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밝혔고 스승의 허락이 떨어진 지 일 년 만에 세종문화회관에 자기 작품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각자의 삶으로 살아온 40년. 선생은 오옥진 각자장과 함께 숭례문과 광화문 현판 복원 작업을 했으며《훈민정음 언해본》및 《직지(백운화상직지심체요절)》복각 등 다양한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여 지금까지 각자(刻字)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스승과 함께 숭례문과 광화문 현판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한편, 각자는 나무를 다루는 점에서는 같지만, 실제로는 소목이나 목공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예술이었다. 그저 좋아서 무작정 시작한 각자의 세계를 향한, 자신의 삶을 담금질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글씨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서예를 배웠고 한문 공부를 위해 중어중문학과에 입학도 했다. 각자에서 매우 중요한 나무 공부도 꾸준히 해왔다. 이 모든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공부라고 했다.



     숨을 죽인 나무에 숨을 불어넣는 각자


 “각자는 준비기간이 긴 일입니다. 우선 적어도 지름이 30cm 이상 자란 나무여야 하거든요. 덜 자란 나무는 물러서 늘어질 수도 있습니다. 벌채 후 건조 과정이 있는데 이때, 나무를 이삼 년 정도 바깥에 둡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자연스레 껍질이 벗겨지고 제대로 숨이 죽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다음 나무를 켜야 합니다. 급히 자르게 되면 결국 갈라지고 말아요. 그래서 현판의 재료가 되기까지는 짧게 잡아도 오륙 년이 걸리는 셈입니다. 제 작업장에 있는 목재 가운데는 사십 년간 숨죽이고 있는 은행나무도 있습니다.”


     나무가 성장하고 숨을 죽일 때까지 기다리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무도 각자장도 수행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숨이 멎는 것이 끝이 아니라 거기서도 더 내려놓고 내려놓음으로써 궁극의 비움에 도달한 수행자 나무, 그게 각자장에게는 가장 좋은 나무다. 숨이 죽은 나무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각자장, 각자장은 나무를 다음 생으로 인도하는 인로왕 보살인 셈이다.


“제일 좋은 재료는 자기 자리에 선 채로 죽은, 고사목입니다. 틀어질 대로 다 틀어진 오래된 나무, 살 만큼 살다 죽은 나무는 숨을 거두면서 진이 쫙 빠지고 그대로 말라가면서도 서 있거든요. 그런 나무는 더 이상 늘어지거나 틀어지지 않아 서각 재료로 안성맞춤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생을 마치고 숨이 죽은 나무가 제일 좋은 재료가 된다!’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견줄 수 있는 깊은 통찰이 아닌가 싶다. 



선생은 앞서 “각자는 가장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예술”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그 뜻이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 것도 같다. 자연으로서의 나무가 스스로 숙성해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 그런 생성과 소멸의 시간에 이어서 ‘숨이 죽은 나무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각자는 예술을 통한 또 다른 존재의 탄생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선생이 말한 뜻에 근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살면서 재미있는 일을 만난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싫증이 난 적이 없어요. 오롯이 한 곳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집니다. 저는 여기에 미쳤던 거 같아요. 미치니까 재미도 있었고요. 내 삶은 서각에 집중되었고 내가 새긴 글자들은 모두 내 삶의 흔적입니다.”


휴휴당 알판을 품어줄 모판 만들기를 직접 보여주셨다. 방문할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남겨둔 작업이라고. 그 배려가 고마웠다.


     한편, 그가 제일로 꼽는 목재는 산벚나무이다. 팔만대장경의 70% 이상이 산벚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물을 먹어도 나무가 늘어나지 않고 겉재목과 속재목의 구분이 뚜렷한 한편, 나이테가 분명하지 않고 나뭇결이 곱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로를 빛나게 하는 실획과 허획의 숨결


“그런데 서예가의 붓글씨에는 획의 생생한 속도감이나 먹의 농담, 붓끝의 미세한 삐침 등이 있잖아요. 그것은 종이 위에서 섬세하게 표현될 수 있지만 그대로 각자로 옮기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칫 글씨를 쓰신 분의 의도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요. 이처럼 서각으로 옮기기 곤란한 획이나 번짐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각자를 할 때는, 죽이면 살아나고 살리면 죽는 획도 있습니다. 종이 위에서 먹이 스치며 남긴 희미한 자국(허획)을 그대로 살리려 하면 오히려 전체적인 기운이 막히고 어색해집니다. 과감히 그 흔적을 없애거나(죽이면), 반대로 칼끝으로 예리하게 표현할 때, 글씨 전체의 속도감과 힘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때 이게 허획인지 실획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허획이라고 모두 쓸모없는 게 아닙니다. 필요한 허획도 있습니다. 그 허획이 있기에 실획과 실획이 이어지며 보이지 않은 힘의 흐름이 나타납니다.”


     실획(實劃)과 허획(虛劃)의 관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가슴은 ‘쿵!’ 하고 울렸다.

     종이 위에서 스치듯 지나간 붓의 흔적, 즉 허획도 글씨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보이지 않는 숨결과 같으므로 각자장은 정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데도 실획처럼 크고 강하며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만 필요한 게 아니듯이 서각의 실획과 허획도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를 빛나게 하는 것이기에 어느 획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것이었다.

     각자라는 행위는 서예가의 작품을 단순히 나무에 옮기는 복제를 넘어, 붓의 기운과 속도감까지 나무의 결 위에 되살려내는 재창조의 과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각자장은 서예가의 의도와 나무의 물성(物性) 사이를 오가며 얼마나 많은 교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쉬고 또 쉬는 집' - 휴휴당 편액 모심법회


   선생은 글씨가 편안하고 보기 좋으면 좋은 현판이라고 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작업장과 잘 맞는 이야기였다. 선생을 잘 알지는 못하나 선생 또한 그렇게 살아오셨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선생은 말씀하실 때 입맛을 다시다가 입을 다무는 버릇이 있었다. 오랜 세월 칼 쥔 손으로 강약 조절로 생긴 듯한 그 모양은 단호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현판은 건축물의 성격과 기능에 따라 보통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주거 공간에 쓰이는 당호(堂號) 현판, 교육 공간인 서원(書院) 현판, 자연과 어우러진 수양 공간인 누정(樓亭) 현판,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담는 재사(齋舍) 현판이다.

     템플스테이관으로 쓰이는 실상사 휴휴당은 어떤 성격일까. 쉼도 있고,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는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이다. 그러니 당호, 서정, 누정의 성격이 모두 있는 곳이다. 때로는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휴휴당이라는 공간은 모든 현판의 정신을 오롯이 다 담아내는 곳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내려앉아, 쉬기 좋은 날. 오는 10월 19일 일요일, 김종원 서예가가 쓰고 김각한 각자장이 새긴 ‘휴휴당’ 편액이 드디어 세상에 자기의 모습을 보인다. 

    ‘내가 새긴 글자는 내 삶의 흔적’이라는 김각한 각자장의 오롯한 삶과 예술혼이 담겨 있는 휴휴당 편액.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모두를 <실상사 휴휴당 편액 모심법회>에 초대한다.


오늘 편액을 걸었어요. 일요일 제막식 때 뵈어요.

쉬고 또 쉬는 집 - 실상사 휴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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