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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천일붓다행자가 전하는 만일결사 백일 돌아보기 이야기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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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붓다행자가 전하는 만일결사 백일 돌아보기 이야기


2024년 11월 9일 실상사에서 문명전환 지리산 만일결사 16번째 백일돌아보기와 17번째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돌아보기와 입재식 모습을 천일붓다행자의 눈으로 전합니다.


첫째날

오후 2시반. 하루 먼저 와서 여유롭게 경내를 거니는 도반들도 있고,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서 이제 막 도착한 도반들도 있습니다. 먼길을 마다않고 온 도반들과 반갑게 인사 나눕니다. 3시가 되고 여는 마당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지스님의 여는 말씀과 축원, 백대서원절명상으로 만남 의식을 치렀습니다.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일은, 자기중심적이고 실체론적인 비연기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모든 존재들이 그물의 그물코처럼 상호 연결된 존재이자 뭇생명들이 한몸 한마음 한생명의 동체대비의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본래붓다로 사는 길입니다.” (여는 말씀 중)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이 동그랗게 앉고, 돌아가며 소개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친정집 같은 곳에 다시 왔습니다.’, ‘실상사 서울학당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산내 이웃마을인) 아영이 고향입니다. 고향을 떠나 살다가 어릴적 소풍왔던 실상사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천육백일 회향을 축하합니다. 매일매일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일결사 동참이 인생에서 행복한 일이 되길 바랍니다.’, ‘내가 변화하면서 세상이 변화하는 길이 되겠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반가움과 감동이 묻어납니다. 인사 후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함께 읽고 여는 마당을 마쳤습니다.

저녁공양 후 예불과 모둠별 공부 그리고 탑돌이가 이어졌습니다. 지난 백일은 원순스님이 안내해주시는 ‘신심명’을 필사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신심명 이야기를 듣고 모둠별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중생의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님 마음을 쓰면 됩니다. 불교는 부처님 마음에 촛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자비가 생겨나옵니다. 부처님 마음을 보면, 부처님처럼 사는 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유혐간택, 단막증애”


모둠에서는 질문을 주고 받으며 현장에 직면한 신심명 공부를 합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어려움이 있을텐데, 어떻게 하나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정이 ‘나’라는 아상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고라니가 잎을 다 뜯어먹으면 좋은 마음 먹기가 쉽지 않죠.(웃음) 매번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며 지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두 시간 공부가 금새 끝났습니다. 연등순례를 하러 보광전 앞으로 모였습니다. 백일점검 연등순례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을 천천히 연등을 들고 걷습니다. 

불교사유방식에 보면, 중도, 관찰사유, 여실지견, 연기무아 이런 개념으로 요약되어집니다. 중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야할 사안이 현존하고 있는 현장에 직접 대면하는 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약사여래 정근하면서 탑돌이를 했습니다. 약사여래정근하면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현장에 직면해서 우리가 한 일을 잘 관찰사유해보면 그 실상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30분 동안 한 것을 사실 확인을 해보면 어떨까요? 마음먹고 약사여래를 부르고 약사여래를 부르면서 걸었습니다. 30분 동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바로 마음먹고 약사여래를 부르면서 걷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 만큼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이렇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30분 동안 이 현장에서 마음먹고 약사여래를 부르고 걷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내 마음도 풀어놓고 내 입도 풀어놓고 내 몸도 풀어놓으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나 같은 경우라면 따뜻한 곳에 누워있었을 것이고 누워있으면 늙다보니까 이런저런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게 되요. 부질없는 망상을 부르게 되죠. 당연히 누워있으니까 몸을 바람직하게 잘 쓰는 것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지죠. 그러면 평소에 우리가 노는 입에 염불하듯이 수행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적어도 30분 동안은 마음먹고 약사여래를 생각하면서 약사여래를 부르고 온 몸을 써서 걸었기 때문에 마음 먹고 약사여래를 생각하고 부르고 온 몸으로 걷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약사여래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고통받는 누군가에 대해서 지극한 관심과 애정으로 그 고통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또는 고통이 치유될 수 있도록 더 나아가서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는데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뭐든 하는 사람이 약사여래 잖아요. 우리도 적어도 약사여래를 부른다는 것은 나도 약사여래처럼 자비로운 마음으로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아픔이 치유가 되도록 그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할거야 이런 마음으로 약사여래 정근을 하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어쩌면 약사여래 정근하는 그 자체가 적어도 30분 동안은 약사여래부처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행위하는 만큼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 진리는 실천한 만큼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우리는 현장에서 조금만 주의깊게 관찰하고 검토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하게 되면 불교 공부와 수행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고 해도해도 무언가 안된는 것처럼 생각되고 해봐야 별 수 없어보이는 것처럼 이런 마음이 들 이유가 없게 됩니다. 하기만 하면 틀림이 없구나, 하기만 하면 확실하구나. 행위하는대로 생각하는대로 말하는대로 내가 붓다의 삶이 생활화되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이 본래붓다의 삶을 현재 내 삶으로 만들어가는 수행이고 실천이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주무시면 오늘 잠이 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법스님)


둘째날

오전 6시 50분 하루를 여는 법석에 모였습니다. 모든 도반들이 함께 올리는 축원, 한글예불, 입정, 참회와 발원 제 4권, 붓다로 살자 발원문을 읽었습니다. 아침공양을 하고 덕산스님 안내로 도량을 돌아봤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자율참석으로 안내했는데,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도량을 둘러봤습니다.

오전 10시 범종타종을 시작으로 1700일 입재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21세기 약사경 봉독, 정근과 축원, 반야심경 순으로 의식을 했습니다. 매번 입재식에는 축하의 의미로 마야합창단에서 음성공양을 올려주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마음이 부처라면’ 두 곡으로 축하하고 대중들을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회주 도법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20세기의 100년을 기적의 역사라고 하고 누군가는 죽임의 역사라고 합니다. 나는 옮고 너는 틀렸어 라는 사고 방식이 만연한 시기였다고 봅니다. 한국전쟁, 분단, 좌익우익 두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한국전쟁. 이것은 개인의 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합리적으로 답을 찾고자 가능하도록 만들어가기 위해 부처님이 제시한 길이 팔정도입니다. 좌익이 옳다는 것은 단견이야. 우익이 옮다는 것은 단견이야. 중도적으로 하면, 사실에 직면해서 검토해보면 하는 옮고 하나는 그르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익이라는 내용에도 좌익이 들어있고 반대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연기라고 합니다. 양자택일 방식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반도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좌익이라도 우익이라도 바람직한 것을 쓰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 접근했더라면 비극적 상황으로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21세기 약사경을 보면 ‘자기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내려보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상대도 빛나고 자기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구절이 있습니다. 미혹문명이라는 것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 불안, 공포입니다. 미혹문명을 넘어서 상대도 자신도 개인도 공동체도 빛나는 삶을 살아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실제 삶이 되게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깨닮음의 문명이 되려면 좌익도 우익도 빛나는 게 가능하려면 서로의 내용을 가져다 썼다면 함께 빛났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분단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답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답이 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그 방식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쳐준대로 중도 연기 사유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면 너도 빛나고 나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고 공동체도 빛나고. 답이 된다면 이런 길을 걷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싸우면서 바치는 노력이 10이라고 한다면, 중도적 방식에 바치는 노력은 5만큼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제대로 해보지 않고 ‘어려워, 복잡해’ 라고 합니다. 


앞의 내용이 가능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팔정도 사유방식, 보현십대행원 사고방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불교, 답이 될 수 있는 불교로 정리해본 것이 ‘중도로 본 본래부처와 동체대비’, ‘붓다로 살자’, ‘백대서원절명상’ 입니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중도의 사유방식으로 현대적 언어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이렇게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이쪽도 저쪽도 빛나는 길 즉, 깨달음의 문명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너그럽게 의젓하게. 그래서 깨달음의 문명이 거창한 것 같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평범하고 단순 명료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론이 아니고 직면한 실제 내용을 다루고 검토해보면 너도 나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는 길이 해볼만하고 해봐야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현실이 되려면 손에 손을 잡고 도반들과 힘있게 갈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도법스님 법문) 


스님의 법문, 참여자들의 발원문 낭독으로 만일결사 17번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다시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붓다행자들과 참여자들의 닫는 모임을 끝으로 16번째 만일결사 백일점검을 마쳤습니다.



<백일점검을 준비한 천일붓다행자들의 소감>

  • 만일결사를 하면서 몸과마음과행동의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 정성껏 준비하는 우리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붓다행자로서 지금까지의 습관을 뒤로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 언뜻 보기에는 서툴고 딱딱해보일 때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 덕분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결사가 나의 인생을 순탄하게 잘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 함께 부처님 가르침을 토론하고 연등순례하면서 부처님 당시가 떠올랐습니다. 함께 수행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만일이라는 숫자에 놀라지 않고, 매일 일상이 수행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 졸기도 했지만, 매일 반복하니 달라지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 기도문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하는 만큼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 공부를 함께하면서 힘을 받고 있습니다. 어울림의 힘, 탁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비하면 각자의 삶이 한층 자유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실상사에서 삼십년 넘게 살았는데 돌아보니까 삼십년이 한 순간입니다. 만일결사도 길어보이지만 정진하다보면 비슷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대화하고 서로 충분하게 소통하고 공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최고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해보자고 하는데, 대중을 믿고 가면 편안하고 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은 깨달음의 문명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에요. 천일붓다행자에서 ‘행자’ 라는 말을 놓고 보면, 깨달음의 문명에서 행자는 붓다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바로 최고의 삶을 사는 걸로 발심하고 나가보자는 것입니다. 
  • 도반들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됩니다.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하나 그랬는데 앞으로도 잘해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