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년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
지난 3월 한 달 동안 자원봉사로 실상사와 인연을 맺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였다. 불자도 아
니고 템플스테이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절집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축복이었다.
그동안 직장생활과 사회활동으로 정작 자신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게을렀는데 이른 새벽 경내
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와 새소리로 마음과 몸을 깨우며 하루를 열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생명평화공동체의 일원으로 기꺼이 품어주신 자비는 지난 삶 속에서 나의 모습
을 비춰볼 수 있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고 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 속에 있는 것만으로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월 초부터 한주 한주 지나면서 내가 경험한 이 소중함을 주위의 소중한 분들과 나누고 싶었
다. 기회를 꼭 만들어서 꼭 한번 실상사로 내려오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 오신 분은 있
어도 한 번만 오신 분은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았다. 나 또한 다음엔 누구와 함께 오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5월 초 연휴에 3박4일 가족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지리산 실상사로 템플스테이 가
자고 바로 제안했다. 다행히 다들 좋다고 해서 부처님 오신 날을 가족들과 함께 실상사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봉축법요식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천여 명의 불자님들을 모시기 위해 며칠 동
안 준비하신 손길을 볼 수 있었다. 한분 한분의 이름이 적힌 연등을 달고, 비빔밥 준비를 위
해 나물을 다듬고, 씻고, 썰고... 글을 쓰는데 갑자기 침이 나온다. 아마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
에 저절로 나오는 반응이리라.
아기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기리기 위해 봉축법요식을 봉행하는 자리에 함께 했다. 사진
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앞자리에서 한분 한분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읽으며 뭉클했다.
시작을 알리는 타종식이 거행되었다. 지리산을 에워싸고 있는 23개의 도/시/군/읍면 행정구
역을 상징하는 23번의 범종소리가 지리산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지금 여기까지 부처님 가르
침을 이어준 유형 무형의 존재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개회선언이 이어졌다.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현하는 공동체 즉 우리가 귀의해야 하
는 세 가지 대상을 삼귀의라고 한다. 삼귀의례에 반야심경을 봉독했다. 봉축인사로 신도회 회
장님의 인사말을 먼저 듣고, 주지스님의 인사말을 들었다. 어~ 잠시 주지스님의 말씀을 먼저
듣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사부대중과 생명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실상사는 이렇게 평등을 몸
소 실천하며 사시는구나 싶었다.
봉축법요식에서 특별한 의식으로 아기부처님 씻겨드리는 관불의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우
리 마음속에 있는 성냄과 욕심과 어리석음을 다 씻어내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법요식 마지막
에 줄 서서 기다리는 불자님들의 모습이 일상의 삶과 수행이 통일되도록 노력하는 엄숙함이
전해졌다.
여섯 가지 공양물을 올리는 육법공양에는 향, 등, 꽃, 과일, 차, 쌀이 올려졌다.
향은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난 해탈의 향기를,
등은 어둠을 벗어나는 지혜를,
꽃은 붓다의 삶을 완성하는 거룩한 만행을 상징한다고 한다.

과일은 깨달음이 영글어 가는 수행을 뜻하고,
차는 세상을 맑게 하는 감로다를,
쌀은 한 톨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듯 환희의 전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육법공양을 하러 나오시는 불자님들이 정성스럽게 한발 한발 내딧는 발걸음을 따라 나의 마음
도 함께 공양했다.
청법가로 회주 도법스님의 법문을 청했다. 회주스님의 법문 따라 갈등과 혐오를 넘어서 허심
탄회한 중도의 대화로 문명전환의 길에 함께 하겠다는 우리의 발심과 서원으로 각자의 자리에
서 한 분 한 분들이 본래붓다임을 알고 본래붓다로 살겠다는 다짐이 모이고 모여야, 문명전환
의 길이고, 오늘 부처님 오신 날 우리가 새겨야 할 방향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야합창단의 음성공양 축하공연에 이어 실상산문 사부대중 발원문을 다함께 낭독했다. 마지
막으로 불자님들이 부처님 오신 날이면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아기부처님을 목욕
시켜 드리는 관불의식을 차분하고 여법하게 진행하며 봉축법요식을 마무리 했다.

실상사 신도회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비빔밥으로 점심 공양을 맛있게 했다. 점심공양으로 봉축
행사가 마무리되고 실상사도량 한편에서는 매달 열리는 마을장터 살래장이 펼쳐졌다. 생태자
원순환을 위한 장터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먹거리와 예술품들이 소박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성비도 좋고, 무엇보다도 이웃이 직접 만든 음식이라 더 안전하
고 맛있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돌로 만든 솟대 옆에서 살래재즈밴
드의 멋진 연주가 이어졌다.

저녁 예불은 보광전 앞에서 올렸다. 아쉽게도 빗방울이 오락가락하여 마을 연등 행렬은 취소
되었다. 못내 아쉬웠다. 아마도 내년에도 꼭 다시 오라는 뜻이라고 여겨졌다. 잊지 못할 부처
님 오신 날이었다.
2025. 5. 9
최은민 두 손 모아
불기 2569년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
지난 3월 한 달 동안 자원봉사로 실상사와 인연을 맺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였다. 불자도 아
니고 템플스테이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절집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축복이었다.
그동안 직장생활과 사회활동으로 정작 자신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게을렀는데 이른 새벽 경내
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와 새소리로 마음과 몸을 깨우며 하루를 열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생명평화공동체의 일원으로 기꺼이 품어주신 자비는 지난 삶 속에서 나의 모습
을 비춰볼 수 있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고 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 속에 있는 것만으로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월 초부터 한주 한주 지나면서 내가 경험한 이 소중함을 주위의 소중한 분들과 나누고 싶었
다. 기회를 꼭 만들어서 꼭 한번 실상사로 내려오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 오신 분은 있
어도 한 번만 오신 분은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았다. 나 또한 다음엔 누구와 함께 오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5월 초 연휴에 3박4일 가족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지리산 실상사로 템플스테이 가
자고 바로 제안했다. 다행히 다들 좋다고 해서 부처님 오신 날을 가족들과 함께 실상사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봉축법요식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천여 명의 불자님들을 모시기 위해 며칠 동
안 준비하신 손길을 볼 수 있었다. 한분 한분의 이름이 적힌 연등을 달고, 비빔밥 준비를 위
해 나물을 다듬고, 씻고, 썰고... 글을 쓰는데 갑자기 침이 나온다. 아마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
에 저절로 나오는 반응이리라.
아기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기리기 위해 봉축법요식을 봉행하는 자리에 함께 했다. 사진
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앞자리에서 한분 한분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읽으며 뭉클했다.
시작을 알리는 타종식이 거행되었다. 지리산을 에워싸고 있는 23개의 도/시/군/읍면 행정구
역을 상징하는 23번의 범종소리가 지리산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지금 여기까지 부처님 가르
침을 이어준 유형 무형의 존재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개회선언이 이어졌다.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현하는 공동체 즉 우리가 귀의해야 하
는 세 가지 대상을 삼귀의라고 한다. 삼귀의례에 반야심경을 봉독했다. 봉축인사로 신도회 회
장님의 인사말을 먼저 듣고, 주지스님의 인사말을 들었다. 어~ 잠시 주지스님의 말씀을 먼저
듣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사부대중과 생명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실상사는 이렇게 평등을 몸
소 실천하며 사시는구나 싶었다.
봉축법요식에서 특별한 의식으로 아기부처님 씻겨드리는 관불의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우
리 마음속에 있는 성냄과 욕심과 어리석음을 다 씻어내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법요식 마지막
에 줄 서서 기다리는 불자님들의 모습이 일상의 삶과 수행이 통일되도록 노력하는 엄숙함이
전해졌다.
여섯 가지 공양물을 올리는 육법공양에는 향, 등, 꽃, 과일, 차, 쌀이 올려졌다.
향은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난 해탈의 향기를,
등은 어둠을 벗어나는 지혜를,
꽃은 붓다의 삶을 완성하는 거룩한 만행을 상징한다고 한다.
과일은 깨달음이 영글어 가는 수행을 뜻하고,
차는 세상을 맑게 하는 감로다를,
쌀은 한 톨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듯 환희의 전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육법공양을 하러 나오시는 불자님들이 정성스럽게 한발 한발 내딧는 발걸음을 따라 나의 마음
도 함께 공양했다.
청법가로 회주 도법스님의 법문을 청했다. 회주스님의 법문 따라 갈등과 혐오를 넘어서 허심
탄회한 중도의 대화로 문명전환의 길에 함께 하겠다는 우리의 발심과 서원으로 각자의 자리에
서 한 분 한 분들이 본래붓다임을 알고 본래붓다로 살겠다는 다짐이 모이고 모여야, 문명전환
의 길이고, 오늘 부처님 오신 날 우리가 새겨야 할 방향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야합창단의 음성공양 축하공연에 이어 실상산문 사부대중 발원문을 다함께 낭독했다. 마지
막으로 불자님들이 부처님 오신 날이면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는 아기부처님을 목욕
시켜 드리는 관불의식을 차분하고 여법하게 진행하며 봉축법요식을 마무리 했다.
실상사 신도회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비빔밥으로 점심 공양을 맛있게 했다. 점심공양으로 봉축
행사가 마무리되고 실상사도량 한편에서는 매달 열리는 마을장터 살래장이 펼쳐졌다. 생태자
원순환을 위한 장터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먹거리와 예술품들이 소박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성비도 좋고, 무엇보다도 이웃이 직접 만든 음식이라 더 안전하
고 맛있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돌로 만든 솟대 옆에서 살래재즈밴
드의 멋진 연주가 이어졌다.
저녁 예불은 보광전 앞에서 올렸다. 아쉽게도 빗방울이 오락가락하여 마을 연등 행렬은 취소
되었다. 못내 아쉬웠다. 아마도 내년에도 꼭 다시 오라는 뜻이라고 여겨졌다. 잊지 못할 부처
님 오신 날이었다.
2025. 5. 9
최은민 두 손 모아