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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_ 선지식과 승탑순례길 후기와 사진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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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랗고, 산과 들은  연두연두하고 초록초록하고... 

거기에 노랑노랑이 더해지니 온 세상이 기지개를 켜고 광합성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 실상사에 반가운 식구들 오셨다. 

봄416 가족과 더불어 416합창단이 먼 안산에서 오전7시 버스를 타고 이곳 지리산까지  오셨다.

2014년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를 시작하던 날 오셨던 동혁이 부모님, 페이스북에 "마음이 설렌다. 2017년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 마칠 때 실상사에서 받은 노랑손수건을 꺼냈다"고 쓰신 어머님, 박미리 지휘자님을 비롯해서 반가운 얼굴들. 


오늘은 선지식과 함께 걷는 승탑순례 첫번째 날. 실상사둘레에 있는 시대별 승탑을 이어 만든 승탑순례길을 걷는 날.

4월의 선지식은 세월호참사 유가족들과 416합창단.

첫걸음을 극락전 옆에 있는 증각대사탑, 즉 1200여 년 전 우리 실상사를 처음 여신 홍척국사님의 승탑에서 시작한다.


주지 승묵스님께서 먼저 환대말씀과 함께 4월 선지식으로 416합창단을 모신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세월호 참사 이후 11년. ‘잊지 않겠습니다, 헛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억·약속·책임’의 화두를 늘 잊지 않도록 깨우쳐주신 분들, 이분들이야말로 4월에 가장 어울리는 선지식이 아닐까" 하고 저절로 떠올랐다고.

또한 "억울함과 비통함을 넘어 세상에 대한 성찰,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명평화공동체의 필요성을 알리는 증언자로서 생명평화의 나침반으로 역할하고 계시고, 종교의 이름을 걸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해오던 역할을 이분들도 함께 해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어서 마을에 사는 한태주 님이 오카리나 연주로 모임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오카리나의 선율을 따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 같다. 

<새소리>, <바람>을 연주했는데, 연주하는 동안에도 극락전 숲에서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연두빛 이파리들을 쓰다듬으며 돌아다녔다. 유정무정(有情無情)의 모든 존재들이 하나로 어울려 춤을 추는 세상. 우리 아이들도 이 사이를 뛰어다녔겠지?

"바다가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4월이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 사랑해 사랑해 가슴 시리게 사랑해"

416합창단이 부른 첫노래는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봄날>.

바다에 가라앉아버린 꿈과 푸른 하늘에 둥실 떠있는 그리움이 바람결에 날아간다. 

이어 현재 416합창단 단장이기도 한 동혁군 아버님께서 합창단을 대표하여 말씀하셨다.

어제 유가족 한 분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차라리 아이 곁에 빨리 가고 싶다"면서 지병치료를 안 하고 지내다가 그렇게 가셨다고 한다. 많은 가족들이 여전히 아프지만, 주변을 마음아프게 할까봐 아프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씀도 있었다. 그런 상황들과 마음이 이해가 되어 더 안타까웠다. 

"세월호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으며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질 때까지 우리도 진실을 찾는 활동을 열심히 할 것이지 지금처럼 따듯함으로 함께 가면 고맙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노래는 <화인>. 이제 4월은 그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그 옛날의 바다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낭독, 연극, 필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억행동을 했던 상순 님이 올해도 함께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그날을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또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고 한다.

상순님은 "애도야말로 가장 고도의 돌봄행위인 것 같다"면서 "우리 서로 애도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애도를 지속하는 것이 돌봄의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낭독해주다. 10년 전에 처음 낭독했던 글이기도 하다.

"...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고, 또다시 번들거리는 얼굴로 웃게 될 것이 두렵다.죄악의 구렁텅이 더 깊이 잠겨들어 죄악이 죄악인 줄도 모르고 마음이 무디어질 것이 두렵다.우리는 또다시 시대의 악을 세상의 풍속으로 여길 것이고, 거기서 오는 불행을 운 없는 사람들의 횡액으로만 치부할 것이며, 참화는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무슨 말이 이 무서운 망각에서 우리를 지켜줄까..."

지리산종교연대 상임공동대표이신 엄삼용 수사님께서 환대와 더불어 축복의 기도를 해주셨다.

"세월호 뱃지는 세월호 주님의 십자가와 똑같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는다."면서 "진실을 밝히는 순간까지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도록 하겠다"고 밝히셨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복기도문>을 노래로 불러주셨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강복하시고 보호하시기를 비나이다. 

 주님께서 얼굴을 보이시고 자비를 베푸시기를 비나이다.

 주님께서 얼굴을 보이시어 평화 주시기를 비나이다."

그리고 천왕문을 나와 둘레길로 나선다.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듯 딱 좋다.


편운화상탑이 있는 조계암터에서는 온몸의 감각기관을 열어 오감을 깨우는 명상을 했다.

귀를 닫는 것만으로도, 입을 닫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깨어나고 열리는지... 오묘함이다. 갑자기 세계가 이렇게 이어져 있구나, 하는 것을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5분이 이렇게 길다니,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이구동성. 

편운화상탑을 떠나 용담대화상 탑이 있는 숲으로!

논둑길도 정겹고, 얼마전 가설해서 붉게 칠한 다리를 건너...

 

 

용담대화상탑 숲에 오니 으름나무 꽃향기가 천지간에 가득하다. 하얀 광대수염꽃도.

멀리 창원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김유철 시인께서 <산이 바다에 떠있듯이>라는 시를 낭송해주셨다.

멈추지 마라 / 나와 너와 그의 선한 마음을 멈추지 마라 

그 마음에 꽃 한 송이 필 것이니 / 그 자리에 비 내리고 / 햇살 비추고 달빛 내릴 것이니 

벗들이여, 발걸음 멈추지 마라


용담대화상탑 숲은 참 신기한 공간이다. 잘 보면 성스러운 피난처요 의지처인 '소도'와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태어날 때부터 열여덟까지 아이와의 예쁘고 고마운 추억을 담은 <너>라는 노래를 제단에 바쳤다.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여전히 아픈 이야기, 그렇게 울고 웃으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 동혁 어머니셨던가. 다 이루어지는 기도라며 "관세음보살"과 "아멘"을 유쾌하게 말씀하실 때 "아멘!"하고 크게 외치고 말았다.  

다시 길을 걸어 소나무숲을 지나 고려시대승탑과 임진왜란 의승수군으로 활동했던 자운당승탑이 있는 언덕으로 향한다.


오늘 사회자로, 생태해설사로, 승탑순례길 안내자로 애써주신 상은님. 정말 애쓰셨다.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땅도 가야의 아픔을, 융성했던 통일신라, 후백제와 고려의 한 시절, 전쟁과 왜구의 침입으로 고통받던 조선시대 삶을, 그리고 여순사건 등 얼마나 많은 애환을 끌어안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 이 시대도 우리는 그렇게 건너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졌다는 이 질문은 4.3, 5.18을 넘어 4.16에게도 똑같이 던져진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질문이 그대로 답이 되게 하기 위해서 기억하고 약속하고 책임을 다하는 기억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겠다. 

경내로 돌아와 생명평화기도단(목탑지)에 앉았다. 

3시간여 동안 걷는 길이다 보니 중간중간 한 분 두 분 각자 자신의 현장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서 좀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서 행진이 될 뻔한 순례길이 쉼의 길이 된 것도 같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도법스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걸었다. 한 말씀을 청하자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일었던 깨달음 - 일등주의, 최고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생명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들이 묻히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길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했다. 

이어 기도의 시간.

2014년에 쓰여진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문>을 합송했다. 

못다 부른 그 이름 불러봅니다. 304명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또박또박 부른다. 

"잊지 않겠습니다.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과 더불어 애도라는 것은 단지 함께 아파하는 것을 넘어 "기억.약속.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임을  새겨본다.   


그리고 유희정 목사님의 선창 인도로 <2025년에 다시 쓰는 기도문>을 함께 읽었다.

(이 글의 맨 아랫쪽에 남겨두니 읽어봐주시면 좋겠다.)


세월호기도소 416-304,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딛고 촛불로, 새싹으로 피어오르기를 바라는 초록빛 "푸렁이무늬", 심청이처럼 아이들이 연꽃을 타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연화화생 걸개그림" ... 

그리고 기억.약속.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11번째 봄416.

416합창단의 힘찬 노래와 함께 모임을 문을 닫는다. 

"...수고했어 오늘도 /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수고했어 오늘도)

"...이 온 마음을 다해 불러야 할 노래여 / 잃어버린 양심의 소리를 찾아 노래여 / 노래여 날아가라..."(노래여 날아가라)  

 그렇게 또 한 세상을 연다. 기억.약속.책임... 이 삶이 우리를 구원함을 믿으며.

 

** 여기에 올린 대부분의 사진은 416합창단과 함께 오신 찬이슬님(LA 내일을여는사람들)의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


■ 2025년 다시 쓰는 기도와 다짐


기억 ‧ 약속 ‧ 책임, 우리의 애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그리고 또 1년…

304명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기억하며 애도를 나눕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과 외침에도 불구하고, 

오송에서, 이태원에서, 무안에서, 그리고 지금도 국가적 사회적 재난참사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의 노력조차 없었는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엄청난 대참사에도 정부는 왜 은폐에만 급급했는지... 11년이 되도록 그 어떤 진상규명도 책임있는 답변도 들은 바 없고, 유가족들은 지금도 국가기관들의 캐비넷에 잠겨있는 기록물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온전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은 여전히 우리 앞에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애도의 뜻을 다시 새겨보고 다시 다짐합니다.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나의 탐욕과 분별을 내려놓는 것, 그래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늘 알아차리는 것,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약속과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변화의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통 앞에 중립이 없음을 철저하게 각성하며,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하여,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나와 남이 함께 완성되는 길입니다.

지금 여기 내가 깨어 살고 있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약속·책임… 이라는 애도 행위가 내 삶의 일상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지만 역사에 묶이지 않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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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2024년 12월 3일은, 

우리 사회와 공권력이 온갖 적폐들로 곪아터진 세월호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날입니다. 이기적 탐욕과 위선으로 얽히고 얽힌 공권력의 민낯, 구조화된 무책임과 무능력함, 그리고 동시에 간교함으로 악취가 진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세월호 이후 보았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또 한 번 깨우치는 강렬한 빛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빛의 광장에서 우리는 세월호 영령들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부조리와 불의에 ‘가만히 있지 않’고 분연히 떨쳐 일어선 양심적인 사람들 가운데 함께 있던 그대들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책임감 있는 애도와 함께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있는 너,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깨달음 속에서 맞이하는 올해 열한 번째 봄416.

“기억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들입니다.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저 나무들처럼 

우리의 봄416! 그대들에 대한 기억도 늘 새롭게 피어납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늘 생명평화의 빛으로 부활하시는 그대들이여!

이렇게 우리 사랑을 전합니다. 안식을 누리소서!


2025년 4월 26일 

지리산의 든든한 생명평화의 벗 지리산종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