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대중 소식

소소한 일상, 공동체 생활, 배움과 수행


문화공동체를 지켜온 전통음악과 춤의 향연을 펼치다

2025-09-07
조회수 702


예술, 기도의 몸짓, 또 하나의 종교

오늘은 "예술이야말로 또 하나의 종교"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스며든 날이었습니다.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고, 막힌 흐름을 틔우며, 갈라진 틈을 이어주고... 그리하여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아준다는 점에서요.  나의 내면을 넘어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몸짓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만으로는 고요와 역동을 전해드리기에 한계가 많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작법 <나비춤> (장혜수, 성예진)은 연꽃을 들고 수행자의 마음으로 추는 춤이랍니다. 

작법무(作法舞)는 불보살님께 몸으로 드리는 공양, 신업을 닦는 것으로서의 춤공양이라고 합니다. 범패가 불보살님께 소리로 공양하는 것과 대비되었습니다. 전통의상이라는 육수가사와 고깔의 모양과 색깔이 좀 낯설기는 했지만, 나비의 몸짓으로 고요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저렇게 신업을 닦는다면 세상 어떤 존재에게도 해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슴을 울리는 비파연주 (김주영) 

비파는 가야금, 거문고 등과 함께 꾸준히 연주되어온 전통악기인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8년부터 다시 복원되어 연주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비파의 명맥을 이어가는 연주자는 10여명 밖에 안 된다고 하네요.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남자주인공 사자보이스의 진우가 비파연주자로 나오지요. 김주영 님은 케데헌의 OST인 <골든>도 비파연주로 들려주었는데요. 아, 실제로 김주영님은 영화 케데헌에 비파연주로 참여하셨다네요. 

비파는 따뜻한 음색과 거친 음색이 공존하는 게 특징이라고 했는데, 제 느낌으로는 따뜻하고 경쾌했습니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에 앵콜곡으로 영화 <첨밀밀> OST까지 연주해주셨어요. 


무산향 (궁중무용) 최윤정

무산향은  효명세자가 순조의 40세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분한 몸짓 하나하나에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고조되는 부분도 있고, 다시 차분해지고... 음악이 익숙했는데, 그래서 더 춤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는 분도 계시네요. 


신명의 장단과 춤사위, 설장고 (김성훈)

공연자와 관객이 따로 없는 농악의 어울림을 그대로 보여준 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구채가 장구를 두드리는데, 사람들은 자기 가슴을 맞은 듯 소리를 지르고, 숨이 멎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맺고 풀고 맺고 풀고... 때로는 간지르기도 하면서 우리들을 갖고 잘 놀아주셨습니다.  ^^


정가 (正歌) (강권순)

정가는 가곡(歌曲), 가사(歌辭), 시조(時調)를 아우르는 노래,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가 담긴 음악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절제된 감정, 긴 호흡으로 한 음씩 소리를 풀어내놓는데, 현대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억지로 내는 거친 소리는 없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몸통 가득 소리를 채워서 내보내는 느낌이랄까. 이 역시도 충분한 수행의 방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막이 소리를 낸다면 이렇지 않을까, 고요의 울림? 묘하고도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도살풀이춤 (김운선)

맺힌 한을 풀고, 잘못 엉킨 것은 끊어버리고, 갈라진 것은 하나로 이어준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살풀이춤 같았습니다. 살풀이춤은 무속 의례에서 죽은 이의 넋을 달래고 한을 풀어주는 춤으로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정말 숨죽이고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아픔과 한을 어루만지듯 섬세한 손끝, 작은 존재 하나라도 밟을세라 조심스러운 발놀림, 하얀 천이 허공을 감싸고 풀고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유(해탈)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봅니다 맺힌 한도, 집착도, 잘못된 생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 기도이고 수행이라면, 이게 기도가 아니고 수행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불법이 아니라고 혼나려나요? ^^*) 


함께 해서 행복한 날

실상사를 찾아와주신 김운선 선생님을 비롯한 예술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이 오셔서 행복한 날이었고, 예술이 공동체를 지켜온 힘이었음도 다시 깨닫는 날이었습니다. 


세상 최고의 관객, 또 하나의 공연자

예술이 앞에 서지만, 결국에는 풀어내고 이어내는 주체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은 관객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하신 선생님들도 이구동성 말씀하셨어요. 세상 최고의 관객들이라고요.

마음이 공명하고 기운을 주고 받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던 것은, 또한 실상사신도님들, 마을 주민들이 계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세상 무슨 일이든 누군가의 수고로 이루어져있음을 생각합니다. 

함께 준비해준 모든 분들, 활동가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