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대중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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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지리산 만일결사 1700일 회향 및 1800일 입재(2일차)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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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6시 30분, 선재집에 모여 한글예불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실상사는 불교의 대중화, 현대화, 한글화를 위해 많은 의식을 한글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불교를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생명평화백대서원 절명상'을 했습니다. 뭇생명이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100개의 메시지를 들으며 100번의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한 배, 두 배.. 몸을 낮추며 나를 비울 수 있길 바라봅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해보겠습니까. 절은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절로 비워지는 것 같습니다. 


맛있기로 소문난 실상사 공양간에서 아침공양을 마친 후 8시 30분, 덕산스님의 안내로 실상사를 둘러봅니다. 정말 촘촘하고도 알찬 일정입니다(체력이 좋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실상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만큼 실상사가 더 가까워졌기를 바랍니다. 


10시부터는 1800일 입재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앉을자리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자리가 없는 분들은 바닥에 앉아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야합창단에서는 음성공양을 올리셨습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모여서 연습을 하시고, 때론 연습공간이 부족하여 공양간에서 연습을 하기도 하셨다고 해요. 그 정성 때문일까요? 소리는 법회를 아름답게 장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촉촉히 적셨습니다.

이어서 회향/입재 프로그램의 화룡정점,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줄기차게 붙잡고 온 것이 부처님 삶입니다. 부처님 삶을 내가 수긍할 수 있게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깨달음 이전에는 부처님의 삶도 인간의 삶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깨달음 이후에는 부처님 삶이 마치 신처럼 그려집니다. 

첫 설법의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은 깨달은 후에 대화가 통할 것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5비구를 만나서 "내 이야기 좀 들어봐."하고 사정 사정 합니다. "지금의 나는 옛날의 싯다르타가 아니야. 삶의 해답을 찾았어." 

여기에 어떤 신적인 요소가 있습니까?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입니다. 5비구에게 사정한 후엔 대단히 진지하고 치열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바로 이 대화로 인해 불(부처님), 법(진리에 대한 가르침), 승(승가공동체) 삼보가 생겨납니다. 

부처님은 향락주의도, 고행주의도 길이 아니라고 버립니다. 향락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세속의 길, 물질적 길, 신체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행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종교의 길, 정신적 길, 마음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이 두 가지 환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 가도 이 길에서는 '인간적인 길(인간적으로 사는 길, 삶의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두 개의 길을 버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습니다.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찾은 '길'이 '중도'입니다. 그리고 중도의 길에서 발견한 진리가 바로 '연기법'입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만 해탈도 열반도 가능합니다. 한국사회의 문제도 중도적으로 접근해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를 타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소를 탄 줄 알고, 누구는 소를 탄 줄 모릅니다. ('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몸과 마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과 우리는 뭐가 다를까요? 부처님은 소를 탄 줄 알고 소를 마음껏 부리며 멋지게 살아갑니다. 이것을 해탈, 혹은 열반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 여기 삶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 삶을 잘 가꾸어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면 바람직한, 희망찬 미래가 될 것입니다. 

소를 타고 있으면서도 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신비, 환상 이런 것을 쫓게 됩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소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찾아 헤메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신비(혹은 신통, 극락, 해탈, 열반 등)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배고플 때 밥 먹고, 똥 마려울 때 똥 누는 것이 신비이야."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여기에 무슨 신비, 신통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신비, 기적을 살고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소)을 잘 알고 쓰면 확실하게 답이 됩니다. 그렇게 살기만하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됩니다. 


'깨달음의 문명'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설명한 방식으로 정리한다면 '부처님은 대단히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이런 사람이라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많은 분들이 희망과 환희에 차서 행사를 마친 것 같았습니다. 희망도, 환희도 어디 특별한데 있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 그리고  함께 만든 시간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스스로 희망을 만든 사람, 옆사람에게 환희를 준 사람, 우리가 이미 붓다입니다.^^


마음을 다해 정진하고 100일 후 다시 만나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